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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31화 (31/206)

제31화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 윤민의 표정이 볼 만했다.

가벼운 주먹을 툭 가져다 댄 정도였지만, 한 방은 확실하게 맞춘 셈이었다.

턱이 돌아갈 정도로 쳐야 했는데 아쉽다…….

싸가지가 없는 윤민의 턱을 돌려 버리고 싶은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온몸의 힘이 빠져 가져다 댄 정도가 한계였다.

“하? 이놈 진짜 재밌네. 좋다.”

“제자로 받아 주시는 겁니까?”

지금까지 장난기가 넘치던 윤민이 한껏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세간에 파천신군이라 불리는 윤민이다. 제자는 구배지례(九拜之禮)의 예를 갖추거라.”

본래 무림인은 스승을 아버지와 같이 모셨고, 의협심과 예의는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파천신군 윤민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줄 알고 있었다.

나는 탈진하기 직전의 몸을 일으켜, 윤민을 향해 아홉 번의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절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제자, 이안. 스승님을 삼가 하늘처럼 모시며, 아버지처럼 우러러볼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일어나라.”

“예.”

자리에서 일어나, 윤민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뭘 봐?”

“……하실 말씀은 없는 겁니까?”

“해야 돼?”

“스승으로서 모범을 보이고, 나의 모든 것을 전수해 주겠노라. 같은…?”

“너 이 새끼…….”

탁!!!

어처구니없다는 듯, 윤민이 나에게 다가와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치며 말했다.

“영약을 잘못 처먹었냐?”

“…….”

멸망 이전에 본 무협지에서 제자는 스승을 아버지와 같이 모셨으며, 스승은 제자를 아끼고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해 주었다.

아닌가…?

“아니면 말고요.”

“너 하는 거 봐서. 잘 배우면 그럴 수도 있고.”

“좋습니다. 그 말 꼭 지키길 바라겠습니다.”

“평생 살 것도 아닌데, 죽기 전에 제자 놈이 날 뛰어넘는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

“말은 그럴싸하네요. 질 생각 없으시면서.”

“크크크.”

마치 약이 오르면 자신을 이겨 보라는 듯, 윤민이 약을 올리며 나를 향해 웃었다.

애초에 나의 목적도 파천신군 윤민의 강함을 뛰어넘는 것.

시스템이 있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지금 당장이야 윤민과 나의 격차는 능력치로만 보았을 때, 약 세네 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지만, 못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뭐부터 할까요?”

“밥.”

“네?”

“배고프니까 밥부터 하라고.”

정말이지…… 스승이고 나발이고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 수 없었다.

싸가지가 밥통인 스승 새끼……. 강해지기만 해 봐라.

“꼬들밥 좋아하십니까…?”

“오냐. 쌀은 저쪽에 있다. 반찬은 알아서 내오고.”

윤민의 간략한 설명에 부엌으로 들어가 밥을 하기 시작했다.

혼자 지내 온 세월이 길어서인지, 나름대로 식재료가 쌓여 있었다.

“드시죠.”

“오, 제법 그럴싸한데? 네놈도 먹어라. 배가 든든해야 나의 수행을 따라올 테니.”

“제가 차렸지만, 잘 먹겠습니다.”

“망할 놈. 한 마디를 안지는군.”

윤민과 나는 조촐하게 차린 식사를 하며, 대략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정체까지는 몰랐던 윤민이지만, 무언가 수상한 느낌이라도 받았는지 이것저것 캐묻는 것에 알려 줄 수 없는 부분을 제외하고 대부분 설명해 주었다.

장삼풍에게 말했던 것과는 다르게, 현계의 이야기는 대부분 제외한 채.

“하…? 그러니까, 네놈 말은 내가 천마 그 애송이한테 진단 말이냐?”

“네. 확실합니다.”

윤민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마공은 나조차도 손대지 못하는 것이다. 하물며, 나보다 약한 애송이가 손을 댔으니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겠군….”

“알고 계신 겁니까?”

“당연히 경고도 했었다. 천마 그놈은 나를 따라잡기 위해 힘에 너무 심취했다. 기어코 그 마공에 손을 대다니.”

장삼풍의 말과 비슷한 대답을 하는 윤민이었다.

마공의 존재는 이들 모두가 알고 있었고, 무림의 1인자인 윤민조차 손대지 않을 마공을 천마는 손을 댄 것이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파천신군 윤민의 강함을 따라잡기 위해서.

“네놈은 애송이의 무공과 나의 무공이 왜 비슷한 줄 아느냐?”

“뻔하죠. 처음엔 스승님을 동경했고, 강해지기 위한 목표로 삼았기에 스승님이 창안해 낸 무공을 본뜬 것이겠죠. 이름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맞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히지 않자, 과도한 욕심에 마공에 손을 댄 것이겠지.”

“그 마공의 약점은 없습니까?”

