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갑작스러운 난입에 놀란 건, 이성계를 배후성으로 둔 사람과 그의 일행들만이 아니었다.
놀란 것도 잠시. 사람들은 ‘뭐지. 이 븅신은?’이라는 눈빛을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뻘줌해라. 반응 좀 해 주지.
“아저씨 멋있어요!!!”
“아하하. 역시. 내 편은 아린이뿐이야.”
이제 막 시작된 전투였기에, 다친 일행들은 없는 것 같았다.
“다들 무사하시죠?”
“왜 그렇게 신나서 등장하는 거예요?”
“좋은 걸 얻었거든요.”
나는 3단계로 성장한 용광검을 빼 들곤, 서울 지역의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자들을 한 명씩 훑어보았다.
“왕은 전데, 왜 이분들을 공격하려는 거죠?”
“왕이 부재중이라면, 이곳을 지키는 이들은 경쟁자거나, 부하겠지.”
“그래서…. 이유야 어찌 됐든, 처리해야 할 상대였다?”
“당연한 것 아닌가?”
이 자다.
나는 화안금정을 사용해 이성계를 배후성으로 둔 자의 상태창을 살펴보았다.
LV36 – 김민철 / 28살
힘 - 619 / 99999
민첩 – 539 / 99999
마력 – 391 / 99999
체력 - 589 / 99999
LV 포인트 - 0
각성 등급 - 미확정
전용 특성 – 리더의 자질(資質)
배후성 – 조선의 시조
성흔 - [여명(餘命)의 화살 LV.2]
시드 - 1210000 seed
김민철의 능력치는 전체적으로 김영광과 안재훈의 사이쯤으로 보였다.
곧바로 김민철의 일행들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안재훈보다 약한 정도였다.
새삼. 나이도 어린 안재훈이 성운<타카마가하라>의 지원을 받으며,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느끼게 되었다.
얼떨결에 각성도 했는데, 혼자 상대해 봐야겠다.
“왕은 접니다. 덤빌 거면 전부 덤비세요.”
“하…? 자신감이 과한 것 아닌가?”
“네. 지금은 좀 과해도 됩니다.”
“미친놈이…!!”
김민철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신의 일행들에게 손짓했다.
척척. 척.
곧바로 내 주위를 둘러싸는 김민철의 일행들이었다.
“안이 씨, 혼자 상대하신다니요…?”
“실험해 볼 게 있어서요. 세 사람은 멀리 떨어져 구경만 하세요.”
김도은의 시선이 따가웠다.
저 인간이 또 무슨 짓거리를 하려고 저러는지 의구심이 가득 찬 표정이었다.
“다치면 죽을 줄 알아요.”
김도은의 말에 웃음으로 대답한 나는 곧 김민철과 그의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조선의 시조를 배후성으로 뒀다고 해서 당신이 왕이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내 배후성을…!!”
“다른 분도 알아요. 대부분 한국의 유명했던 무장들이 많네요?”
“…네놈…. 정체가 뭐냐?”
“보다시피, 사람인데요.”
[성운, <안락국>이 현재 상황을 관심 있게 지켜봅니다.]
.
.
[성좌, ‘조선의 시조’가 당신을 아니꼽게 바라봅니다.]
[성좌, ‘한반도의 무신’이 당신의 패기가 객기인지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성좌, ‘도술의 대가’가 곧 일어날 전투에 관심을 가집니다.]
.
.
.
곧 벌어질 서울 지역의 패권을 다투는 전투 때문인지, 성운과 성좌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도 한국에 관련된 여러 성좌가.
나는 계속해서 울려 대는 시스템의 알림으로 한 가지를 알아차렸다.
그동안 어딘지 몰랐던, 성운 <안락국>이 한국의 신화를 기반으로 둔 성운이라는 것.
“안 덤빌 겁니까?”
나의 도발에 상황이 극으로 치닫자, 성좌 ‘한반도의 무신’과 성좌 ‘도술의 대가’ 그리고 자신들과 관련이 없음에도 이 전투를 지켜보는 성좌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후회하지 말아라!!”
가장 먼저 전투의 신호탄을 발사한 것은 성좌, ‘조선의 시조’를 배후성으로 둔 김민철이었다.
저 검은….
김민철은 어느새 성좌의 힘이 담긴 이성계의 역사와 관련된 검을 얻어냈는지, 꽤 강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본래, 성좌들이 쓰는 무기나 그 힘을 온전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와 관련된 게이트를 클리어해야만 했다. 문제는 등급이 천차만별이라 역사급 성좌의 게이트라 할지라도 지금 시점에서는 혼자서 얻는 건 절대로 무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게이트의 가짓수가 많은 성좌일수록 후원받는 사람의 강함은 강해질 확률이 높았다.
