제68화
이제는 혼자 남은 아쿠아의 전신에서 강한 물의 파동이 일렁였다.
[인간…. 지나치게 강하군. 하지만, 그 강함이 너를 옥죄일 것이다.]
“그러니까, 아까부터 못 알아들을 소리만 하지 말고….”
[정령왕도 드디어 움직이시겠군.]
나의 의문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듯, 말을 다 듣지 않고 아쿠아는 말했다.
“말해 줄 생각 없는 것 같으니, 그만하자고. 네놈이 마지막이지?”
[……]
아쿠아의 정령화는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게이트의 클리어는 나의 기여도 1위로 끝마칠 확률이 높은 상황.
나는 용광검을 공중에 휘휘 저으며 아쿠아를 압박해 나갔다.
그리고.
촤악!!!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다는 듯. 주변의 물과 자신이 소환 가능한 물을 나에게 때려 박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화살. 어떤 것은 용 모양의 다양한 물들이 나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촤차차자작!!
“네놈은 정령화, 난 버프. 같은 조건이라면 내가 질 리가 없지.”
적당히 거리를 벌리며 이민영과 진선미가 공격권 내로 들어오지 않게끔, 아쿠아를 유인했다.
[스킬, [파천 신공 LV MAX]을 사용합니다.]
[스킬, [무쌍 난무 LV MAX]을 사용합니다.]
사사사사삭.
버프로 더욱 강해진 나는 두 가지 스킬을 조합해 나를 향해 쏟아지는 수십 갈래의 물줄기를 갈라내고 또 갈라냈다.
[말도 안 되는 강함이군….]
“감탄은 거기까지 하시고.”
버프를 사용한 나의 능력치는 이미 아쿠아를 뛰어넘고 있었다.
[LV86 – 이안 / 26살
힘 - 48222 / 99999
민첩 – 36246 / 99999
마력 – 46680 / 99999
체력 – 49298 / 99999
LV 포인트 - 0
각성 등급 - 미확정
전용 특성 – 자신의 운명을 바라본 자
배후성 – 재미로 삶을 반복 하는 자
성흔 - [시간 괴리 LV MAX]
시드 - 14034010 seed]
이그니까지 같이 덤벼들었다면, 자칫 내가 밀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지만 이그니는 없었다. 방심으로 인한 소멸.
이 순간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버프의 잔여 시간은 충분했다.
“그놈들이 오기 전에 끝내자고.”
아쿠아의 공격을 베어내며 조금씩 앞으로 치고 나갔다.
한 걸음.
사사사사삭.
한 걸음.
어느새 나의 검이 아쿠아의 사정권에 진입했을 때였다.
[정령왕께서 말한 그때가 오는 것이군…. 이제야 이해한다니, 나도 한참은 멀었구나.]
“……?”
사사삭.
스걱. 사각.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만 내뱉는 아쿠아에게 조금의 가능성도 남겨두지 않고 그대로 베어냈다.
“마무리는 역시.”
파천만뢰공.
콰지직. 콰직. 쾅!!!!
수만 발의 번개가 이리저리 몸을 베여 그 크기가 절반 이하로 작아진 아쿠아에게 쏟아져 내렸다.
“끝이다!!!”
쿠콰쾅!!!!
마무리 공격이 들어가자, 승리를 확신한 나는 아쿠아를 향해 웃어 보였다.
[인간이여, 그대의 사명은 험난할 것이다. 나는 그대가 누구인 줄 알고 있지. 이제야 이해한 내가 부족했지만….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이야.]
“그러니까, 그게 뭔….”
아쿠아는 자신의 할 말만 말한 후 공기 중으로 희미하게 변해갔다.
스스스스.
“궁금하게!!!”
[대정령, ‘아쿠아’가 처치되었습니다.]
“햐, 끝났다.”
아쿠아의 소멸과 동시에 이민영과 진선미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아저씨!!!”
“안이 씨!!”
“두 분 무사하시죠? 미안합니다. 제 판단 실수였어요.”
“헤헤…. 걱정하지 마세요. 덕분에 살았잖아요.”
“맞아요. 근데, 끝난 거 아닌가요…?”
진선미의 말에 아차. 싶던 나는 주변을 급하게 둘러봤다.
“어? 뭐지?”
시스템의 알림.
게이트가 클리어된 후. 항상 뜨곤 했던 소멸이니 몇 분이 남았다느니, 그런 알림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그렇…. 죠…? 클리어가 아닌가 본데요…?”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나의 ‘명’에서도 보지 못한 이 히든미션이 무엇을 더 숨기고 있는지를.
