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한두 번 한 가족 놀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손오공은 매번 가족 놀이를 할 때마다 멘탈이 터질 것 같았다.
“젠장…. 내가 이 나이 먹고.”
몇 시간의 가족 놀이를 한 후에야 임아린은 만족했다.
“아하하하. 재밌었다.”
“아린 선자. 이제 가족 놀이를 할 나이는….”
“시끄러워요.”
“네.”
가족 놀이를 마친 후 손오공과 부하 1호는 가족 놀이로 인해 온몸의 기가 다 빨렸는지, 돌 방석에 늘어져 있었다.
“아저씨!! 일어나요! 이제 밥 먹어야죠!!”
“야아…. 여긴 네가 좋아하는 밥 없거든…?”
“알아요. 과일!”
임아린의 존재는 이곳에서 손짓 한 번이면 죽일 수 있는 존재였지만, 부하 원숭이들과 손오공은 이 어린아이를 죽이거나 귀찮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야. 부하 1호.”
“예…. 대왕.”
“힘내.”
“네?”
“힘내서 과일 좀 내오라고.”
“아……. 안 그래도 그럴 참입니다….”
‘젠장 맞을 대왕 새끼.’
부하 1호는 생각했다.
이곳에서 자신의 서열은 손오공 다음이었다.
그런데…….
많고 많은 부하 중에 두 번째로 강한 자신을 이다지도 부려 먹는지 알 수 없었다.
‘나……. 그래도 이인자인데…….’
부하 1호가 이인자이건 아니건 손오공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이곳 원숭이들 전부가 덤빈들 그를 이길 수는 없었다.
‘후……. 독립을 하든지 해야지. 젠장 맞을 대왕 새끼.’
부하 1호는 겉으로 내뱉을 수 없는 욕설을 마구 섞어가며 손오공의 욕을 해댔다.
“야.”
“네…? 네?”
타이밍도 좋게 자신을 부른 손오공이었다.
“너 내 욕했냐?”
“네? 아니죠. 설마요.”
“표정이 욕을 한 것 같은데?”
“설마요. 전 죽고 싶지 않습니다. 대장.”
“조심해.”
“네…….”
손오공의 눈치는 빨랐다.
그가 살아온 세월 덕분인지, 오른 눈의 화안 금정을 켜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설마…. 그거 보려고 화안금정을 사용했겠어?’
1호는 불안했지만, 자신을 쥐어패지 않은 것으로 알 수 있었다.
아무리 희귀하고 눈 중에 최상위급의 눈일지라도 속마음까지는 못 읽는다는 것을.
“빨리 안가냐?”
“안 그래도 전력으로 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부하 1호는 더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정신이 피폐해질까봐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를 내며 자리를 벗어났다.
진이 빠져 늘어져 있는 손오공과는 다르게 아직도 에너지가 넘치는지, 임아린이 손오공의 거처를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했다.
“아저씨. 이건 뭐예요?”
“내려놔. 그거 잘못 쓰면 너, 저 멀리 날아간다.”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장식도 아닌 채 널브러져 있는 부채 모양의 선기였다.
“아린이 가지면 안 돼요? 되게 이쁘다. 헤헤.”
“너 그거 들고 다니다가는 소 새끼한테 혼날걸?”
“소 새끼? 아! 그 소 아저씨?”
“응. 내려놔 너한테는 위험하다.”
“쳇. 알겠어요.”
손오공의 완공한 목소리에 부채를 내려놓은 임아린이었다.
2년간 봐온 손오공의 거처였지만 그 안에는 진귀하고 신기한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그야말로 보물창고.
“봐도 봐도 신기하단 말이지.”
“꼬맹이. 그만하고 이리 와. 1호 놈이 곧 과일을 내올 거다.”
“헤헤. 알겠어요.”
그때였다.
강자아가 볼 일을 마쳤는지, 자신의 이동 수단인 구름을 탄 채 손오공의 거처에 도착했다.
“노인네. 벌써 왔어?”
“허허. 아린이가 잘 있나 걱정이 되어서 말이지.”
“이 몸이 두 눈을 뜨고 있는데, 걱정은 무슨?”
“자넨 이미 왼쪽 눈의 화안 금정이 없지 않은가? 그만큼 힘도 떨어졌을 테지.”
“한판 붙자고?”
“장난이네.”
“과일이나 먹고 가.”
두 사람은 임아린이라는 연결고리로 어느새 꽤 친해져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장난은 무슨, 신선들은 꼰대들뿐이라며 반감을 품었던 손오공이었다.
그런 손오공이 강자아와 친해지게 된 것이다.
10년도 살지 못한 이 어린 여자아이 덕분에.
“대왕. 과일 내왔습니다. 스페셜하게 좋은 놈으로.”
“야.”
“예?”
“이거 썩었는데?”
“……그런 것을 옥에 티라고 하죠.”
“티 나게 맞아볼래?”
