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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61화 (61/206)

제61화

눈앞에 흐릿흐릿한 모습으로 나타난 임아린은 손오공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아저씨. 시간이 없어요. 어서요. 저랑 같이 가요…!!”

“너…. 넌 누구지…?”

손오공은 어지러웠다. 긴고아가 아니라면 이런 고통을 느낄 일도 없던 그였다.

삼장이 ‘긴고주’를 외워 긴고아가 조여지는 고통을 느끼는 중이었다.

바로. 임아린을 보자마자.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여자 아이의 형상.

선자들이나 입고 다니는 하얗고 고운 복장에 새하얀 피부.

나이는 어렸지만 누가 봐도 선자라 칭해도 될 법한 어여쁜 용모였다.

“신선…? 선자인가?”

“아니에요! 정신 안 차리면 가족 놀이 또 할 거예요!!”

이 아이가 누구인 줄은 손오공 본인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아이의 입에서 ‘가족 놀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온몸이 거부하는 듯 소름이 돋아왔다.

‘가족 놀이는 뭔데…?’

손오공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다잡아가며 임아린과 삼장 일행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이유가 있을 거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한 이유.’

신공표가 모두에게 건 이 환술은 뇌공편을 사용한 환술.

지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환술의 해제 방법은 간단했다.

환술 속에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것.

그것을 깨달을 시간이 늦어질수록 환술 속에서 생명력이 점차 깎여나가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임아린과 같이 특수한 능력으로 환술 세계에 개입해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것.

하지만, 이 방법마저도 꽤 어려운 방법이었다.

환술에 걸렸다는 건 이미 그 세계에 발을 내민 것.

그 세계에서 ‘당신은 이곳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해봤자 정신이 붕괴할 확률만 높아지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손오공은 임아린의 마음을 깨달은 후 삼장과 자신의 사제를 직접 죽여야만 했다.

“꼬마 요괴야. 이 손오공 님은 바쁘거든?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어 가봐야겠구나.”

“응? 우씨. 저 요괴 아니거든요! 가지 마요. 일어나야 해요!!”

“이미 일어나 있는데 뭘….”

손오공은 어지러운 마음을 부여잡자, 저 멀리서 삼장 일행이 자신을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가봐야겠어.”

“아저씨!!!”

임아린은 손오공을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자신과 놀아주며, 종종 이야기해주었다.

삼장 일행과의 기나긴 여정을.

그 이야기를 할 때 손오공은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행복하다는 듯.

‘데려가면 안 되는 건가…?’

나이가 어린 임아린은 답이 서질 않았다.

가짜에 불과하지만, 그 시절 속으로 돌아가 행복해하고 있는 손오공을 자기 손으로 절망에 빠트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자아 할배가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우물쭈물 가만히 서 손오공을 바라보자, 내키지는 않았지만, 손오공은 몸을 돌려 삼장 일행에게 몸을 움직이려 할 때였다.

‘여기 있으면 죽는다고 했어. 가야 해…. 어쩔 수 없어!!’

임아린은 조막만 한 두 주먹을 불끈 쥐어 손오공을 향해 방울을 거세게 흔들었다.

딸랑!!! 딸랑딸랑!!

“너…?”

방울 소리의 주인은 임아린.

손오공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임아린을 바라보았다.

“너…. 역시 요괴냐?”

“요오괴애!? 저 인간이거든요! 자꾸 그러면 머리털 다 뽑아버릴 거예요!”

“응…?”

머리털. 손오공에게 머리털은 중요했다.

자신의 법술이나 분신을 사용할 땐 항상 머리털을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나친 사용에 탈모는 아닌지, 요즘 따라 가벼운 머리털에 고민이 많던 손오공이었다.

‘머리털을 뽑아버린다…? 이 아이는 뭔가 알고 있는 것인가?’

“머리털은 안 된다!!! 아니 그것보다 너같이 작은 아이가 나를 어찌할 수 있다는 것이냐!?”

어찌 할 수 있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손오공은 임아린에게 손 한번 대지 않았다.

심지어 임아린이 잘못을 해도 머리를 콩. 쥐어박아 본 적도 없었다.

이 어리고 연약한 어린아이를 툭 치기만 해도 죽을까 조마조마 한 것도 있지만, 그만큼 아끼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 뭐, 혹시 모르니….”

손오공은 지나친 임아린의 보챔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화안금정을 개방시켰다.

화륵.

스스스.

손오공의 오른눈이 금빛으로 물들어 온 눈에 화안금정이 개안 되었다.

