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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44화 (44/206)

제44화

episode(7) 무법지대

의도치 않은 상황이었다.

관리자가 개입해야 했음에도 관리자는 개입하지 않았고, 이재신의 죽음으로 상황이 마무리되고 말았다.

‘명’을 보지 않았다면….

이재신은 죽지 않고 상황은 그대로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명’을 봤고 그 상황을 그대로 일으키려 했지만, 상황은 변하고 만 것이다.

“대…. 대장…!!”

“형님!!”

이재신의 일행들이 하나둘씩 내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당장 덤벼들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분노에 가득 찬 눈빛들.

이들은 강하지 않다. 개중에 권민재 정도 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숫자는 다섯도 채 안 되는 정도. 권민재를 포함해 지역 사람들을 조금만 끌어들여도 쉽게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재신과의 약속.

이재신의 어린 딸과 부하들을 부탁받았기 때문에.

굳이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었지만, 최소한의 양심이었다.

나의 ‘명’대로 흘러갔으면 죽지 않았을 이재신.

아주 조금이지만, 내가 바꾼 ‘운’ 때문에 이재신은 죽고 만 것이다.

온전히 내 책임은 아니었지만, 내 책임이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없었다.

“당신들의 대장은 숨을 거뒀습니다.”

사람들은 이재신을 따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진심으로 이재신을 믿고 따랐는지, 대부분 침울하고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전…. 아저씨한테 부탁을 받았습니다. 당신들과 아저씨의 딸을요.”

“네놈을 어떻게 믿지?”

“믿기 싫으면 말아요. 하지만 아저씨의 딸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이재신의 일행들은 저마다 분함이 표정에 드러내고 있었다.

자신들의 강함으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본인들도 알고 있다는 듯.

“지금부터 저는 당신들이 인륜을 저버리지 않는 이상 간섭은 하지 않을 겁니다. 이재신을 죽인 저에게 복수하고 싶다면 강해지세요. 그게 당신들이 살아가는 이유고 목적이 된다면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두 주먹을 불끈 쥔 모습이 저마다 나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 있는 듯했다. 이 짧은 시간 이재신을 이렇게까지 따르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동의한 걸로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화안금정을 사용해 이재신이 부탁한 딸의 위치를 살폈다.

그리 멀지 않지만, 전장의 최후방에 여러 명의 사람과 이재신의 딸이 한 대 모여 있었다.

“그럼, 모두 흩어지….”

상황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흩어지라는 말을 하려던 때였다.

쿠구구구.

우리가 있는 전장의 하늘에 거대한 먹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뭐… 야…?”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지만, 이 전장의 ‘명’이 바뀌어 지금 일어나려는 상황이 어떤 현상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쾅!!!

파직- 파지직.

거대한 먹구름은 하늘 전체를 뒤덮으며, 지상에 벼락을 떨구어 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벼락이 아니었다.

검은 벼락.

“천벌(天罰)…?”

천벌(天罰)은 성운 단위에서 카르마를 소모해 인간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다.

보통 카르마의 소모가 커 어지간한 성운에서는 천벌(天罰)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지금 일어나는 현상은 성좌의 개입이 아닌, 성운의 개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었다.

“미친….”

어처구니가 없어 나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지금 일어나는 현상과 저 검은 벼락이 천벌(天罰)이 맞다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전멸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말 것이었다.

[스킬 [냉정 LV MAX]이 발동됩니다.]

스킬의 발동과 동시에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일어나려는 이유와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설마….”

“안이 형님!! 이게 지금…….”

권민재가 안재훈을 안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으…. 으음……. 대왕마마?”

“두 사람 뒤로 물러나요.”

슬슬 정신을 차리려는 안재훈의 얼굴을 보자, 이 상황이 어째서 발생하고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알 것 같았다.

성운, <안락국>과 성운, <타카마가하라>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이가 좋지 않은 건 나보다 윗세대의 사람들과 성좌들이겠지만, 이런저런 사건과 역사로 인해 두 성운은 서로에게 지지 않으려는 라이벌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천벌(天罰)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나는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안재훈이 성운의 힘을 빌어 <안락국>소속의 성좌 ‘무패의 해신’의 후원자를 죽인 것.

