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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53화 (53/206)

제53화

53화 episode(7.5) 임아린

곤륜산.

신선들의 주거지이자, 선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요괴들이 득실거리는 장소.

이들은 성좌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 강함이 성좌들과 빗대어 절대 밀리지 않는 자들.

그들이 곤륜산의 신선들과 요괴들이었다.

성좌들은….

아니, 신선들과 요괴들의 정체를 아는 자들은 이들을 이렇게 부른다.

기록자들.

* * *

“자아, 할배!!”

“오, 아린이구나?”

“할배요!! 아저씨는 언제 오는 거예요!!”

“하하하하. 그놈은 짊어진 것이 너무나도 많은 인간이지. 곧 올 것이야. 걱정하지 말거라.”

“힝…. 보고 싶어요. 왜 나 혼자 여기 있어야 하는 거예요?”

임아린의 나이는 9살. 이안이 이곳 곤륜산에 임아린을 맡기고 떠난 뒤 곤륜산의 시간이 2년이나 흘러있었다.

이곳은 현계와의 시간 배율이 달랐다.

2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현계의 시간은 반년이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안은 아직까지 임아린을 데리러 오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현계의 인간들은 한참 강해지기 위해 동족을 살해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미션들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

오고 싶어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어쩔 수 없었다.

그걸 모르는 임아린이 아니었지만….

임아린은 자신을 보살펴 주는 강자아를 바라보며 칭얼거리듯 말했다.

“우리 아린이. 할배랑 잠깐 걸을까?”

“자아 할배! 할 말 없으면 꼭 걷자 그러더라!!”

“으허허허. 아린이가 벌써 이 할배를 전부 파악한 것이야?”

“헤헤. 아린이는 똑똑하잖아요.”

이곳 곤륜산은 평화로웠다.

때문에 강자아의 마음속 한편에는 이안이 임아린을 데리러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현계로 가봐야 이 어린아이는 못볼 꼴만 볼 테니.

하지만 그것은 강자아의 바램이었을 뿐.

이안의 ‘명’에서 임아린은 꼭 필요한 존재였다.

“안이 그 제자 놈의 ‘명’이 너무 험난해서 아직까지 오지 못한 것이야. 아린이도 알고 있지 않으냐?”

“알죠! 아는데…. 1년만 더 있으면 아린이는 열 살이에요!!”

곤륜산의 신선들에게 선법을 배우며, 이곳의 역사와 신선들의 정체 등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운 임아린이었다. 그런 임아린이 이안의 험난하고 고된 여정을 이해 못 하지는 않았다.

그저….

누군가에게 투정을 부리고 싶었을 뿐.

그것이 자신을 친손녀처럼 돌봐주는 강자아였을 뿐이었다.

“자아 할배. 아저씨가 보고 싶어요….”

강자아는 말이 없었다.

그 무슨 말을 해도 임아린 이 아이에게 위로가 되어줄 말을 생각하지 못한 듯.

“곧 올 것이야. 할배랑 낚시나 하러 갈까?”

“할배 낚시 못 하잖아요!! 앉아서 물고기는 안 낚고 허공만 바라보잖아요!!”

“허허허. 이 할배는 봐야 할 것들이 많으니 어쩔 수 없단다.”

“맨날 세월을 낚는다느니, 알 수 없는 소리만 하고…. 아린이는 낚시 싫어요!”

임아린의 투정은 하루하루 더 해져만 갔다.

자신을 두고 간 이안이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임아린은 김도은과 김영광, 이안 그리고 자신을 포함해 네 사람이 함께 있는 날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리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사이는 아니었지만, 가족을 떠나보낸 임아린에게 이안과 김도은, 김영광은 든든한 언니였고, 아빠와 엄마 같은 존재들이었다.

강자아는 그런 임아린의 투정을 싫은 내색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임아린을 보살피고 아껴주는 선한 신선이었다.

“그렇담, 할배랑 오공이 아저씨한테 놀러 갈까?”

“예이!!! 좋아요. 할배!! 같이 가요!!”

“허허허. 데려다 주도록 하마. 할배는 일이 있어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하는데 괜찮지?”

“알겠어요. 자아 할배는 바쁘니까요.”

강자아는 인자하게 웃으며 임아린을 자신의 구름에 태워 손오공이 위치한 화과산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오공.

자신의 스승을 알고 있고 그 스승이 이안에게 호감을 표한다는 이유만으로 화안금정의 한쪽을 내주며 자신의 사제로 인정한 최상위급의 요괴이자, 원숭이들의 왕.

삼장법사와 그의 사제들과 어렵고도 험난한 미션을 해결하며 ‘투전승불’이라는 호칭을 받은 자였다.

