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인간의 강함으로 이 정도의 위력을 가진 화살을 쏘는 자는 현재 시점에서 단 한 명뿐이었다.
김도은.
김도은의 활 ‘오호’는 치우를 물리친 황제 ‘공손헌원’의 무기이다.
치우를 물리친 이후에 하늘로 올라가면서 떨어트린 활이 ‘오호’였다.
같은 문화권이기는 하지만 어째서 신선들이 황제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몰랐다.
황제 ‘공손헌원’은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오제(五帝)의 필두로, 서양권에 강력한 주신 제우스가 있다면, 동양엔 ‘공손헌원’이 있다는 말 그대로 중국 신화의 주신이었다.
이유를 막론하고 성운, <대륙>의 막강한 주신급인 황제 ‘공손헌원’의 무기인 만큼 위력은 엄청났다. 지금이야 성좌가 된 ‘공손헌원’이기에 그가 사용하는 신기보다는 한참 급이 아래겠지만, 선기 중에도 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활이었다.
그런 활을 이제는 자유롭게 사용하는 김도은이었다.
“……안이 씨, 또 맞고 계시네요…. 왼쪽 팔은 어떡할 거예요….”
“하하…. 방법을 찾아야죠. 지금 당장은 ‘풀포션’을 먹어도 회복할 수 없거든요.”
“이거나 먹고 있어요.”
툭.
아직 그리 많은 시드를 벌지 못했음에도 김도은은 자신의 시드를 털어 풀포션을 구매해 나에게 던져 준 뒤 천마를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조심하세요. 저놈 강합니다.”
꿀꺽. 꿀꺽.
나는 풀포션을 한 번에 들이켰다.
체력이 회복됨과 동시에 포션의 효과로 왼쪽 팔의 고통은 없었지만, 신체의 절단은 풀포션으로도 회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싸울 수는 있었다. 오른팔이 있기에.
김도은을 돕기 위해 몸을 일으키자, 누군가 뒤쪽에서 말을 걸었다.
“안이 씨. 그냥 누워 계시는 게 어떻습니까?”
김영광이었다.
두 사람이 같이 온 것은 알고 있었다.
급하게 달려온 김도은과 달리, 속도가 조금 느렸던 김영광이 뒤늦게 도착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역시 오셨군요. 다행입니다. 혼자서는 꽤 벅찼거든요.”
“……왜 이렇게 무리를….”
“저, 오른손잡이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후…. 일단 클리어부터 하시죠.”
두 사람을 성장시키기 위해 떠나보낸 나였지만, 결국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명’을 안다는 이유로 혼자서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에 이런 위기를 겪었고, 게이트를 클리어하느라 고생 중인 두 사람을 이렇게 만나게 되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화안금정을 사용해 두 사람의 성장을 확인했다.
이미 한두 개의 게이트를 클리어했는지,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강해져 있었다.
파천신군 윤민에 근접한 강함을 보이는 두 사람이었지만, 두 사람만으로 천마를 처치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행인 점은 김도은의 기습 공격에 천마는 데미지를 꽤 입은 상태였고, 이미 모든 힘을 끌어모은 상태였기에 더 이상의 회복은 없었다.
기회였다.
방어력과 한 방의 위력만큼은 나를 뛰어넘는 김영광이 천마의 공격을 막아서는 동안 김도은이 재빠르게 움직이며, 화살을 날려 댔다.
“네놈들은 무엇이냐!!!”
“알아서 뭐 하게요?”
“안이 씨의 적은 우리들의 적입니다.”
나를 이 정도로 생각해 주는 김영광의 말에 미안함과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찡해졌다.
두 사람이 천마를 상대하는 동안 윤민에게 이동했다.
“스승님, 괜찮습니까?”
“안아. 난 이미 늦었다. 내 남은 공력은 너에게 주마.”
“안 됩니다…. 그럼 스승님이….”
거친 숨을 몰아 내쉬는 윤민이 나의 동의 없이 자신의 남은 공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츠아아아-
“스승님…!!”
“됐다. 너라면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스승의 짐을 너에게 맡기고 가는 것을 용서해다오.”
윤민의 얼마 남지 않은 힘이 나에게 깃들었다.
[능력치가 소폭 상승하였습니다.]
아주 작은 힘이었지만, 나에게 힘을 이양한 윤민이 힘없이 늘어졌다.
“스승…. 님….”
윤민은 나의 부름에 답을 하지 못했다.
모든 기력과 내공을 소진한 윤민의 외형은 장삼풍과 같이 흰 머리칼의 노인으로 변해 싸늘하게 식어 가는 중이었다.
[스킬 [냉정 LV MAX]가 발동합니다.]
스킬 냉정이 발동하자, 슬픔을 느낄 틈도 없었다.
……젠장, 이럴 땐 슬픔을 좀 느끼면 안 되나?
스승의 눈을 감겨 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도은과 김영광에게로 이동하려 했지만, 문뜩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나에겐 영혼 흡수라는 스킬이 있었다.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영혼이 있다면…?
백 명분의 기운을 모아 하나의 영혼을 사역할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
[스킬 [영혼 흡수 LV1]을 사용합니다.]