그리고, 나의 사명을 들먹이며 마치, 나를 본 적이 있다는 듯 말하는 대정령들의 말을.
“뭘 놓치고 있는 거지…?”
당황스러웠다.
이세계의 용사 일행은 아직 이곳에 도달하지도 못한 상황.
그 상황 속에서 대정령 둘을 처치한 나였다.
그런데도 클리어했다는 알림은커녕, 용사 일행이 오고 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기척을 느끼기 위해 집중했다.
사아아.
전투에 집중하느라, 용사 일행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고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알 수 없는 상황 속 분위기가 점차 무거워지는 중이었다.
멸망이 시작된 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불안함? 이 기분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나의 곁에서 주변을 살펴보던 이민영이 크게 소리쳤다.
“저…. 저것 봐요!!!”
이민영의 소리치며 손가락을 뻗어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스스스.
흐릿하지만, 눈앞의 그것은 점점 선명해져 갔다.
게이트.
하얀색의 게이트였다.
나의 눈앞에 나타나서는 안 되는 게이트가 생겨난 것이다.
게이트는 본래, 색상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무지개색인,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추가로 흰, 검.
이것이 멸망 한 세계에서 게이트를 파악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EX 흰, SSS검, SS검, S검, A보 , B남 , C파 , D초 , E노 , F주, G빨의 등급이 있었다.
이 게이트의 등급은 추가로 +, -의 상위와 하위의 등급이 존재했고 그로 인해 더욱 짙은 색상과 더욱 연한 색상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게이트만은 상위는 존재했지만, 하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상위든 아니든, 유일한 단 하나의 색상.
이 게이트는 육안으로 가늠이 불가능한 게이트였다.
그저 하얗기만 한…. 들어간다면 무엇이 나올지 모를 정도의 게이트.
하얀색의 게이트가 나의 눈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미친…. 이것까지 히든미션이라고…?”
하얀색의 게이트는 EX 등급.
이전에 나의 배후성이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자신의 게이트는 EX+ 등급이라 했던 기억. 세상에 단 한 곳뿐이라고.
그 게이트와는 다른 것이 분명했지만, 눈앞에 게이트는 분명히 EX 등급의 게이트였다.
당황스러움이 가시지도 않은 채, 여러 번 게이트를 확인해보았지만 분명했다.
“하…. 저 놈들 이걸 깨려고 한 건가?”
나의 욕설을 듣기라도 한 것인지, 두 사람이 나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드디어 왔네.”
“도움이 필요했나?”
“아니, 별로. 얘들 약하던데?”
괜히 어깨를 으쓱이며, 허세를 부리는 나였다.
“그렇군. 네놈이 처치한 이니스와 아쿠아라는 대정령은 이곳을 지나기 위한 문지기 정도였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하게 말하는 차정우를 노려보았다.
“……아, 그래. 문지기…. 그래서 약했구나?”
약하다? 아니, 사실은 약하지 않았다.
버프가 없었다면, 이니스를 순식간에 처치하지 않았다면 이런 식으로 여유를 부리고 있는 건 내가 아닌 대정령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건 저 너머에 있는 건가?”
“그렇다. 무섭다면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다만.”
“그거 되게 도발하는 단어인 거, 아냐?”
“모른다. 사실만을 말했을 뿐.”
정말이지, 한 대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의 스승 파천신군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았다.
굳이 이놈에게 어울리는 단어를 찾으라면 딱 이 단어가 어울릴 것 같았다.
얄미운 개자식.
남은 버프의 시간은 12분 남짓.
기왕 전투에 들어서려면 버프가 끝나기 전에 싸우는 것이 좋았다.
“후, 들어갈 거면 바로 가자고.”
“한 가지 말해주도록 하지. 들어가면 두 마리의 대정령이 있을 것이다.”
“또?”
“네놈이 해치운 대정령이 이곳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라면…. 그들은 경호원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군.”
“생각하는 게 참…. 그래. 쉬워서 좋네.”
나의 말에 차정우는 나와 함께 있는 이민영과 진선미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여기 두고 가는 게 좋을 것이다. 더 이상의 위험을 없을 테니.”
“대정령 정도면 상관…. 아, 그럴 리가 없지. 하얀색….”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말해주도록 하지.”
“뭘?”
“내가 노리는 것은 ‘정령왕’이다.”
