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여태 상대해 왔던 사람들과는 남다른 기세를 보이는 이재신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남다르다고 해 봤자 경기와 강원 지역을 차지한 고원 정도였다.
딱 그 정도.
“전력을 다해서 덤비세요. 봐주지는 않을 겁니다.”
“흐하하하하. 좋네. 모든 지역을 차지한 자네의 실력. 두 눈으로 보겠네.”
같은 모양새를 한 두 자루의 검을 든 이재신이 나를 향해 자세를 취했다.
자신의 배후성에게 나름대로 지원을 많이 받았는지, 그저 그런 각성자들과는 달랐다.
이재신이 취한 자세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단순한 나의 감일 뿐이었지만, 저 자세는…. 단순하게 휘두르기만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흐하아압!!!”
이재신이 두 자루의 검을 사용해 빠른 속도로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 자루를 막으면, 다른 한 자루가 나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훙-!!
“이크.”
공격을 막는 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나에겐 오른팔뿐이었지만, 어느덧 MAX LV이 된 ‘태극검’이 있었다.
그리고 이 ‘태극검’은 창시자 본인에게 깨달음을 얻어 최종 LV이 된 스킬.
사람을 상대함에 있어서 결코 약하지 않은 스킬이었다.
촤르륵-
후웅!
챙!!!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이재신의 쌍룡검을 몸을 비틀어 피하고, 오른손의 검을 들고 몸을 회전해 이재신을 향해 강하게 쳐냈다.
“큭…. 막았는데, 이 정도라니…!!”
“아직 멀었습니다.”
나는 이재신에게 결정타를 먹이기 위해 무쌍 난무와 파천 신공을 조합해 무아지경의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촤악!!
촤아아악!!!
오른팔만을 사용해서 하는 공격이라, 무차별적인 난무는 전과는 다르게 힘을 잃었지만, 지금 이 상태로도 이재신을 제압하는 것은 크게 힘이 들지 않았다.
“크하아악…!!!”
몸통 이곳저곳을 난자하는 수십의 검기에 베이고 찔린 이재신의 입에서 핏물이 토해져 나왔다.
“헉…. 헉….”
“더 하시겠습니까?”
“아… 아직…. 괜찮네…!!”
나는 이재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전투를 이어 나갈 생각이었다.
그동안 전남, 전북, 제주 지역을 통솔하며 지역 사람들에게 왕으로서 신뢰를 얻은 그를 향한 나의 배려였다.
물론,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대장…!!”
“형님….”
이재신의 최측근인 ‘한반도의 무신’과 ‘도술의 대가’를 배후성으로 둔 두 사람이 주먹을 불끈 쥐고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재신을 향한 이들의 충성심은 진짜인 것 같았다.
그저….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리더십에, 사람을 아우르는 포용력까지. 짧은 시간에 이 정도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이재신이었다.
이재신이 건방지거나 자신의 강함에 취해 악행을 일삼는 사람이라면 주저 없이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재신은 잠깐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 청렴하고 맑은 사람이었다.
“하아…. 하아…. 젊은이가 대단하구먼…. 지금 쓸 것이 아니다만, 장군께서 허하시니 자네에게 보여 주도록 하지.”
이재신이 무언가 강한 스킬이라도 쓰는 듯. 그의 몸 전체에서 붉은색의 아우라가 퍼지기 시작했다.
“동조화…?”
“허허…. 이걸 아는가?”
예상은 했지만, 이재신도 직계 후손이었던 듯 동조화를 사용하려 하고 있었다.
동조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거로 생각했던, 나의 방심이었다.
지역의 왕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 정도면, 이 정도는 기본이라 이건가…?
이재신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쌍룡검을 높이 들고 말하기 시작했다.
“덕수 이씨. 충무공파 15대손 이재신. 저의 수명을 사용해 충무공의 힘을 빌립니다.”
콰지직- 쿠릉!!!
여태 동조화를 본 것은 고원이 사용했을 때, 단 한 번뿐이었지만 무언가 느껴지는 기운이 달랐다.
[스킬 [냉정LV MAX]이 강하게 발동합니다.]
[스킬 [냉정LV MAX]이 강하게 발동합니다.]