그의 강함은 인간으로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런 손오공이 자신의 사제가 보살피는 임아린을 싫어할 리 없었다.

싫은 척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종종 임아린을 보살피며 자신의 선법을 계승시켰고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이곳 곤륜산에서 임아린이 자신을 보살펴 준 현계의 세 사람보다 더 오래 지낸, 의지할 수 있는 자는 두 사람뿐이었다.

강자아와 손오공.

이안과 연이 강하게 맺어진 이 두 사람만큼은 임아린을 자신의 가족이라 생각하고 보살폈다.

그렇게 임아린 자신이 얼마나 강해진 줄 모른 채 2년의 세월이 흐르고 만 것이었다.

“오공이 아저씨!!!”

“으끽? 꼬맹이. 또 왔냐!?”

“꼬맹이라니요! 저도 이제 어른이에요!!”

“조막만 한 게 어른은 무슨….”

“헤헤. 아저씨 뭐 하고 있었어요? 오늘은 아린이가 놀아줄게요!”

“……? 네가 놀아주는 것이냐…?”

“네!!”

임아린은 해맑았다.

그리고, 강자아는 해맑은 임아린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못 느꼈던 마음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속세와의 연을 모두 끊고, 인간이 가져야 할 일곱 가지 감정인 희, 노, 애, 락, 애, 오, 욕을 모두 끊어낸 강자아였다.

그런 강자아가 임아린을 보고 감정을 느낀다니.

원시천존이 알게 된다면, 그는 신선. 즉, 기록자의 역할을 박탈당하고 말 것이었다.

“허허…. 이보게 오공.”

“늙은이도 있었구먼?”

어느새 임아린을 자신의 목 위로 태운 손오공이 강자아를 보며 말했다.

“아린이를 부탁하네. 내 볼 일이 있어서.”

“부탁은 무슨. 알겠다. 가 보거라.”

“음.”

“그리고….”

“……?”

무언가 말하려는 손오공의 눈빛을 본 강자아는 온몸의 솜털이 바짝 서는 기분을 느꼈다.

자신의 감춰둔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손오공의 눈빛이었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신선도 요괴도 감정을 느끼는 것이 잘못은 아니니까 말이야.”

“허허허. 이젠 내 마음마저 읽으려는 것이냐?”

“짜식이, 걱정을 해줘도…. 됐다. 가보거라.”

임아린을 손오공에게 데려다주며 왕래가 잦은 그였기 때문일까?

강자아는 알고 있었다.

손오공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천방지축이긴 해도 그는 좋은 요괴라는 것을.

“오공 아저씨!! 오늘은 뭘 하고 놀까요!?”

“음…. 숨바꼭질은 어떠냐?”

“그거느은!!! 아저씨가 맨날 분신술로 숨어서 안 돼요! 찾으면 퐁! 하고 사라지는데…!!”

“크하하하. 그것을 알아내는 것도 수행의 일부분이라 생각하거라.”

“자아 할배가 그랬어요. 놀 때는 놀고! 쉴 때는 쉬고! 수행할 때는 하라고!”

“크흐흐흐. 알겠다. 그럼 오늘은 네가 원하는 거로 놀아주도록 하마.”

“에헤헤…. 그럼…….”

신선들과 요괴들이 득실거리는 이곳에서 단 한 사람.

이안의 사형 손오공만큼은 믿을 수 있는 자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있던 강자아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 * *

자리를 벗어난 강자아가 도착한 곳은 곤륜산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 천존의 거처였다.

탕. 탕. 탕.

“천존이여. 자아입니다.”

“오, 그래 자아야 들어오거라.”

“예.”

강자아는 자신의 키보다 월등하게 큰 문을 손짓 한 번으로 간단하게 열어냈다.

저벅. 저벅.

“자아야.”

“예. 천존.”

“내 이리 널 부른 것은 그자의 ‘명’을 보았느니라.”

“그자란… 안이 그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천존의 말에 두 사람이 있는 공간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무슨 말을 할 줄 강자아도 알고 있었다는 듯. 그의 표정이 차갑게 식어갔다.

“드디어…. 그때가 오고 있는 겁니까?”

“그래. 우리가 기다리고 고대하던 순간이었지. 다만….”

“역시, 사형이.”

“그래.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하니, 자아 네 녀석이 해줘야 할 일이 있구나.”

“말씀하시지요.”

쿵!

아주 잠시 말이 없던 천존은 몸을 뒤로 돌리며 자신의 선기인 지팡이를 땅바닥에 내리찍었다.

“공표 그놈을 막거라. 선계는 너무 넓고 특수한 선기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신공표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

“역시…. 아린이를 노리는 겁니까?”

