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45화 (45/206)

제45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나의 당돌한 대답에 관리자 ‘A’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엇이 뻔하다는 것인가?】

관리자 ‘A’의 이런 질문도 당연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 따위에게 스카우트하는 건 엄청난 혜택이었기에.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영겁의 세월을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불로불사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불로불사란 결국 인간들과 성좌들에게 시드와 카르마를 수거해 자신들의 생명력으로 삼는 거머리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전 관리자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예상했을 텐데요?”

【허허.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떤가? 자네에게 아주 득이 없지는 않을 텐데.】

“됐습니다. 제가 원하는 방향이랑은 달라서요.”

【이봐, A!! 저딴 놈을 스카우트해 무엇 하려는 거야!!】

【아쉽게 됐군. 우리에게 아주 많이 도움이 될 자일 것을.】

【됐네! 이 이상 저딴 놈에게 시간을 허비할 수 없으니 이만 가자고!!】

나의 대답과 내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A’를 제외한 관리자들이 경멸스럽다는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자리를 벗어나자 ‘A’에게 재촉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아쉽지만 이만 가 봐야겠군. 시간이 지나 생각이 바뀌면 말하게나. 이곳의 생명체들은 모두 중립 지역으로 이동했네. 그럼…. 다음 미션도 잘해 보게나.】

파앗!

관리자 다섯은 나를 한 번씩 훑어보며 자리를 벗어났다.

마음에 안 드는 놈들.

“중립 지역…? 그나저나….”

나는 전장에 홀로 남아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는 서로의 진영에서 부딪힌 사람들의 사체가 있었고, 나의 눈앞에는 이재신의 시신이 싸늘하게 식어 가는 중이었다.

“아저씨….”

죽은 이재신의 눈을 감겨 주며 나는 문뜩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만. 영혼 흡수라면……?

영혼 소환.

나는 영혼 상태로 사역된 천마, 윤문을 소환했다.

스스스스.

“음! 주인 불렀는가?”

“아무것도 묻지 말고 주변에 사체를 한곳으로 모아 줘.”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아직은 본래의 힘을 찾지 못한 윤문이었기에, 흐릿흐릿한 영혼 상태로 자신의 무공을 사용해 주변의 사체를 한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좋아. 가능성은 충분해.

“주인. 무얼 할 생각이지?”

“네 후임 만들어 줄게.”

“……?”

윤문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더니, 설마…. 하는 표정으로 변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윤문이 모아 놓은 사체에 곧바로 [영혼 흡수 LV.1]를 사용했다.

츠츠츠츳-

[3219명. 동족의 영혼을 흡수합니다.]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영혼 사역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좋았어!!

다음은….

대량의 영혼을 한 번에 흡수했음에도, 스킬의 레벨이 낮아 영혼을 사역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

지금 스킬을 사용하고 나면 동족의 영혼을 다시 흡수해야 했지만, 앞으로의 여정에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어 나가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스킬 [영혼 사역 LV.1]을 인간, ‘이재신’에게 사용합니다.]

지이잉--

[해당 영혼의 동의를 얻는 중입니다.]

뭐?

게이트에서 윤문에게 사용했을 때와는 다른 메시지였다.

살아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일까?

돼라…. 돼라…!!

마음속으로 사역이 되길 바란 나는 잠시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재신을 영혼 상태로 사역해 봤자 나에게 큰 전력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재신이 딸을 볼 수 있게 만들 수 있었고 그로 나의 죄책감이 조금은 줄어들기를 바랐다.

[인간, ‘이재신’의 영혼이 동의합니다.]

[사역된 영혼에게 이름을 지어 줄 수 있습니다.]

이재신.

[해당 영혼의 이름은 ‘이재신’입니다.]

영혼 소환. ‘이재신’

스스스스스.

윤문을 소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재신의 신형이 흐릿한 채 나의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30년은 더 젊어진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윤문과 같은 이유인 것 같았다.

나의 강함이 아직 성장 중이었기 때문에.

“아저씨.”

“음…?”

“정신이 드십니까?”

