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47화 (47/206)

제47화

나는 특전으로 인해 나의 ‘명’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명’은 살아남기 위해, 조금 더 나은 ‘명’을 보기 위한 나의 행동으로 인해 ‘운’이 상당 부분이 틀어진 상황이었다.

‘사라진 세계의 독미’

단순히 수식언만 본다면 ‘사라진 세계의 독미’가 누구인 줄은 정확히 몰랐지만, 그 세계에서 파천신군 윤민 다음으로 강한 천마, 윤문은 그의 정체를 어렴풋이 눈치를 챈 것 같았다.

- 뭔가 느낀 게 있어?

- 아무래도, 내가 아는 자가 성좌인가 나부랭이가 된 것 같군.

-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해. 사용하는 기술이나 성흔까지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 알겠다. 주인.

이 자가 무림계의 인간이었든 아니든 나와 윤문에게는 인제 와서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기를 쓰고 정체를 알려고 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무림계의 멸망과 함께 성좌가 된 인물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나의 스승님도 이리되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슬슬 재신 아저씨가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윤문과 잠시 정신적으로 대화를 하느라, 말없이 자신을 뚫어지라 쳐다보는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진선미였다.

“뭘 봐요?”

“……당신은 누구죠? 당신이 먼저 쳐다봐서….”

“아…. 그건 그렇죠. 왜 사람들을 현혹해 나쁜 길로 빠져들게 하는 거죠? 그 아이는 제 일행입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을 먼저 던진 나였다.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 방해하면 죽이겠어요.”

“…….”

진선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이를 건네지 않겠다는 말이죠?”

“그렇다면요?”

“죽어야죠.”

“풉…. 푸흐흐흐흐.”

제법 강단 있게 말하는 나의 모습이 허세를 부리는 것으로 보였는지, 무표정한 진선미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로브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 전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불그스름한 입술이 희미하게 반원을 그리며 올라가는 게 눈에 보였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겉으로 대충만 봐도 괜히 후드를 벗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미모인 것 같았다.

“후회할 텐데…. 그동안 쌓아 온 부와 권력이 아쉽진 않나 봐요?”

“흥. 그딴 것은 흥미 없거든요?”

지금의 내 강함이라면 부산 지역의 마성교 전원을 상대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거기다…. 만독불침은 진선미에게 카운터나 다름없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진선미뿐만 아니라, 독을 무기로 사용하는 생명체는 그 어떤 독으로도 나를 죽일 수 없었다.

성좌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이야기가 곱게 풀리진 않을 거로 생각한 나는 나름의 협박이지만, 화안금정을 사용함과 동시에 선인의 기운을 최대치로 발동해 냈다.

스스스.

전신에서 푸르고 우아한 아우라가 올라오더니, 점점 색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당신…. 강하군요.”

“허세 부릴 성격은 아니라서요.”

“제 밑으로 들어오세요. 그럼…. 마성교의 최고위직과 목숨은 보장해 드리죠.”

“하하…. 근데…. 당신 내가 누군지는 알고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부산 지역의 누군가 들었다면, 당연히 혹할 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진선미는 중립 지역 중 부산 한 개 지역만을 거머쥔 마성교의 교주였고 나는 서울, 경기도, 강원도, 경북 ,경남, 충남, 충북, 전북, 전남, 제주 9개 지역을 거머쥔 한국의 ‘왕’이었다.

“허세는 그쯤 하시죠. 당신이 누구인지 간에 제 앞에서는 아무 소용 없답니다. 호호호.”

“생긴 건 멀쩡해서 되게 사이코틱하시네요.”

“잡담은 이쯤 하시죠. 제 밑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으면 이만 죽어 주셔야겠습니다.”

“아이쿠. 무서워라.”

진선미와 대화를 나누던 중 저 멀리서 급하게 날아오는 영혼이 한 개체가 보였다.

이재신.

