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episode(6) 세 번째 메인 미션: 한국의 왕
무림계를 멸망에 빠트린 장본인이 소년의 모습으로 머리를 박는 모습이 꽤 볼 만했다.
“우리 문이, 앞으로 형이 하는 말 잘 들어야지?”
“이…. 이런 미친…!!! 몸이 멋대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30분간 그러고 있어라. 시끄러우니까 입은 다물고.”
“……!!!!”
절대복종의 효과는 대단했다.
입을 다물라는 지시도 정확하게 인지했는지, 윤문은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김도은과 김영광에게 시선을 돌려 자초지종을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온 겁니까??”
“한참 게이트를 클리어 중일 때, 갑자기 성좌 분들의 메시지가 폭주하더라고요. 안이 씨가 위험하다고….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요.”
“맞습니다. 성좌분들 덕분에 위치는 알게 되었지만, 저희도 게이트 안에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오지 못했죠.”
“그렇겠네요. 클리어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테니.”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클리어를 하고 도착하니, 안이 씨가 위험한 상태였고요.”
대략만 들어도 어떤 상황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성좌들이 나서서 나를 구하다니, 의외인데…?
처음 본 ‘명’에서 나는 배후성에게 이용만 당하다 버림받았고, 그로 인해 목숨까지 잃게 되었다. 지금이야 다른 배후성을 선택했기에 ‘명’은 바뀌었다지만 성좌들에게 믿음이 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안이 씨. 아린이는 어디에…?”
모두와 함께 있었을 때 김영광이 항상 임아린과 놀아 줘서 정이 많이 들었는지, 걱정되는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아, 아린이는 걱정하지 마세요. 위험할 것 같아서 곤륜산에 맡겨 두었거든요.”
“하하…. 그렇군요. 안 보여서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그 왼팔은 어쩔 거예요.”
“방법을 찾아봐야죠. 그래도 잘려 나간 건 왼팔이니까 다행이지 않을까요?”
“생각하는 거 하고는….”
측은하다는 듯, 나를 보는 김도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미 스킬도 쓰고, 시스템도 생겼는데 회복될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그렇지만….”
나는 김도은을 바라보곤, 쓰게 웃었다.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이 내심 기뻤다.
“근데……. 저건 뭐예요…?”
“아…. 쟤가 아까 싸우던 천마라는 놈입니다. 쓸 만한 스킬을 얻었거든요.”
“안이 씨는 점점 인간을 벗어나는 중이네요…. 이젠 놀랍지도 않네요.”
“하하…. 그럼…….”
나는 천마에게 궁금한 게 많았기에, 일행들을 뒤로한 채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주변의 모든 것이 멈추고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자가 공중에 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관리자…?
“이번엔 무슨 일이죠?”
경계심 어린 나의 말투에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관리자 ‘A’가 지상으로 내려왔다.
【다시 보는군.】
처음 관리자를 봤을 때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머리를 박고 있던, 윤문과 김도은, 김영광의 시간이 멈추었다.
【이번엔 사고를 거하게 쳤더군.】
“사고라니요?”
짐작 가는 부분이 한 가지는 있었다.
‘S’등급의 이세계 게이트를 한참 미션 중인 이 상황에 클리어한 것.
이것이 문제는 아니겠지만…….
단순한 클리어가 아닌, 게이트의 당사자인 천마를 사역해 버린 것이었다.
【하하하. 자네도 짐작하고 있지 않은가?】
“역시…. 천마를 사역한 것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다네. 윤문이라는 자는 죄와 벌로 인해 우리 관리자들이 그자의 영혼을 관리하고 있었네만…. 자네가 영혼을 사역해 버렸지.】
“저는 스킬을 사용한 것뿐입니다. 문제가 되지는 않을 텐데요?”
【맞네. 그래서 문제라는 것이야. 시스템의 절대력을 무너뜨리는 스킬이라니….】
아무래도 스탯 흡수를 이런 식으로 진화해서 스킬을 사용한 사람은 여태 없었는지, 관리자 ‘A’의 표정이 무척이나 난감해 보였다.