“응?”

“왜요? 한쪽이 말을 안 들어요?”

“너…. 내 눈에 무슨 짓을 한 거지…!?”

“제가 아니에요. 아저씨가 직접 한 거예요.”

그랬다.

왼쪽 눈의 화안금정은 이미 ‘이안’이라는 자신의 사제에게 넘긴 지 오래였다.

아무리 환술 세상이라고 한들, 없던 것이 생기지는 않는 법.

손오공은 한쪽밖에 없는 화안금정에 당황스러웠다.

“……한쪽만 있으니 많은 것이 보이질 않는군….”

“자아 할배가 그랬어요. 그 눈은 우리 아저씨한테 줬다고. 그리고…. 아저씨가 이곳을 벗어날 방법은 저기 보이는 아저씨들을 직접 죽여야 한다고 했어요.”

“이놈이…!!! 감히 이 손오공님을 이간질하려는 것이냐!?”

“소리 지르지 마요!!”

“응? 어…. 그래. 아무튼.”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손오공은 이 아이 앞에서는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아저씨는 지금 신공표라는 나쁜 신선한테 환술이 걸린 거예요! 아저씨는 이미 저 아저씨들이랑 미션을 끝냈다고요!!!”

“그게 무슨….”

임아린은 손오공에게 일갈하며 방울을 계속해서 흔들어댔다.

“가야 해요!! 안 그러면 아저씨 죽어요!!!”

안간힘을 다한 임아린의 외침에 손오공은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삼장과 골칫덩어리였지만 자신의 자세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서, 네 말은 스승님과 사제들이 가짜라는 것이냐?”

“맞아요!”

“신공표….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군.”

“자아 할배는 알죠!?”

“자아…. 자아라. 그 또한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군.”

“우 씨…!”

이때의 손오공과 강자아는 서로를 모르는 상태였다.

각자의 미션 수행으로 알 수가 없는 상황.

그 상황에서 그들의 이름을 말해봤자, 손오공은 의아하기만 했다.

“맞다. 그럼…. 음…. 이안! 기억 안 나요? 아저씨의 사제잖아요!”

“이안…? 내 사제들은 모두 저기 있다만…?”

“우씨이!!! 기억해요! 기억해내라고요! 우마왕이 오삼이 아저씨를 죽였다고요! 아저씨가 그런 우마왕을 죽이고 신공표도 죽여야 하잖아요!!”

“오삼이는 내….”

“맞아요! 아저씨 부하 1호!”

“오삼이가 죽었다고? 큰형님한테…?”

손오공의 눈빛이 흔들리자, 이때를 놓치지 않은 임아린이 손오공을 향해 몰아붙였다.

“큰형님은 무슨! 삼장 아저씨는 이미 성좌님이 되었구요!! 저 사람은 가짜에요. 가짜! 신공표라는 나쁜 사람이랑 우마왕이 손을 잡았고…. 그 때문에 오삼이 아저씨가 죽었다구요….”

손오공의 두 눈이 강하게 흔들렸다.

더군다나, 그의 화안금정에 보이는 임아린은 요괴가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볼 수 없는 순수한 인간.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던 현계의 인간.

신선들의 힘이 조금 섞이기는 했지만, 분명한 현계의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이 상황을 가짜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신 안 차리면 저 혼자 갈 거예요!!”

등을 돌리는 임아린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보는 손오공.

그런 자신의 모습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 아이가 도대체 누구길래?

“시간이 없어요. 마지막이에요.”

임아린은 자신의 양 팔목에 차여진 ‘자하 선자의 팔찌’를 온 힘을 다해 흔들었다.

딸랑!! 딸랑딸랑!!!

그리고 그 팔찌를 본 손오공의 두 동공이 확장되었다.

“너…. 그 팔찌를 어디서….”

손오공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의 죄로 인해 여태 모른 척을 했을 뿐.

자하 선자는 손오공이 삼장에게 귀의하기 전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자신의 생명력을 사용해 인간으로 환생시킨, 이제는 이곳에 존재할 리가 없는 여인이었다.

“아…. 네가 날 도와주러 온 것이구나.”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삼장과의 여정으로 내쳐버린 그의 연인.

모든 게 후회뿐이었던 시절,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는 그의 연인.

자하.

“하하…. 자하. 너였구나.”

“무슨 소리예요!”

손오공은 임아린을 바라보며, 본인도 모르게 두 눈가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면 항상 옥죄였던 긴고아가 자신의 머리를 옥죄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 도우러 온 것이냐. 자하야.”