“음…. 그렇지. 아무래도 이안 그자와 가장 연관성이 높은 아이이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사형의 법력은….”

“이걸 주도록 하마. 공표 그놈의 법력을 이곳에 봉인하도록.”

“알겠습니다. 천존.”

천존의 명령에 자리를 벗어나려던 강자아는 생각이 많아졌다.

신공표.

그는 자신의 사형이었다.

한데…. 이곳 선계를 벗어나고자 임아린과 이안을 이용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선인이자 신선. 기록자 중 한 명인 그가 품어서는 안 될 마음을 품은 것이다.

곤륜산.

신선과 요괴들이 살아가는 장소. 이곳은 시스템 덕분에 인간들이 들어오는 것은 가능하나, 성좌들은 들어오지 못했고 반대로 신선들과 요괴들도 현계로 나가지 못했다.

이것이 세계의 법칙.

‘아무래도…. 힘든 여정이 될 것 같군….’

강자아는 선택해야만 했다.

사형과 제자. 그리고 자신이 보살피는 손녀와 같은 임아린.

세 사람의 ‘명’을.

거대한 문을 향해 나아가는 강자아는 걸음을 멈추고 천존을 바라봤다.

“천존이여.”

“왜 그런가?”

“안이 그놈은…. 살아남아 이곳으로 올 수 있겠습니까?”

“내가 본 것은 일부분일 뿐. ‘운’은 그자가 직접 바꿔야 하네. 그리고…. 전 우주에서 나와 한 약속을 지키려면 살아남아야겠지.”

“아린이는…….”

“다행히도 이안 그자와 손오공은 강하게 얽혀있네. 아무래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네만.

“아…! 맞습니다. 그렇지요. 그럼 제자. 이만 가보겠습니다.”

천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제자인 강자아라면 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천존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모든 일에는 그때가 있다. 슬슬 그때가 오고 있는 것인가….’

강자아는 천존의 방을 벗어나 자신이 이동 수단으로 애용하는 구름을 소환해 화과산으로 이동할 채비를 했다.

* * *

“아저씨!! 가족 놀이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아니…….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것이야?”

“제가!! 어!? 여보! 잘 다녀오셨어요? 라고 하면 공손하게!! ‘네. 여보 잘 다녀왔소.’ 하면서 남편다운 모습을 보여야죠!!”

“남편이 아닌데 어떻게 남편 같은 모습을…….”

“그리고!! 옆에 부하 1호 아저씨는 아이 역할이니까!! ‘아버지. 다녀오셨습니까?’ 하면서 인사를 해야죠!! 아버지한테 대장이라는 아들이 어디 있어요!?”

“……그렇게 하면 대장이 날 뒷산에 묻어버릴지도 모르는데…?”

“그러니까, 가족 놀이죠!!”

그렇다.

임아린과 손오공 그리고 그의 부하 1호는 현재 역할극을 하고 있었다.

임아린의 제안으로.

“젠장…. 못 해 먹겠다. 가족 놀이라니…!!”

“오공 아저씨!! 오늘은 제가 원하는 데로 놀아주기로 했잖아요!!”

“으아아아아!!! 알겠다!!! 야. 1호.”

“네…. 대왕….”

“뒷산에 안 묻을 테니 한 방에 끝내자.”

“바라던 바입니다. 아린 선자가 원하는 데로 아들 역할 기똥차게 해보겠습니다…!!”

“좋다. 해보자. 까짓거!!”

“좋아요. 좋아. 헤헤.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요?”

멸망이 시작되고 임아린에게 가족은 남지 않았다.

그나마, 가족 같은 사람들은 이안과 김영광, 김도은이었지만…….

그들은 현계에서 미션을 수행하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9살이나 된 임아린에게 가족 놀이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하나의 놀이였다.

보통 9살이나 된 아이라면, 가족 놀이를 하지 않을 테지만...

선계에서 지낸지 2년.

그런 임아린에게도 가족과 친구들이 생겼기에, 임아린은 버틸 수 있었다.

강자아와 손오공 그리고 손오공의 부하 원숭이들과 선자들.

하지만 임아린 자신의 ‘명’이 이안과 연계되어 앞으로의 여정이 얼마나 힘이 들지 본인은 몰랐다. 그저, 이안이 하루빨리 자신을 데리러 와주기를 바랄 뿐.

“헤헤헤.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요!?”

“어…. 어어…. 그래….”

“네. 여보! 라고 해야죠!!!”

“네……. 여보…….”

자신만 대답하기 창피했는지, 부하 1호를 바라보며 손오공이 인상을 구겼다.

“야. 넌 안 하냐?”

“……네…. 네…. 어…. 어머님…!!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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