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또 시작이냐며 고개를 푹 숙입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인성이 자신의 첫째 제자와 맞먹는다고 말합니다.]
[성좌, ‘사계절을 사랑하는 선녀’가 방긋 웃으며, 손뼉을 쳐댑니다.]
[성좌,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이 아린이가 보고 싶다며 온종일 우울해합니다.]
이놈의 성좌들은 왜 내가 욕 만하면 난리들인 거지…?
알 수 없었지만,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정령이고 나발이고 내 심기를 건드린다면 욕은 먹어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하찮은 인간들이라고 무시한 건 눈앞의 상위 정령이었으니.
“왜, 넌 우리 무시해도 되고 난 안 되냐? 정령들은 인간들의 친구 아니야?”
[크하하하. 재미난 인간이군. 한 가지 알려주자면, 모든 정령이 인간에게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아아, 그래서 너는 아니다? 인간이 싫다?”
[그런 셈이군.]
“그럼 나도 존중을 해줄 필요는 없겠네. 상위 정령 따위가 어디, 주둥이를 털어? 아. 주둥이는 없구나?”
계속되는 거친 말에 토(土)의 상위 정령이 화가 났는지, 그의 곁에서 무언가 꿀렁꿀렁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야 꿀렁거리지 말아라. 진짜 응가 같으니까….”
[나의 이름은….]
“됐어. 안 궁금해. 곧 뒈질 놈이 이름은 무슨.”
[이놈이…!!!]
상위 정령은 나를 향해 자신의 기운을 방출했다.
가볍게 견딜 수 있는 정도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 정도가 전력이라면 팔 한쪽이 없음에도 나 혼자 처리가 가능할 정도였다.
“정령들의 이름은 대정령부터 주어지는 것 아닌가? 상위 정령 주제에 이름은 무슨. 뒤져 그냥.”
나는 상위 정령을 향해 소리쳤다.
하찮은 인간들이라는 소리를 듣고서도 존댓말을 써가며 좋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정령들.
동, 서, 남, 북. 네 방향의 정령들은 상위 정령 중에도 최상위 정령에 속하는 강자들.
이 정령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정령으로 승격해 이름을 하사받는다는 것도.
하지만 말이 대정령이지 이들은 말 그대로 이름도 없는 예비 대정령일 뿐이었다.
강함도 딱 그 정도.
이름 따위 들어도 의미가 없었다.
대정령이 되기 전 자기네들끼리 미리 지어놓은 예명과 같은 것이었으니.
“서로 시간 끌지 말고 한 번에 가자고. 응가야.”
계속되는 나의 도발에 뭐가 그렇게 재미난 지, 진선미는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고 이민영은 정령인데 욕해도 되냐며 나를 걱정하는 중이었다.
뭐…. 정령이건 성좌건 마음에 안 들면 욕하는 거지.
그리고
이 모습을 본 성좌들은 단체로 고귀한 존재들에게 예를 갖추라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고귀는 개뿔. 네놈들끼리 고귀하게 노세요.
내 관심 밖이었지만.
저벅. 저벅.
성좌들의 말을 무시한 채 앞으로 걸어 나간 나는 용광검을 꺼내 들었다.
은빛이 고고하게 빛나는 용광검의 기운에 상위 정령이 움칫 수그러드는 게 눈에 보였다.
쫄기는.
이 정도면, 버프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
화안금정.
스아아.
[이름 : 상위 정령(토,土) 나이 :1997
LV : 104
HP : 45000
MP : 60000
힘 - 4500 / 99999
민첩 – 4500 / 99999
마력 – 6000 / 99999
체력 - 4500 / 99999
각성 등급: S
고유 스킬: 상급 토(土) 속성, 상급 마력 운용법, 상급 정령화, 인간화…….
종합평가 : 기나긴 세월을 살아 온 정령으로 2천 년간의 수행을 마쳐 대정령이 되기까지 3년의 세월이 남은 상위 정령. 아직, 이름은 없지만 대정령이 되면 이름과 함께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오른눈이 금빛으로 반짝이며, 상위 정령의 정보창이 뜨기 시작했다.
레벨은 나보다는 훨씬 높았지만, 능력치는 그에 비해 굉장히 낮은 편이었다.
