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하늘을 날아 한참을 이동하던 중, 문득 한 가지 아이템이 생각났다.
전이의 깃털.
아이템을 사용하며, 가고자 하는 위치를 상상하면 그곳으로 이동이 되는 아주 좋은 이동 수단이었다.
”아…. 맞다.”
“무슨 일 있나요?”
“네. 제가 멍청했네요.”
“……?”
갑작스레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자, 진선미의 표정에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는 듯 의아함이 가득했다.
그냥 가야겠다. 거의 다 도착한 것 같은데 굳이….
이동 스킬의 속도가 꽤 빨랐기에 어느새 전라남도 광주의 근처에 다다랐지만, 인제 와서 전이의 깃털을 쓰기에는 너무 가까운 상황이었다.
“저…. 근데 오라버니는 몇 살?”
“스물여섯입니다. 그쪽은요?”
“전 스물셋이요!”
“그래서. 절 따라온 이유가 뭡니까?”
해맑은 진선미가 질문하자, 이때다 싶은 난 진선미에게 질문했다.
“전…. 저보다 강한 남자를 찾고 있었어요.”
“이유는요?”
“멸망한 세상에서 기댈 곳이 필요했거든요.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죽고 남은 건 저 자신인데….”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다는 거네요.”
“네…. 맞아요.”
스물셋. 성인이지만 어리다면 어린 나이였다.
그런 나이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모두를 잃고 자신 혼자 살아남았다면?
진선미는 누군가 의지할 만한 사람이 나타나 주기를 간절하게 바란 것이다.
“…이유는 알겠는데, 왜 굳이 그런 사이비 집단에 몸을 담으면서 강한 남자를 찾은 거예요?”
“오라버니도 아시다시피 여자 혼자의 힘으로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힘든 거…. 알죠?”
“아무래도 엄청난 치트급 능력을 얻거나 기연을 얻어 강해질 수단이 없으면 힘들겠죠.”
“맞아요. 그래서 마성교를 이용하고자 한 거예요. 그렇게 권력의 맛을 보니, 잠시 정신이 나갔죠….”
사람은 각자 사연이 있는 법.
진선미가 했던 행동에서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는 없었다.
본인 나름대로 살아남고자 발버둥 친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강한 남자와 멸망한 세계에서 시련을 이겨내며 알콩달콩 살고 싶었다?”
“네…….”
“그 강한 남자는 저고요?”
“맞아요…. 당신 정도라면….”
나의 직접적인 물음에 진선미가 얼굴을 붉히더니 고개를 휙 돌리며 대답했다.
“그렇긴 하지만…!! 단순히 강한 것만 보고 따라나선 건 아니에요! 잘생겼고….”
“하…?”
멸망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만난 여자는 김도은이었다.
그 김도은은 나이도 진선미도 어리면서 나를 말 안 듣는 동생 정도로 생각해서였을까?
진선미의 말에 기쁘면서도 멸망 직후 처음으로 들은 잘생겼다는 외모 칭찬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배신은 안 할게요! 내치지만 말아요…. 저 강한 거 봤잖아요!”
진선미를 거둔 이유는 단순히 나의 전력이 되어주기를 바라서였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니 뭔가 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동정일 뿐이었다.
현재 상황에서 가족과 친구 그리고 연인을 잃은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널리고 널렸을 테니. 지금 상황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더욱 강하게 성장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다음에 제 동료들도 소개해드릴게요.”
“헤헤……. 좋아요!!! 열심히 할게요!!”
뭘 열심히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로써 ‘마성교’가 전국구 세력으로 클 가능성은 없어졌다. 마성교의 핵심인 교주와 부교주의 부재.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인원을 죽이고 세력은 와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아직은 애매한 안재훈의 ‘흑아’정도인가…?
안재훈은 그동안 권민재와 행동하며 나름대로 갱생시켰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갱신된 ‘명’에서 안재훈은 지금 상황에 전국의 미성년자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계기.
안재훈을 갱생시킬 계기가 필요했다.
