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63화 (63/206)

제63화

episode(8) 정령의 둥지

[정령의 둥지에 입장합니다.]

[이곳의 등급은 ‘SS’입니다.]

[정령의 둥지에 입장한 인원은 총 5명입니다.]

[제한 시간이 없습니다.]

정령의 둥지.

이곳은 ‘SS’급의 몬스터 게이트.

동, 서, 남, 북 네 방향에서 나오는 각 속성의 상위 정령을 해치우면 되는 것.

단순히 말하자면, 이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단 네 마리뿐이었다.

간단한 클리어 방법과는 다르게 정령들의 강함이 상당하므로 ‘SS’급의 게이트가 된 것이다.

네 방향의 화(火), 수(水), 풍(風), 토(土) 정령들을 해치우면 능력치 상승과 더불어 쓸 만한 스킬들도 얻을 수 있는 성장이 효율적인 게이트.

다른 수많은 게이트와는 다르게 이곳은 어떻게 보면 보너스 스테이지 같은 느낌도 있었다.

문제는….

이 두 사람이었다.

진선미와 이민영.

나의 강함으로 네 방향의 정령을 처치하는 것에 큰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등급이 높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두 사람이 한 번에 덤벼도 한 방향의 정령을 해치우는 것은 힘들었다.

나 혼자 빠르게 클리어하려면 남은 시간인 22시간 동안 클리어가 어찌어찌 가능할 테지만, 이민영과 진선미를 데리고 이동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일단….

나는 오른 눈의 화안금정을 사용해 진선미와 이민영을 바라보았다.

우선…. 진선미.

[LV49 – 진선미 / 23살

힘 - 2465 / 99999

민첩 – 3237 / 99999

마력 – 6986 / 99999

체력 - 3961 / 99999

LV 포인트 - 0

각성 등급 - 미확정

전용 특성 – 독미(毒美)

배후성 – 사라진 세계의 독미

성흔 - 천주독룡파

시드 - 4010020 seed]

나를 빗대어 비교하자면 스탯의 차이는 엄청났다.

대략…. 6만에 가까운 스탯차이.

스탯 흡수를 넘어서 영혼 흡수까지 익힌 나에겐 쉬운 성장이 남들에겐 어려운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움직이기 전, 두 사람의 전력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선미 씨.”

“네!! 당신과 함께라면 어디든!!!”

“……됐고요. 특성에 대한 설명 좀 부탁드려요. 성흔의 사용횟수도.”

“아. 특성은…. 아름다운 미모를 가질수록 더 많은 독의 배합이 가능해져요.”

처음 보는 특성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명’에서도 본 적이 없는 무림계의 성좌.

[성좌, <사라진 세계의 독미>가 한쪽 눈을 찡긋 감습니다.]

자기 얘기 하는 건 어떻게 또 언제부터 보고 있었담….

“독특하네요. 뭐…. 화장이라도 하라는 건가….”

“글쎄요. 저도 지금 상태로만 사용을 해봐서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렇군요. 성흔의 사용횟수는요?”

“전력을 다 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다섯 번은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력의 소모도 크지 않고.”

“알겠습니다. 잠시 쉬고 계세요.”

진선미의 특성은 현재 시점에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시간을 들여 공들이지 않으면 의미 없는 특성.

시드도 많던데, 시간 될 때 시드스토어로 외모에 관한 아이템이나 알려줘야겠다.

“그럼…. 선미 씨는 당장 쓸모 있는 건 독과 성흔뿐이고.”

진선미의 전력을 파악 한 나는 화안금정을 사용한 채로 이민영을 바라보았다.

