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26화 (26/206)

제26화

능력치나 성흔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 정도의 기운을 내뿜는 임해든을 보니,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제법인데?

그리고…….

잠시 한눈을 팔며 생각을 하던 찰나, 임해든에게 달려든 3, 40대의 남성이 바닥에 고꾸라져 거품을 물고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움직임과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한 임해든을 보니 믿음직스러웠다.

“한 방에…?

“말도 안 돼….”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임해든이 앞으로 나서 말했다.

“더 덤빌 사람이 있으면, 덤벼도 됩니다. 죽이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시고.”

처음 우물쭈물한 모습과는 다르게 제법 기개가 있어 보이는 사내였다.

그렇게 임해든은 다섯 사람을 더 상대했고, 약간의 무리는 한 것 같았으나 문제없이 내가 만든 상황을 종료시켰다.

“후…. 생각보다 빡세네요.”

“역시 제 눈이 틀리지 않았네요.”

“하하…. 합격입니까?”

“네. 제 대역이라고는 하지만 당신한테 맡길 수 있겠습니다.”

임해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그런데도 의심 없이 남은 서울 지역의 사람들을 맡긴 것은 나에게 오는 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템 <확성기>를 다시 사용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분의 힘은 잘 보셨을 테고, 지금부터는 고운 말로만 하지는 않을 겁니다.]

……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엄청난 기운을 내뿜는 서울 지역의 왕.

그리고 자신의 강함을 선보인 임해든.

나와 임해든. 두 사람 앞에 나서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좋습니다. 앞으로 당신들이 따를 자는 이분입니다.]

서로를 모르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눈을 마주치더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에이!! 모르겠다. 좋다!!”

“이렇게 된 거 리더가 있음 좋을 수도 있지!!”

“억지로 명령에 당하는 것보다야…….”

여러 사람이 말하기 시작하자, 곧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정도의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나는 <확성기>를 사용해 말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이분에 명령에 따라 움직일 겁니다. 저는 없는 거로 생각하셔도 좋으니, 임시적이지만 왕은 임해든입니다.]

불만만을 표출하던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어느새 환호성으로 바뀌어 들었고, 곧 그 환호성은 광화문 일대를 우레와 같은 환호성으로 덮어 내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아!!!!!!]

나는 만족한 듯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임해든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당신이 왕입니다. 표식 자체는 저에게 있지만…. 시드를 이용하면 감추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뭘 하면 될까요?”

“마음대로 하세요. 다른 지역을 차지해도 좋고, 서울 지역의 남은 사람들을 지키며 공성을 하셔도 좋습니다.”

“그럼…. 당신은?”

“전, 처음 말한 대로 혼자 게릴라전을 펼칠 겁니다. 아이템을 사용해 왕의 표식을 지우면, 제가 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죠.”

임해든의 표정에서 그게 혼자 가능하냐는 듯 의아함이 묻어 나왔다.

“괜찮을 겁니다. 이 많은 사람 모두와 싸워도 절반은 데리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저는 강하거든요.”

“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네요.”

“그럼, 전 가 볼 테니 잘 부탁드립니다.”

“맡겨 두세요. 당신을 믿어 보겠습니다.”

처음 본 나의 무엇을 보고 믿어 보겠다는 것인지 알지 못했으나, 나 또한 임해든을 믿고 맡긴 상황이었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시스템을 사용해 내가 서울 지역을 벗어나거나, 게이트에 들어가게 되면 왕의 부재로 임시 왕의 권한은 임해든에게 이양되었다.

혹시라도 임해든이 임시 왕인 상태로 다른 지역의 왕에게 자리를 빼앗긴다면, 나는 왕의 지위를 잃게 되는 것이었다.

아주 만약의 일이지만 왕의 자리를 빼앗긴들, 다른 수를 생각해 뒀기 때문에 걱정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저.

임해든이 잘 지켜 주기를.

* * *

임해든에게 서울 지역을 맡긴 나는 여태 치고받는 전투만을 해 왔기에 전투의 가능성을 높이고자, 한 가지 게이트를 클리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임해든에게 임시로 ‘왕’의 자리를 이양한 이유였다.

성장.

나는 ‘명’을 바꾸려면 지금보다 더욱더 성장해야만 했다.

“이쯤인 것 같은데….”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지금의 강함으로는 혼자서 무리일 거라고 합니다.]

어느 게이트를 들어가려는지 눈치를 챈 배후성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도…. 이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저는 지금의 두 배는 강해질 겁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깊은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차피 갈 건데 지가 고민해서 뭐 해?

한참을 돌아다닌 나는 ‘S’등급의 이세계 게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게이트에 입장하려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성흔을 내리겠다 합니다.]

“……? 성흔이요?”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다른 성좌들처럼 공격이나 방어를 하는 성흔은 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유가 있겠죠. 당신이 그동안 저에게 성흔을 주지 않은 이유가.”

그렇다.

나는 아직도 배후성의 정체를 몰랐다.

성흔을 하사받지도 않았고, 그저 계약만을 진행한 상태. 계약으로 인해 내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계약을 맺기 전에 받은 ‘명’을 볼 수 있는 특전과 계약 이후에 생긴 ‘명’을 갱신할 수 있는 특성뿐이었다. 이마저도 내가 갱신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전에 말했던, 시간을 하루 전으로 되돌리는 것은 성흔이 아닌, 자신의 카르마를 이용한 것이기에 단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말합니다.]