“……이 아저씨.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손오공은 긴고아가 자신을 옥죄지 않자,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자신의 여의를 귀속에서 꺼내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놨다.

훙!

“고맙다. 꼬맹이.”

“헤헤…. 다행이다. 이제 저 기억나요?”

“아니. 그래도 이것이 가짜라는 것은 알 수 있구나. 긴고아가 제 기능을 발휘 못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

“음…. 무슨 소리인 줄은 모르겠지만, 이제 돌아올 거죠?”

“이 상황이 가짜라면. 하지만….”

이 상황이 가짜니 환술이니 하는 것은 모두 임아린의 말뿐이었다.

그 말만을 믿고 자신을 향해 웃는 스승과 사제들을 죽이라니.

알고 있어도 힘들었다.

“...아무래도. 난 못할 것 같은데. 꼬맹이 네가 대신 하는 건 어떤가?”

“전, 저기 말 아저씨한테도 질걸요?”

“아…. 너 약하구나?”

“퉤.”

“……”

손오공의 무시에 괜히 침을 뱉는 시늉을 하는 임아린이었다.

“그 팔찌에 대해서…. 꼭 들려 주거라.”

“나가면 알게 될 거예요. 이미 말해줬거든요.”

“하하하. 그런가? 알겠다. 그럼…. 잠시만 시간을 주지 않겠느냐.”

고개를 끄덕이는 임아린을 뒤로한 손오공은 몸을 움직여 삼장 일행에게 이동했다.

“대사형!! 도대체 누구랑 얘길 하길래 이렇게 늦게 온 것이오!?”

“닥쳐라. 돼지야.”

“대사형! 둘째 사형이 돼지는 맞지만, 돼지한테 돼지라고 하면 서운하지 않겠소!?”

“셋째야. 웬일로 네가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것이냐.”

“푸릉…. 푸릉?”

“당근이나 처먹거라.”

“푸릉!!!”

손오공은 작별 인사라도 하는 듯. 사제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스승. 제가 없어도 사제들이 잘 돌보아 줄 겁니다.”

“오공아. 무슨 소리냐. 내가 너를 두고 어디를 간단 말이냐. 헤어짐이란 본디,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너와는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니냐? 그래서, 또 도망을 치려는 너를 보니 노래를 참을 수가 없구나. 하여, 노래를 하나 불러줄까 하는데 괜찮겠느냐. 오공아. 내 ‘긴고주’를 편곡 해보았는데, 들어 주겠느냐?”

피식.

말 많은 내 스승.

인사라고 생각하니, 멈추지 않는 그의 말들이 정겹게만 느껴졌다.

“스승. 나 이제 갈 거요. 노래 불러도 되니 한 곡 뽑아주시오. 될 수 있으면 긴고주로.”

“오공아. 네가 그렇게 나의 노래를 좋아하는지 몰랐구나. 내 너를 위해서 긴고주라는 기가 찬 노래를 불러주도록 하마. 긴고주란 본디, 오공이 너의 머리에 씌워진…. 긴고주란 본래, 노래가 아닌 읊는다로……”

"……알았으니, 부르시오 스승."

환술 세계 속 삼장은 기나긴 말을 끝마치자, 손오공이 도망이라도 치려는 거라 생각했는지 긴고주를 외웠다.

“역시, 스승은 음치요. 어디 가서 노래 부르지 마시오.”

“…? 오공아. 아프지는 않은 것이냐? 설마하니…. 나의 노래를 듣고 너의 두통이 사라지고 만 것이냐? 아아, 관세음 누님이 드디어 오공이의 죄를 용서해주신 건가? 오공아. 죄란 본디,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역시, 긴고아는 조여지지 않는군.”

손오공은 그런 삼장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말 많은 스승. 나중에 봅시다.”

“오공아. 어딜 가려는 것….”

스악!

손오공은 왼쪽 눈에서 붉은색의 눈물을 흘리며, 삼장과 자신의 사제들의 목숨을 거두었다.

화악!!!

* * *

“어서 와요. 아저씨.”

“꼬맹아. 가족 놀이는 이제 못한다. 오삼이가 없지 않으냐.”

“헤헤…. 부하 2호 아저씨가 있잖아요!!”

“아….”

붉은 눈물을 흘리던, 손오공의 왼쪽 눈의 동공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화악.

오른 눈에는 금빛의 화안금정(火眼金睛).

왼 눈에는 핏빛의 감정안(感情眼).

스스스스.

“신공표. 어딨어! 이 새끼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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