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마성(魔性).
사람을 속이거나 현혹하는 악마와 같은 성질이라는 뜻의 단어가 있었다.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이름 한번 잘 지었네. 이름 그대로 따라간다더니….
물론….
이런 뜻으로 마성교라 지은 건 아닐 테지만, 어쩌겠는가. 같은 단어인 것을.
마성교의 교주는 개인의 강함도 충분하지만 중립 지역 중 한 곳인 부산을 통째로 집어삼킬 정도로 엄청난 능력자였다. 물론 나의 기준에서는 그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겠지만 마성교의 교주와 싸우기 까다로운 점이 한 가지가 있었다.
독에 능한 능력자에, 그와 어울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당장 무력으로는 내가 이길 수 있지만, 나를 중독시켜 해독약을 핑계로 협박한다면 죽지 않기 위해서 마성교의 교도들처럼 교주 진선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에겐 방법이 있었다.
한 번도 실험해 보지 않았지만, 나는 무림계의 게이트에서 ‘만독불침(萬毒不侵)’의 육체를 손에 넣었다.
이것만으로 해결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지금 조져…?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볼까?
사이코패스 같은 마성교 교주 ‘진선미’가 흡사 신녀와 비슷한 모습으로 하얀 로브를 전신에 두르고 있었다.
머리끝까지 꽁꽁 싸맨 모습이 자신의 신비스러움을 한층 부각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팡이는 뭔데? 폼이야?
하지만 나의 눈에는 그저 웃길 뿐이었다.
시스템의 각성을 하며, 얻은 능력으로 교주 행세라니?
그것도…. 진심으로 자신을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으로 감염시켜 협박하고 다수의 강압적인 분위기로 거짓을 진실로 몰아갔다.
처음 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저들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해독약도 없는 와중에 단체로 겁박한다면, 따르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것이 더 어려웠다.
그만큼 부산 지역에서 마성교와 교주인 진선미는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 권력자였다.
따르지 않는다면 죽일 뿐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만독불침의 육체가 있음에도 혹시 모를 상황과 약간의 걱정으로,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화안금정을 사용한 채로.
- 주인!
- 어? 뭐야? 너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상황을 유심히 보던 와중에 나의 정신세계인지 무의식의 한 편에서 윤문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처음 겪는 상황에 잠시 당황한 나였지만, 나와 연결이 되어 있고 나에게 사역된 윤문이었기에 이런 게 가능하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구나. 하하….
- 그래서 뭔데?
- 저 여자의 기운…. 내가 살아생전 느껴 본 기운이다.
- 뭐?
갑작스레 정신을 통해서 말을 건 윤문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살아생전.
그렇다는 건 윤문이 살던 무림계의 인간이거나, 저 여자의 배후성이 윤문과 같은 동향인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나의 배후성의 소설인 ‘환생자의 재림’에서나 나오는 초월자, 회귀자, 환생자일 확률이 높았다.
물론…. 확실치는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말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윤문에게 물었다.
- 사실이야? 정확하게 말 안 하면 머리 박을 줄 알아.
- 아아악!!! 그것만은…. 크흠…. 아무튼!
- 그래서 뭔데?
- 저 사람 자체는 본 적이 없는 얼굴이지만, 느껴지는 힘의 강함과 풍기는 기운만 봐도 나 정도만 되면 알 수 있다. 확실해.
- 너 지금 힘을 회복하지 못해서 착각하는 거 아니야?
-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한참을 바라보고 여러 번 재확인해 봤지만 사실이다!
- 일단…. 알겠어. 계속 보고 있어.
- 음!
나는 잠시간 윤문의 말을 정리한 후, 생각만으로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겠다는 답이 나왔다.
이놈의 ‘명’은 도움이 될 거면 확실하게 되던가…. 아니, 직접 확인해 보면 되잖아?
- 아, 주인. 말하지 못한 게 있다.
- 한 번에 말 안 할래?