따지고 보면, 안재훈이 힘을 빌렸다기보다 성좌 ‘무패의 해신’을 죽이기 위해 성운 <타카마가하라>가 개입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는 건.

인간들의 말로 치자면, 성운 <타카마가하라>는 성운 <안락국>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지금 일어난 천벌(天罰)은 <안락국>이 카르마를 소모해 안재훈을 죽이기 위해 벌인 것이 분명했다.

“젠장….”

미래에 이 아이가 ‘흑아’라는 집단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도 있었지만, 미래는 이미 변했기에 걱정은 없었다. 거기에, 안재훈은 나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죽게 둘 수 없는데…. 어쩌지?

천벌(天罰)은 현재의 내 강함 정도로는 막을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성좌 개인의 힘이 아닌, 성운의 힘.

그것도 성운에서 ‘카르마’를 소모해 생명체를 벌하기 위한 힘이었다.

쿠르릉!!!쾅!!!!

어느새 전장의 하늘을 모두 뒤덮은 먹구름이 검은 벼락을 떨구어 내기 시작했다.

“크하…. 악….”

“사…. 살려…!!!”

안재훈을 죽이기 위한 천벌(天罰)이었음에도 같은 편인 네놈들 또한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검은 벼락은 우리의 진영을 박살 내고 있었다.

천벌(天罰)이 무서운 점은 단순한 죽음이 아닌, 카르마와 영혼의 소멸이었다.

이 말은…. 환생도 뭣도 없는 영원한 죽음.

검은 벼락을 맞아 먼지가 되어 소멸하는 사람들을 보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재훈이를 희생시키면, 모두 살 수 있어. 어쩌지? 어쩐다…?

고민하던 나는 나의 뒤쪽에 있던 안재훈을 슬쩍 돌아보았다.

“이거…. 나 때문이야…? 죽고 싶지 않아…. 대왕마마 나 어떻게 하지…!?”

자신도 이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 어렴풋이 알겠다는 듯 울먹이며 나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네 탓 아니야. 요구 조건은 형이 받으라고 한 거잖아?”

말 그대로였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안재훈의 배후성인 성운, <타카마가하라>의 개입이 문제였지 안재훈의 잘못이 아니었다.

“다들 저 검은 벼락에 맞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나는 상황을 지켜보며 어떻게든 검은 벼락을 맞지 않기 위해서 쏟아지는 검은 벼락을 피하며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재가 되어 소멸하자, 안재훈이 급작스레 공중에 뜨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야? 왜….

쿠구구구. 쿠콰쾅!!!!

안재훈이 공중에 뜨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상에서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젠장, 이번엔 또 뭔데!!

“대왕마마…. 이러면…. 된다고…. 메시지가….”

두려움에 울먹이는 안재훈이었다.

성운, <타카마가하라> 쪽에서 무언가 힘이라도 쓴 것 같았다.

설마…?

설마 하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자, 곧 우리의 진영뿐 아니라 이재신의 진영에도 검은 벼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맞불.

천벌(天罰)에는 천벌(天罰)로.

<안락국>과 마찬가지로 <타카마가하라>에서도 천벌(天罰)로 대응을 한 것이다.

이례적인 이 상황은 서로 지기 싫어하는 두 성운이 미쳐 날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망할 새끼들이…. 우리를 뭐로 보고…!!!

안재훈이 <타카마가하라>의 매개체가 되어 천벌(天罰)을 발동하고 있는 것이라면, 반대로 <안락국>의 매개체가 된 사람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초속 비행을 사용해 검은 벼락을 피하며, <안락국>의 매개체를 찾기 시작했다.

찾는다고 한들,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재가 되어 소멸하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안락국>의 매개체가 되어 주는 사람을 찾은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성좌, ‘도술의 대가’를 배후성으로 둔 이재신의 최측근인 자.

이 사람이 안재훈과 같이 공중에서 천벌(天罰)을 발동하고 있었다.

당장 검은 벼락을 피해내는 것만도 힘에 부쳤기 때문에 방법을 찾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이 상태로 이재신의 진영과 나의 진영에 속한 사람들은 검은 벼락에 모두 재가 될 지경이었다.

“멸망이다…!!!”

“모두 도망가!!!”