[스킬 [냉정LV MAX]이 강하게 발동합니다.]
.
.
.
스킬 냉정은 나의 감정을 자제시켜 어떤 상황이든,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킬의 효과가 먹혀들지 않고 있었다.
이 기운은…….
세계가 변하고 제대로 느껴 본 엄청난 공포였다.
오한이 일어나고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미친…. 뭐야…. 뭔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성좌들의 메시지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성좌, ‘무패의 해신’이 전장을 바라봅니다.]
[성좌, ‘조선의 시조’가 건방진 후손에게 본때를 보여 주라 말합니다.]
[성좌, ‘한반도의 무신’이 엄청난 기운에 두 눈을 번뜩입니다.]
[성좌, ‘도술의 대가’가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성좌, ‘한반도 전쟁의 신’이 이곳의 전투를 관심 있게 바라봅니다.]
[성좌, ‘사계절을 사랑하는 선녀’가 당신을 응원합니다.]
.
.
.
[성운, <안락국>이 후손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이건 단순한 동조화가 아니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전력을 펼치라 말합니다.]
당황한 채 이재신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에게 배후성이 말을 걸어왔다.
아차.
나는 곧바로 선인의 격과 선인의 기운 그리고 화안금정을 사용해 이재신을 살피기 시작했다.
“크…. 하아아아!!!!”
이재신의 몸이 공중에 뜨며 붉은색의 아우라가 점점 짙어지더니, 이내 푸른색과 붉은색이 섞인 아우라가 전신에서 피어올랐다.
그리고.
내 눈앞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콰지지직-
쿠구구구구.
내가 딛고 있던 땅이 진동하고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성좌, <무패의 해신>이 자신의 후원자에게 <카르마>를 소량 제공합니다.]
뭐…?
이재신이 처음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자신의 수명을 사용해 충무공의 힘을 빌린다.
이 말은….
성좌의 직접 강림과는 다른 힘이었지만, 그렇다고 동조화라고 하기엔…. 그 강함을 뛰어넘는 힘이었다.
이 힘이 무서운 점은 한 가지였다.
무려 후원자와 배후성 두 사람이 동시에 수명을 사용한다는 점.
이 부분에서 얼마나 강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자네는 아직 어려 모른다네. 나이가 들수록, 어깨에 짊어지는 게 많아지는 법이지.”
“…무슨…….”
“이것이 현재,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전력이라네. 수명을 사용해 충무공의 힘을 빌렸지.”
“미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전투가 아닙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고작 전투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수명을 거는 건 물론이요, 배후성 마저 자신의 카르마를 소모해 후원자를 도와주다니,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그만하세요…!!!”
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사람들을 해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힘을 사용하는 이재신과 배후성 이순신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었다.
“젠장…!!”
상황이 급박해진 나는 힘을 끌어모으는 이재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쿠콰아아아!!!
콰콰콰쾅!!!
파천 만뢰공과 검을 사용해 검기를 난사했다.
쿠콰콰쾅!!!!
“큭…!!”
나의 공격이 먹혀들고 있었다.
나는 이 기세를 몰아 계속해서 공격을 날렸다.
“크하악…!!”
조금만 더…!!
하지만 나의 바람은 여기서 끝이었다.
이순신이 카르마를 소모해 제공한 힘이 이재신에게 강하게 깃들었다.
동조화에 자신의 수명과 이순신 본인의 카르마를 사용한 힘이었다.
파앗!!
“후…. 기다리게 했나?”
“……미친….”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아무리, 카르마를 소량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성좌의 카르마는 그저 그런 힘이 아니었다.
카르마는….
환생하지 않고 성좌가 된 사람들이 몇천, 몇만 년을 끌어모은 자신들의 수명이 담긴 힘이었다.
아무리 소량의 카르마라고 하더라도 그 소량을 모으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계산조차 되질 않았다.
“젠장….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겠네.”
급박한 상황이 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모든 힘을 받아들인 이재신의 강함은 버프를 사용하지 않은 나와 동급이거나, 아주 조금 강한 정도였다. 다행히도 현재의 나는 버프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밀리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도 불안한 점은 있었다.
