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선자(仙子).
선자란 본래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 신선이 된 여성을 말하는 단어였다.
임아린이 선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신선의 수행을 마친 것은 아니었으나, 오삼이는 그런 임아린을 신선이자, 아름다운 여성이라 생각하며 선자라 부른 것이었다.
오삼이에겐 지루하디지루한 신선계에서 임아린은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자기 삶보다 몇십 배는 적게 살아온 어리디어린 여인.
귀찮을 때가 더 많았지만, 그 여인과 할 때면 웃음이 나왔다.
오삼이에게 임아린은 함께하는 가족이었고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친구였고….
자신이 지켜줘야 할 약하디약한 누이였다.
“오삼이 아저씨….”
눈앞에서 죽은 오삼이를 바라보는 손오공의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항상 쥐어 패기만 했지, 무엇 하나 잘해주지 않은 손오공이었다.
그런데도 손오공 자신이 가장 아낀 부하였던 오삼.
오삼이는 그런 손오공을 뒤로한 채 영원한 소멸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임아린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소중한 친구를 가족을 눈앞에서 잃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오삼아. 잘 가라. 네 복수는 저 새끼를 죽여서 완성하도록 하마.”
“아저씨….”
“아린이는 저기 물러나 있거라.”
한참을 신공표와 전투를 벌이는 강자아와 자신의 사제들을 보니, 슬픔에 빠질 시간도 없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신공표가 어떤 계획을 숨기고 있을지 파악도 되지 않는 손오공이었다.
몸을 휙 돌려 오삼이를 뒤로한 손오공은 터덜터덜 신공표를 향해 걸어갔다.
임아린은 그런 손오공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두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과 별개로 의지가 불타고 있었다.
더욱 강해져, 다시는 그 누구도 잃지 않겠다는 생각.
임아린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결연하게 선법을 사용했다.
사아아.
어린 나이에 인간의 몸으로 강자들에게 수행을 받은 임아린에겐 손쉬운 선법이었다.
오삼이를 공중에 띄운 임아린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후방으로 오삼이를 옮겨냈다.
“아저씨. 살려줘서 고마워요…. 저 강해질게요…. 다시는 그 누구도 잃지 않도록….”
오삼이는 말이 없었다.
가슴팍에 뚫린 구멍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핏물들이 그 대답을 대신 하는 것 같았다.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더 재미나게 놀아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고.
자신 때문에 슬픔을 느끼게 해서 미안하다고.
뚫린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이 그런 오삼이의 눈물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임아린은 그런 오삼이를 바라본 후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 * *
신공표는 훔쳐낸 선기를 사용해 손오공의 사제들과 강자아를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본래 그의 강함은 기껏 해봐야 중위급의 성좌 정도.
그런데도 이 정도의 전투가 가능한 것은 오롯이 선기, 뇌공편의 위력이 그만큼 대단다는 것이었다.
손오공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몇 천 년은 조용했던 신선계와 요마계. 그리고 천계의 모든 악의 축.
자신이 아꼈던…. 형제이자, 친구였던 오삼이를 죽게 만든 원흉이 신공표였다.
“죽여주마…. 길어져라. 여의.”
손오공은 하늘로 몸을 띄워 오가는 공방의 틈새로 여의봉을 사용해 내리찍었다.
꽝!!!!
“크흡…!!! 이게 무슨…!!”
“여의는 처음 보지?”
“흥. 손오공인가? 역시 대성들은 쓸모가 없었군.”
“다음은 네놈 차례다.”
항상 장난기가 가득했던 손오공.
그런 손오공의 표정에서 장난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롯이 신공표를 죽이겠다는 마음가짐.
“푸하하핫. 웃기지도 않는 군. 네놈이 이 뇌공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선기도 아닌, 그깟 바다의 추를 가지고 말이냐!?”
“응. 맞아. 바다의 추에 짓눌려 죽어버려. 망할 자식.”
손오공이 무기로 사용하는 여의금고봉(如意金箍棒).
이것은 무기가 아니었다.
본래 태상노군이 만든 이 여의봉은 천하의 강과 바다의 깊이를 측정할 때 쓰던 도구로 이름을 천하정저신진철(天河定底神珍鐵)이라 하였다.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지만, 손오공이 가져가기 전에는 동해용왕 오광이 용궁의 창고에 넣어두어 ‘바다의 추’로 삼아 보관해왔으나 손오공이 용궁에서 자기가 쓸 무기를 달라고 하면서, 다른 무기들은 가볍고 손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퇴짜를 놓으며 깽판을 치다가 여의봉을 보고는 들고 가 버렸다.
