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57화 (57/206)

제57화

손오공의 천뇌전(天雷電).

이안의 ‘파천 만뢰공’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이었다.

마력을 사용해 인위적인 힘을 내는 이안의 스킬과는 다르게 손오공의 천뇌전은 그야말로 자연재해 그 자체였다.

이런 힘을 제약 없이 근두운이 자체적인 힘을 사용한 것이었다.

“시…. 시X…. 전부 도망가!!! 원숭이가 미쳤다!!!”

“짜식들. 응원 고맙고. 내리쳐라. 천뇌전.”

두 번째로 손을 내리긋자, 더욱 강렬한 벼락이 상대측 요괴들의 머리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쾅! 쾅!

도망칠 틈도 없이 검게 그을린 대성들의 부하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기 시작했다.

수만의 병력이 죽어 나가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일순간.

“어이, 영감. 아린이는?”

“음. 이쪽으로 오고 있네.”

“뭐?”

“아린이 뿐만이 아니야. 다른 대성들과 사형이 오고 있네.”

“크하하! 좋다. 개자식들 전부 죽이고 아린이를 구하자고!”

“…….”

파이팅 넘치는 손오공과는 다르게, 어째서인지 강자아는 말이 없었다.

“왜 그렇게 죽상인데?”

“허허. 사명이란, 가끔 보기 싫은 장면도 봐야 하는 법.”

“보기 싫은 장면? 아아, 혹시라도 누가 죽어 나가기라도 하는 건가?”

장난스레 던진 말이었지만, 손오공의 말이 맞았다.

상황이 계속된다면 분명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었다.

신선들과 요괴들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

그것은 영혼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다.

환생도, 전생도 없는 영원한 죽음.

그것이 기록자들의 삶이었다.

조금 다른 경우도 존재 했기만….

그것은 특수한 경우일 뿐. 단순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나 손오공님이야. 알잖아?”

“허허허. 믿고 있겠네.”

믿는다?

누구를 믿는다는 것이었을까?

강자아는 냉철하고 자신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사내였다.

그런 사내가 누군가를 믿고 제 죽음을 맡길 일은 단 한 가지 이유도 없었다.

강자아가 한 말이 빈말임을 알고 있었지만, 손오공은 수긍했다.

자신만큼 임아린을 아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슬슬 올 것이야. 재정비를 부탁하네. 나는 결계를.”

“알겠다.”

강자아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였다.

손오공처럼 전투에 특화된 신선도 아니었거니, 자신이 할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손오공은 강자아가 데리고 온 신선들과 자신이 데리고 온 화과산의 원숭이들 그리고, 다른 중상위급의 요괴들이었다.

“슬슬 오겠군. 이젠 나도 느껴진다. 아니, 이제야 느끼게 해준 건가?”

“그게 맞을 걸세. 직접 온다는 것은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흥. 겉멋만 잔뜩 든 찐따들 같으니.”

긴장되는 시간이다.

대성들의 부하 요괴들이야, 이미 손오공이 뇌전을 사용해 상당수 줄여놓은 상황이었다.

더 이상 숫자에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천하의 손오공도 느낌이 싸해지는 것을 느끼는 중이었다.

불안함?

단순히 죽이고 파괴하는 것이라면,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 손오공이었다.

임아린.

2년의 시간 동안 자신의 사제가 돌보는 이 아이는 몇 천 년을 살아 온 손오공에게 변화를 주었다. 그 변화는. 손오공 본인도 느끼지 못할 때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손오공은 자신의 강함만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자신들이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는 것은, 저들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는 것.

경우의 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이, 자아.”

손오공에 부름에 두 눈을 감고 결계의 준비를 하던 강자아가 눈을 떠 손오공을 바라보았다.

“별일이군. 자네가 나를 이름으로 부르다니.”

“뭐.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있는 거 아니겠나?”

“허허허. 드디어 정신을 차린 것인가?”

“정신은 무슨. 내 말 많은 스승님이 그러더군.”

“삼장…?”

“생명을 죽이는 것은 결국 또 다른 피를 몰고 오는 것이라고.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결코 남을 해치지 말라고.”

손오공이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지 강자아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와 이런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기도 하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손오공 또한 결단을 내리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뭐, 아무튼 그렇다고. 오늘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힘을 낼 것이야.”

“죽지 말게나.”

“쳇. 내가 한낮 10년도 못 사는 인간 계집 때문에 각오를 다지다니.”

“허허허. 각오는 어떤 때에도 좋은 법이지.”

“아린이를 잘 부탁한다고.”

“……”

강자아는 대답이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손오공은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미소를 지으며 강자아의 뒤편으로 걸어 나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손오공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를 걸어가자, 마중이라도 나온 듯 남은 다섯의 대성들이 손오공을 맞이했다.