나는 왼팔이 없는 상태. 같은 전투력이라면, 전투에 중요한 팔 한 짝이 없는 것이 큰 변수가 될 것이었다.
“어쩔 수 없네요. 갑자기 목숨 걸고 싸울 줄이야.”
“하하하. 미안하게 됐네.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져서 말일세.”
“이해는 안 가지만…. 지금은 제가 더 강합니다.”
나는 바로 용광검을 들어 이재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드득-
쾅!!!
후웅- 챙!!!
갑작스레 일어난 엄청난 전투에 이재신의 최측근과 나의 후방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권민재와 아이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미친….”
“민재 형…. 대왕마마가 저렇게 강했다고…?”
“하…. 하하….”
“대장 이기십쇼!!!”
“형님!!!!”
선인의 기운 덕분인지, 주변에서 하는 말들이 전부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왕마마. 힘내셈!!!!”
“안이 씨…!!!”
저노무 새끼는 이 와중에, 힘내셈이 뭐야…?
피식.
안재훈의 응원에 기가 빠져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가 웃긴가?”
“아닙니다. 제가 귀가 좋아서요. 동생이 하는 말이 들렸거든요.”
“그런가?”
“그럼….”
나는 전력을 다해 이재신을 베어내고 발길질을 하며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질 수 없다!!!”
이재신은 더욱 강해진 쌍룡검을 휘두르며 나에게 대항했다.
지금 당장이야 버프의 효과로 내가 더 강한 것이 확실했지만, 상처가 아예 안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씩 나의 팔뚝과 몸에 자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버프 시간이 끝나면, 내가 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촤악-!! 스겅!
“컥…. 크하하아악….”
“아직 멀었습니다.”
남은 시간은 10초.
나는 전력을 다해 이재신의 HP를 조금이라도 더 깎아 내기 위해 공격을 퍼부었다.
“아직 아닐세…!!!”
“왜 그렇게까지 끈질기십니까!?”
“나는…. 나는 가족과 딸을 지켜야 하네…!!!”
“저는 당신의 가족을 죽일 생각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하하하…. 자네는 모를 것이야. 아버지의 마음을.”
동조화에 수명을 사용했음에도 버프를 사용했을 때만큼은 내가 더 강했다.
“커 헉…. 아직도 이런 격차가…. 자넨 괴물인가…!?”
“헉…. 허억…. 대화는 나중에 하시죠.”
스악!!!
남은 시간은 4초.
이재신이 말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 단 한 가지만은 알 수 있었다.
이미 한계에 도달했음에도 쓰러지지 않는 이재신의 강함은 동조화와 수명의 힘을 뛰어넘고 있었다.
결사의 의지.
이재신은.
아니, 아버지는 강했다.
나는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 위해 현재 사용 가능한 기술 중에 가장 강한 기술인 ‘파천 만뢰공’을 온 힘을 쥐어짜 연달아 네 방을 날렸다.
쿠르릉…. 쿠릉!!!!
쿠구구구.
수십만 개의 벼락이 이재신을 향해 쏟아질 듯 하늘이 울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저 또한 이뤄야 할 것이 있어서요. 이 공격에 죽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른손에 쥔 용광검을 내리긋자,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대기 중이던 벼락이 이재신을 향해 일제히 쏟아졌다.
쿠콰콰콰쾅!!!!!!
콰콰쾅!!!!
하지만 마지막 공격이길 바랐던, 나의 공격은 그저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헉…. 허억…. 젠장…. 못 끝냈나…?”
저벅.
저벅.
여기저기 찢긴 갑옷과 그 사이로 터져 나오는 핏줄기를 버텨낸 이재신이 벼락을 맞으며 너덜거리는 몸으로 한 걸음씩 걸어 나왔다.
그리고….
이재신이 후들거리는 온몸을 두 자루의 검에 의지한 채,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 시…. 신에게는 여…. 열두 척의 배…. 가 남아 있사…. 옵니다….”
[후원자, ‘이재신’이 배후성, ‘무패의 해신’의 성흔, ‘금일고결사(今日固决死) 원천필섬차적(願天必殲此賊)’을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