차정우의 말에 두 동공이 확장되어갔다.
정령왕.
성좌와 비견해도 그 강함을 견주어도 지지 않을 정도의 강자.
대부분의 일에는 관심이 없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
나의 ‘명’에서도 언급만 있었을 뿐, 정령왕이라는 존재는 그만큼 까마득한 존재이자, 알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그 정령왕을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왔다?
“야, 네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겠는데, 정령왕은…."
“대장. 이놈 쫀 것 같은데요? 저희끼리 갈까요?”
나의 말에 활을 든 사내가 끼어들었다.
“어? 뭐야, 이 허약해 보이는 놈은? 뭔데 우리 안이 오라버니를 무시해!?”
“맞아요! 우리 아저씨 되게 쌔거든요!!”
나는 이민영과 진선미의 난입을 막지 않은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두 사람의 말이 나름대로 속이 시원했기 때문일까…?
“뭐야? 이…. 어?”
활을 든 사내는 진선미를 바라보곤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뭘 봐? 내가 틀린 말 했어!?”
“이…. 아름다우십니다. 아니, 나이가….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이름이라도…!!”
아….
알 것 같았다.
이성에 관심이 없는 내가 봐도 진선미의 용모는 매우 아름다웠다.
‘독미’ 독을 가진 미녀에 어울리는 미모였다.
“네 부하 원래 저러냐?”
“신경 쓰지 마라.”
“아무튼, 정령왕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강함을 지닌 지 너도 모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나는 활을 든 사내와 나의 일행들을 내버려 두곤 차정우를 향해 말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강해지기 위한 수단에 꼭 필요하다. 무섭다면 나 혼자 가도 상관없으니 신경 쓰지 말도록.”
“그러니까, 그 말투가 신경 쓰인다고 생각 해본 적은 없니?”
“없다.”
정말이지 신경 거슬리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놈이었다.
물론, 나 또한 그에 지지 않을 정도로 주둥아리를 잘 놀리는 편이었지만.
나는 잠시간 생각을 한 후 결정을 내렸다.
차정우가 이 정도로 자신감이 있다면, 나의 목숨 하나만 잘 지킨다면 죽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차정우의 전력을 파악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다시 한 번 차정우와 만날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민영아. 성흔 좀 사용해줄래?”
“네? 지금요? 잠시만요!”
이민영은 나의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성흔 ‘사계절의 축복’을 나에게 사용했다.
스아아아.
성흔과 나의 버프는 중첩이 되어 거의 올스탯에 가까운 능력치의 상승이 이루어졌다.
파직. 파지지직.
버프와 성흔의 효과로 엄청난 힘의 상승이 있어서인지, 이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아우라와 근처에만 와도 모든 것을 지져버릴 스파크가 이리저리 튀기 시작했다.
“호오…. 제법이군. 그 정도면 도움이 되겠어.”
“너 입만 산 아가리 파이터 아니겠지? 이 정도면 끝판왕 등장. 뭐, 그런 건데 도움?”
“충분하다. 각자의 목숨은 각자가 챙기는 걸로 하지.”
“끝까지 재수 없으시네요.”
“권지훈.”
기분이 나빠졌다는 것을 표현하자, 차정우는 나를 무시하며 자기 부하를 향해 말했다.
“예? 예. 대장.”
“정신 차리고 이곳을 지키거라.”
“네? 같이 안 가시게요?”
“생각이 바뀌었다. 이놈과 가도록 하지.”
“아하. 알겠어. 대장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나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그저 자기 자신이 옳다는 듯 말하는 차정우였다.
“휴…. 뭔가 휘말리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두 사람도 여기에 계세요.”
“아…. 싫은데…. 이놈이 자꾸 껄떡거린다고요!”
“하하…. 독 쓰세요. 독. 조져버려요.”
“아! 헤헤. 알겠어요. 금방 오셔야 해요!”
“아저씨. 조심하세요!!”
일행들에게 말을 전한 나와 차정우는 눈앞의 하얀색의 게이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파앗!
그리고….
게이트에 들어서자, 뜻밖의 상황에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거…. 환영 인사 뭐, 그런 거냐?”
“너무 많군.”
“저기, ‘너무’ 정도가 아닌데…?”
우리 두 사람의 눈앞에는 수많은 속성을 가진 정령들이 나와 차정우를 맞이하고 있었다.
“야, 망한 거 같은데?”
정령들의 숫자를 세는 것도 포기한 나는 차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