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쿠콰콰콰쾅!!!!
수와악-
갑작스럽게 난입해 공격을 날리자, 엄청난 파괴력에 일대가 초토화 되었다.
이런 미친…!!!
자칫 저 공격을 우리가 받았다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강자아가 앞으로 나서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면, 현계 구경도 하지 못한 채 죽었을 것이다.
“괜찮은가?”
“덕분에요.”
“저희 죽을 뻔한 거 맞죠…?”
“네. 제가 아는 그자라면, 스승님이 막아 주지 않았다면 저희는 분명하게 죽었을 겁니다.”
“허….”
신선들과 요괴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저, 미친 원숭이 막아!!!”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건데!?”
쿵!!
“나? 화과산에서 쉬다 왔는데?”
황금 갑옷을 입은 노란 털의 원숭이는 자신이 던진 봉을 회수해 바닥을 내리치며 말했다.
어이가 없었다.
다짜고짜 등장해서 하는 말이 쉬다 왔다니.
“이놈, 손오공! ‘투전승불’이 되어 정신을 차린 줄 알았더니, 어째서 또 난장을 피우는 것이냐!”
“이봐, 옥황. 누구 마음대로 저놈을 꺼내 놓은 건데?”
“크흠…. 어차피 죽을 놈이지 않으냐!”
“그렇긴 한데…. 나를 빼놓고 잔치를 열다니, 마음에 안 들어서 말이야.”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다.
심지어 손오공에게 말을 거는 옥황이라는 자는 이곳 신선계에서 상당한 위치에 존재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옥황에게 반말을 찍찍 내뱉으며, 자신을 빼놓았다며 깽판을 치다니.
미친놈인 게 분명했다.
“저, 스승. 저 원숭이가 그 유명한….”
“자네도 알고 있는가? 허허허. 맞네.”
안 들리게끔 조용히 말한 나였지만, 나의 목소리가 손오공의 귀에 들어갔는지 갑작스레 몸을 돌려 나에게 걸어왔다.
저벅. 저벅.
“망했다.”
“안이 씨. 말 좀 조심하시지…….”
“장례는 잘 치러 드릴게요….”
[스킬 [냉정 LV.2]의 효과가 강하게 발동합니다.]
손오공이 앞에 도착해 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말을 걸었다.
“넌 뭐냐?”
“……사람인데요?”
“흐응…. 방금 나보고 원숭이라 한 게 네놈이냐?”
“사람은 아니잖습니까?”
“푸하하핫. 나 손오공 님을 보고서도 이렇게 당돌한 놈은 처음 보는군. 무섭지 않으냐?”
“원숭이가 무서울 리 없잖아요?”
무섭지 않은 게 아니었다.
냉정의 효과로 내가 미친 것 같았다.
“안이 씨…. 잘 가요….”
갑작스레 발동한 스킬 냉정의 효과로 침착함을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침착함을 찾음과 동시에 나는 손오공에게 개기고 있었다.
심지어 기분이 나쁠 정도로 도발을 하며.
하지만 저 스킬의 효과가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나조차도 몰랐다.
“흐응…. 죽일까, 말까.”
“투전승불이여. 이 허약하고 나약한 인간을 죽여 무슨 득이 있단 말인가.”
“아아, 노인네 당신은 빠지고.”
강자아의 난입에 손오공이 귀를 막아 대는 행동을 취하며, 강자아의 말을 무시했다.
“그래. 좋다. 내 스승은 생명을 죽이는 것을 아주 싫어하셨지. 죽이지는 않으마.”
“……”
손오공의 스승이 누구인 줄은 알 것 같았다.
나에게 들러붙은 성좌 중 한 명이겠지.
살려 준다는 데 가만히 있는 게 맞았다.
하지만.
문뜩 원시천존에게 먹힌 사기가 이자에게는 더욱 잘 먹힐 거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망할 냉정…….
스킬 냉정 덕분에, 나는…. 손오공에게 사기를 치기 시작했다.
손가락만 튕겨도 나를 죽일 수 있는 존재에게….
재채기 한 번으로 나를 저 멀리 날려 버릴 수 있는 존재에게….
“당신이 손오공 맞습니까?”
“어어. 살려 주겠다는 데 할 말이 있는 것이냐? 그냥 죽여 주세요. 라던가.”
그럴 리가.
“한 성좌의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내 발언에 일행들과 손오공의 동공이 커지기 시작했다.
“안이 씨……. 또…….”
나는 김도은을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스킬 [매력 발산 LV.1]을 발동합니다.]
