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32화 (32/206)

제32화

경공술을 사용해 이쪽으로 날아오는 장삼풍의 모습에는 몇 년 만에 친우를 본다는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

윤민과는 달리 머리카락과 수염이 하얗게 센 노인의 모습을 한 장삼풍이었다.

“윤민, 이놈아!! 잘 있었느냐!?”

“삼풍아!!!”

내공을 사용해 젊은 모습을 유지하던 윤민이었기에 ‘삼풍이’라고 하니, 뭔가 느낌이 묘했다.

두 사람이 반가움에 서로를 끌어 안…… 지 않네…?

후웅!!!

촤라락.

다짜고짜 주먹다짐하는 두 사람의 표정은 그저 신나 보였다.

“두 분 힘 빼지 마시죠?”

“홀홀, 자네, 무사할 줄 알았네.”

“이놈, 삼풍아! 조용히 살려 했더니 말년에 무슨 제자냐!!”

“홀홀홀. 보아하니, 애지중지 키운 게 눈에 훤하구나! 이놈.”

역시, 장삼풍 정도 되는 초고수여서인지, 나의 성장을 한 눈에 파악한 것 같았다.

“맞습니다. 어찌나, 잘 키워 주시던지 지금은 제가 더 강합니다.”

“이놈이…?”

윤민은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라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장삼풍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네놈이 여기까지 어찌 온 것이야?”

“이 소협에게 듣지 않았는가? 천마, 그 애송이를 잡기 위함이지.”

“크크크. 걱정하지 마라, 삼풍아. 이놈은 강하다. 우리가 끼어들 틈도 없을 것이야.”

“과찬이긴 하지만….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괜히 나의 강함을 의심하거나, 천마에게 쫄아서 한 말이 아니었다.

주화입마에 빠져 폭주하는 천마가 중원에서 날뛰기 시작하면, 천마 신교의 교도들도 모두 참전할 것이었다. 교도들에게 천마는 숭배의 대상이자, 신과 같은 존재. 그들에게 전쟁의 이유는 없었다. 천마가 주화입마에 빠졌든, 안 빠졌든 자신들의 신이 움직인다면 그들도 목숨을 걸고 움직일 뿐이었다.

“아시다시피, 천마 신교의 교도들도 같이 움직일 겁니다. 스승님과 장 진인께서는 무림의 고수들을 이끌어 천마 신교를 상대해 주셔야 합니다.”

“흠…. 그렇긴 하겠군. 그 광신도 놈들을 생각하지 못했군.”

“그리고….”

“음?”

“이 소협. 뭔가 더 원하는 게 있는 겐가?”

나는 그동안 생각해 온 방법 중 한 가지를 두 사람에게 일러 주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사체들의 산이 쌓이기 시작할 겁니다. 최대한 많이…. 그 시체들을 한곳에 모아 주세요.”

“음…? 사체를 가지고 무얼 할 생각이냐?”

“아직은 확실치 않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죽은 자를 모욕할 생각은 없습니다.”

“흥, 네놈이 그렇게 말한다면, 분명 이상한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겠지. 알겠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홀홀, 그럼 움직이는 게 어떤가? 무당파의 제자들은 모두 움직이기 시작했다네. 이미 한바탕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것이야.”

윤민과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천마가 있는 장소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삼풍이 말하는 무당파의 제자들이 벌써 죽어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두 사람은 초고수의 반열에 든 만큼 경공술이 가히 예술이었고, 속도도 나의 초속 비행에 밀리지 않는 속도였다.

대단한데…?

아무리 경공술이 뛰어나도 시스템의 절대력이라는 게 있었다.

그래서인지 평생을 수련한 경공술이라 할지라도 시스템을 통해 획득한 초속 비행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너, 그거 경공이 아니구나. 처음부터 이상한 놈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볼수록 더 이상한 놈이군….”

“홀홀홀, 아직 듣지 못한 게로구나?”

“뭔데?”

“나중에 이 소협에게 직접 듣게나.”

천마를 향해 날아가면서도 자신만 빼놓고 무얼 숨기고 있느냐 말이 많은 윤민이었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윤민에게 당장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걸 알리지 않은 이유는 한 가지였다.