[LV41 – 이민영 / 15살

힘 - 1582 / 99999

민첩 – 2373 / 99999

마력 – 5745 / 99999

체력 - 2612 / 99999

LV 포인트 - 0

각성 등급 - 미확정

전용 특성 – 인애 (仁愛)

배후성 – 사계절을 사랑하는 선녀

성흔 - 원천강(袁天綱)의 축복(祝福) 4/4

시드 - 610020 seed]

이민영은 진선미보다는 낮은 능력치에 시드도 엄청나게 적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로 성장이 가능한 것은 전라도 지역의 사람들과 이재신이 도와준 것 같았다.

아주 도움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라?

나는 이민영의 능력치를 살펴보던 중, 뜻밖의 글자에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 성좌가 왜 여기서 나와? 아니, 이 성좌의 성흔이라면….

꽤 오랫동안 나를 지켜본 성좌였다. 마냥 지켜보기에 배후성이 되기 위한 줄 알았으나, 이미 후원자는 뽑아둔 상태였던 것일까? 뜻밖의 인물에게서 아는 성좌의 수식언이 나오니 당황스러우면서 반가운 기분마저 들었다.

[성좌, <사계절을 사랑하는 선녀>가 당신을 향해 방긋 웃습니다.]

하하….

“민영아?”

“네. 아저씨!!”

“성흔이랑 특성 좀 설명해줄래?”

“음…. 성흔은 일행에게 버프를 줄 수 있어요. 사계절의 선녀답게 4가지가 있는데 하루에 단 한 번밖에 사용하질 못해요.”

“효과는?”

“네 가지 중 첫 번째는 모든 능력치의 상승이 2배로 높아지는 거예요. 약…. 10분 정도. 그리고 두 번째는 모든 스킬의 레벨을 1등급 성장시켜주는 거예요. 물론, 이것도 10분 정도.”

이민영의 성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으니, 이 게이트의 클리어가 점점 쉬워진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녀가 조금 더 강했으면, 성흔의 효과도 극대화 되었을 테지만…. 지금 당장은 만족하기로 했다.

“세 번째는 저 자신에게 거는 건데, 5분간 모든 공격을 차단하는 배리어를 만들 수 있어요.”

“좋은데? 마지막은?”

“써보지는 않았지만. 배후성님의 설명에 따르면 제게 모인 카르마를 사용해 버프의 효과를 몇 배로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했어요. 카르마가 뭔지는 알 수 없어서 아직은 사용해 보지 못했지만….”

“아…. 네 번째는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 전부 사용하면 충분히 사기적인 효과를 주긴 하지만…. 카르마는 네 생명력을 말하는 거야.”

“아…. 그러니까, 제 남은 수명을 지불하고 네 번째 성흔을 사용하는 거네요?”

“응. 그건 봉인해두자. 세 번째도 정말 급할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말고. 네 목숨을 지켜줄 수단이니까.”

“헤헤…. 알겠어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이 성좌의 성흔은 꽤…. 아니, 엄청나게 쓸모가 있었다.

두 배.

단순한 수치일 뿐이지만, 나의 버프와 사용했을 때 그 효과는 더욱 강해질 것이고 스킬의 1단계 상승은 MAX의 스킬을 진화시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전투는 어차피 내가 할 생각이었으니, 차라리 잘 된 것으로 생각하는 나였다.

“그럼, 특성은?”

“특성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직 발동한 적도 없구요. 힝….”

“그렇구나. 그럼, 전투 스킬은?”

“죄송해요. 전 전투 스킬이 없어요…. 버프랑…. 시드 스토어에서 산 중급 ‘힐’ 스킬 정도….”

“죄송하기는. 괜찮아. 전투는 내가 하면 되니까.”

“헤헤….”

나는 잠시간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특성이 발동하지 않았다는 건 특수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

그 조건이 갑자기 발동할 리가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진선미는 강한 독.

이민영은 강한 버프.

나에겐 강한 전투력.

이 세 가지를 조합하면 ‘SS’급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정령의 둥지를 손쉽게 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의 나는 몰랐다.

쉽게 클리어가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정령의 둥지는.

동, 서, 남, 북의 상위 정령뿐 아니라, 엄청난 것이 숨어있다는 것을.