몇 번의 칼질만으로도 상대가 가능한 수준.
이민영과 진선미가 힘을 합친다면 무난하게 잡을 수 있을 정도의 강함이었다.
물론, 이곳 정령의 둥지에서 가장 최약체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나이를 보아하니, 3년만 더 있으면 대정령으로 승격할 텐데. 불쌍해서 어쩌냐?”
[이놈…. 그 불길한 눈은 무엇이냐!!]
“말하면 알아? 넌 고귀해지기는 글렀다. 색상부터가 마음에 안 들어. 똥 덩어리 같아.”
[하찮은 인간 주제에!!]
도발에 먹히기라도 한 것인지, 상위 정령은 나를 향해 돌무더기를 비처럼 쏟아붓기 시작했다.
쿠쿠구구구.
콰드드드.
“뭔, 애새끼도 아니고 돌을 이렇게 많이 던져? 선미 씨 지금!!”
우리에게 날려져 오는 돌무더기를 용광검과 태극검을 사용해 흘러내며 진선미를 향해 소리쳤다.
나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진선미가 정령을 향해 지독한 독을 퍼붓기 시작했다.
치이익.
[큭…. 이건 뭐…?]
정령이어서인지 진선미의 독이 아직 약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방에 죽지 않는 상위 정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스각-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가 상위 정령의 몸을 통째로 베어내자, 당황하는 상위 정령을 무시한 채 검기를 사용해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사사사삭.
촤악!
[이…. 이럴 수가…. 인간이 어찌 이런….]
“순삭 당하기 싫으면, 비장의 수라도 쓰라고. 다 알아.”
비참하게 찢어 발겨진 상위 정령의 두 동공이 지나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찌, 자신이 사용 가능한 정령의 기술을 알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표정.
[어찌…. 어찌…. 인간이…. 이럴 수는 없다!!!]
쿠구구구.
“다들 물러나요!”
상급 토(土) 정령답게 정령화를 시작하자, 상위 정령의 주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령화.
정령들만이 사용 가능한 비장의 수단 중 한 가지였다.
정령답게 인간화도 가능했지만, 인간화는 영험하고 신비한 동물들만이 인간화에 힘을 얻을 뿐 정령들은 아니었다.
간단하게.
정령이기에 가능한 정령화는 정령들의 힘을 더욱 증대시켜주었다.
지금 당장 정령화를 한 상위 정령은 대정령에 가까운 힘을 일시적으로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강함이 유지되는 순간은 그리 길지 않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길어야 5분.
적절하게 시간을 끌며, 한 방에 끝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최약체의 정령화를 파악해 이후의 동, 서, 북의 상위 정령들을 더욱 손쉽게 잡을 생각이었다.
[죽여주마. 인간!!!]
상위 정령의 몸이 거대하게 부풀더니, 이내 조금씩 그 힘을 응축시키듯 본래의 크기보다 작아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 비슷한 영혼의 형태로 상위 정령이 고고하게 붕 떠 있었다.
그리고
갈색빛의 상위 정령에게 금빛이 함께 감돌기 시작했다.
스아아아.
정령화를 끝마치자, 어느 정도로 강해졌는지를 확인하고자 유심히 상위 정령을 바라보았다.
[이름 : 상위 정령(토,土) 나이 :1997
LV : 104 ( 정령화 )
HP : 70000
MP : 120000
힘 - 7000 / 99999
민첩 – 7000 / 99999
마력 – 12000 / 99999
체력 - 7000 / 99999
각성 등급: S
고유 스킬: 최상급 토(土) 속성, 최상급 마력 운용법, 상급 정령화, 인간화…….
종합평가 : 상급 정령화를 사용한 상위 정령. 그의 강함은 대정령에 가까워졌으며, 정령화를 사용하며 모든 체력과 마력을 회복했고 모든 스킬의 등급이 1단계 상승하였다.]
2배가 안 되는 능력치의 상승.
대략…. 1.5배보다 조금 높은 정도인가? 이 정도면 뭐….
[감히…. 하찮은 인간 따위가 정령화를 보다니. 네놈은 죽어서도 축복을 받겠구나.]
“뭔 개소리야. 대가리에 총 맞았냐?”
