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29화 (29/206)

제29화

“홀홀홀, 좋네. 자네를 믿어 보도록 하지.”

뜻밖의 대답에 놀라, 장삼풍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싫은가?”

“아닙니다. 뜻밖의 대답이라 잠시 놀라서….”

“위치는 알려 줄 수 있지만, 제자가 되기에는 힘들 것이야.”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좋네.”

장삼풍이 품에서 푸른색의 옥패를 꺼내더니, 나에게 주며 말했다.

“이걸로 그자도 이해해 줄걸세. 원하는 바를 꼭 이루도록 하게나. 다른 세상의 소협이여.”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꼭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홀홀, 보답까지야. 제자들에게는 내가 말을 해 둘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장삼풍이 나의 말을 믿어 준 이유는 알지 못했다.

120살이 넘는 나이에 무언가 깨달음이 있어서였을까?

어째서인지, 욕지거리를 내뱉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의 말을 믿어 주는 장삼풍이었다.

파천신군 윤민의 위치를 들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왼손에 오른 주먹을 가져다 대며 허리와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를 했다.

“홀홀, 그런 인사법은 어디서 배운 것인가.”

“저희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하거든요. 그것을 통해 봤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자네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겠지?”

“맞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곳과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홀홀홀, 알겠네. 기대하도록 하지.”

장삼풍과의 전투가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하며 몸을 돌릴 때였다.

“사… 사부님…!!!”

누군가 급작스레 뛰어와 장삼풍의 안위를 살피고 있었다.

이마에 흐르는 피만 봐도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장원규.

나에게 딱밤을 맞고 이마가 터진 무당칠협의 일원.

“괜찮으십니까!! 사부님!!!”

“홀홀홀, 원규야.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야?”

“마교의 자객이…!!!”

“나?”

자신의 사부님에게 해를 가했을까 정신없이 뛰어오느라 나를 못 본 듯했다.

“너…. 넌!!! 더러운 마교 놈…!!!”

“그러다 또 맞는다?”

“사부님 이자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내 손님이니, 그렇게 알 거라.”

장원규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자신의 사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손님이라니요! 이놈은 마교의 무공을 쓰며, 사부님의 태극검까지 사용한 놈입니다. 그런 자를 어떻게….”

장원규의 말에 장삼풍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홀홀, 원규야.”

“네, 사부님.”

“잠시, 나가 있거라. 아직 못다 한 말들이 남아 있으니, 설명은 나중에 해 주겠으니.”

장원규가 나와 자신의 장삼풍을 번갈아 보며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를 벗어났다.

장삼풍은 이들에게 있어, 아버지와 하늘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사부인 장삼풍의 말은 곧, 이들에게 법과 같았다.

“더 하실 말씀이…?”

장원규의 말에 미묘하게 변한 표정이 뭔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홀홀홀, 태극검을 익혔다니, 그것도 다른 세상에서 기연을 얻은 건가?”

“……맞습니다.”

인자하게 웃던 장삼풍의 표정이 진지해지더니, 나에게 말했다.

“내가 창안해 낸 무공을 익혔으면, 당연히 겨뤄 봐야 하지 않겠는가?”

불안했던 내 느낌은 현실로 변했다.

장삼풍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구석에 보관되어 있던 검을 쥐어 들었다.

“태극검을 사용한다니, 자네도 검이 있지 않은가? 무엇하는가? 어서 뽑지 않고.”

“좋습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투가 아닌, 내가 사용하는 태극검의 이치를 눈앞에서 보고 익힌다면 많은 걸 배울 가능성이 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스릉.

나는 용광검을 빼 들어 장삼풍의 앞에 나섰다.

“오호, 소협은 제법 좋은 검을 가지고 있는군.”

“아직 부족한 게 많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검입니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장삼풍이 자신의 검을 들고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검을 들고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먼저 공격하겠습니다.”

용광검을 강하게 쥔 나는 무쌍 난무를 사용해 검을 휘둘렀다.

내가 공격을 하는 족족 장삼풍이 공격을 흘려 내고, 막아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은 마치 카운터에 당한 것처럼 엄청난 공격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큭…!!”

강렬한 공격에 검을 쥔 오른쪽 손이 저릿해져 왔다.

나는 곧바로 태극검을 사용해 대응하기 시작했다.

태극검의 LV은 2. MAX 상태는 아니었지만, 약하다고는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장삼풍과 내가 태극검을 사용하자, 곧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두 사람은 서로를 공격하지 않고 검을 쥔 상태로 춤을 추듯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홀홀홀, 본래 태극검의 검의는 후발제인(後發制人)이라네.”

“그 말씀은……?”

“태극검은 초식이 없는 검법. 상대도 초식이 없고 자신도 초식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승부를 예측하기가 힘들다네.”

“그럼, 저희의 승부는 나지 않는 겁니까?”

“홀홀홀, 같은 태극검을 사용한다면 그렇겠지.”

나는 태극검의 검의를 더욱 느껴 보고자 버프 스킬을 걸지 않고 나름대로 공격을 펼쳐 보았으나, 단 한 번의 공격도 장삼풍에게 닿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에 당해 바닥에 주저앉은 건 나였다.

“적을 상대할 때 한 걸음 양보하여 그 우열을 살핀 뒤에 약점을 공격하여 적을 제압한다. 이것이 후발제인(後發制人) 태극검의 검의라네.”

[깨달음을 얻어 스킬 [태극검 LV.2]가 [태극검 LV.3]으로 LV이 상승하였습니다.]

어…?

“어떤가, 배울 점이 있었는가?”

“물론입니다. 덕분에 조금 강해진 기분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장 진인.”

“홀홀, 친우의 제자가 된다길래 내 한번 가르쳐 보았네.”