빌어먹을 ‘명’….

* * *

진선미와 이민영과의 대화를 이어가며 네 방향의 상위 정령 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되는 남쪽의 토(土)의 상위 정령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배는 안 고프세요!?”

“네. 욕을 많이 먹고 살아서 그런지 항상 배가 부르네요.”

“매력이 넘치셔서 그래요!!”

“……? 매력이랑 욕이랑 무슨 상관….”

진선미와는 무슨 대화를 하려고 해도 조건 없는 칭찬과 애정 가득 섞인 대답을 하니 점점 부담스러웠다.

“아줌마. 자꾸 그러면 아저씨가 부담스러워 하잖아요!”

“네가 뭘 알아. 이 꼬맹아!!”

“하이고, 나이 많으셔서 좋겠어요.”

“흥! 자고로 여자란 존재는 나이가 들어서 농염하고…. 어!? 막 그래야 해!!”

“잉? 농염은 무슨? 농약이겠지?”

“요게!!”

“두 분 다 그만. 다 왔습니다.”

조용히 걷는 나와는 다르게, 두 사람은 긴장도 되지 않은지 내내 말다툼하며 나의 뒤를 따라왔다. 물론…. 승자는 이민영인 것 같았다.

23살이 농염이…. 뭘 아나…?

“두 분 긴장하세요. 최약체긴 해도 정령들은 강합니다. 그리고…. 전투는 짧은 시간 여러 번 치러야 하니까.”

“알겠어요. 오라버니!!”

“네!!!”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조금 긴장은 되었다.

무리해서 게이트를 클리어하던 때와는 다르게 내 곁에는 지켜줘야 할 두 사람이 생겼다.

지키지 못하면?

나 때문에 두 사람이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친다면?

내가 강해지기 위해 들어 온 이 게이트가 두 사람에게 지옥을 선사한다면?

온갖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매사에 남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하는 성격.

멸망 이전의 세계에선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삶.

그런 삶 속에서도 무엇 하나 열심히 하지 않은 비루하고 재미없는 삶.

하지만….

나는 변했다.

우연히 얻은 기연으로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고 나만 생각하고 살았던 삶에는 동료들이 생겼다.

욕심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생각했고 그 생각의 끝은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내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

더 강해지고 싶다.

그리고…. ‘명’에서 본 죽음만은 바꾸고 싶었다.

“준비됐죠? 열겠습니다. 적당히 서포트만 부탁드려요.”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심호흡을 길게 한 나는 선계에서 보았던 천존의 방과 비슷한 크기의 문을 한 손으로 밀어냈다.

끼이익.

[이곳이 어디라고…. 인간 따위가 나의 처소에 침입하는 것이냐.]

“어디긴 어디야. 너희 집이지.”

[…… 하찮은 인간이 셋이나 오다니.]

“하? 하찮다…? 정령은 인간을 보살피고 인간들의 곁에서 말없이 도와주는 것들이 아닌가? 그런 인간들을 향해 하찮다?”

나는 토(土) 속성을 가진 남쪽의 상위 정령이 하는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의 지식과 ‘명’을 모두 합친다고 해도 이 세상을 전부 알지는 못했다.

내가 아는 한 정령들은 인간들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들이 아니었고 인간들도 친화력만 높다면 정령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정령들은 인간들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하찮다?

성좌가 되어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인간들이 하찮아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정령들은 달랐다.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만, 정령들과 인간들은 멸망 이후의 세계에서 알게 모르게 인간들의 친구로 알고 있던 나였다.

그래서 그런지 하찮다는 세 글자가 어이없었고,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야 이, 지점토 같은 새끼야.”

[……?]

“그래, 너. 뭘 모른 척하고 있어? 내 눈앞에 지금 똥색으로 가득 칠해져서 지점토 같은 게 너 말고 또 있어?”

[인간…. 미친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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