물론, 그 계기는 내가 아는 인물이 해결해 줄 것이기에, 지금 당장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 일 이후에는 안재훈의 ‘흑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가장 일 순위는 전라남도 광주의 검은 정장을 입은 세력이었다.
광주 근방에 있던 나와 진선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광주에 진입했다.
부산과 마찬가지로 광주 역시 무법지대지만, 크게 살인이나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나름 청정지역이었다. 물론, 100%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그 빈도수가 조금 작을 뿐이었다.
광주의 세력은 크게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자신들의 지역권 내에서만 활동하는 세력이었다.
자칭. 협객들.
말이 좋아 협객이지, 이들은 광주광역시의 건달들이 생존해 만든 세력.
의리와 의협심으로 똘똘 뭉쳤다지만, 행동거지가 난폭해 수많은 사람이 그들의 세력 밑에서 생존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구시대의 건달들이 바로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었다.
그리고.
멸망 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멸망 이후의 세상에서는 검은 정장의 협객들은 사람들을 보살피고 보호해주는 존재들이었다.
적어도 광주 지역 안에서만큼은.
그런 그들이 어째서 부산에 나타난 것인지 나로서는 짐작 가는 부분이 단 한 가지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명’에서 그들은 나와 대척점이 없었고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각자 상생하기 바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엮인다…? 역시 변했다.
“조심하세요. 그들은 강합니다. 당신 독은 절대적인 게 아니에요. 기습이라도 당한다면 독을 쓰기도 전에 죽고 말 겁니다. 모든 상황에서 당신을 지켜주지는 못해요.”
“에이…. 걱정하지 말아요. 제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다고요!!”
“어련하시겠어요.”
“헤헤….”
무엇이 그렇게 좋은 것인지, 마냥 해맑기만 한 진선미와 광주에 들어서 이재신의 위치를 파악했고 그리 어렵지 않게 그들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버프를 이미 사용한 나였기에 전투가 벌어져 의협심이니, 의리니 온갖 이유를 가져다 대 나와 맞선다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다.
버프가 없어도 강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나는 왼팔이 없었고 광주 지역의 많은 수의 사내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덤빈다면 나 또한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계속된 전투에서 나는 꽤 지친 상태였고,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한 자들.
목숨을 걸고 덤비는 것과 마성교처럼 어쩔 수 없이 모여들어 덤비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 법이었다.
“후. 별일 없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 없겠지?”
“여차하면 저쪽의 대장을 독살해버리면 되지 않겠어요??”
“말이야 쉽죠. 그렇게 되면 눈 뒤집혀서 덤비는 건 저들이에요. 괜히 자극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에이! 오라버니는 강하잖아요!! 자신감을 가져요.”
“자신감이 문제가 아니고…. 됐습니다.”
말 그대로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짜고짜 저쪽의 대장을 죽인다면, 분노로 더욱 똘똘 뭉치는 이들이 광주 지역의 자칭 협객들이었다.
이들은…. 대장을 죽인다고 해서 도망치거나 와해 될 정도로 그저 그런 세력이 아니었다.
위기가 오면 더욱 강하게 뭉치는 것이 바로 이들.
괜한 자극은 곧 이어질 다음 미션에서 나에게 득이 될 리가 없었다.
“일단 부딪혀봅시다.”
“그래요! 오라버니는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놈의 오라버니는 넣어두시고.”
“싫은데!!”
“어…. 네 마음대로 해….”
다음 미션까지 남은 시간은 29시간.
빠르게 해결하고 게이트를 하나라도 더 클리어하려는 내 생각은 점점 틀어지는 중이었다.
* * *
“이쯤인 것 같은데.”
“뭔가 으스스하네요.”
“그럴 수밖에요. 여긴…. 또 하나의 한국이나 다름없습니다.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마물 이외에도 다른 지역에서의 침입도 철저하게 제한하고 있을 테니까요. 아마….”
“아마?”
“저희가 광주에 들어선 순간 감지했을 겁니다.”
이재신과의 전투가 벌어졌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광주의 변두리 쪽에서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졌기에 이들도 관망만 했지만 지금 상황은 아주 조금 달랐다.
