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예상은 했지만,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우범혁은 튼튼했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아무것도 아닌 듯 물처럼 뱉는 우범혁이 나를 향해 걸어 나왔다.
이정도 튼튼함이면 제대로 성장했을 때 영광 씨랑도 비비겠는데?
물론, 이 사람이 성장할 때까지 김영광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지만….
“튼튼하시네요.”
“크하하하. 내가 이 새끼야. 튼튼함 빼면 시체거든!!!”
“좋습니다. 저도 힘을 조금 더 내보도록 하죠. 좋은 샌드…. 아니 좋은 상대가 될 것 같네요.”
“너 이 새끼 방금 샌드백이라고…!!!”
“아닙니다. 기분 탓이겠죠.”
귀가 좋은 아저씨네.
“으랴아아아아아!!!!”
우범혁은 엄청난 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몸을 부딪쳐 왔다.
거대한 덩치와 엄청난 힘.
거기에, 일반 사람들을 가볍게 뛰어넘는 체력과 말도 안 되는 맷집을 보자니, 역사 게이트에서 유비 삼 형제 중 한 사람인 ‘장비’가 생각이 났다.
나에게도 배후성이 되어 준다는 말을 했었지만, 선택하지 않자, 그 뒤로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은 성좌 중 한 명.
우범혁의 모습에서 그 성좌가 생각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우범혁의 배후성은 ‘두주불사 호염공’. 바로 나에게 배후성을 해주겠다고 제안한 성좌였다.
쾅!!!!
“큭…. 제법이네요?”
우범혁의 몸통 박치기는 흡사, 거대한 트럭이 나를 들이받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위력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지만, 큰 데미지를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이번엔 제가 갑니다.”
전투를 오래 끌 생각은 없었다.
나는 우범혁과 거리를 둔 뒤 그가 나에게 한 행동처럼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파천 신공의 무공 중 몸을 단단하게 하는 무공을 사용했다.
“아저씨 텟카이! 라고 알아?”
“뭔 개소리야?”
“모를 거 같았어. 간다!!”
쾅!!!!!!!
“끄어어억……. 꺽….”
쿠콰콰콰쾅!!
나의 몸통박치기는 우범혁이 나에게 한 것처럼 우범혁을 강하게 들이 받았다.
무공과 함께 한 몸통박치기여서인지, 그 위력은 대형 트레일러가 사람을 친 것처럼 저 멀리 날아가 벽에 처박히는 우범혁이었다.
죽지는 않았겠지…? 생각보다 강한데…?
우범혁이 날아간 뒤로 흙먼지가 강하게 일어났지만, 시간이 지나도 우범혁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봐요.”
“예…. 예?”
“하던 대로 하세요. 갑자기 존댓말은 무슨.”
“아…. 네….”
급 공손해진 우범혁의 부하는 엄청난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우범혁. 멸망 이전의 세계에서도 한 그룹의 우두머리를 맡았고, 멸망 이후의 세상에서도 그의 강함은 우두머리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우범혁이 두 번의 공격으로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이 오고 만 것이었다.
“그 아이 데리고 와요. 당신들 전부 저렇게 되기 전에.”
“네. 네!!! 딸꾹!”
처음과는 다르게 존댓말을 쓰던 외팔 사내는 딸꾹질을 하며 급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화안 금정.’
화르륵.
“어?”
우범혁의 상태를 알아차리고자 화안 금정을 사용한 나는 뜻밖의 상황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요. 오라버니?”
“아니에요. 물러나세요.”
“……??”
‘장비’는 나름대로 역사급 성좌 중 강한 축에 들었던 성좌였다.
유비의 의형제. 장비 자는 익덕.
그 무력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한 채, 살아생전 투신이라 불렸고 ‘조조’의 백만 대군을 앞에 두고서 두려움도 없이 백만 대군을 물리친 삼국지의 초강자.
일기당천의 사나이였다.
그런 자가 성좌가 되어 선택한 사람이 이렇게 약할 리 없었다.
그 증거로 화안 금정에 보이는 우범혁의 체력은 기사회생이라도 사용한 것처럼 금세 회복돼 있었다.
그리고…….
“후…. 제법이구나 꼬맹이.”
꽤 먼 거리였음에도 우범혁의 분위기가 변했다는 걸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동조화도 카르마를 소모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저 정도의 전투력 상승은…….