“난…. 살아난 것인가?”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나는 영혼 소환의 대략적인 스킬을 설명해 주었고 현재 이재신의 모습과 윤문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었다.

“으하하하하하. 벌써 후임이 생기다니 내가 친절하게 알려 주도록 하지!!”

“닥쳐.”

“알겠다!! 으하하하하.”

그동안 영혼 상태로 혼자 심심했던지 윤문이 호탕하게 웃으며 이재신을 반기고 있었다.

“지금은 모든 게 이해가 가질 않으실 테니, 저놈한테 자세한 설명 들으시면서 잠시 쉬도록 하시죠.”

“음…. 아무래도 그게 좋겠군. 그나저나, 딸은….”

“지금 찾으러 갈 생각입니다. 걱정하지 말고 계세요.”

“알겠네. 여러모로 고맙군그래.”

“별말씀을.”

대략적인 설명을 해 주자, 이재신이 아주 조금은 이해했는지 자신이 영혼 상태라는 것을 조금씩 납득하기 시작했다.

“아, 근데…. 문아?”

“음?”

“내가 소환 해제하면 너 어디에 있는 거냐?”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내가 소환을 해야만 나타나는 윤문이, 소환 해제를 했을 때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음…. 나로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겠지만, 허무의 공간에 있는 것 같아. 주인의 무의식 같은…. 다만…. 행동이 자유롭고 주인의 시야로 밖의 상황을 알 수 있더군.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수행에 힘쓰고 있지!! 으하하하하.”

“그렇군. 알겠어. 그럼 갈구지 말고 잘 알려 줘. 앞으로는 둘이 살게 될 테니까.”

“음!! 한데….”

“왜?”

“다음은 여자로 부탁하….”

소환 해제.

파앗!

쓸데없는 소리가 윤문의 입에서 나오기 전 이재신과 윤문의 영혼을 해제해 버렸다.

적응력 참 빠르다. 저 새끼….

이재신의 딸의 이름은 관리자들이 텔레포트를 시키기 전 화안금정으로 봤기 때문에 이름과 나이 정도는 알고 있었다. 찾는 건 어렵지 않지만, 지금 가장 우선시 돼야 할 것은 변한 ‘명’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이번엔 위험했다고 말합니다. 이런 식이면, 세계의 입구와 출구가 열릴 때 금방 죽을 것이 뻔하다고 말합니다.]

“하하…. 인정. 그러니 더 강해져야죠.”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혼자 강해지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을 더욱 만들라 말합니다.]

“알겠어요. 참고하도록 하죠.”

세계의 입구와 출구가 뭐길래…. 여러 번 갱신된 나의 ‘명’에서도 보지 못한 거지…?

나는 변한 ‘명’에 대해서 기억을 더듬어 인지하기 시작했다.

전투 중에 변한 ‘명’이었기에 흘려 넘긴 것들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이재신의 죽음으로 ‘명’은 변했다. 그렇다는 건 앞으로의 상황도 변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나저나, 하늘이 정한 ‘명’이라는 게 이렇게 쉽게 변하는 게 맞는 거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지금의 나는 힘이 없는 인간일 뿐이었다.

의구심도 잠시, 나는 변한 ‘명’을 하나하나 체크한 뒤 초속 비행을 사용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재신 딸의 위치는 부산.

나머지는 뭐…. 알아서 잘하겠지.

* * *

가장 먼저 이재신의 딸에게 이동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미션의 종료와 함께 48시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고, 모든 게이트와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서 시드를 벌 수 있다는 건, 왕이 없는 지역인 부산, 대전, 인천, 광주, 울산, 대구는 무법 지대가 되어 살인, 강간, 약탈 등 온갖 범죄가 일어나는 중일 게 뻔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구해야 하는 것은 나이 어린 이재신의 딸이었다.

‘명’에서는 구출에 성공한다지만, 이런 식으로 자주 변하는 ‘명’을 너무 맹신할 수는 없었다.

언제 어떤 식으로 상황이 변할지 몰랐기 때문에….

“우선, 이것부터 해야겠다.”