12과업이나, 기간토마키아의 영웅 등 신화를 기반으로 둔 성좌, ‘반인반신의 영웅’ 같은 신화적인 자를 배후성으로 두면, 그 강함은 곱절이 되는 거나 다름없었다.
역사와 신화는 성좌들의 힘에도 그만큼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더욱 강한 힘을 얻기위해 지나치게 큰 무리를 하거나.
약하지만 더욱 쉽게 게이트를 클리어 해 강해지거나.
강해지는 폭은 달랐지만, 클리어 했을 때는 강함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 게이트를 전부 클리어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신화에 버금가는 수많은 업적을 쌓아 온 역사적인 성좌들도 있기에 예외는 있었지만,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벌써, 그 검을 얻었나 봐요?”
“이 검까지 알다니….”
“알 수도 있죠. 한마디만 할게요. 제 밑으로 들어오세요. 목숨과 성장 그리고 시드는 벌 수 있게 도와드릴 겁니다. 하지만…. 이대로 저와 등진다면, 이 자리에서 죽을 각오를 하셔야 할 겁니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나의 배후성이 선물이라고 넘겨준 힘은 나조차도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힘이었다.
거기다, 고작 1단계의 봉인을 해제했음에도 성운들조차 경계하는 힘.
“왕의 자리를 꽤 오랫동안 유지하고, 이것저것 안다고 우리가 겁먹을 줄 아나 본데?”
“대장. 죽이죠. 저놈 덤비지는 않고 아가리만 둥둥 떠다니는 걸 보니, 그냥 아가리 파이터 아닙니까?”
“맞습니다. 대장. 저놈 독심술이나 그런 걸 전용 특성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수하로 보이는 자들이 한마디씩 하자, 곧 김민철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다. 죽여!!”
처음에 맛보기로 김민철이 혼자 덤볐다면, 이번에는 그의 일행이 한꺼번에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스킬 [태극검 LV.2]을 사용했다.
LV이 2로 상승하자,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공격들의 궤도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검을 사용해 공격을 흘리며, 달려드는 사람들을 간단하게 땅에 처박았다.
쿵!!!
“이 정도로 뭔….”
“헉…. 허억….”
“왜 한 대도 안 맞는 거지…?”
“진짜 독심술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니야!?”
“그놈의 독심술….”
나에게 독심술 같은 건 없었다.
태극검을 활용해 공격 궤도를 파악할 수 있었고, 화안금정의 효과로 능력치와 약점, 스킬 등 전투에 필요한 모든 걸 파악 할 수 있었을 뿐.
“실력을 파악했을 텐데, 계속 덤비는 걸 보니 끝까지 갈 생각인가 보네요. 좋습니다.”
각성으로 인해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하고 싶어진 나는 곧 스킬 [용사의 패기 LV.2]를 사용했다.
[스킬 [용사의 패기 LV.2] 효과로 10분간 모든 능력치가 50% 상승합니다.]
이어서 3단계로 성장한 용광검에 ‘뇌(雷)’ 속성을 부여했다.
파직- 파지직.
내가 든 용광검에서 금방이라도 감전시켜 버리겠다는 듯 노란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뭐…. 저 검 뭐야!!”
나를 향해 병장기를 쥐어 든 사람들이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아직 안 끝났는데?”
나는 곧바로 [선인의 기운 LV.2]를 최대치로 사용해 기운을 전개 시켰다.
스킬 명 : 선인의 기운 LV.2
스킬 설명 : 숨겨진 세계의 신선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운이다. 이것을 얻는 것은 그 과정이 매우 힘들지만, 얻을 수만 있다면 신선들에 버금가는 강함으로 성장할 수 있다.
# 모든 버프 스킬의 제한 시간이 증가합니다.
# 기척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마력이 높을수록 그 범위가 넓어진다.)
# 상대에게 위압을 가할 수 있다. (마력의 영향을 받는다)
# 이 스킬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성장의 폭이 상승한다.
스아아아-
전신에서 푸른색의 아우라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선인의 기운으로 버프 효과가 증대되었고 그와 함께 엄청난 기운에 겁이라도 먹은 것인지, 사람들이 뒷걸음질 치며 물러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격의 차이를 충분히 느꼈을 텐데.”
“이…. 이게 무슨…. 괴물 같은….”
