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화안금정으로 확인한 안재훈의 친구들은 꽤 괜찮은 성좌가 배후성인 아이도 있었지만, 네 명을 합쳐야 안재훈에 근접할까 말까 한 정도의 강함이었다.
“2차전이야?”
“그만해…!!”
안재훈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자신의 친구들에게 말했다.
“쪽팔리게….”
신검 ‘천총운검’을 사용했음에도 나에게 진 것이 창피하다고 한 것인지, 친구들 앞에서 진 것이 창피하다고 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훗날 안재훈이 성장해 ‘천총운검’을 100% 활용할 수 있다면, 이 전투는 내가 졌을 것이다.
물론, 나 또한 지금의 내가 아니겠지만.
“인제 그만 덤빌 거지? 덕분에 사람들은 죄다 도망가고 좋네.”
“아저씨, 뭘 먹고 그렇게 강한 거야? 성흔에 신기까지 사용했는데….”
“나? 있어. 그런 게.”
현재의 난 인간 중에서 강할 뿐. 성좌들에 비하면 발톱에 때만도 못한 존재였다.
그런데도 내가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임아린이 안재훈의 폭주를 저지했고, 그 빈틈을 공략해 능력치의 차이로 찍어 누른 것뿐이었다.
스킬 [스탯 흡수 LV.1]로 인해 나의 능력치는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 1.5배에서 2배가량은 높았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단순한 능력치의 격차로 찍어 눌러서인지, 최근에 얻은 선기 용천검도 박살이 나고 말았다.
단 한 번 사용한 무기였기에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꼬마들, 이제 아저씨 말 들어야지? 아니면, 단체전으로 맞아 봐도 되고”
“…… 됐어요. 나 혼자서도 이놈들 다 이기는데, 날 이긴 아저씨를 어떻게 이기라고.”
“그럼, 앞으로 아저씨 말 잘 듣자? 내가 왕 돼서 너희 보고 ‘자살해!’라고 하면 어쩌려고”
안재훈이 강하다고는 하나, 아직 주민등록증도 나오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자살해!’ 말에 움칫, 겁을 먹은 안재훈이 의기소침해져 나에게 말했다.
“알겠어요….”
이로써 미래의 ‘흑아’라는 집단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를 바랄 뿐이었다.
“영광 씨. 아까 창 들고 저랑 싸우던 분 저기 누워 있을 겁니다. 데리고 와 주실래요? 아니, 들고 와 주실래요?”
“……? 잠시만요.”
뜬금없이 전투를 벌인 상대를 데리고 오라고 하자, 김영광이 의문을 표하는 표정이 눈에 보였지만 필요한 일이겠거니, 라고 생각했는지 이유를 묻지 않은 채 김영광이 자리를 벗어났다.
“아린아, 덕분에 살았어. 우리 아린이 되게 강해졌는걸?”
“헤헤…. 그렇죠? 더 강해져서 아저씨 도와줄게요!!”
“응. 든든하다!”
매번 도움만 받던 어린아이가 어느새 성장해 조금이나마 나를 도와줬다는 생각에 뭔가 마음이 뿌듯해졌다.
서울 지역의 왕의 자리를 지키는 데 남은 시간은 16시간.
“안이 씨, 이 사람 아예 기절했는데요…?”
저 멀리서 권민재를 둘러메고 김영광이 걸어왔다.
“하하…. 아직 정신 못 차렸나 보네요. 슬슬 정신이 들 테니, 그쪽에 던져 두세요.”
권민재를 구석에 눕힌 김영광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나저나, 저분은 왜…?”
역시나 이 부분이 궁금했는지, 나에게 물었다.
“이 아이들의 보호자로 쓰려고요.”
“아…?”
“이놈들은 재능이 뛰어납니다. 굳이 이용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어린애들인 만큼 자칫하면 엇나가기 쉬울 거 같아서요.”
“그렇군요. 안이 씨는 역시 좋은 분인 것 같습니다.”
“……네?”
김영광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런 착한 짓을 하려던 게 아닌데…?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자신의 다섯째 제자의 선행에 감동의 눈물을 흘립니다.]