[영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 게이트는 천마, ‘윤문’의 죄와 벌을 위한 게이트.
그렇다는 건…. 영혼이 존재하는 것은 이 게이트에서 윤문뿐이었다.
내가 사용한 ‘영혼 흡수’ 스킬은 죽은 자의 기운을 흡수하여 능력치를 올릴 수 있고, 백 명분의 기운을 흡수하게 되면 최종적으로 하나의 영혼만을 흡수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즉, 파천신군 윤민의 능력치를 흡수할 수는 있어도 ‘사역’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젠장….
일단, 클리어부터 해야겠다.
이미 무림인의 대부분은 싸늘한 사체가 된 상태였고, 무림 8대 고수와 장삼풍 그리고 파천신군 윤민도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남은 건 천마, 한 사람뿐이었다.
초속 비행을 사용해 한참 전투 중인 김도은과 김영광에게 이동했다.
“후, 도은 씨. 이놈 엄청 강한데요? 안이 씨 팔이 저렇게 된 것도 이해가 갈 정도예요.”
“그러게요. 저 인간은 어디서 또 농땡이 부리느라 안 오는 거예요??”
“하하하…. 다 들립니다.”
농땡이라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고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혼자 무리하게 움직이다 왼팔이 잘려 나간 나였기에, 여기서 깐죽거린다면 김도은의 화살이 내 미간에 박힐 것 같았다.
“크크크……. 형님은 죽은 것이냐?”
“그래. 덕분에…. 그러니까 넌 뒤졌어.”
“입만 살았구나. 네놈의 강함으로는 내게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지금부턴 다를 거야. 그리고…. 한 가지 말해 주자면, 넌 죽고 나서 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
“흥, 남은 오른팔도 잘리기 싫으면, 그만 나불대거라!!”
후웅!!!!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듯, 천마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휘릭!
나는 태극검을 사용해 천마의 공격을 흘렸다.
그리고 나보다 한참은 약했지만, 천마의 공격을 막아내며 치명상을 입힌 장삼풍의 움직임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온몸의 힘을 빼고, 장삼풍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부드럽게 움직였다.
유에서 무로, 무에서 유로.
한쪽 팔밖에 남지 않았지만, 장삼풍이 보여 준 덕에 나는 깨달았다.
태극검의 검의인 후발제인(後發制人)을.
휘릭. 후웅!!
[스킬 [태극검 LV.3]의 LV이 상승하였습니다.]
깨달음을 얻자, 태극검의 LV이 상승해 MAX가 되었다.
무차별로 쏟아지는 천마의 공격을 계속해서 피해 내자, 천마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건…!! 그 노인네가 쓰던…!”
방어만 하면 온종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격에 맞을 것 같으면서도 맞지 않자, 천마가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그 순간이었다.
김영광이 기합을 내며 천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랴아아아아!!!!”
“이…. 이런…!?”
쾅!!!!
엄청난 몸통 박치기에 천마가 지상에 처박혔다.
“크…. 크윽….”
그리고.
김도은이 오호를 사용해 산탄시를 전개했다.
쿠콰콰콰쾅!!!!!!
“크허억….”
고슴도치가 된 천마가 고통에 신음하자, 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무쌍 난무와 파천 신공을 사용해 검기를 때려 박았다.
콰콰콰쾅!!!!!
“이럴 수가…!!! 이…. 내가…!!!”
“인제 그만 뒤져라, 제발. 좀비냐?”
“질 수 없다!!! 드디어 무림 지존이 되었거늘…!!!”
천마가 처절하게 외쳤지만, 분노한 김도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내 왼팔이 잘려 나간 것에 분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이잉.
봐주지 않겠다는 듯.
김도은이 화살촉에 거대한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무리 부탁해요.”
김도은의 배후성인 ‘달과 순결의 상징’의 성흔, ‘달의 정기’였다.
화살촉에 달의 정기를 모아 한 방에 발사하는 것.
이것이 ‘달과 순결의 상징’, <올림포스>의 주신격 ‘아르테미스’가 김도은에게 하사한 성흔이었다.
일반적인 마력을 모으는 것이 아닌, 위성인 달의 정기를 끌어모은 것.
파괴력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후웅!!!
쿠콰쾅!!!!!!
“커허…. 억….”
김도은이 나에게 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천마에게 날아간 화살과 동시에 출발한 나는 김도은이 발사한 성흔이 천마의 몸을 꿰뚫는 순간, 오른손에 쥐어진 용광검을 사용해 천마를 강하게 베어 냈다.
“너….”
무언가 말하려던 천마였지만, 천마는 말의 끝을 맺지 못한 채 바닥에 고꾸라졌다.
털썩.
[‘S’급 이세계 게이트가 클리어되었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
.
.
[기여도 정산을 시작합니다.]
[1. 이안 / 2. 김도은 / 3. 김영광 ]
[기여도 1위의 보상으로 보유한 스킬 중 아래 목록의 한 가지를 택하여 스킬을 진화시킬 수 있습니다.]