“아저씨. 따님 데리고 벗어나세요.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나는 이재신을 향해 소리쳤다.

“……!!! 알겠네!! 고맙네…!!”

“별말씀을.”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당황한 진선미와 주변의 마성교 교도들이 나와 이민영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나는 순식간에 스킬을 전개했다.

[스킬 [파천 만뢰공 LV MAX]을 발동합니다.]

쿠콰지지직!!!!

쿠릉- 쿠르릉-!!!

하늘에서 대기 중이던 만 개의 벼락이 손을 내리긋자 순식간에 주변 일대를 초토화하며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쿠콰콰콰쾅!!!!

“꺄악!!!”

“미친…. 이게 인간이라고……? 저놈 뭔데…!?”

당황하는 마성교의 교도들과 진선미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퍼져 나왔다.

나는 개의치 않고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지상으로 내리그었다.

콰직!!! 콰지지직!!!

“속이 시원하네.”

몇백에 달하는 마성교의 교도들이 땅바닥을 기고 있었다.

죽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중에서도 강한 축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공격을 막은 모양이었다.

“더 하실 거죠?”

“이…. 이 정도로 벌벌 떨 거 같아요!?”

“그렇게 나오셔야지.”

내가 확인할 것은 진선미의 성흔이었다.

그러므로 진선미만은 파천 만뢰공의 공격에서 크게 다치지 않은 상태였다.

나의 배려인 줄도 모르고…….

그저, 자신의 실력으로 나의 공격을 막아냈다는 듯.

진선미의 후드가 벗겨지며 공중에 뜨기 시작했다.

스아아아.

“기세는 제법….”

“죽어서 후회하세요.”

진선미는 공중에서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 그녀의 전신에서 나와는 다른 짙은 녹색의 아우라가 주변을 채우고 있었다.

독 연기…?

“교…. 교주님…!!!”

“살려 주십시오…. 저희는…. 끄아아아아악!!!”

“허…. 헉…. 교주…. 님….”

나에게는 영향이 없다지만, 처음 당해 보는 독인지라 본능적으로 코와 입에 오른손을 가져다 막았다.

“이 자를 죽이고 해독시켜 드리도록 하죠.”

“교…. 주님…. 끄아…….”

뭘 해독시켜 준다는 건지 모를 정도로 악독한 독이었다.

독을 들이마신 교도들은 피부가 흘러내렸고, 숨을 쉬는 것 또한 어려워졌는지 저마다 두 손을 자신들의 목에 움켜쥐곤 괴로움에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저기…. 저게 해독이 된다고…?”

“닥쳐요!!”

“급발진 오지네요.”

만독불침이 없었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

갑작스레 스승인 파천신군 윤민이 보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하하…. 큰일 날 뻔했네.

아무리 만독불침이라고 한들, 일단 독에 걸리면 영향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마저도 시스템 덕분인지 피부가 녹아들거나 호흡이 힘들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의 눈에는 계속해서 시스템의 알림이 뜨고 있었다.

[만독불침의 육체로 인해 해당 독에 효과가 없습니다.]

[해당 독의 저항력을 얻습니다.]

[해당 독을 자체적으로 해독합니다.]

제법이 아니었다.

엄청……. 아니, 이 정도의 효과라니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다른 거 안 써요?”

두 눈으로 만독불침의 효과를 확인한 나는 진선미를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죠……!?”

“나? 왕.”

[스킬 [매력 발산 LV.3]가 강하게 발동합니다.]

왜 요즘 잠잠하다 했다. 이 스킬 새끼…!!

평소와 같이 이 스킬은 여자에게는 먹혀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뜻밖의 상황에 나의 두 눈은 동그랗게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 그…. 뭐…. 왕이…. 뭐…. 어째서요…!!”

“……….”

진선미의 양쪽 볼이 붉어지고 있었다.

부끄럽다는 듯.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이게 먹혔다고?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처음으로 스킬 발동에 성공한 것에 손뼉을 쳐 줍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자신의 후원자를 향해 박장대소합니다.]