[성좌, <사계절을 사랑하는 선녀>가 자신이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다며, 확신에 찬 미소를 짓습니다.]
.
.
아니, 저기요들….
“아무튼, 너희.”
“네?”
전투에서 져서였는지, 아이들이 한층 고분고분해진 것 같았다.
“앞으로 저기 누워 있는 아저씨가 너희 보호자야. 알겠어?”
“아니…. 생판 처음 보는데 무슨 보호자….”
“그럼 자살하게? 그 신기로 하면 한 방에 죽고 좋긴 하겠다.”
“아!!!”
이 다섯의 아이들의 리더는 안재훈이 확실했는지, 다른 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나를 바라보았다.
병아리들이 배고픔에 모이를 기다리는 그런 눈빛이었다.
“아무튼, 네가 아무리 강해도 저 아저씨가 더 강하니까, 조심하고.”
솔직히 말하면, 권민재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을지는 예상이 안 갔다.
그런데도 이 아이들의 보호자로 낙점한 것은 권민재의 성좌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창술의 대가’라는 성좌가 맞다면, 그 성좌는 대단히 정의롭고 의리가 있는 성좌일 것이 분명했다. 그런 성좌가 선택한 권민재라면 조금은 믿을 만했다.
책에서 본 내용뿐이었지만, 다르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음…. 으…. 머리야….”
나는 시드 스토어를 검색해 적당한 회복 약을 구매했다.
“이거 마셔요. 꽤 오래 주무셨네요.”
“너, 넌…?”
“제가 연상입니다. 앞으로 말 까면 한 대씩 쥐어박을 테니, 그렇게 아세요.”
“…….”
회복 약을 받아 마시면서도 왜 이자가 나의 눈앞에 있는 것인지, 어째서 자신을 죽이지 않고 구해 주는 것인지 궁금함이 가득 찬 표정이었다.
“이리 와요.”
“……?”
“말을 까지 말랬지, 조용히 있으라고는 안 했는데….”
“아…. 아무튼, 절 왜….”
역시 사람은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다.
권민재나 안재훈 둘 다 나이는 어리지만, 자존심은 강해 보였다.
그런데도 나에게 졌다는 이유로 이렇게 고분고분해지는 것을 보니.
나는 아이들에게 권민재를 소개해 주며 말했다.
“아이들은 동의했습니다.”
“내가 언제!!! 요….”
“죽고 싶다고?”
“아니….”
안재훈이 덤벼들 것처럼 대들더니, 이내 자리에 풀썩 앉아 나의 말을 들었다.
“이분의 나이는 스무 살, 이름은 권민재.”
“아니, 제 이름과 나이를 어떻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죠.”
“……”
“아무튼, 이분이 앞으로 너희의 보호자야. 너희는 이분을 아버지처럼 모시길. 끝.”
내가 설명했지만, 정말 막무가내였다.
나는 권민재를 보며 말했다.
“들었죠? 당신이 이 아이들 보호자가 될 겁니다. 약하지 않으니 짐짝이 될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혼자보단 여럿이 살아남기에 더 좋을 겁니다.”
“아니…. 이게 뭔….”
당황하는 권민재와 아이들을 번갈아 보며, 나는 말을 마쳤다.
“양쪽 다 동의하는 거로 알겠습니다. 아니면, 지금 제 손에 죽어도 좋고요. 이의는 안 받을게요.”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제법 강단 있게 나갈 줄도 아는 것이냐 놀랍니다.]
나도 놀라는 중입니다. 역시 사람은 힘이 있어야 했나….
권력과 힘의 맛을 본 나는 곧 권민재와 안재훈의 일행에게 말했다.
“저는 서울 지역의 왕이 될 겁니다. 그다음은 위쪽 지역부터 차근차근 내려가 한국의 왕이 될 목적이고요.”
“아…. 네….”
“민재 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남쪽으로가 왕의 자리를 차지하세요.”
“아…. 왕…. 네….”
“정신 안 차릴래요?”
권민재는 여전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멘탈이 나가 있었다.