【덕분에 소진한 카르마와 손해 본 시드를 보상받아야 마땅하지만. 그 스킬이 있는 한 이런 일은 계속 발생하겠지.】
“그래서요?”
【당분간은 지켜보도록 하겠네. 이미 자네의 일부가 된 스킬을 도로 회수할 수도 없으니 말이야.】
다행이었다.
사기적인 스킬이니, 스킬과 윤문의 영혼을 회수할까 잠시 마음 졸였던 나였기에….
“그렇다면….”
【한 가지 경고해 주도록 하지. 자네가 강해지는 건 우리 관리자들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네만, 그 스킬은 우리들에게 독이나 다름없다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하하하. 성질이 급하군. 한두 번이야 넘어가 줄 수 있는 범위지만, 그 스킬을 과용한다면 어쩔 수 없이 관리자들이 자네에게 페널티를 가할 걸세. 그 부분을 조심하길 바라지.】
“페널티가 뭐죠?”
【글쎄. 궁금하면 해 보게나. 결코, 좋지만은 않을 테니…. 나를 제외한 스물다섯의 관리자는 인간들에게 결코 너그럽지 않다네.】
파앗!
몇 가지 궁금한 부분들이 많았던 나였기에 이것저것 캐물을 생각이었지만….
관리자 ‘A’는 자신의 할 말만 전하고 이내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모두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어? 저 방금….”
“어라??”
김도은과 김영광은 자신들의 시간이 멈춘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윤문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문이. 형 기다렸어?”
“읍…!!! 읍읍……!!!”
“아아……. 말해…. 해도 돼….”
나의 왼팔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이미 잘려 버린 팔은 어쩔 수 없었다.
소년의 모습을 한 윤문이 맨바닥에 머리를 오랫동안 박고 있는 모습을 보니, 조금 짠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문아. 일어나.”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말 이쁘게 해야지. 문아?”
반항하는 듯 인상을 구기던 윤문이었지만, 다시 머리를 박기는 싫었는지 말투가 금세 고분고분해졌다.
“무슨… 짓을 한 거지?”
“그건 비밀이고.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 왼팔을 날려 버린 건 봐줄 테니까.”
“아…. 알았다…. 무엇이 궁금한 거지?”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궁금한 게 생기면 영혼 소환을 해서 그때그때 물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기억하지?”
“……나는….”
윤문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죄를 지은 것처럼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
“처음부터 말해 봐. 네가 기억하는 모든 것을.”
윤문이 한참을 말없이 있더니, 나를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관리자들에게 힘을 빌리는 대가로 자신이 죽은 후 영혼을 관리자들에게 빼앗기게 된 것과 죄와 벌이라는 핑계로 끊임없이 자신의 가짜 세계를 멸망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은 게이트가 클리어되었을 때, 자신의 영혼에 각인되었던 것이다.
“처음 세 번 정도는 속이 시원했지…. 형님을 뛰어넘었으니 말이야…. 날 악당 취급하는 무림인들을 죽였다는 것에 만족하던 나였다.”
“그런데?”
“하지만….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자격지심이었지…….”
“…….”
“반성한다. 나의 죄를 뉘우친다……. 라고 생각했을 때는 돌이킬 수 없었지…. 나는 무한히 반복되는 이야기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복할 뿐이었다. 고통스러웠다….”
“무슨 말인 줄은 알겠어. 너는 이제 그 이야기에서 해방되었어. 그러니 앞으로는 나를 돕도록 해. 물론, 싫어도 그렇게 하겠지만.”
“고맙다….”
“뭐?”
윤문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시간 속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세계를 멸망시키고 자신의 피붙이인 형을 죽이는 것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것에 순수하게 기뻐했다.
“내 스승님은 네놈 형님이지만 사숙이라고 부르지는 않을 거야.”
“괜찮다. 너는 나에게 은인이나 다름없으니, 지금부터는 너를 주인으로 모시도록 하지. 그 고통을 다시 겪을 바에는 지금이 만 배는 더 좋군.”