임아린이 있는 동안 손오공은 자신을 패지 않았다.
그런 임아린이 고마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하 1호는 썩은 과일을 들고 도망치며 말했다.
“제가 먹으려고 했던 겁니다. 대장!!!”
“어……. 많이 먹어라.”
“그럼 맛있게들 드십쇼!! 아린 선자도 많이 드세요!!!”
“1호 아저씨 잘 가요!”
시야에서 부하 1호 원숭이가 사라지자, 과일을 집어 먹으며 손오공을 바라보았다.
“영감. 할 말 있구나? 뭔데? 똥마려운 소처럼 그러고 있지 말고 말해봐.”
예전이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손오공의 말이었다.
예전…….
신선들의 부탁?
그렇다.
손오공은 특히 신선들의 부탁은 잘 들어주질 않았다.
죽빵이라도 안 날리면 다행이었지.
“음…. 자네도 조금은 눈치채고 있을 것이야.”
“혹시, 그 정신 나간 신선 놈?”
“아아. 그렇지. 내 사형 말일세.”
손오공은 요괴 중 최 상위권에 있는 강자였다.
천존만큼 강하지는 않았지만, 천존이 없었다면 천계의 신선들이 없었다면 그는 망나니였던 시절에 천계의 신선 대부분을 학살했을 것이다.
손오공이 갱생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강자아였다.
“아무튼. 사형이 아린이를 노리고 있네.”
“응? 그 뱀눈 아저씨요?”
“그래. 아린이와 이안 그자를 이용해 이곳을 나갈 생각이지. 방법은 나도 잘 모르겠네만…. 사형을 막아야 하네.”
“막지 못하면?”
“균형은 무너지겠지. 그리고…. 신선들과 요괴들이 현계로 나가게 될 것이야.”
“나가면 나가는 거지, 문제 있나?”
“단순히 나가는 것이야 문제는 없네만, 균형이 무너지면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야.”
“네놈도 어떻게 될지 감이 안 오나 보군.”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렇네.”
손오공은 무언가 짚이는 게 있다는 듯.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그놈이 아린이를 데려가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이 힘없는 어린아이가 무얼 할 수 있다고.”
“2년 전 이안 그놈이 ‘만년 묵은 소나무의 씨앗’을 가져온 적이 있지. 그 씨앗은 신선들의 힘을 강하게도 만들어 주지만 반대로 악용하면 시스템을 가진 인간의 정신을 장악해 이곳의 봉인을 풀 수 있는 물건이야.”
“멍청한 사제 놈. 그걸 뭐 하러 가져와서 제 무덤을 판 것이야?”
“몰랐겠지. 사용하기에 따라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를. 단순히 우리에게 선물일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야. 우리 신선들과 요괴들은 시스템의 상점을 사용 할 수 없으니 말일세.”
강자아의 말에 사태가 조금씩 심각해진다는 것을 느낀 손오공이 인상을 찌푸렸다.
“말을 이어가자면, 얼마 전 내 사형인 ‘신공표’는 선기들과 만년 묵은 소나무를 훔쳐갔네.”
“……야야. 영감.”
“그래…. 얼마 남지 않았네. 이안 그놈의 ‘명’은 코앞으로 다가왔고 그 ‘명’을 이겨낸다면 아린이를 데리러 이곳에 올 것이야. 사형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 때이네.”
“그렇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인데….”
“그렇지. 훔친 선기들과 만년 묵은 소나무를 아린이를 이용해 사용할 생각이지. 사용할 시기는 안이 그놈이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올 때이고.”
강자아의 말을 듣던 손오공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자신의 머리를 뜯어대고 있었다.
“젠장맞을 새끼. 아린이 건들기만 해봐. 아주 뼈를 조사 줄 테니.”
“지금부터는 자네와 내가 힘을 합쳐야만 하네. 아린이를 우리들의 시야에서 한순간도 놓쳐서는 안 되네.”
“흥. 그런 건 문제 없다!!”
고개를 끄덕인 강자아였다.
손오공이 얼마나 강한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불안했다.
자신의 사형 신공표는 남을 해하는 계략에 능했다.
한순간을 놓친다면 임아린은 신공표에게 잡혀 정신을 침식당할 가능성이 컸다.
한순간.
그 순간이 언제일지 몰랐던 강자아는 임아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아린이. 곧 안이 그놈이 올 거야. 그때까지 할배랑 오공이 아저씨 말 잘 들어야 해 알겠지?”
“으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온다면 그렇게 할게요!!”
“옳지. 착하구나.”
대략적인 이야기를 나눈 강자아와 손오공은 만일의 사태들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손오공은 분신술을 사용해 경호원처럼 임아린을 지켰고 강자아는 자신의 선기를 사용해 임아린의 기운을 숨겨냈다.
“근데, 사제 놈이 오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이곳의 문을 여는 순간이 오지 않겠지.”
“그럼 해결되는 것 아닌가?”