자신의 첫 제자가 이곳 무림의 어딘가에서 살아 있다고 생각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나를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천마가 난동을 부리는 장소에 도착하자, 저 멀리서 각 문파의 무림인과 천마가 전투를 벌이는 것이 보였다.

다구리에 장사 없듯, 지금이라면 천마를 몰아붙일 수 있었다.

“두 분 가시죠. 아직 천마 신교는 오지 않은 듯합니다.”

“홀홀, 우리가 지면 이곳은 이제 사라지겠구나.”

“이놈 장가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아라. 설마 우리가 천마 저 애송이에게 지겠느냐?”

“홀홀홀, 네놈도 혹시 몰라 이 소협을 가르쳐 놓고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그건…….”

“됐습니다. 가시죠.”

쓸데없이 언쟁을 벌이는 두 사람을 두고 천마에게 이동했다.

“같이 가자 이놈아!!”

꽤 근접하게 천마에게 도달한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미, 이곳에 모인 문파의 상당수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난장판이군….”

파천신군 윤민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에게 말했다.

“스승님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뭐가?”

“저놈이요. 천마인지 당나귀인지 하는 저놈.”

“아아, 네놈 말이 맞는 것 같다. 느껴지는 기운만 봐도 이 무림에는 존재할 수 없는 사악함이 묻어 있다. 애송이의 강함은 이미 나와 삼풍이를 뛰어넘은 듯하고….”

“의식도 없죠.”

“그렇군….”

천마가 주화입마에 빠져 폭주했다고는 하나, 무림계에서 내공의 폭주로 인한 주화입마와는 달랐다.

혹시….

나의 머릿속을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관리자…?

단순히 내 생각으로만 할 수 있는 예상이었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힘을 갈구하는 천마를 달콤한 말로 속여 카르마의 강탈을 위해 계약했다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나의 예상이 맞다고 한들,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이것은 단순한 나의 가설일 뿐이었기 때문에.

저 멀리 사람들을 학살하는 천마가 보였다.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다. 광기에 사로잡혀 본인의 의식도 없이 그저, 죽이기만을 반복하는 살인귀의 모습이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용광검을 들어 천마에게 질주 스킬을 사용해 달려 나갔다.

후웅-!!

질주 스킬의 LV은 이미 MAX 상태였기에 엄청난 속도로 자신에게 돌진해 오는 나를 본 천마는 본능적으로 나의 검을 피해 냈다.

“……?”

“뭐, 왜?”

“크흐…. 크으으…….”

검은색의 긴 머리를 산발한 천마는 두 눈이 하얗게 뒤집혀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었다.

정신도 못 차리는 와중에 윤민을 포함한 무림인 전부를 쓸어버리는 마공의 강함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천마는 자신의 원수라도 만났는지, 나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파천신군 윤민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적의를 품은 것 같았다.

자신이 동경하고 평생을 따라잡기 위해 악을 쓰며 노력한 결과의 최종 목표.

파천신군 윤민.

나는 천마를 보며 말했다.

“난 파천신군 윤민의 제자 이안이다. 넌 내게 죽을 테니, 그 마공을 익혔음에도 내 스승님을 못 이긴 게 되겠지. 이번에는 말이야.”

“크…. 크흐…. 크르르….”

내가 하는 말은 못 알아듣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천마는 들었을 것이다. 나의 말 중에 ‘파천신군’이라는 말을.

“망할 새끼. 넌 이 검도 아깝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용광검을 그대로 아이템 창에 집어넣었다.

검을 집어넣은 이유는 간단했다.

수없이 반복된 이 게이트 속에서 윤민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무림계의 1인자인 윤민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제자였기에.

“스승님의 무공으로 네 쌍판을 아주 완벽히 뭉개 줄게. 기대해. 쉽게는 안 뒤질 거야.”

“크흐으……!!”

어느새 내 등 뒤로 다가온 윤민과 장삼풍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제자야, 도움은 필요 없지? 힘내라!!”

“이 소협. 노인네는 끼어들지 않겠네. 홀홀홀.”

끼리끼리 논다더니, 두 사람의 성격은 다르면서도 어떠한 부분은 아주 비슷했다.

망할 노인네들.

곧 시작될 전투에 긴장감이 흘러들어 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는지, 주변의 각 문파에 속한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난입에 긴장한 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누구지?”