- 저 여인이 나와 무림계의 동향인이 맞다면…. 그리고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한다면 독으로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네.
- 그래서?
- 쉽게 말하자면…. 무림계의 영약(靈藥)인 ‘만년 하수오’를 먹고 만독불침의 육체를 얻지 않았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지.
- 아…? 알겠어. 지켜봐.
- 음…. 알겠다.
내가 당하면 윤문도 무사하지 못해서였을까?
윤문의 대답에서 떨떠름함이 느껴졌지만, 나는 마성교와 진선미가 이재신의 딸 이민영을 교화시키려 하는 장면에 희미하지만 악랄한 미소가 번져 나왔다.
나 만독불침인데?
여러 가지를 알아볼 생각과 장난을 한껏 칠 생각에 들뜨기 시작한 나는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가고 있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한숨을 깊게 내쉽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긴고아’를 잘 닦아 놓겠다 말합니다.]
[성좌, <사계절을 사랑하는 선녀>가 재밌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며 발을 동동 구릅니다.]
[성좌,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이 자신의 후원자가 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긴고아는 됐고요…. 아린이는 조금 더 걸릴 겁니다.”
여전히 TV를 보는 시청자 같은 성좌들을 뒤로 한 채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나 등장!!”
“……?”
못 볼 것이라도 봤는지, 마성교와 교주가 나를 하찮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인지, 마성교의 교주 진선미와는 거리가 멀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
“아저씨의 따님까지 이렇게 하찮게 쳐다봐 주다니, 감동이네.”
이럴 때 아린이가 있었다면….
사람들의 시선도 이해가 갔다.
온갖 전투로 부스스한 머리칼에 한쪽 팔을 잃고 코트를 걸친 모습이 누가 봐도 며칠은 굶은 거지라고 표현하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뭐야, 넌? 마성교에 입교하려면 교주의 허락이 필요하다. 저쪽에서 잠시 기다려라!”
“내가 인마. 얌전히 갈 거면, 등장했겠냐? 저리 안 꺼져?”
“뭐…. 뭐!?”
갑작스러운 시비에 마성교의 교도들이 내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여자고 남자고 할 거 없이 노인까지 나를 감싸는 게 이 모습만 봐도 교주 진선미의 위상을 알 수 있었다.
모든 범죄는 교주 진선미가 아닌, 교도들이 저지르는 것이었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교주를 등에 업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상위권을 독식하는 자들이었다.
물론…. 진선미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진선미는 알 수 없었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교도들의 행동을 알고 있음에도 지나치게 방관자의 입장이었다.
사람을 강제로 모았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마땅한 것을.
모아 놓고 방치한 결과가 먼 미래에 안재훈의 ‘흑아’와 같이 손에 꼽히는 범죄조직이 되는 것이었다.
안재훈의 ‘흑아’라는 집단은 안재훈의 갱생으로 변한 ‘명’에서 조금만 더 갱생시키면 사라질 것이기에 괜찮다지만, 진선미의 마성교는 달랐다. 이미 만들어진 집단인 마성교는 부산 내에서 커질 대로 커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더 번진다면, 왕이 없는 지역 중 근접 지역인 울산과 대구까지 번질 것이고 후에 가서는 미션의 계속되는 진행으로 <왕의 권능>이 사라지는 시점에는 다른 지역까지 번질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때는 전국에서 제일가는 범죄조직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선인의 기운을 강하게 발동시켜 능력치의 격차가 심한 사람들을 간단히 기절시킨 후 움칫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방금 생각해 봤는데, 너희는 갱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전부 죽자.”
“너…. 너!! 뭐 하는 자식인데!?”
“말하면 아냐?”
“전부 덤벼들어!! 교주께 가는 걸 막아라!!”
저마다의 병장기를 손에 쥔 마성교의 교도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수는 제법 많았지만, 버프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쉽게 처치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후웅-!!
굳이 피하지 않아도 나의 피부는 뚫지 못하겠지만, 날아오는 화살은 가볍게 고개를 까딱여 피해냈다.