우범혁과 성좌가 된 장비의 상성이 아주 잘 맞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젠장, 무기는 사용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지. 꼬맹이. 안 죽게 조심해라.”
“제가 할 말입니다만.”
“끝까지 싸가지가 없는 놈이구먼.”
“오시죠.”
어느새 장비의 ‘장팔사모’를 소환한 우범혁은 몸 전체가 터질 듯 붉어져 있었다.
신기.
100% 활용은 못 할지라도 신기의 성능은 엄청났다.
나의 선기인 ‘용천검’도 안재훈이 사용한 신기에 망가져 버렸으니.
잠시간 용광검을 들여다본 나는 혹시라도 용광검이 부러지지는 않을까 생각이 많아졌다.
그땐 신화 급의 신기였고…. 지금은 역사급의 신기인데 괜찮겠지.
“간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엄청난 거구의 우범혁이 땅을 울리며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휘익!!!
엄청난 길이의 장팔사모가 나의 몸 중앙을 꿰뚫으려 하자, 고민을 마친 나는 용광검을 사용해 태극검을 사용했다.
휘릭. 착.
역사급이 사용하는 무기일지라도 신기는 신기였다.
나는 최대한 용광검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태극검을 사용해 공격을 흘려냈다.
“어…?”
“미안합니다.”
스악!!
“컥……. 이럴 수가….”
공격을 흘려낸 나는 적당히 죽지 않을 정도로 우범혁의 전신을 그어냈다.
털썩.
“그러게 왜 쓸데없이 싸움을 걸어서는.”
“꺄아!!! 오라버니 멋져요!!!”
“……아린이가 생각나네. 잘 지내겠지…?”
한국에서 나와 일대일 대결로 비등한 싸움을 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명’을 보고 정보를 알고 시작하는 것은 치트에 가까운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물론, 그 사기적인 능력만을 믿고 왼팔이 잘려나간 불상사가 일어났지만….
“저기 오네.”
전투가 끝나자, 저 멀리서 이재신과 이민영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 있었는지, 두 사람을 데리고 허겁지겁 달려오는 외팔 사내였다.
“안 군!!!”
“드디어 만났네요.”
“안녕하세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전 이민영이에요!!”
“반가워. 아저씨는 이안이라고 해”
“헤헤…. 구하러 와주셔서 감사해요!!”
“야! 꼬맹이. 우리 오라버니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 줄래? 눈을 콱.”
“……못 들은 걸로 해도 됩니다.”
나와 두 사람은 반가운 인사 뒤에 상황을 마무리하기 위해 외팔 사내에게 이동했다.
“이봐요. 당신 대장 잘 보살펴요. 다음 미션에서 당신 대장이 힘써주지 않으면 당신들도 살아남기 힘들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합죠…. 암요….”
“말투가 내시 톤인데…?”
“하하하……. 기분 탓이겠죠….”
“뭐 아무튼 저희는 갑니다.”
더 이상의 마찰은 사양이었다.
혹여나 정신을 차린 우범혁이 ‘이대로는 끝낼 수 없다!!’ 라던가, ‘자존심이 있지!!’ 같은 쓸데없는 이유로 목숨을 걸고 덤빈다면 그땐 정말 죽여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들은….
죽일 필요가 아니, 죽여서는 안 되는 세력이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단순한 내 예상으로 부산에 등장한 이유도 세력이 없는 사람들을 수색하고 자신들이 거둬들여 보호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전투도 마찬가지였다.
다짜고짜 어려 보이는 두 사람이 사람을 찾는다는 둥 그 사람만 돌려주면 돌아가겠다는 둥 자신들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니, 시비를 걸었을 가능성이 컸다.
물론, 당사자에게 듣지 않는 한 이유는 평생 모를 테지만, 그 이유를 듣자고 우범혁이 깨어나길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명’을 봤기 때문에 이들이 나쁜 집단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이 사람들을 죽이지 않는 이유는 충분했다.
내가 뭐라고…. 누구를 살리고 죽이고를 자꾸 판단하는 거지…?
“뭐…. 아무튼 됐습니다. 저흰 갑니다. 당신 대장 잘 챙겨요.”
나와 일행들이 자리를 벗어나려 공중에 뜨는 순간이었다.
“이…. 이 봐…!!”
죽지 않을 정도로 베기는 했지만,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일주일 밤낮은 뻗어있을 만한 상처였다.
그런 상태의 우범혁이 겨우겨우 몸을 일으키며 나를 부른 것이다.