그렇게 바다의 추 역할을 하던 여의봉은 그 무게가 무게인지라, 손오공만이 사용 가능 한 무기로 변모하고 말았다.
손오공을 제외한 그 누구도 들 수 없는 13,500근의 무게를 자랑하며 길이와 크기 조절까지 자유로운 것이 손오공이 사용하는 여의봉이었다.
“다들 비켜라!”
손오공이 사용하는 여의봉의 위력을 알고 있던 사제들과 강자아는 재빨리 몸을 뒤로 피해냈고 그 모습을 본 손오공은 곧바로 신공표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단순한 내리치기.
손오공은 신공표를 향해 여의봉을 크고 길게 만들어 내리찍기 시작했다.
쾅!!!꽝!꽝!!!꽝꽝!!!
“죽어!!!죽으라고!!!”
엄청난 무게에 짓눌린 신공표는 입에서 거칠게 핏물을 게워내며 지상으로 처박혔다.
“커…. 컥…. 이 무슨…. 위력이 말도 안 되는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아무리 강력한 무기를 쥐고 있는 신공표였음에도 전투의 승기는 손오공이 잡고 있었다.
신선들의 왕 천존이라 할지라도 다구리엔 장사 없는 법이다.
그런 천존보다 약한 신공표가 요괴들의 최강자 손오공을 상대한다?
말도 안 되는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손오공 혼자만이 아닌, 신선에서 요괴로 강등되었던 저팔계와 사오정, 백룡.
이들은 삼장과의 미션으로 다시 한 번 신선으로 승격되어 손오공만큼은 아닐지라도 그 강함이 결코 여섯의 대성들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강자아는 말할 것도 없이 천존의 직계제자.
전투에 능한 신선은 아니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쉽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정도의 신선이었다.
“크하아아아!!!!! 하찮은 대성들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내가 방법 하나 생각해두지 않았을 것 같은가!?”
지상의 땅에 처박혀 이리저리 찢어진 옷과 여의봉에 죽도록 맞아 여기저기 피가 터진 신공표가 소리쳤다.
강자아는 불안했다.
신공표의 법력을 회수하기만 해도 상황은 마무리되겠지만, 좀처럼 그 기회를 잡지 못하는 중이었다.
‘뭐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거지?’
신공표는 자신이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자신감.
자신이 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 신공표의 표정에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신공표를 잘 알고 있어 걱정이 많았던 강자아와는 다르게 손오공은 분노에 휩싸여 그런 신공표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중이었다.
“이보게, 오공. 조심하게.”
“조심은 무슨!!!”
손오공은 그런 강자아의 말을 무시한 채, 신공표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때.
“크하하하. 죽어라!!!”
신공표는 뇌공편을 휘둘렀다.
스스스스.
“…? 뭐야? 이 연기….”
“모두 숨을 멈추게!!!”
신공표가 뇌공편을 휘두르자, 거뭇거뭇한 연기가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환술.
신공표 개인의 법력으로는 이 정도로 광범위한 환술을 걸 수 없었다.
하지만, 뇌공편을 사용한 환술은 이 장소에 있는 손오공과 강자아 그리고 신선들과 요괴들에게 지독한 환술을 걸었다.
눈치를 챈 강자아였지만, 숨을 참는 것으로 연기를 마시지 않는 것으로 파훼할 수 없는 그런 환술이었다.
스아아아-
* * *
“음…? 여긴….”
환술에 걸린 손오공은 삼장과 사제 셋을 포함해 미션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스승…?”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스승이었다.
삼장.
이제는 성좌가 되어버린 ‘당나라의 고승’이라는 수식언의 주인공.
“스승이 어째서 여기에….”
“오공아. 꿈이라도 꾼 것이냐? 꿈을 꾼다는 것은…. 이러쿵저러쿵….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으아아아!!!! 젠장, 말 좀 그만하라고 스승!!!”
그렇다.
손오공의 스승 삼장은 말이 많았다.
그것도 엄청나게.
“스승은 묵언 수행 같은 거 안 하나!?”
“오공아. 묵언 수행이란 본디……@%!$#%^#$$#…….”
“아…. 으아아이…!!!”
“크하하. 대사형. 매번 당하면서도 스승님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오? 크하하하.”
손오공은 이런 상황 자체도 즐거웠다.
모두와 함께한 시간.
고난과 역경뿐이었지만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행복했다.