“나도 모른다. 배운 적도 없거니, 관심도 없었으니까. 이곳에서 은거한 지 벌써 10여 년이 흘렀는데, 내가 무얼 알겠느냐.”

윤민의 말이 맞았다.

이유야 알 수 없었지만, 윤민은 10년간 은거하며 아주 가끔 연락한 사람은 장삼풍 한 명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강호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극히 없을 것이 분명했다.

“따라 나오너라. 내가 네놈을 나만큼 강하게 만들어 주도록 하지.”

고개를 끄덕인 후, 나는 윤민을 따라나섰다.

“지금부터, 먹고 자고 싸는 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수행에 들어가겠다. 할 말 있느냐?”

“없습니다. 원하던 바입니다.”

“좋다. 일단은……. 한 번만 보여 줄 테니, 잘 보고 배우거라.”

수행에 앞서 윤민은 자신의 무공을 하나하나 펼쳐 내기 시작했다.

파천 신공.

파천신군 윤민이 창안해 낸 무공.

천마조차도 그런 파천신군의 강함을 동경해 본떠 만든 것이 천마 신공이었다.

쿠구구구구.

“해 보아라.”

파천 신공의 모든 초식을 최종식까지 사용한 윤민은 무공을 사용해 흙먼지를 거둬 내며 나에게 말했다.

이미 천마 신공을 본 윤민이었지만, 설마 자신의 무공을 익히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천마는 천마 신교 교도들에게 자신의 무공을 전수했지만, 파천신군 윤민은 제자도 연인도 없는 외톨이였다.

그 누구도 그의 무공을 배울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윤민의 무공과는 다른 위력이었지만, 나는 스킬 [파천 신공 LV.1]을 사용해 윤민이 펼쳐 낸 초식을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스킬의 LV이 1이였기 때문에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따라 하는 시늉만 한 것이지만, 윤민의 두 동공이 커지고 있었다.

“……너 천재냐?”

“아닙니다.”

“어떻게……. 최종식은 나조차 완성을 못 시킨 초식인데…. 그걸 한 번에 보고 따라 한다고…?”

말도 안 된다는 듯, 윤민의 표정이 아주 볼 만했다.

한 방 먹이는 건 먼 훗날의 일일지라도, 놀라는 표정을 보니 뭔가 속이 시원하기는 했다.

“가르칠 보람이 있는 놈이겠구나. 좋다. 지금부터 네놈이 말한 20일간, 죽어라 수행시켜 주마.”

곤륜산의 수행을 이미 겪어 본 나였지만, 무림인들의 수행은 뭔가 심오한 부분이 있어 힘듦에 있어서 강도는 비슷할 것 같았다.

그렇게 윤민과 나는 수행을 시작했다.

* * *

게이트의 시간 괴리로 현계에서의 시간이 4일 지난, 이곳에서의 시간이 20일이 흘렀다.

“하! 내가 몇십 년을 고생고생해서 얻은 걸 벌써 따라잡아? 너 진짜 미친놈이냐?”

“무슨 칭찬을 그렇게 과하게 하십니까?”

수행은 순조로웠다.

시스템의 덕분인지, 수행하는 내내 몬스터를 잡지 않았음에도 능력치의 상승이 이루어졌고, 스킬의 LV도 MAX가 된 지 오래였다.

“제 덕분에 파천 신공 최종식을 완성하셨으면서, 뭘 그러십니까.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지.”

“재수 없는 새끼.”

20일간 계속된 전투에 대부분의 스킬이 MAX LV에 도달했지만, 한 가지 의아한 점은 매력 발산이나 강렬한 눈빛의 LV이 왜 올랐는지였다.

망할 스킬….

“네놈이 말한 시간인 것 같은데, 가기 전에 한 판 붙어야지?”

“바라던 바입니다.”

20일간의 수행의 10일 정도는 윤민에게 두들겨 맞기 바빴다.

죽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윤민이 준 영약과 시스템을 활용해 강해진 나는 이제는 지지 않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길 정도였다.

“영약의 기운은 모두 흡수된 것 같고. 너 그거 어디에 가도 쉽게 못 구하는 거 알지?”

“스승님한테 많던데, 그냥 잡초 아닙니까?”

“크크크. 그 스승의 그 제자인가??? 역시, 너는 미친놈이 맞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파천신군의 말에 동의합니다.]

대부분의 성좌는 수행이 지루하다며 나를 지켜보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나의 배후성은 자신의 후원자라고 끝까지 지켜봐 주었는데, 나름 고마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켜보지 않았어도 상관은 없었지만.

“별말씀을.”

“그럼, 덤벼라.”

전력을 다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대부분의 버프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화안금정만을 사용해 윤민에게 맞서기 시작했다.

후웅!!!

윤민이 파천 신공을 사용해 나를 공격했고, 나는 화안금정의 효과로 공격들을 간단히 피해 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공격이 급소를 향해 쏟아졌지만, 이제 더 이상 윤민의 공격은 나에게 닿지 않았다.

