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이…. 이 새끼가…!!!”
“사형. 그 아이를 풀어주십시오…!!!”
“후후후. 풀어줄 것이면 왜 잡았겠느냐. 자아야. 아직 배움이 한참 모자라는구나.”
“아저씨…!!! 할배!!!”
“그럼. 나는 이만.”
스윽.
스르륵.
신공표가 지팡이를 다시 한번 내리긋자, 신공표와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임아린이 먼지처럼 사라졌다.
강자아와 손오공이 손을 쓸 틈도 없었다.
“……미친….”
손오공은 분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두 눈을 뜨고 있음에도 대놓고 납치를 당하고 만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쾅!!! 콰콰쾅!!!! 쾅!!!!
자신의 거처를 때려 부수기 시작한 손오공은 어느새 강자아의 앞으로 이동했다.
“넌 무얼 한 것이냐!!!!”
“이보게. 진정하고 내 말을 듣게.”
“지금……. 어떻게 진정을 하겠냐!!!!”
손오공이 처음으로 정을 준 인간.
삼장법사.
삼장법사를 떠나보낸 손오공이 두 번째로 정을 준 인간이었다.
자신의 아이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아이처럼 돌보았고 애정을 주었다.
약간의 강제성은 있었지만, 자신의 사제가 보살피는 아이였다.
그런 임아린이 자신이 두 눈을 뜨고 있었음에도 납치를 당하고 말았다.
손오공은 분노가 치밀고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싶었다.
“당장, 아린이를 죽이지는 않을 걸세. 자네도 방금 전 나와 이야기 하지 않았는가?”
강자아의 냉철한 판단에 손오공은 화를 삭이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주변을 초토화한들 임아린을 찾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손오공이 모를 리 없었다.
“후……. 맞아. 그렇지. 지금 찾으면 찾을 수 있어.”
“남은 시간은 1년. 지금부터 자네와 내가 아린이를 찾아 나서야 하네.”
“그걸 말이라고. 당장 가지.”
강자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시간으로 남은 시간은 1년.
현계의 시간으로 남은 시간은 37일 정도.
강자아와 손오공 1년간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강자아와 손오공에게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었다.
“야, 1호.”
“네…. 네!!! 대왕!!”
“애들 전부 풀어. 신공표 그 새끼 무조건 찾아. 알겠어?”
“알겠습니다!! 아린 선자는 제가 꼭 구하겠습니다.”
“구하는 건 내가 할 테니, 찾기나 해.”
손오공의 오른팔인 부하 1호는 눈 깜짝할 새에 자리를 벗어나, 원숭이들을 진두지휘하여 수색에 나섰다. 자신의 대왕인 손오공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부하 1호에게 임아린은 친구이자 누이였다.
부하 1호는 자신의 친구이자 누이를 찾고 싶은 마음은 그 누구에게 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린 선자. 제가 꼭 찾겠습니다…!!! 가자. 애들아!!”
“우끼끼!!!!”
이렇게….
강자아와 손오공 그리고 화과산의 수만의 원숭이들은 임아린과 신공표를 찾기 위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
“어이, 영감. 이쪽 맞아?”
“물어본들, 내가 알겠는가…?”
“아…. 그건 그렇지. 나도 모르는 걸 영감이 알 리가 없지.”
“내 생각이지만…. 천계는 아닐 걸세.”
“어째서지?”
“사형은 이미 천계의 미움을 샀네. 그런 곳에 몸을 숨긴들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고 발각된다면 태상노군의 팔괘로에 처박히겠지.”
“음…. 그건 나도 싫군. 살아 나오긴 했지만, 꽤 더웠거든.”
“팔괘로를 단순, 덥다는 걸로 표현하는 자는 자네 하나뿐일세.”
두 사람이 임아린을 찾아 나선지도 10일이 지나있었다.
손오공의 부하 원숭이들은 서쪽으로.
반강제적인 협박을 해 손오공에게 협력한 요괴들은 동쪽으로.
강자아가 동원 가능한 신선과 선자들을 보낸 것은 북쪽이었다.
각자의 통신 수단은 강자아가 준비했다.
그리고….
손오공과 강자아 둘은 남쪽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둘이 사용하는 선기인 근두운과 그와 비슷한 강자아의 구름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럼에도 빠른 시간 내에 찾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곳. 신선계는 넓어도 너무 넓었다.
현계와는 다른 공간적인 개념이어서인지, 이곳의 공간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넓어져 갔다.
그 주기가 굉장히 길었지만, 현재 상태에 이곳은 손오공의 근두운으로도 전체를 돌아보는 것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이쪽이 맞냐?”
“아니, 나도 모른다네.”
손오공은 답답했다.