그런 손오공의 눈앞에 자신이 그리워하던 시절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음…. 이상한 꿈을 꾼 게 맞는 건가…. 뭔가 기분이 묘하군.”
“대사형! 짐을 주시오. 내가 들겠소.”
“그래라.”
사오정.
이들과 함께 할 때는 대부분의 짐을 도맡아 들어왔다.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을 때 지능을 빼앗겨 항상 멍청함을 잃지 않았던 셋째 사제.
“대사형!! 배 안 고프십니까? 슬슬 밥을 먹어야….”
“야 이 돼지야. 밥은 조금 전에 먹지 않았느냐? 그만 좀 처먹거라!!”
“으하하하. 밥이란 본디, 먹고 먹고 또 먹어야 하는 것 아니겠소!”
저팔계.
돼지 요괴로 변모한 만큼 먹성이 지나치게 좋았다.
먹는 것은 별개로 게으르고 잔머리만 굴려 항상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던, 여자를 너무나도 좋아해 매번 골치 아프게 했던 둘째 사제.
“푸르릉.”
“넌, 그냥 변신술을 사용한 것인데 왜 말을 안 하는 것이냐…?”
“푸릉!”
“그래. 알았다. 당근이나 처먹거라.”
“푸르르릉!!!”
백룡.
본래는 용왕의 셋째 아들이었지만, 죄를 저질러 삼장의 자가용이 되어 기나긴 여정 내내 ‘푸릉. 푸르릉’을 제외하곤 말을 하지 않았던 넷째 사제 백룡.
손오공은 자신이 환술에 빠졌다는 자각도 하지 못한 채 세 사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은 끝나지 않고 계속 들었지만 그런 사제들의 장난기 가득 한 모습을 바라보니, 기분이 좋아지는 손오공이었다.
“이놈들아!! 스승님 똑바로 안 모시냐!!”
“에이, 대사형. 스승님은 어딜 가셔도 입만 벌리면 사람을 질리게 하지 않소! 우리가 모시지 않아도 죽을 양반이 아니오!!”
“그건 그렇지.”
“오공아. 스승이란 본디 제자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서 제자들이 모시지 않아도 내 스스로…….”
“아아아아악!!!! 제발 닥치라고 스승!!!”
“오공아. 말이 너무 험하구나. 내, 말이 험한 너에게 노래를 하나 불러주고 싶은데 그리해도 되겠느냐? 아아, 걱정 말거라. 음악이란 본디 정신을 맑게 하고…….”
한마디를 하면 백 마디를 몰아치던 자신의 스승, 삼장.
손오공은 그런 삼장이 진절머리가 났지만, 그런데도 삼장을 존경하고 그의 말이라면 제대로 따랐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방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딸랑.
“뭐지…? 요괴…?”
“오공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귀가 어떻게 고장이 난 것이냐? 고장이 났다면 내, 너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싶은데 그리해도 되겠느냐? 노래란 무엇인가? 궁금하지는 않은 것이냐? 노래, 음악이란 본디…….”
“아아아아!!!! 제발…. 미안…!!! 미안해!! 아무것도 못 들었어.”
딸랑. 딸랑.
자신만 듣는 것 같은 이 방울 소리.
손오공은 가슴이 아려왔다.
무언가 잊은 것 같은 기분.
그 무언가가 떠오르지를 않았다.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무언가.
‘뭐지…? 왜 이렇게…. 이 방울 소리….’
딸랑.
딸랑. 딸랑.
손오공은 귀를 막았다.
그립지만 아련하고 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의 방울 소리.
맑고 청아한 음색이 정신을 올바르게 해주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딸랑!! 딸랑! 딸랑!!
방울 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리고
[아저씨…. 일어나요…. 일어나요. 아저씨…. 제발…. 아저씨마저 가지 말아요….]
알 수 없는 목소리는 손오공의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희미하지만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목소리.
[일어나요. 제발….]
딸랑! 딸랑! 딸랑!!!
손오공은 자리에 서서 귀를 막자,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스승과 사제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대사형!! 어서 오시오!!!”
“대사형!!”
“푸릉!?”
“오공아. 늦장을 부리는 것이냐? 늦장이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
“아아악!!!!”
머리가 아파져 왔다.
‘뭐지? 뭔데!!!!!’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고통에 몸부림치던 손오공에게 자신이 본 적 없던 여자아이가 희미하게 눈앞에 나타났다.
딸랑!
“헤헤…. 이게 되네? 다행이다. 아저씨. 같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