* * *

손오공이 자리를 벗어나 대성들과 자신의 사형을 먼저 맞이하자, 강자아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천존이여, 저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희생’입니까?”

당연하지만, 천존의 대답은 없었다.

“어찌,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천존이시여…!!”

강자아의 계속 된 외침에도 하늘은 조용했다.

“대답이 없으시군요. 역시…. 사명을 부여받았으니, 선택은 제가 하라는 것입니까…?”

공허한 하늘을 바라보던 강자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오공이 걸어 나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쿠콰콰콰쾅!!!!

그리고, 저 멀리서 전투의 파격 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시작되었군.”

강자아는 몸을 움직여 전투가 가능한 요괴와 신선들을 데리고 손오공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 * *

“야 이, 빌어 처먹을 새끼들아. 하다하다 인간 아이를 인질로 잡은 것이냐!?”

“허허허. 이보게, 아우님. 그만하고 우리에게 힘을 보태는 것이 어떤가?”

“하이고? 소 새끼가 여물을 잘못 처먹었나? 어디서 개수작이야?”

“말이 험하군. 귀여운 아우님이라 생각하고 봐줄 생각이었다만….”

손오공과 대화중인 요괴는 우마왕이었다.

우마왕.

손오공을 포함한 칠대성 중 가장 맏형인 자.

우마왕과는 다르게 대력마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힘에 관해서는 엄청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요괴였다.

그리고 대성들이 모여 지은 이명엔 ‘평천대성’이라는 이명이 있었다.

평천대성. 하늘을 평정하는 큰 성인이라는 뜻.

이렇듯 남은 다른 대성들의 이름은 혼천대성 붕마왕, 이산대성 사타왕, 통풍대성 미후왕, 구신대성 우융왕이 있었다.

손오공과 복해대성 교마왕을 제외하고 다섯의 대성들은 강했다.

왼쪽 눈의 화안금정을 ‘이안’에게 준 이후로 그의 힘은 더 약화되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다섯의 대성들과 부딪힌다면 손오공도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였다.

“이봐, 형님들.”

“……?”

“호오. 우리 아우님이 형님이라는 말을 쓰다니. 마음을 바꾼 것인가?”

“그러게 말이야. 하늘이 두 쪽이라도 나려고 그러는 것인가?”

“허허허허. 우리에게 힘을 보태겠는가? 아우님.”

남은 대성들이 자기들끼리 하하, 호호 웃으며 손오공의 말에 답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손오공은 그저, 도발하기 위해 ‘형님’이라는 단어를 골랐을 뿐.

그의 뒷말을 듣지 않은 대성들은 표정이 환하기만 했다. 자신들의 계획에 있어 손오공의 합류는 그야말로 실패 확률을 대폭 줄일 수 있는 한 가지 수단이기도 했으니.

“뭔 개소리야. 너희가 소, 새, 원숭이, 사자들이지 개냐?”

“뭐…. 뭐라고!?”

“이놈이…!!”

대성들이 당황하자, 손오공은 말을 잇기 시작했다.

“현계로 나가면, 동물원이라는 곳이 있다더군. 혹시 동물원이 가보고 것이냐? 아아. 그것도 아니면 용돈벌이로 그곳에서 일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것참, 보기 좋겠군. 인간들에게 빵댕이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는 것 말이야. 크하하하하.”

의식이 없는 임아린을 데리고 있는 신공표는 대성들의 뒤에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섯의 대성들은 손오공의 도발에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이를 갈고 있었다.

“크하하하. 뭐, 됐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허허허. 이봐, 아우님. 지나친 도발은 명줄을 단축한다는 것을 모르는가? 혹시라도…. 자네 혼자 우리 여섯 형제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여섯? 아아. 아직 모르나 보군.”

“……?”

우마왕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손오공이야 우연히 그 강함을 인정받아 마지막 칠대성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이지만, 그 전부터 여섯 대성은 형제들 간 우애가 돈독했다.

그런데….

“그, 물고기는 내가 죽였다.”

“이노옴!!!!!!!!”

쿠구구구구구.

우마왕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검붉은 아우리가 우마왕의 전신을 감싸며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형님!!! 더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저 빌어먹을 놈을 죽이시죠!!!”

“크흐…. 좋다. 막내라 생각하여 네놈을 봐주려 했다만, 후회하거라 원숭이 자식.”

“뭐, 누구 말하는 거야? 네 옆에 미후랑 우융?”

“깐죽거리는 그 주둥이도 더는 나불대지 못할 것이다!!! 가자. 형제들이여.”