선인의 기운은 버프의 효과를 증대시키고 기운을 감지하는 능력도 있지만, 자신보다 레벨이나 능력치가 낮다면, 간단한 기운만으로도 적을 겁먹게 할 수도 있는 스킬이었다.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가며 김민철에게 말했다.
“이대로 전부 죽게요?”
“……이…. 이 내가 질 것 같으냐!!!”
김민철의 외침에 수하들도 정신을 차렸는지, 나를 향해 다시 한번 덤벼들기 시작했다.
“죽어어어!!!!”
나의 목을 향해 검이 들어오면 그 뒤로 여러 발의 화살이 빗발쳤고, 창을 든 사람들은 나를 향해 긴 창을 질러댔다.
파칭-!
능력치의 엄청난 상승과 함께 <환골탈태>를 이루어 육체의 강화도 이루어진 나였기에, 공격은 먹혀들지 않았다.
화살은 내 몸에 박혀 들지 않았고, 검과 창은 나의 피부를 뚫지 못했다.
“이… 이럴 수가….”
몇 번의 기회를 주었음에도 계속해서 덤벼드는 사람들에게 진절머리가 난 나는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 스킬 [무쌍 난무 LV.2]를 사용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사람들의 팔이 잘려 나갔다.
“크아악…!!!”
“내… 내 팔…!!!”
[스킬 [냉정 LV.3]이 발동합니다.]
갑작스레 발동한 스킬 냉정의 효과로 사람들을 베어내는데 일말의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전장의 중심에서 적들을 베어내듯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무아지경.
팔이 잘려 나가고 다리를 못 쓰게 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스악-
스걱.
툭.
“끄아아악!!!”
“내… 내 팔…!!!”
“다리가…!!!”
사람을 죽이는 것에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사람들을 살려 주며 내 사람이니, 도움이 되느니라며 챙길 수는 없었다.
때로는 강한 힘으로 제압할 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문뜩.
나는 이 스킬 [냉정 LV.3]이 나의 인간적인 면을 크게 앗아 간다고 생각했다.
……
이러면 마치 살인귀 같잖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가면 당신들 전부 죽을 겁니다.”
이들을 향한 마지막 자비였다.
스킬의 효과가 발동되고 있었기에 이들을 베거나 죽이는 것에 감정이 소모되지 않았다.
냉정의 효과가 발동하고 있었음에도, 나는 살인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대로 질 것 같으냐…!!!”
김민철의 자존심은 꺾이지 않았다.
이 정도의 기개와 리더십이 있어야, 이성계를 배후성으로 둘 수 있다는 듯.
휙!
김민철이 갑작스레 최후방으로 벗어났다.
“내가 복수를 해 주겠다. 잠시 막아라!!”
“대장, 그걸 하면….”
“조용히 해. 대장이 결심한 거야!!”
“가자!!!”
남은 대여섯의 사람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후….
한숨을 쉰 나는 달려드는 적들을 베어내고 또 베어냈다.
“하…. 하하…. 이대로 우리가 질 것 같냐…?”
“무엇 때문에 목숨까지 걸고 필사적인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네놈은 모를 거다. 개자식.”
“죽어라!!!”
한쪽 팔이 잘리면 반대 손으로 검을 쥐었다.
한쪽 다리가 잘리면 기어서라도 나에게 공격했다.
왜지…? 왜 이렇게까지 필사적인 거지…?
문뜩 내가 즐겨 읽던 <환생자의 재림>이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무엇을 하던, 어느 삶을 살던 그게 개미든 인간이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 주인공.
그 주인공이었던, 나를 후원해 주는 배후성인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
나는 이들이 이렇게까지 필사적인 것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건 본인의 몫이구나.
저들은 죽어 가는 와중에도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구나.
저들의 목표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지만….
이대로 저들의 팔다리만을 잘라 가며 농락한다면 나는 그저 그런 악당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필사적이지 않았구나…….
내용을 안다는 이유로, ‘명’을 봤다는 이유로 모든 걸 아는 듯이 행동하고 강해졌다는 이유로 오만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저들을 기만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필사적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 나름대로 무언가 사정은 있을거라 생각했다.
‘명’을 바라보고, 살기위해 움직이는 나처럼….
“대장, 지금입니다!!!”
나의 잘못된 생각들을 혼내기라도 하는 듯, 김민철의 일행들이 나의 다리를 붙잡았다.
“……?”
뿌리치려면 뿌리칠 수 있었지만, 나는 멍하니 전방의 김민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후웅-!!!!!!! 쐐애애액-!!!!!
[성좌, ‘조선의 시조’의 후원자인 ‘김민철’이 성흔, [여명(餘命)의 화살 LV.2]을 발동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