“하느님, 아버지…. 세상의 종말이 시작됐다…….”

젠장…!!! 당신들이 믿는 그 하느님이 이 난리를 치는 걸 모르나!?

“헉…. 허억…. 안이 형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양측 진영의 사람들이 재로 변해 가는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권민재도 더 이상 피하는 게 힘에 부쳤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야 꼬맹이!! 그만해!!”

나의 외침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듯 안재훈의 정신이 성운의 힘에 잡아먹히기 시작했다.

“그만…!!! 젠장!!!!”

너무나도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르자, 나의 절박한 외침을 들어주는 듯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다섯이 공중에 떠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지이잉-!!

파앗!

【이런….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A’】

【벌써 천벌이라니. 이곳은 자네의 관할 구역이 아닌가?】

【하하. 재밌지 않은가? 이 지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흔한 일인가?】

【이보게 ‘A’ 현재 상황에서 이만한 숫자를 죽이면 안 된다는 걸 자네는 모르는가?】

【너무 그러지들 말게나. 그래서 우리가 나선 것이 아닌가?】

【그건 그렇지.】

검은 양복을 멋있게 차려입은 다섯 명의 관리자들은 자신들끼리 대화를 하더니, 동시에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섯 명의 관리자들이 손을 뻗자 먹구름 속에서 쏟아지던 검은 벼락들이 하나둘씩 멈추기 시작했다.

이건……?

자신들을 잡아먹는 검은 벼락들이 멈추자, 어안이 벙벙해진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무래도, 변하기 전 ‘명’에서 개입했어야 할 관리자들이 이제 와서 개입한 것 같았다.

【일단…. 귀찮은 상황은 넘기고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관리자들이 지상의 인간들에게 손짓하자, 이 장소에 있는 모든 인간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

그리고.

나와 안재훈 그리고 ‘도술의 대가’를 배후성으로 둔 세 사람만이 이곳 전장에 남게 되었다.

【자, <안락국>과 <타카마가하라>여, 지금 당신들이 ‘카르마’를 사용하는 것은 계약 위반이오. 속히 힘을 거두길 바라오.】

쿠르릉!!!

파직- 파지직!!!

두 성운의 기 싸움이 벌어지는 듯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전장에 남은 세 사람이 입을 벌리고 공중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이런, 두 성운이 싸울 기회는 곧 다가올 겁니다. 속히 힘을 거두지 않는다면, 계약 위반으로 알고 우리 관리자들도 개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나는 관리자 ‘A’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저들의 알 수 없는 계약으로 인해 이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두 사람 말고 나까지 이 자리에 둔 건 왜지…?

관리자의 협박 아닌 협박에 두 성운은 천벌을 거두어들였고 먹구름이 가득했던 하늘은 다시금 맑아지기 시작했다.

[성운, <안락국>이 <타카마가하라>에 대한 적대감이 상승합니다.]

[성운, <타카마가하라>가 <안락국>에 대한 적대감이 상승합니다.]

두 사람이 여기 있어서인지, 두 성운이 으르렁거리는 걸 메시지로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안재훈과 ‘도술의 대가’를 배후성으로 둔 사람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럼, 해결된 듯하니, 두 사람도 보내도록 하지.】

“어? 대왕마마…?”

파앗!

상황을 중재시킨 관리자들은 더 이상 안재훈과 ‘도술의 대가’를 배후성으로 둔 자 또한 이 자리에 필요 없다는 듯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곳으로 텔레포트 시켰다.

위치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국을 벗어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 나는 안심한 채 관리자들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역시나…. 또 자네가 이 사건에 중심에 있군. 못다 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하는데?】

“……이번엔 제 잘못이 아닙니다만?”

【하하하. 그렇지. 어찌, 저번에 제안했네만…. 관리자가 되는 건 생각해 보았는가?】

아무래도 나만을 이 자리에 남긴 것은 저번에 나에게 듣지 못한 대답을 듣기 위함이라는 듯 관리자 ‘A’가 질문해 왔다.

남은 네 명의 관리자들은 묵묵히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찮은 벌레 보듯.

저깟 놈이 자격이 있냐는 듯. 경멸에 찬 눈빛들이었다.

“뻔한 걸 물어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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