나는 왕이 없는 지역인 부산, 대전, 인천, 광주, 울산, 대구를 제외한 나의 영역에 명령을 내렸다.

[현 시각으로 서울, 경기도, 강원도, 경북, 경남, 충남, 충북, 전북, 전남, 제주 지역의 동족 살인을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왕의 권능>의 권한으로 영혼의 소멸이 이루어집니다.]

됐다.

대략적인 걸 정리한 나는 부산에 진입했다.

그리고.

선인의 기운과 화안금정을 사용해 부산 전체를 훑기 시작했다.

선인의 기운으로 느끼는 부산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이전까지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시드를 벌 수 있다는 말 이후로는 편하게 시드를 벌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듯했다.

게이트를 클리어해서 시드를 버는 것보다 살인해서 상대방의 시드를 강탈하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는 더 쉽기 때문이었다.

위험하겠어. 빨리 이동해야겠다.

나는 초속 비행의 속도를 최대한으로 올려 이재신의 딸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쯤인데…. 어째 조용하네?”

현재 위치는 해운대역.

멸망 이전에도 인구 밀집도가 높은 장소여서인지, 주변에는 사람들과 몬스터들의 사체들이 가득했다.

악취와 함께.

“훗…. 난 이 악취를 이길 아이템을 알고 있지.”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 병….]

이 전에 오크의 게이트에서 사용한 아이템을 사용했다.

[아이템의 지속시간은 3시간입니다.]

“오…. 역시, 이 향은 자꾸 맡아도 좋은데? 스멜…!!”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왼팔과 함께 정신도 날려 버렸냐 물어봅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십니까?”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항상 긴장하라 말합니다.]

나는 강했고 ‘명’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실수가 잦았고, 그 결과로 왼팔이 잘려 버렸다.

그래서인지 배후성의 말이 또다시 방심한 채 실수라도 할까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이쯤인 것 같은데?

선인의 기운이 감지한 게 정확하게 들어맞았는지, 이재신의 딸이 근처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화안금정을 최대치로 사용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위험한 것 같지는 않은데…. 겁에 질려 숨어 버렸나?

이 장소라면, 슬슬 ‘명’에서 본 그 집단이 나타날 것 같았다.

이재신이 나의 무의식에서 영혼 상태로 지켜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급해지기 시작했다.

영혼 소환, 이재신.

스스스.

“아저씨, 문이한테 이것저것 들으셨죠?”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딸만 지켜 준다면, 평생을 받들어 모시겠네.”

살았을 적보다 30년은 젊은 모습으로 변한 이재신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나에게 말했다.

“좋아요. 이 주변에 따님이 있을 겁니다. 빨리 찾아요.”

“고맙네!! 그럼…!!”

영혼 상태의 이재신에게 배후성의 계약이 존재하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기본 전투력과 레벨을 어느 정도 올려놨던 이재신이었기에 아무 쓸모가 없지는 않았다.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 허공을 가로지르며 순식간에 이재신이 사라지자, 나 또한 이재신의 반대 방향으로 이재신의 딸을 찾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화안금정에 보인 이름과 나이.

이재신의 딸, ‘이민영’이었다.

저 멀리서 한 무리가 거대하고 하얀 깃발을 펄럭이며, 여러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다.

무리의 사람들은 세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몇백에 달하는 엄청난 수였다.

“세상은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구제하겠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구제하기 위해 이곳에 당도했습니다.”

“믿으세요. 믿으면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니.”

그리고.

그 무리의 틈에서 끌려 나오는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다.

이민영…?

“어린양이여. 우리를 따르거라. 구원을 바라지 않는 것이냐?”

“꺼져!!! 꺼지라고…!!! 아빠…. 제발…. 누가 좀 구해 주세요….”

“하하하. 어린양이 울고 있구나. 내가 너에게 은혜를 줄 것이니.”

“제발…!!”

미친놈들이…!!

‘명’에서 본 신흥 종교 집단이었다.

이들이 단순하게 신들을 믿고 따르는 종교 집단이면 상관없었지만, 어리숙하고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꾀어 노예로 부려 먹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참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악독한 집단이었다.

이 집단의 이름은 마성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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