“스승님, 이러다 제자 놈한테 지겠습니다?”

“망할 놈의 새끼. 그렇게 좋냐?”

본래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시스템이 인간들에게 있어 얼마만큼 사기적인 강함을 주고 있는지, 새삼 다시 한번 느끼는 중이었다.

나보다 서너 배는 강했던 윤민을 고작 20일 만에 따라잡은 것이다.

버프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윤민의 강함을 넘어서고 있었다.

“다시 갑니다!!”

윤민과 나의 전투는 서로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윤민과 나는 마치 ‘내가 추는 춤이 더 아름답지?’, ‘아니야. 그것보단 이게 낫지 않아?’ 라는 듯,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스승님, 이쯤 하시죠?”

“크하하. 내 살다 살다 나를 뛰어넘는 제자 놈을 볼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뿌듯하지 않습니까?”

이제는 윤민의 공격에 나가떨어지지 않는 내가 깐죽거리며 물었다.

“그래, 이놈아. 이런 기분은 처음이구나. 정말 뿌듯하다. 이리 와라.”

그저, 싸가지 없는 저 윤민의 얼굴에 죽빵을 날려 주고 싶은 생각이 내내 들었던 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인간의 몸으로 이 정도의 경지까지 오른 윤민에게 경외심이 들었다.

그리고……. 스승으로서의 존경심마저 들었다.

“뭐 하시게요?”

“이걸 먹어라. 마지막 영약이다.”

“이게 뭡니까?”

“만년 하수오라고 수련 중 내공을 증진하기 위해 마지막에 먹으려고 아껴 둔 것이다. 네놈에게 주도록 하마.”

“…….”

“어서 먹어라. 제자에게 주는 마지막 이별 선물이니. 네놈은 천마를 잡으면 아주 먼 곳으로 가야 한다지 않았느냐?”

“맞습니다. 그럼….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윤민이 준 ‘만년 하수오’의 생김새는 단순히 호박잎 같은 외형에 평범한 나뭇잎처럼 녹색이 아닌 붉으면서 금빛을 띠고 있었다.

처음에는 영약의 효능에 대해 의심하던 나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먹을 때마다 능력치의 상승이 있었기에 이제는 의심하지 않았다.

아작.

한입 뜯어 먹어 보니, 맛이 더럽게 없었다.

“빨리 먹어라. 이놈!”

꿀꺽.

윤민이 소리치자, 나도 모르게 만년 하수오를 한 번에 입 안에 욱여넣은 나는 너무나도 맛이 없어 인상을 찌푸린 채 억지로 삼켜 넣었다.

“으웨엑…….”

“크크크. 운 좋은 줄 알 거라. 전 세계를 뒤져도 이런 명약은 구하지 못할 것이니.”

윤민의 말에 곧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여태까지는 단 한 번도 영약을 먹고 시스템의 알림이 뜨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무림계의 영약(靈藥) ‘만년 하수오’를 섭취하였습니다.]

[‘만년 하수오’의 효과로 만독불침(萬毒不侵)의 신체를 획득하였습니다.]

어응…?

나쁘지 않은 효과였다. 아니, 현재 시점에 이보다 좋은 보상은 없을 것이었다.

만독불침. ‘만 가지 독’에 면역이 있다는 뜻으로, 말하자면 어떤 독에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걸 얻어, 기분이 좋아진 나는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

“……혼자 병신처럼 왜 웃고 있는 것이야?”

“하하…. 아닙니다.”

생각보다 이곳 무림계 게이트에서 얻어가는 게 많았기에, 내 ‘명’을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은 아쉬운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스승으로 모신 윤민과 나의 말을 의심 없이 믿어 준 장삼풍은 이 게이트가 클리어되면, 사라질 것이기에… 그리고 어딘가에서 또다시 이 이야기는 반복될 것이었다.

언젠가… 방법이 있을 거야.

이들을 지독한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꺼내 줄 방법이… 분명히….

“스승님. 가시죠?”

“나도?”

“제자가 강해진 거 구경하셔야죠?”

“크크크. 좋다 이놈. 가 보자!”

윤민은 제자가 자신을 뛰어넘었다는 것에 뿌듯했는지, 기분이 몹시 좋아 보였다.

파천신군 윤민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싸가지 없는 무림계의 1인자가 아니었다.

내가 존경하고 우러러볼 수 있는 ‘스승’이었다.

슬슬 시작되겠군….

지금쯤이면 게이트에서 20일이 지났기에, 천마의 주화입마가 시작되어 사람들을 몰살시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강호의 초고수들이 천마를 막기 위해 한곳으로 모이게 될 것이었다.

나와 윤민도 그 장소로 이동하려 할 때였다.

“윤민, 이놈아!!”

멀리서 봐도 누구인지 알아볼 듯한 외형의 노인이 소리를 치며,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장 진인……?”

“어? 삼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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