“하…. 회복력 대단하네요.”
“그래. 싸가지가 밥맛인 놈아.”
“왜 불렀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강해졌지?”
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것도 잠시.
나는 우범혁을 향해 웃었다.
저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었다.
자신의 세력과 부하들 그리고 자신이 거둬들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뭘 쪼개 이 새끼야?”
“강해지려는 이유는요? 시비 걸고 다니게요?”
“내가 애냐 이놈아?”
“덩치를 보니까 애는 아니네요. 아빠 곰 정도.”
“이…!! 후…. 더 강해져서 내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
“그게 이유입니까?”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고 싶다던가, 뭐 그런.”
“하. 이 새끼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아니여? 그딴 것은 이미 아무런 의미도 없다. 아가야. 내가 강해야 내 사람을 지키고 내가 강해야 이 X 같은 세상에서 버틸 힘이 있는 것이여.”
우범혁의 생각은 나와 비슷했다.
하지만 나는 왼팔을 잃으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나 혼자 강해서는 멸망한 이 세상에서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아저씨. 그 말도 맞는데 결국 다 같이 강해져야 할 거예요. 언젠가는 아저씨 혼자 감당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질 겁니다. 강해질 방법은 알려드리죠.”
나는 잠시간 고민한 뒤 우범혁의 세력이 강해질 방법을 일러뒀다.
나의 세력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둔 방법.
자신들과 연관이 있는 배후성의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것.
그리고, ‘시드 스토어’의 숨겨진 아이템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대략 일러뒀다.
“고맙다. 어린놈아.”
“별말씀을. 너무 욕심 부리지는 마세요. 미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험하고 어려워질 겁니다.”
“흥. 그런 건 나도 안다 이놈아.”
“그럼 저희는 갑니다. 부디. 살아남으시길 바랍니다. 아…. 혹시라도 인천 지역의 세력과 마주치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게 무슨 말이지?”
“인간농장. 인간이길 포기한 놈들입니다. 당신들도 곧 알게 되겠죠.”
“흥. 얼른 꺼져버려. 괴물 같은 놈.”
장난 섞인 우범혁의 대답을 들은 나는 이재신을 소환해제 한 후 이민영과 진선미를 데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아! 어이, 꼬맹이!”
“……?”
“강해질 방법을 알려줬으니,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내가 한 번은 꼭 도와주마.”
“그건 강해진 다음에…. 그리고 다음까지 살아남으시면 그렇게 해주세요.”
“캬악. 퉤! 끝까지 재수 없는 놈 같으니라고.”
“하하하. 갑니다.”
“오냐.”
하늘을 날아가며 뒤쪽을 돌아본 나는 우범혁의 표정에 무언가 속이 시원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된통 처 맞고 나니, 속이 뻥 뚫린 건가…?
이로써 왕이 없는 지역인 부산, 대전, 인천, 광주, 울산, 대구와 얽히는 일은 없었다.
무법지대.
왕이 없는 지역에서 무분별하게 일어나는 장소였다.
사이비, 건달, 인간농장 등 말도 안 되는 범죄들이 일어나는 장소.
이 장소들을 하나하나 돌며 갱생시킬 필요는 나에겐 없었다.
무법지대의 세력들은 지금보다 더 강해지지 않으면, 나의 ‘명’에서 보았듯 내가 죽을 시점에 지구의 인간은 모두가 몰살당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산 지역의 사이비 교주는 나의 편에 섰고, 광주 지역 건달들의 세력은 훗날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명’은 눈에 보이지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있었다.
* * *
다음 미션까지 남은 시간은 23시간.
잠을 꽤 오랫동안 자지 않은 나는 휴식과 게이트의 클리어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했다.
“두 분 컨디션은요?”
“오라버니와 함께라면 너무너무 좋지요!!”
“저도 괜찮아요. 헤헤…. 아빠랑 많이 쉬었어요!”
“야. 꼬맹이. 어린 것이 벌써 눈웃음을!!”
“아줌마. 조용히 좀 해줄래요?”
“……몬스터 게이트로 갈 겁니다. 꽤 강할 테니 준비들 하세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두 사람은 물과 기름같이 섞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갑시다.”
짧은 시간을 이용해 클리어할 게이트는 현재 상황에서 몬스터 게이트밖에 없었다.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SS급 몬스터 게이트인 ‘정령의 둥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