이곳이 얼마나 넓은 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으아아아!!! 답답해 뒤지겠네. 그 새끼는 어디로 숨은 거야!!!”
“진정하게.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런 말이 어디 있는 데?”
“그런 게 있네.”
“그래서 등잔 밑은 어딘데?”
강자아는 갑작스레 생각을 정리하는 듯. 말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영감탱이. 또 시작이네.”
“……”
하늘을 올려다보던 강자아는 생각의 정리를 마쳤는지, 손오공을 보며 말했다.
“사형은 혼자서 움직이지 않을 걸세.”
“응. 그래서?”
“조력자가 있다는 것이고 그 조력자는 사형을 도와 현계로 나갈 생각이지.”
“응. 그래서?”
“자네에게 조력하지 않은 요괴들의 수가 꽤 있지 않은가?”
“응. 있지.”
“……제대로 듣고 있긴 한 건가?”
“응. 당연하지.”
“아무튼. 조력하지 않은 요괴 중 자네와 비견되면서도 신선들과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자가 누가 있는가?”
“음…….”
있었다.
손오공은 자신이 철없던 시절, 칠대성이라 부르며 어울려 놀았고 그들과 천계와 신선들을 포함해 대전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전쟁에 패해 모두가 잠적했지만.
“혹시…. 그놈들인가?”
“맞을 걸세.”
“그래서 남쪽으로 오자고 한 건가?”
“그것도 맞네.”
“어디까지 보고 있는 거야?”
“아주 조금이네. 그것도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
강자아는 미래나 과거를 훑어볼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이 받은 사명에 대해서 자신의 ‘명’을 조금은 엿 볼 수 있을 뿐.
현재. 강자아는 천존에게 사명을 부여받았고, 그 이유로 자신의 ‘명’을 엿본 것뿐이었다.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대략적인 건 알 수 있었다.
“신선 놈들은 역시 특이하다니까. 좋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면 되는 거지?”
“남쪽의 끝에 그들이 숨은 공간이 있을 걸세. 다만….”
“걱정하지 말아라.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아린이를 구할 테니.”
“……”
강자아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손오공은 강했지만, 칠대성 중 ‘평천대성’은 그와 견주어도 지지 않을 정도의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 정도의 강함을 지닌 평천대성에 남은 다섯의 대성들 그리고 자신의 사형인 신공표가 와 전투를 벌인다면?
누군가는 희생해야 겨우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이, 영감. 무슨 생각하는 줄은 알겠는데.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말라고. 나 또한 그들과 같은 ‘제천대성’이라 불렸으니.”
“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네. 나는 전투에 능한 신선이 아닌 것을.”
“아…. 맞다. 너 싸움 더럽게 못 하지?”
“허허. 나는 신선이네. 싸움을 잘해야 하는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정도는 안돼야지. 안 그래?”
임아린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손오공의 표정이 한층 밝아지기 시작했다.
강자아는 그런 손오공을 바라보며 같이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임아린과 손오공 둘 모두를 잃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제자를 무슨 염치로 본단 말인가.
“생각이 있네. 전투에 능하지는 않지만…….”
강자아는 생각했다.
자신이 엿본 ‘명’.
답은 항상 그곳에 있었다.
‘희생…. 입니까? 천존.’
강자아는 자신을 희생할 생각을 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들과 전투를 벌여 두 사람을 살릴 방법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 방법을 손오공이 눈치채지 못하게 일러주었다.
“어이, 영감. 괜찮겠어?”
“허허허. 수행에 끝이 없어 아직 수행 중이긴 하네만, 나 또한 신선 중 한 사람이네.”
“노인네 같은 말만 골라서 하네.”
“걱정 말게. 아린이는 꼭 구할 수 있을 걸세.”
강자아의 당당한 어투에 그를 의심하지 않는 손오공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린이는…? 는…? 뭐, 기분 탓이겠지.’
전투에 능한 손오공이었기에 눈치채지는 못했지만, 강자아의 말에 정답이 있었다.
‘는’ 이 말은 손오공이나 강자아 둘 중 누군가는 희생해야 임아린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좋아. 그 방법으로 가자고.”
“허허허. 그럼 속도를 높여보게나.”
작전을 짠 강자아는 손오공과 속도를 올려 남쪽의 끝으로 이동했다.
* * *
허허벌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원한 바람만이 강자아와 손오공을 반길 뿐이었다.
“이봐, 영감. 여기가 맞긴 한 거야?”
“나를 뭘로 보고.”
강자아는 허허벌판에서 손오공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선기를 공중에 휘휘 저어냈다.
스스스스.
“이거…. 전부 환상이었다고…?”
처음 보는 광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 손오공이 물었다.