대놓고 자신들의 지역을 침입한 나와 진선미는 경계 대상이었을 테니.
그 증거로 나와 진선미의 주변으로 쉽게 느낄 수 있는 기척들이 여럿 잡히기 시작했다.
당장 공격해오지는 않겠지만…….
나는 화안금정을 사용해 주변을 둘러봤다.
대략……. 사백 정도?
“나오세요. 이곳을 침략하거나 해를 가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척.
척척. 척.
수백에 달하는 광주의 지킴이들이 나와 진선미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야, 두 년놈들은 뭐여? 소풍 온 것이여?”
다짜고짜 강하게 나오는 한 사내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한쪽 팔이 없었고 얼굴은 어딘가에 강하게 베어졌는지 깊은 자상이 눈에 보였다.
“소풍 온 건 아니지만….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벌. 여기가 뭔 탁아소여? 사람을 왜 여서 찾아?”
“당신들의 대장은 어디 있습니까?”
“워매~ 이 새끼 당돌한 것 보소. 내 말은 한 귀로 흘리는 중이냐?”
“다 듣고 있습니다만.”
“사람 한 명만 찾으면 바로 광주를 떠나겠습니다. 당신들도 쓸데없는 전투를 바라지는 않을 텐데요.”
나름대로 직위가 있어 보이는 사내가 나와 대화 중이었지만, 곧 옆에 있던 한 사내가 말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행님. 이 새끼 뭡니까? 정신 차리게 맴매 좀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인재야. 할 수 있겠냐?”
“행님. 저 황인재입니다. 애들아. 행님 기저귀 챙겨드려라.”
“인재야. 기저귀는 왜 챙기냐…?”
“강한 제 모습에 지릴 수도 있습니다. 행님.”
“허세는 여전하구나! 인재야.”
“크하하하하.”
아주….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가 났다.
그나저나, 제 동생한테는 인자하게 말하면서 나한테는 왜 저렇게 말하는 건데?
“덤빌 거면, 저도 대화로 풀지 않겠습니다.”
“아따, 당돌하구먼. 쉬야는 내가 해야겠어?”
“원한다면 앞뒤로 지리게 만들어 드리죠.”
“크~ 어린놈이 허세는 나보다 징하고만 좋다. 형아가 관심 좀 줄 테니 한판 해블자.”
황인재라는 사람이 자신의 형님과 수백에 달하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미 화안 금정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의 성좌가 누구인 줄은 알 수 있었다.
“아가. 살살해줄 텐게 여친 앞에서 쪽팔리기 싫으믄 알아서 기어라잉?”
“됐고요. 무기나 꺼내시죠?”
“으어따!! 행님 이 새끼가 남자답지 못 한디요?”
“……?”
“남자는 주먹아니냐잉!?”
“아…. 그래요.”
상황이 이쯤 되니 귀찮았다.
빨리 해결하고 가야겠다.
“당신은 구경만 해요.”
“오라버니 파이팅이에요!!!”
용광검을 꺼내 들지 않고 앞으로 나서자, 검은 정장을 입은 황인재도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 자가 아무리 전설의 싸움꾼을 성좌로 두고 있음에도 내가 질 일은 없었다.
한쪽 팔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나는 무림계의 일인자 파천신군의 단 하나뿐인 제자기 때문에.
황인재가 두 팔을 걷어붙이며 힘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 정도는 어림도 없어요. 어디, 싸움꾼 주제에.”
“뭐시여? 아무래도 네가 오늘 혼 좀 나야겠네?”
“말 더럽게 많네. 덤벼요.”
“좋다!!”
화안금정으로 보인 황인재의 성좌는 수식언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성좌가 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카르마를 쌓지 못한 성좌.
실제 싸움 실력은 전설적이었지만, 흔히 보이는 역사급의 무장들에 비해 약한 축에 끼는 성좌였다. 카르마는 성좌들에게 있어 생명력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만큼 전투력에 큰 격차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황인재의 배후성은 ‘조선의 스라소니’.
일제강점기 때 낭만파 주먹이 즐비하던 시절. 전설의 싸움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