“말은 쉽네만…. 오지 못한다는 건 안이 그놈이 자신의 ‘명’을 이겨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것이고…. 자신의 계획이 어긋난 사형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겠지.”
“다른 방법?”
“신선의 기운과 인간의 기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자.”
“……”
강자아의 말에 손오공은 대답이 없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이 장소에서 그런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임아린.
2년이라는 시간을 손오공과 강자아에게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
현계로 가게 되면 임아린의 선법은 미션을 헤쳐 나가기 수월한 힘이었지만, 반대로 이곳에서는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는 독이나 다름없었다.
“아린이….”
“그렇네. 아린이의 목숨을 사용해 강제로 문을 열 것이야.”
“아니, 그렇다면 애초에 아린이를 잡아 곧바로 문을 열면 그놈의 계획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힘을 비축하기엔 시간이 없었을 것이야. 강제로 연다는 것은 엄청난 카르마가 소모되지.”
“한마디로 문이 열렸을 때 나가면 카르마의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고. 반대로 아린이의 목숨을 담보삼아 강제로 열었을 땐 자신의 카르마를 소모해야 한다는 것이군. 그리고…. 만년 묵은 소나무는 문을 여는 열쇠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고?”
“맞네.”
“하……. 그놈 새끼 지금 어디 있는 데? 내가 조져놓으면 되는 것 아니냐?”
화가 잔뜩 난 손오공의 몸에서 붉은색의 기운이 방출되고 있었다.
강자아는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직도 이 정도 강함이라니. 대단하군….’
“빨리 말 안 해?”
“나도 모르네.”
“뭐?”
“사형은 천존의 선기들을 훔쳐 갔네. 자신의 위치를 철저하게 숨기고 있어. 천계에 있는지, 요괴의 진영인지, 우리가 당장 찾을 방법은 없네.”
“젠장…….”
손오공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머리를 박박 뜯으면서도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고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붉은 기운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이봐. 영감.”
“……?”
“숨으면 찾으면 되지. 안 그래?”
“그렇긴 하네만, 어떻게….”
손오공의 말이 의아한 강자아였다.
선기를 사용해 모든 것을 감춘 신공표를 찾을 방법은 없었다.
이곳의 왕이자, 신선들의 신선인 천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1호!!!! 1호 어딨냐!!!!”
큰 소리를 내며 자신의 부하를 찾는 모습에 깜짝 놀란 강자아였다.
강자아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찾으셨습니까!?”
“1초만 늦었어도 뒤졌어 넌.”
“하하하. 전 항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대장.”
손오공의 기운이 강하게 발산되는 것을 본 부하 1호는 두려웠다.
근 몇백 년간 자신의 대장이 이렇게까지 화가 난 것을 본 적이 없었으니.
“찾아.”
“네…?”
“요괴들 전부 소집해. 소 새끼랑 상어 새끼 그 외 잡다한 놈들 전부.”
“말을 들을까요…?”
“안 들으면 조지면 되니까.”
“그래서 누구를…?”
“곤륜산의 신선. 신공표.”
“아아…. 그 재수 없게 생긴 놈이요?”
손오공의 폭발 할 듯한 기운 때문인지, 1호는 1초라도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하루 안에 찾아. 못 찾으면 1분당 한 대다.”
“으끽…?!”
대답할 시간도 없다는 듯, 1호가 자리를 벗어나려 할 때였다.
스스스.
“이보게, 사제와 원숭이!!! 잘들 있었는가!?”
신공표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기운을 느낄 틈도 없었다.
천하의 손오공도 몰랐다.
천존의 제자인 강자아도 몰랐다.
도대체 무슨 선기를 사용했음에 이 정도 실력자들이 기척도 느끼지 못했던 걸까?
“으하하하하. 나를 찾고 있었는가?”
“너 이 새끼…!”
“워워. 진정하게. 나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니야. 그 아이만 넘기게 그렇다면 조용히 물러나도록 하지.”
툭.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손오공은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닥을 차며 신공표를 향해 뛰어들었다.
“너 이 새끼. 이 아이를 건들면 죽어서도 못 죽을 줄 알아라.”
“후후훗. 그게 자네 마음대로 되겠는가?”
스윽.
팡!!
허공에 떠 있던 신공표가 자신의 지팡이를 내리긋자, 충격파가 일어났다.
퐁!퐁!퐁!퐁!
손오공이 임아린을 지키기 위해 준비한 분신들은 충격파와 동시에 사라지고 말았다.
“어? 네놈 무슨…?”
“허허허. 내 목적은 이 아이뿐인데, 자네와 사제를 상대로 싸우겠는가?”
손오공은 당황스러웠다.
충격파는 별 것 아니었다.
충격파로 인해 아주 찰나의 순간, 임아린을 놓쳤다.
그리고.
다시 신공표를 바라보았을 땐, 그의 한쪽 손에 임아린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