계속해서 선기를 휘젓자, 허허벌판이던 장소에 처음 보는 건축물과 인기척들이 느껴졌다.
그리고.
두 사람의 등장을 눈치챈 육대성의 부하들과 ‘복해대성’이 앞을 가로막았다.
“여, 상어야. 오랜만이다?”
“형님한테 말하는 버릇은 어디다 버리고 온 것이냐. 막내야?”
“막내는 무슨. 내가 제일 마지막에 합류해서 막내냐?”
“당연한 것 아니겠냐?”
“물고기 새끼가 말이 많네.”
“이놈이…?”
북해대성.
바다를 뒤엎는 큰 성인이라는 뜻이었다.
이들 칠대성은 자신들이 신선들과 천계에 밀리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형제마다 이명을 짓게 되었다.
본래 북해대성의 이름은 상어마귀왕인 ‘교마왕’이다.
“이보게, 오공. 꽤 강해 보이네만…?”
강자아는 교마왕을 처음 봐서인지 그의 모습에서 강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교마왕의 생김새는 이름답게 용, 이무기, 상어가 합쳐진 모습이었다.
상어의 머리. 용의 몸통. 이무기의 꼬리.
겉모습만 본다면 그야말로 끝판왕 등장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손오공만큼은 아닐지라도 결코 얕볼 상대가 아니다…. 이런 자들이 아직 다섯이나 더….’
강자아의 불안함을 느꼈는지, 손오공을 강자아를 바라보았다.
“영감. 걱정하지 마. 저 새끼 생김새는 천존 뺨도 때릴 정도로 험하긴 한데.”
“……?”
“저 새끼는 물…. 그러니까 바다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야.”
“아….”
정말이었다.
교마왕은 바다에서는 1순위를 다툴 정도의 마왕이었다.
하지만…….
바다가 아닌 교마왕은 손오공의 부하 1호가 지지 않을 정도로 약하디약한 존재였다.
“야. 물고기. 오랜만에 매타작 좀 해볼까?”
“……바다…!! 바다로 가서 싸우자!!!”
“응? 내가 왜?”
“내가 그래도 형님인데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똥을 싸세요.”
육대성의 부하들은 수십만.
하지만 강자아는 이미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다.
“다들 도착하는군.”
강자아와 손오공의 뒤쪽에서 수많은 원숭이와 요괴들 그리고, 신선들이 속속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럴 때 ‘명’이 도움이 되는군. 조금만 늦게 들여 봤다면 큰일 날 뻔했겠어.’
“훗. 멍청한 놈들 빨리들 오라고!!”
손오공은 자신들의 부하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대장!! 저희 왔습니다!!! 아린 선자는 어디 있습니까!!! 제가 다 조지겠습니다. 으하하하하.”
“저 새끼가 왜 저렇게 파이팅이 넘쳐…?”
부하 1호는 생각했다.
지루하고도 지루한 이곳에서 손오공에게 매일 처맞기만을 반복한 1호에게 한 줄기 빛이었던 임아린.
그 아이와 놀아주는 것은 유치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녀를 구하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다.
더군다나.
부하 1호는 그동안 손오공에게 맞으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
“으하하하하하. 오랜만이구나!!!! 전부 덤벼라 벌레들아!!!!”
“야. 진정해.”
“엡.”
손오공과 강자아는 자신들의 뒤로 모인 신선, 요괴들을 동시에 쳐다보았다.
“이봐. 죽지 말라고.”
“허허허. 늙었다고 무시하지 말게나.”
두 사람의 대화와 그 뒤에 산처럼 쌓인 수만의 ‘신요’연합군.
교마왕은 불안했다.
‘하필 형제들이 없을 때…!! 그래도 질 수 없지. 나는……. 바다가 아니어도 강하다…!!!’
교마왕은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며 앞으로 나섰다.
육대성의 요괴연합군과 함께.
“어이, 물고기. 오랜만에 놀아볼까?”
“흥. 바다가 아니어도 나는 강하다!”
교마왕과 손오공은 서로를 향해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봐, 영감. 싸우는 건 내가 할 테니, 아린이 위치나 파악하라고.”
“음. 알겠네.”
강자아가 뒤로 물러서 임아린의 위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전원. 저놈들을 조져라.”
”모두. 목숨을 걸고 지켜라!!!“
손오공과 교마왕이 동시에 출격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동시에 선두에는 손오공의 부하 1호가 치고 나갔다.
“끼야오!!!!! 죽여라!!!! 대장한테 맞고 살던 내 짬바를 무시하지 말거라!!!”
“……저래서 신난 건가?”
부하 1호는 전장의 귀신처럼 요괴들을 학살하며 외쳤다.
“내가 바로 화과산의 이인자. 오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