…… 망할 새끼.

“당신….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죠?”

“아무것도…….”

당황스러웠다. 이 스킬이 이렇게까지 제 활약을 한 적이 있었나?

아…. 호랑이인 백두산의 ‘산군’에게는 아주 조금…….

“좋습니다. 제 공격을 버텨낸다면, 저는 물러나도록 하죠.”

“누구 마음대로?”

“그… 그럼…. 그쪽의 부하가 되는 것도 좋고요.”

“그러니까, 누구 마음대로…?”

[성좌, <사라진 세계의 독미>가 당신에게 호감을 표합니다.]

……?????

[성좌, <사계절을 사랑하는 선녀>가 ‘사라진 세계의 독미’를 견제합니다.]

개판이네……. 아 몰라.

뭔가 쓸데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에 귀찮아진 나는 진선미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스킬 [강렬한 눈빛 LV MAX]을 강하게 발동합니다.]

“……. 바… 받아 보세요…!!”

매력 발산에 이어 강렬한 눈빛까지 먹혀들자, 진선미의 몸이 조금 움츠러들었지만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라도 하겠다는 듯. 온몸의 힘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 주인. 이 공격은…. 내가 아는 그자가 맞는 것 같군.

윤문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자 윤문은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호감을 표시해 놓고 성흔까지 사용하는 건 무슨 마인드인데?”

[성좌, <사라진 세계의 독미>가 마음에 든 남자라면 이 정도의 공격은 이겨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자, 성흔을 사용할 준비가 다 되었는지, 진선미가 지팡이를 들어 나를 향해 그어냈다.

수웅.

쿠와아앙!!!

진선미가 그어낸 지팡이에서 녹색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용의 형상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 저건…….

- 뭔데?

- 내가 살던 세계에서 사외 천왕중 단 한 명, 독과 관련된 가주만이 사용 가능한 ‘천주독룡파’라고 하네. 독공 중에서 최상위의 무공이었지.

- 그렇군.

윤문의 설명에 대답한 나는 용광검을 빼 들어 독룡을 피해내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만독불침이 없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 만독불침이 어느 정도의 효과를 가질 줄 몰랐기에 나 자신이 모르모트가 되어 실험한 것이었다.

“자, 와라!!!”

마력으로 만들어진 독룡은 주변 일대의 돌, 나무, 시체 등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나를 향해 쏟아졌다.

쿠콰콰콰쾅!!!!!!

독룡이 지나간 자리는 모든 게 녹아들고 있었고, 나의 몸을 집어삼킴과 동시에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 정도쯤이야. 환골탈태할 때 비하면 뭐….

슈슈슈슛.

독룡의 꼬리 부분까지 나의 전신을 강타하자, 그때야 고통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시스템의 알림이 뜨기 시작했다.

[만독불침의 육체의 효과로 인해 천 가지 방법으로 배합된 독을 해독합니다.]

[해당 독의 저항력을 얻었습니다.]

[해당 독을 해독합니다.]

스스스.

이름 그대로 천주독룡파는 천 가지의 독을 배합해 마력의 형상으로 뱉어내는 것.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미 저세상에 가고 없을 만한 스킬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만독불침이 있었다.

만독불침.

만 가지 독에 면역이 있다는 것.

만독불침이 아닌, 백독불침과 천독불침이었다면 저 성흔이 아니더라도 나는 무형지독의 독에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말았을 것이었다. 만독불침을 얻은 건 그야말로 행운 중에서도 엄청난 행운이었다.

“후. 제법 따끔했네요.”

“역시…. 당신은….”

……?

후드가 벗겨진 진선미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 모습은 마치 선녀와 같았다.

화장기가 없음에도 하얗고 붉은 입술에 연분홍빛 긴 머리칼.

그리고…….

처음과는 다르게 진선미의 두 볼에는 홍조가 가득했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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