“그때 오크 로드와의 전투에서….”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자신이 주는 성흔은 세 번만 사용할 수 있다 합니다.]

배후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각오를 다질 때쯤 시스템의 알림이 울렸다.

[배후성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성흔, [시간 괴리 LV MAX]를 지급합니다.]

스킬 명 : 시간 괴리 LV MAX

스킬 설명 : 모든 게이트의 시간 배율을 현계의 시간보다 최대 5배까지 늘릴 수 있습니다.

# 남은 사용 횟수 3회.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자신의 카르마를 사용해도 성흔의 사용 횟수는 늘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뻘짓거리하다 횟수를 날려 먹지 말라 말합니다.]

“줘 놓고 좀생이처럼 뭘 걱정하십니까?”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하는 짓이 영…. 불안하다고 말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나를 지켜보던 성좌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처음이야 그럴 수 있었다지만 지금의 나는 제법 강해졌다.

더 이상 실수할 생각은 없었다.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다진 나는 눈앞의 게이트에 입장했다.

[이세계 게이트에 입장하였습니다.]

[이곳은 ‘주화입마에 빠진 천마’의 게이트입니다.]

[이 게이트의 등급은 ‘S’입니다.]

[클리어 조건 – 주화입마에 빠져 살인귀가 되어 버린 천마를 처치하세요.]

나는 시스템의 알림을 보며, 성흔을 발동했다.

[성흔, [시간 괴리 LV MAX]을 사용합니다.]

키이이이잉!!!

[현 시각으로 이 게이트 내에서의 시간 배율은 5배입니다.]

성흔을 사용하자, 어디선가 기계음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환한 빛과 함께 시스템의 알림이 나타났다.

“5배면….”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다섯 배가 한계라고 말합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이라 말합니다.]

사용횟수는 적었지만, 나름대로 사기적인 성흔이었다.

현계에서의 하루는 이곳에서 5일.

지금의 강함을 지닌 나조차도 혼자서 깰 수 없었다.

나는 이 게이트에서 최대한의 시간을 사용해 성장할 생각이었다.

최대한으로 성장한 채, 천마를 처치하고 클리어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곳은.

이세계 게이트 중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무림’계 게이트였다.

게이트에 입장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명’에서 본 기억이 있는 게이트였기에, 무언가 새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반갑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보통의 무림과 이곳은 조금 달랐다.

의협심이 있는 것은 비슷했으나, 동양의 무림을 한곳에 모아 놓은 듯. 한국풍의 한복을 입은 사람들과 일본풍의 기모노, 중국풍의 치파오를 입은 사람들이 길을 걷고 있었다. 한마디로 동양권에 속해 있는 나라가 합쳐져 있는 게이트였다.

아무래도 옷부터 사 입어야 할 것 같았다.

이곳에서 눈에 띄어 초반부터 ‘천마 신교’의 관심을 받는다면, 클리어가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주변을 둘러 옷 가게를 찾은 나는 곧바로 옷 가게에서 한국풍의 도포를 구매해 입었다.

나름대로 국뽕이었지만, 그저 가장 멋있어 보이는 걸 구매한 나였다.

옷을 바꿔 입은 나는 느긋하게 근처의 식당에 들러 배를 채웠다.

혼자서 맛있는 걸 먹자니, 임아린과 김영광 그리고 김도은이 생각났다.

사전답사라고 해 두지 뭐….

* * *

할 일들은 많았다.

그러나 마음이 급하면 될 일도 안 될 것으로 생각한 나는 찻집으로 이동해 조금 늘어져 있기 시작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정신 안 차리냐 물어봅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지금 늘어져 있을 때냐고 물어봅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한숨을 깊게 내 쉽니다.]

거참…

적당히 무시할 생각이었지만, 메시지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하……. 다 생각해 뒀으니, 걱정 마세요.”

지금 당장은 ‘천마’를 처치하지 못하는 건 물론, 위치도 알 수 없었다.

결국에는 천마가 수련이나 전투 중에 주화입마에 빠져야 한다는 것인데, 그때까지는 시간이 있었기에 천마에 버금가는 강자를 찾아 수련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든 무림이 통합돼 있듯 이곳에는 엄청난 강자들이 많았다.

각성의 1단계를 넘어서 <환골탈태>를 이뤄낸 나조차도 이곳에서는 열 손가락에 들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므로 나는 이곳에서 천마에 버금가면서 의협심이 강한 강자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한참을 고민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찻잔을 들어 원샷을 때렸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드디어 움직이는 것이냐 물어봅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빨리 움직이라 닦달합니다.]

“왜 이렇게 질척거려요….”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이 게이트에서는 뭔가 재미난 일이 생길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나는 이미 클리어했던 ‘명’과는 다르게 클리어하기로 마음먹었다.

본래 ‘명’에서는 지금의 동료들과 훗날 동료가 되는 사람들이 모여 천마를 단체 레이드 하여 클리어했었지만, 지금은 나 혼자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이 게이트에서 내가 스승으로 모실 단 한 사람.

모든 무림이 통합된 곳의 숨겨진 일인자.

파천신군(破天神君) 윤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