“좋아. 잘 생각했어. 그리고 네가 지은 죄는 스스로 반성하며 살아가도록 해.”
하나의 세계를 멸망시킨 거악(巨惡)천마.
윤문.
지금 당장 윤문은 힘을 되찾지 못했기에,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후에 힘을 되찾은 윤문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내가 강해지는 만큼 윤문 또한 강해질 것이기에, 생전의 강함을 뛰어넘을 가능성도 다분했다.
“근데 말이야.”
“음?”
“너는 그렇다고 쳐도 다른 사람들은 뭐였지?”
“아아, 간단하다. 나의 영혼 속에 각인돼 있던 기억을 사용해 재연한 것이지. 쉽게 말하면 내 영혼의 일부를 사용해서 게이트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같은 내용을 반복한 것이야.”
“그래서 흡수할 때 네 영혼이 작았던 건가…?”
“아마 그럴 것이다. 끝없는 반복에 작아진 영혼은 결국 소멸하는 것이니까.”
“그렇군…. 알겠다. 일단 들어가 있어.”
계속해서 윤문을 소환해 두는 것은 마력의 소모가 있어서 대략적인 이야기만 듣고서 소환을 해제했다.
“두 분은 다시 가셔야죠?”
“괜찮겠어요? 한쪽 팔이 없어서 힘드실 텐데….”
“네. 한쪽 팔의 부재가 생각 안 날 정도로 강해졌거든요.”
“알겠어요. 그럼, 무리하지 마시고요.”
“안이 씨. 무운을 빌겠습니다!!”
“두 분도 무리하지 마세요. 급할 것 없습니다.”
나는 ‘명’을 보았다는 이유로 강해지는 지름길을 택하다 한쪽 팔을 잃고 말았다.
‘명’도 보지 못한 두 사람이 무리해서 다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김도은과 김영광이 자리를 벗어나자, 그동안 미뤄 두었던 미션 한국의 왕이 되기 위해 움직였다.
* * *
- 민재 씨.
- 일은 잘 해결되셨나요?
- 네. 대부분요. 상황은 어떤가요?
- 음…. 상황은 나쁘지 않아요. 다만, 전남과 전북 그리고 제주를 차지하고 있는 자가 생각보다 강해서 고전 중입니다.
- 이순신을 배후성으로 둔…. 그 사람 말인가요?
- 네. 저와 아이들은 현재 경북, 경남, 충북, 충남을 차지한 상황이고 위쪽은 고원이라는 자와 안이 씨가 대리인으로 둔 임해든 두 사람이 대치 중이고요.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조금만 버텨 주세요. 위쪽을 정리하고 도와드릴게요.
- 네. 맡겨 두세요!
아무래도 왕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의 양상은 사파전인 것 같았다.
전남, 전북, 제주를 차지하고 있는 이순신을 배후성으로 둔 자.
어느새 경북, 경남, 충북, 충남 네 지역을 차지한 권민재와 아이들.
그리고….
‘명’에서는 보지 못한 변수인 강원도와 경기도를 차지하고 있는 고원이라는 자가 있었다.
내가 신경 쓸 것은 고원과 이순신을 배후성으로 둔 두 사람뿐이었다.
그럼…. 북쪽부터 정리해 볼까?
나는 초속 비행을 사용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동하면서 임해든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장거리 전음’을 사용했다.
- 해든 씨.
- 오, 드디어 오셨군요.
- 네. 별일 없었죠?
-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북쪽의 고원이라는 사람이 꽤 강해서 접전 중입니다.
- 제가 가겠습니다.
- 볼일은 다 마친 겁니까?
- 네. 위치가 어디죠?
- 인천으로 오시면 될 것 같네요. 양측이 이곳에 모두 모여 있거든요.
- 알겠습니다.
지역 왕의 자리에는 허점이 있었다.
왕이 없는 지역.
부산, 대전, 인천, 광주, 울산, 대구가 있었다.
어째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여섯 곳은 왕이 없는 중립 지역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초속 비행의 속도를 최대한으로 올려 인천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