“저…. 저놈은…?”

‘저놈’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야, 우리 원규 잘 있었니?”

“네…. 네놈은…!! 비겁한 마교 놈이 아닌가…!!!”

“그건 네 생각이고. 나 마교 아니거든?”

이 상황에서 마교도로 오해를 산다면, 상황은 반대가 될 것이 뻔했다.

천마 신교의 천마와 함께 무림인을 멸망시키는 것은 내가 될 것이었다.

이 부분을 눈치라도 챘는지, 장삼풍이 나서 무당파의 앞을 가리며 말했다.

“내 친우의 제자이니, 오해는 그만하거라. 원규야.”

“스승님…?”

“삼풍이 제자들은 너무 고지식해서 문제야.”

“홀홀홀, 네놈 제자의 실력을 이 늙은이가 확인해 보도록 하마. 윤민 이놈아!”

“크크크. 재미난 구경이 될 것이다. 단 20일 만에 내 강함을 따라잡은 미친놈이니.”

아무래도 윤민의 기대치는 극에 달한 것 같았다.

이해는 하지만….

이런저런 대화에도 천마는 정신을 잃기 전, 본능이 말이라도 해 주었는지 나를 향해 덤벼들지 않고 있었다.

뇌리에 깊이 박힌 본능은 무서운 법이었다.

나는 천마와의 전투에 앞서 모든 버프 스킬을 사용했다.

스아아-

푸른색의 아우라가 전신을 감싸더니, 왼쪽 눈이 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짙어진 아우라는 나의 강함이 어느 정도로 성장했는지를 한눈에 보여 주고 있었다.

“저 새끼…. 실력을 감췄군.”

“홀홀홀, 윤민 네놈을 뛰어넘었다더니, 거짓이 아닌 모양이야.”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 나는 윤민과의 수행에서 10일간은 두들겨 맞기 바빴다.

이후 5일간 윤민을 따라잡기 시작했고, 남은 5일 이미 윤민의 강함을 넘어서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윤민은 나의 전력을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나는 내 예상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슈욱-

앞으로 치고 나간 나는 순식간에 천마의 앞에 도달했다.

“크르르…?”

“네가 늑대야? 왜 자꾸 크릉크릉거리는 건데?”

파천 신공을 사용하기 시작한 나는 권법과 각법을 적절하게 섞어 가며, 천마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쾅!!!

후웅!

천마는 평생을 수련한 몸.

온전한 정신은 아니었지만, 나의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몰아치는 윤민의 파천 신공은 그렇게 허접스러운 무공이 아니었다.

콰쾅!!!!

아직까지 천마는 강하지 않았다.

장삼풍과 윤민 두 사람이 달려든다면, 지금 당장은 처치하는 것이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게이트 속 이야기는 그 흐름이 정해져 있었다.

[쿵! 쿵! 쿵! 쿵!]

어디선가 전장에서나 들릴 법한 거대한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왔구나.

천마 신교의 교도들이 다섯 가지 색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전장에 나서기 시작했다.

“스승님!!”

“오냐!”

예측한 부분이었다.

장삼풍과 윤민은 나와 천마의 전투를 방해하지 않고자, 이 장소에 모인 모든 무림인을 이끌고 천마 신교를 막아서기 시작했다.

“나, 파천신군 윤민을 따르라!!!!!!”

[무림 지존, 파천신군 만세!!!]

[우와아아아!!!!!!]

윤민이 은거한 지 10년이 지났다고는 하나, 파천신군 윤민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그리고.

천마 신교의 교도들은 울려 퍼지는 북소리에 맞춰 한목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천마 신교의 천(天) 천마를 위하여!!]

[천마 신교의 신(神) 천마를 위하여!!]

[이 한목숨 천마를 위하여!!!]

천마 신교의 교도들은 미리 대사라도 적어 놓은 듯 같은 말을 동시에 외쳤다.

[우와아아아아아!!!!!!!]

무림인과 천마 신교 양측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신호탄을 쏘아 내자, 서로를 잡아먹을 듯 자신들의 병장기를 높이 치켜들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하나의 세계를 멸망에 빠트린 무림계 이세계(異世界)의 최후의 전쟁인 천무대전(天武大戰)이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