[……]
상위 정령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다는 듯.
나를 향해 자신이 사용 가능한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콰드득.
쾅!!!
처음과는 다른 거대한 돌무더기에 잠시 당황했지만, 충분했다.
아무리 강해진 상위 정령이라 할지라도 나의 능력치는 절대로 밀리지 않고 있었다.
“두 분 지금은 공격에 당하면 안 됩니다. 조심하세요.”
두 사람 앞을 가로막아 돌무더기를 빠른 스피드로 파훼하며 두 사람을 지키기 시작했다.
스걱.
사사사삭.
콰지직.
지켜지기만 했던 두 사람이 미안했는지, 자신들이 할 수 있다며 나를 향해 소리쳤지만 나는 비켜나지 않았다.
“정령이든, 두 사람을 지키는 거든…. 지금은 충분합니다. 두 사람은 다음 전투를 대비해서 힘을 아껴두세요.”
“그래도….”
“오라버니, 저 아직 멀쩡한데….”
나는 미안해하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보였다.
이 정도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란 듯.
그리고….
[스킬 [매력 발산 LV3]이 강하게 발동합니다.]
[스킬 [매력 발산]의 LV이 상승합니다.]
젠장. 안 그래도 무작위로 발동되어 머리가 아픈데, 스킬의 LV이 MAX가 됐네…?
“꺄악!! 오라버니!!!”
“아니요. 아니에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아저씨. 저 미성년잔데….”
“아니라고….”
두 사람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져 나를 바라보는 것이 영…. 부담스러웠다.
심지어…. 자신은 미성년자라는 이민영의 말에 잠시 당황했다.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는 것이길래….
이 스킬에 당한다는 것은 무슨 마음일까…?
내가 스킬 매력 발산에 당하지 않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이 스킬에 당하면 치욕스러울 것 같아….
“두 사람. 정신 차리세요. 옵니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상위 정령은 자신의 힘을 한 대 모아 돌무더기와는 다른 거대한 구 형태의 돌무더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단순한 바윗덩어리라면 아무런 타격도 없이 갈라내겠지만, 정령화를 사용한 상위 정령이 만들어낸 구 형태의 덩어리는 달랐다.
토(土) 속성을 극대화해 지상의 흙과 돌을 응축시킨 구.
거대한 운석과도 맞먹는 힘이었다.
[죽어라!!!]
쿠과과과과.
상위 정령이 거대한 구 형태를 우리를 향해 밀어냈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구 형태의 돌덩어리를 본 나는 화안금정을 통해 중심의 핵이 되는 부분을 확인하며 앞으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리고 중심의 핵이 되는 부분을 강하게 질러 넣었다.
콰드득.
쾅!!!!!
파앗!
강하게 질러낸 용광검은 거대한 구의 핵을 파괴하며, 동시에 거대한 소닉붐이 일어났다.
쿠구구구.
뿌연 연기가 나의 전신을 뒤덮으며 앞뒤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연기로 나의 시야를 가릴 수는 없었다.
화안금정을 계속 사용하고 있던 나는 당황하는 상위 정령의 모습을 놓치지 않은 채, 스킬 [질주 LV MAX]을 사용해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치고 나갔다.
그리고.
스걱!
스킬, [속성부여 LV MAX]을 사용해 용광검에 풍(風)속성을 부여해 상위 정령의 몸을 일도양단해 갈라냈다.
[이…. 이럴….]
“아직도 말할 힘이 남아있어?”
사사사삭.
두 갈래로 갈라진 상위 정령이 계속해서 움직이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무쌍 난무를 사용해 수십 갈래로 갈라내 버렸다.
[남쪽의 토(土)의 상위 정령을 처치하였습니다.]
[남은 상위 정령은 동의 화(火), 서의 수(水), 북의 풍(風)의 상위 정령입니다.]
남은 건 동, 서, 북의 상위 정령…. 이라고 생각했다.
이다음 들리는 메시지를 보기 전까지는.
[북쪽의 풍(風)의 상위 정령을 처치하였습니다.]
[서쪽의 수(水)의 상위 정령을 처치하였습니다.]
[남은 상위 정령은 동쪽의 화(火)의 상위 정령입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