“나 또한 태극권과 태극검을 완전히 익히지는 못하였네. 젊은 자네라면 내가 못다 한 숙원을 이룰 수 있겠지. 기대하겠네.”

처음 보는 나에게 이렇게까지 해 주는 장삼풍의 말에 무언가 찡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뿐이지만, 많은 걸 배웠습니다.”

“홀홀홀, 인제 그만 가 보게나.”

“그럼…. 다시 만나길 기대하겠습니다.”

마지막 인사에 장삼풍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주었다.

죽기 전 한 명의 제자가 새로 생겨 기쁘다는 듯.

무당파의 장삼풍.

120살이 넘는 나이임에도 무림의 초고수 반열에 드는 사람.

끊임없이 자신의 무를 추구해 경지에 오른 자.

무림의 젊은 고수들 그 누구도 장삼풍을 무시하지 못했다.

장삼풍은 모든 이가 우러러보는 현인(賢人)이자 이인(異人)이었다.

장삼풍 덕분에 태극검의 LV도 올랐고,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초속 비행을 사용해 파천신군 윤민에게 이동했다.

* * *

한참을 파천신군 윤민을 향해 날아가던 중이었다.

“죽여라!!!”

“네깟 놈들에게 당할 성싶으냐!?”

무슨 소리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두 무리가 전투를 벌이는 듯했다.

또 뭐야…?

이곳에서 사람이 싸우든, 동물들이 치고받든 내가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1분 1초를 아끼라 말합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싸움을 말리는 게 좋겠다고 말합니다.]

“역시……. 싸움 구경은 해 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나는 조용히 앞으로 날아가 두 무리의 전투를 관전하기 시작했다.

헌데….

두 무리 중 한쪽은 여성으로 된 집단이었고, 다른 한 무리는 검은 의복을 입은 무리였다.

원수라도 되는지, 서로 죽고 죽이며 거친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죽어라. 사악한 마교도들아!!”

“명문 정파도 별거 아니구나!!!”

전투는 무르익어 두 무리에서 죽는 인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나는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내가 이 전투를 구경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싸움 구경이 아닌, 스킬의 실험.

나는 ‘히든 피스’를 얻어 스킬 스탯 흡수를 LV3까지 올려 놓은 상태였다.

문뜩 궁금한 게 있었다.

이 스킬은 몬스터에게만 먹히는 걸까? 죽은 사람들에게는…?

시험해 보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사람을 죽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울 지역의 왕의 자리를 사수하던 24시간 동안 시험해 볼 수도 있었지만,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사체는 안 들고 가겠지…?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또 무슨 허튼 짓거리를 생각하는 중이냐 궁금해합니다.]

계속해서 나를 지켜봐 온 배후성은 무언가 눈치라도 챈 듯, 나에게 메시지를 날리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전투가 막바지에 이르자, 더 이상의 희생을 서로 감당하지 못하겠는지 두 무리는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 마교 놈들이…!!!”

“계집들이 뭐가 이렇게 강한 거야!!!”

“물러나자!! 이대로 가다간 전멸이다.”

“흥!! 건방진 마교 놈들 죄다 죽여 주마!!”

두 무리가 어째서 싸우는지는 대화만 들어도 알 것 같았다.

한 곳은 6대 문파 중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문파 ‘아미파’였고, 다른 한 곳은 ‘천마 신교’의 교도들인 것 같았다.

전투력의 강함을 보아하니, 무당칠협보다 약한 것이 수장들을 제외한 단순한 마찰인 것 같았다.

천마 신교는 어디서나 미움받는구나….

괜히 짠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천마 신교와 문파 간에 오해를 풀어 줄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럴 필요도 이유도 전혀 없었다. 이곳이 게이트이기 때문이었다.

천마 신교의 교도들이 밀리기 시작하자, 자리를 벗어나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아미파의 여인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천마 신교를 뒤쫓기 시작했다.

드디어 갔네.

한참을 기다린 나는 이제야 조용해진 걸 확인한 후 지상으로 내려갔다.

시간을 끌 필요도, 이곳에 오래 머물 필요도 없던 나는 곧바로 천마 신교의 교도들을 향해 스킬을 시전했다.

[스킬 [스탯 흡수 LV.3]을 발동합니다.]

[동족 포식의 효과로 능력치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동족 포식의 효과로 [스탯 흡수 LV.3]가 진화를 시작합니다.]

[스킬 [스탯 흡수 LV.3]가 [영혼 흡수 LV.1]로 진화하였습니다.]

응……?

뜻밖의 이득에 나는 멍하니 시스템의 알림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영혼 흡수의 스킬 효과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스킬 명 : 영혼 흡수 LV.1

스킬 설명 : 동족을 100명씩 흡수할 때마다 영혼을 사역할 기회가 1회 주어집니다.

# 사역을 사용할 시. 다시 한번 동족을 흡수하여 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 당신에게 사역 된 영혼은 영원히 귀속됩니다.

# (스탯 흡수)의 효과가 유지됩니다.

……사기 아니야…?

직접 실험해 보지 않는 이상, 스킬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할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능력치 상승과는 별개로 동족… 그러니까 죽은 사람 100명당 1명의 영혼을 사역할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사역과 함께 스탯 흡수의 효과도 유지되었다.

“개이득인데…?”

스킬을 확인한 내가 남은 사체에 스킬을 사용한 뒤 초속 비행을 사용해 공중에 날아오르려 하는 순간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누구길래 감히 사매들의 사체를 능욕하는 것이냐!!!”

아무래도 무당파에 이어 아미파까지….

귀찮은 상황이 벌어지려는 징조가 강하게 느껴졌다.

아……. 젠장, 능욕은 또 뭔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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