나는 이들과 놀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곧바로 용광검을 꺼내 들었다.
아직은 4단계에서 크게 성장을 못 했지만, 이들에겐 충분했다.
대부분이 역사급 성좌를 배후성으로 삼고 있었고, 그보다 못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촤르륵.
태극검을 사용해 근접전을 펼치는 자들에게 공격을 퍼부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그리고.
파천신공과 무쌍 난무를 사용해 전후방으로 나를 향해 적대감을 펼치는 이들에게 마구잡이의 검기를 날려 댔다.
촤악!!
“크하아아악!!!!”
스륵.
“꺄아아악!!!”
스겅.
툭.
날카로운 검기에 썰려나 간 사람들이 소리를 바락 질러 대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나이를 불문하고 남자, 여자 상관없이 썰려 나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마성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곳의 무법자(無法者)는 나였을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야 ‘명’을 알고 있었기에 이들이 나쁘다 말한 것이었지만, 이들의 입장에서는 법을 정하고 저들끼리 모여 사는 와중에 갑자기 정신 나간 살인마가 쳐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입장 차이는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들 전부를 무작정 죽일 수는 없었다.
이 사람 중에도 선한 사람이 있을 것이었고, 억지로 마성교의 교도들이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명’에서의 기억을 더듬어 악한 사람들만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을 이해 못 하는 절대선(絕對善)과 절대악(絕對惡) 성좌들의 메시지가 폭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좌랍시고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이 자들은 말로 해결할 수 있는 작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무시하기로 생각하며 움직였다.
후….
[스킬 [냉정 LV MAX]가 발동합니다.]
아무래도 변한 세상이었음에도 살인은 살인이었기에 심적으로 생각이 많아지자, 곧바로 스킬 냉정의 효과가 발동한 것 같았다.
상황을 길게 끌어봐야 좋을 게 없겠어….
나름대로 장난을 쳐 줄 생각으로 움직였지만, 폭주하는 성좌들의 메시지에 마냥 그럴 수만은 없었다.
나의 존재가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아니듯, 이들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칠 자격은 나에겐 없었다.
수웅!
태극검, 무쌍 난무, 파천신공 등 강렬한 스킬들을 사용해 순식간에 나의 주변을 둘러싼 마성교의 교도들을 무력화시킨 나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가 이민영을 감싸고 있는 마성교의 교도들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전부 나와요. 죽기 싫으면.”
“뭐…. 뭐야 넌!?”
“당신은…?”
나름대로 직위가 있어 보이는 마성교의 교도가 나의 앞을 막아서자, 그 뒤를 이어 마성교의 교주 진선미가 말을 이었다.
- 문아. 어때?
- 음…. 기운은 확실하지만 내가 아는 얼굴은 아니네.
이유야 어찌 됐든 진선미의 정체는 여러모로 나에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첫 번째로 진선미가 무림계의 생존자라면, 장삼풍 진인과 나의 스승인 윤 민 그리고 아미파 대사저의 생사도 알 수 있었다. 물론….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죽었을 가능성이 컸지만.
두 번째로는 생존자가 아닌, 성좌가 된 인물이 진선미의 배후성이 되어 준 것이라면 다시 한번 그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조금 의아한 점이 있다면, 게이트의 소멸로 그 기억이 흩어져 성좌들 본인에게 흘려 들어갔다면 어째서 지금까지 나에게 메시지 한 번 보내지 않았나 하는 점이었다.
뭐…. 확인해 보면 알겠지.
나는 화안금정을 최대치로 올려 마성교의 교주 진선미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먼 거리였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만 존재했을 뿐, 가까이서 제대로 보니 확실히 알 것 같았다.
…….
역시.
진선미를 뚫어지라 쳐다보자, 그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윤문과 내가 알게 된 것은 다르겠지만 둘 다 알게 된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 이 기운은….
“배후성…. 성좌, ‘사라진 세계의 독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