왕이 되려고 왔다가 갑자기 아이들의 보호자 역할이라니?
나 같아도 어이가 없을 것이다.
나는 벙쪄 있는 아이들과 권민재에게 조금이나마, 설명을 해 주었다.
“세 번째 미션은 9개의 거점을 모두 차치해야 끝납니다. 쉽게 말하면 경기도, 강원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제주도 9개의 지역을 차치하려는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아…!!”
“9개의 지역에 있는 거점을 다 차지해야 그제야 비로소 한국의 왕이 될 겁니다.”
“안이 씨 말대로라면, 다른 나라도 이런 식으로…?”
“네. 미국이나 중국 그리고 러시아 쪽의 왕은 그만큼 강할 겁니다. 땅이 넓기도 하지만 인구수도 많으니 그에 따라 강자들도 많이 나타나거든요.
“안이 씨는 항상 많은 걸 알고 계시는군요.”
“제 ‘배후성’님이 잘 알려 주셔서요.”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개소리는 꿈나라에 가서 하라고 합니다.]
권민재뿐만 아니라 나의 일행들과 아이들 모두가 그런 거였냐며 놀라고 있었다.
나의 후원자인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를 제외하고는.
“저는 가장 먼저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경기도, 강원도를 시작해 밑으로 내려갈 겁니다.”
“저보고 아이들을 데리고 남부 지방에서 치고 올라오라는 말씀이군요?”
“네. 맞아요.”
“저희 여섯으로 될까요…?”
“가능합니다.”
나는 권민재와 아이들에게 이동 수단인 ‘전이의 깃털’과 연락 수단이 될 ‘장거리 전음’의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두 가지 아이템 모두 시드 스토어에서 판매 중인 아이템이었지만, 가격이 저렴해 검색을 사용해야 찾을 수 있는 나름, 비밀 아이템이었다.
물론…. 관리자들은 시드 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였겠지만.
“연락은 민재 씨가 대표로 하시면 될 것 같고. 아이들이 말 안 들으면 말하세요. 한국의 왕이 되었을 때 발가벗고 한국 전역을 세 바퀴 정도 돌라고 지시할 테니.”
“하하…. 일단은 알겠습니다. 제 성좌 님도 당신이 나쁜 분은 아닌 것 같다고 하니 넘어가도록 하죠.”
권민재가 수긍하자, 안재훈이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이 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아저…. 아니, 그럼 이제 대왕마마…. 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 그렇게 부르면 일 년간 묵언 수행시켜 줄 테니, 알아서 해.”
“쳇…. 알겠어요. 그럼 대장이라고 부를게요.”
“그건 뭐…. 그래라.”
나는 권민재와 아이들이 전이의 깃털을 사용하려는 순간 문뜩 떠오른 생각을 말해 주었다.
“아, 전라남도 쪽은 어지간하면 먼저 가지 마세요. 그곳은 성좌 ‘무패의 해신’을 배후성으로 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상대하기 어려울 거예요.”
“혹시….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그분인가요?”
“네. 민재 씨랑 아이들이 지지는 않겠지만,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보도록 하죠.”
내 걱정에 권민재가 희미하게 웃으며 전이의 깃털을 사용했다.
“너희도 저 아저씨 말 잘 듣고. 아니, 저 사람은 형이라고 해. 나야 상관없지만.”
“알겠어요. 다음에 봐 대왕마마!!”
“이 새끼가?”
"헤헤!! 갑니다!!"
권민재를 이어 아이들이 전이의 깃털을 사용해 벗어나자, 시끄러웠던 경복궁의 일대가 갑작스레 조용해졌다.
“다들 갔네요.”
“그나저나, 왜 같이 안 움직이고…?”
“저희 개개인은 한 지역의 왕이 될 강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곳에 몰려 있으면, 전투력 낭비지 않을까요?”
“하하…. 그렇긴 하네요.”
“그리고…. 슬슬 올 겁니다.”
“네? 누가….”
바뀐 나의 ‘명’에서 본 ‘조선의 1대 왕’이 자신의 수도인 한양을 차지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