“헹! 그래. 한 번에 덤비라고 그래야 내가 편하니까.”

파앙-!!

손오공은 자신의 귀에서 이쑤시개만 한 황금색의 여의봉을 꺼내어 본래의 크기로 돌려놓았다.

“다들 맴매 맞을 시간이 돌아왔지? 내 이명을 잊은 건 아니겠지?”

“닥쳐라!!”

“나, 제천대성이야. 이놈들아.”

제천대성.

하늘을 다스리는 큰 성인이라는 뜻.

하늘나라 옥황상제와 동등한 위대한 신선이라는 뜻이다.

그의 위세를 누르지 못한 옥황상제는 그 봉호를 승인해준다.

손오공의 이명은 다른 대성들과는 다르게 옥황상제에게 인정받아 또 다른 강함이 묻어있었다.

손오공의 오른 눈이 금빛으로 물들며, 여의봉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다섯의 대성들이 자신들의 선기를 꺼내 들어 달려들었다.

‘아린이는 아직 무사한 것 같고…. 이 새끼들은 나 혼자 무리다. 신공표 저 재수 없는 놈을 떨어트려야 자아 그놈이 아린이를 구할 것인데…. 어쩐다?’

전투 중에도 손오공은 생각이 많아졌다.

이 전투는 서열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누가 더 강한지는 의미가 없는 전투.

자신의 목적은 오롯이 임아린 한 사람이었다.

다섯의 대성이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음에도 신공표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을 끌었는지, 신선과 요괴들의 연합군 그리고 강자아가 자리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형!!! 인제 그만 포기하시지요. 당신들로는 저희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하? 자아야. 정말 그리 생각하는 것이냐?”

“……제발 그만하시지요.”

강자아가 강하게 내뱉은 말은 단순히 겁주기용 말뿐이었다.

손오공은 우마왕의 선에서 견제할 수 있었고 나머지 대성들로 강자아가 데리고 온 신선과 요괴들을 몰살시킬 수 있었다.

강자아는 전투에 능한 신선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공표 혼자서도 처리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숫자만의 우위만 점했을 뿐. 이 전장에서 손오공과 강자아 일행들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역시…. 이렇게 흘러가는군.”

강자아는 결심이 섰는지, 자신의 지팡이를 신공표를 향해 움직여 준비한 결계를 사용했다.

“이…. 이건…!?”

“사형. 조금만 아린이와 기다리시죠.”

“이놈…!!! 강자아!!!”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겁니다. 대성들을 소멸 시킨 다음은 사형입니다.”

“네놈은 매번 나를 방해 하는구나!!!! 천존 따위의 명에 따른다고 그게 옳은 일이라 생각하는가!? 아니다. 네놈은 모를 것이다. 속이 시커먼 천존의 마음을…!!!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신공표의 처절한 외침에도 강자아는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자신의 사명은 오롯이 신공표를 막아내고 임아린을 구하는 것.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보게, 오공 지금이네!! 미안하지만 힘 좀 써주게!!!”

“흥. 알겠다!!”

손오공도 신공표의 난입을 걱정했지만, 강자아 덕분에 전투가 조금 더 수월해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신선과 요괴 연합군이 구신대성 우융왕을 맡으며 손오공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대장!!! 제가 돕겠습니다.”

“음…? 네놈은 오삼이 아니냐?”

“오호…. 그 유명한 통풍대성 미후왕 아니오? 나를 아시나 보오?”

“크하하하. 손오공의 부하 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끼어드는 것이냐.”

“뭐라는거야? 같은 원숭이니, 네놈부터 패야겠다!! 오늘부로 미후왕이란 이명은 내가 가져가겠다. 덤벼라!!”

“흥!!”

손오공의 부하 1호인 오삼이와 통풍대성 미후왕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짜식들. 알아서들 잘하네. 남은 건 소랑 새랑 사자네?”

“흥. 우리 셋만으로 충분하다!!!”

“음? 큰형님. 뭔가 오고 있소.”

기척 감지에 능한 혼천대성 붕마왕이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무척이나 친근한 기운과 함께 저 멀리서 세 명의 요괴가 손오공을 향해 날라 오고 있었다.

용의 형상을 한 요괴와 그의 등에는 요괴 둘이 타고 있었다.

“음…? 저놈들….”

“어이, 대사형!!! 우리를 빼놓고 뭘 하는 것이오!!!! 꿀.”

“이거 섭섭합니다!! 저희를 빼놓다니!!!”

“대사형!!! 저희가 왔습니다룡!!!”

손오공은 요괴 셋을 바라보며, 흐뭇함과 반가움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빌어먹을 사고뭉치들. 일찍도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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