[1.[냉정 LV MAX] 2.[강렬한 눈빛 LV MAX] 3…….]
[게이트가 10분 뒤 소멸합니다.]
화안금정이나 선인의 기운 같은 스킬은 목록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보유 중인 용사의 패기를 진화시켰다.
단 10분이었지만, 버프의 효과는 선인의 기운과 사용했을 때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스킬 [용사의 패기 LV MAX]가 [선인의 격 LV.1]으로 진화합니다.]
선인의 격…?
신선들에게 수행을 받아서인지, 용사의 패기는 선인의 격으로 진화해 더욱 강력한 버프 스킬이 되었다.
스킬 명 : 선인의 격 LV.1
스킬 설명 : 선인의 힘을 극대화 시켜 자신의 모든 능력치를 230% 상승 시킬 수 있다.
# LV이 상승할수록 버프의 효율과 시간이 높아 진다.
# LV이 상승할수록 재사용 시간이 줄어듭니다.
# 재사용 시간이 존재합니다 – 6시간
1레벨부터 230%라고…? 사긴데…?
기존 용사의 패기의 LV이 MAX였을 때 200%여서인지, 진화를 이룬 선인의 격은 230%가 되어 무려 30%나 버프의 성능이 올라 있었다.
선인의 기운과 사용한다면, 앞으로도 주력 스킬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두 분 덕분에 클리어했네요. 하…. 하하…….”
“…….”
“안이 씨…. 아마 혼날 겁니다….”
“그렇겠죠…? 나가서 혼나면 안 될까요…?”
게이트의 소멸까지 남은 시간은 8분.
이 시간 동안 나는 할 일이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윤민과 장삼풍 등 무림인들을 묻어 줄 시간은 없었다.
빠르게 이동해 윤민과 장삼풍 그리고 아미파의 대사저에게 간단하게 목례를 했다.
죽은 사람들이 꽤 많았기에 일일이 모두에게 인사할 수는 없었지만, 이 세 사람에게만큼은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었다.
영혼이 없다면…. 이들은 대체 뭘까…?
간단한 목례를 한 나는 천마의 사체 앞으로 이동했다.
“이거…. 되기만 해 봐.”
[스킬 [영혼 흡수 LV.1]을 사용합니다.]
[영혼이 확인되었습니다.]
[영혼의 크기가 작습니다. 사역하시겠습니까?]
수락.
[‘윤문’의 영혼이 사역되었습니다.]
[사역된 영혼은 사역사의 명령에 <절대복종> 합니다.]
[영혼의 크기가 작아 사역된 영혼에게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사역사의 힘이 강해질수록 페널티가 제거됩니다.]
[영혼의 크기를 회복할수록 본래의 힘을 되찾습니다.]
[해당 게이트는 영원한 소멸에 빠집니다.]
영원한 소멸…? 아무튼 윤문…. 넌 뒤졌다.
페널티와 영원한 소멸이라는 단어에 당장은 관심이 없었다.
단순히 천마, 윤문의 영혼이 내게 사역되었다는 확정 메시지만 들렸을 뿐이었다.
알 수 없는 것을 생각해 봤자, 답도 없었기에 윤문이 사역되었다는 것에 큰 만족감이 들었다.
[게이트가 소멸합니다.]
[현계로 전이됩니다.]
파앗!!
* * *
“후…!!! 두 분 갑자기 고생 많았습니다.”
“잔소리 좀 들어야죠?”
“아니, 도은 씨…. 잠시만요….”
“왜요.”
“할 일이 있습니다.”
“뭔데요. 해 봐요.”
아무래도 그냥은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김도은을 뒤로 한 채, 나는 사역한 영혼을 소환했다.
[현재, 사역된 영혼은 1개체입니다.]
[영혼을 소환합니다.]
화악!!
소환된 영혼은 천마인 ‘윤문’의 영혼이었다.
“……?”
“안녕?”
“네… 네놈은…!?”
[해당 영혼의 이름을 지어 줄 수 있습니다.]
윤문.
[사역사에 의해 해당 영혼의 이름은 ‘윤문’으로 각인되었습니다.]
빌어먹을 새끼. 라고 지어 주고 싶었지만, 그래도 스승인 윤민의 친동생이었기에 윤문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지어 주었다.
“우리 할 이야기가 많지?”
“어떻게 이럴 수가…!!!”
윤문이 작아진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돌아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너… 다 기억나지?”
“무… 무엇을 말이냐…?”
“말하는 것 보니, 기억하는 거 맞네.”
영혼이 소환된 윤문의 몸은 페널티인지, 영혼의 크기가 작아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게이트에서 봤던 모습이 아닌, 13~15살 정도로 돼 보이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나는 <절대복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일단……. 대가리부터 박자.”
“뭐…. 뭣…!?”
쿵.
“이… 이럴 수는 없다…!!! 나는 천마란 말이다…!!! 난 무림 지존이다!!!”
“머리 박고 그런 말 해 봤자, 하나도 안 무섭거든?”
<절대복종> 덕분인지, 당황하던 윤문이 소리를 버럭 질러 대면서 땅바닥에 머리를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