아니, 하지 말라고!!
“……저한테는 안 먹히는 것 같으니까 그것 좀 하지 마요….”
“하하….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닙니다.”
손오공이 성좌라는 단어에 동공이 커지자, 먹힐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네놈, 그 말이 사실이냐?”
“네. 이곳에서는 성좌의 시선이 닿지 않지만, 현계로 가게 되면 저를 마음에 들어 하는 성좌 분이 있습니다.”
“혹…. 그 성좌의 수식언이 ‘당나라의 고승’…. 이 맞느냐?”
“맞습니다.”
손오공도 내 첫마디에 눈치를 챘던 것인지, 대놓고 성좌의 수식언을 물어보았다.
“……스승님은 잘 계시던가…?”
엄청났던 투기가 어느새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리고 순한 양이 된 손오공이 나에게 물었다.
“네. 잘 계십니다. 제 행동에 웃기도 하고 제자 분들을 많이 생각하셨습니다.”
“하하하하. 그 양반은 여전하구나. 본인이 죽을 상황에 처해도 제자 사랑이 지극했지.”
굳이 안 쳐도 될 사기였다.
이미 시작한 거짓말이 훗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채 나는 없는 말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없는 말이기는 했지만, ‘당나라의 고승’의 메시지를 보고 있으면 제자들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반은 맞지만, 반은 거짓이었다.
“첫째 제자가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세 명의 제자도.”
“…….”
손오공이 뭔가 추억에 잠기는 듯한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여의봉을 작게 만들어 귀 속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어이, 옥황. 이 승부는 이놈들이 이긴 게 맞지?”
“크흠…. 그렇지.”
손오공의 물음에 옆에 있던 강자아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망할 영감탱이.
“그럼, 이놈을 잠시 데려가도록 하지. 그래도 되겠지?”
“죽이지는 말게. 무사히 돌려보내 준다고 약속한다면….”
“약속하지. 내 이름을 걸고. 강자아 네놈은?”
“이들이 돌아가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5시간 안에는 꼭 보내 주게.”
“알겠다."
“아니, 저기요들 제 의사는요?”
“필요 없다!”
내 사기가 먹혀들었는지, 온화해진 손오공이 옥황과 강자아에게 허락을 구했다.
텁.
두 사람에게 허락을 받은 손오공이 나의 멱살을 잡더니, 자신이 타고 온 구름인 근두운을 소환해 나를 태웠다.
그리고….
슈와악-
“끄아아아아아아악!!!!!!!!!!”
멱살 잡힌 것도 서러운데 해태보다 빠르면 빨랐지, 느리지 않은 근두운의 속도를 느끼니 정신이 날아가 버릴 지경이었다.
“허약한 놈이군….”
멀어져 가는 일행들의 표정도 보지 못한 채, 순식간에 손오공의 거처인 화과산에 도착하게 되었다.
“우끼끼!! 대장 오셨수?”
“이놈들아. 손님이다. 잔칫상을 차려 와라!”
“우끼끼!!! 기다리슈 대장!!”
손오공의 부하로 보이는 원숭이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놈은 잠시 나와 이야기를 하자고.”
근두운의 후유증이 사라지지 않아, 고개만 끄덕여 알겠다는 의사를 표출했다.
“상태가 비리비리한 게 곧 죽을 것 같군…. 잠시 쉬고 있거라!”
털썩.
손오공이 자리를 벗어나자 겨우 붙잡고 있던 정신이 날아갔다.
* * *
“음…?”
해태를 타고서도 정신을 못 차렸는데, 그보다 더 빠른 손오공의 삼신기 중 하나인 근두운을 탔으니 기절하는 것도 당연했다.
“정신 차렸느냐?”
“네. 덕분에 잘 잤습니다.”
“크하하하. 재밌는 놈이로군.”
“그래서. 절 데려온 이유가 뭔지…?”
“없다.”
“네?”
“없다고.”
“………??????”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동의를 구하고 강제로 끌고 오더니, 할 말이 없다고?
“일어났으면, 과일들을 먹거라. 이곳 과일은 굉장히 맛있다고.”
“하하…. 감사합니다.”
나와 손오공은 나란히 앉아 과일을 까먹기 시작했다.
어색했다.
이게…. 잔칫상이라고…?
잔칫상을 차려 오라더니,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손오공의 부하 원숭이들이 차려 온 잔칫상에는 사과, 바나나 등 다양한 종류의 과일밖에 없었다.
“어때, 맛있지?”
“오…. 살면서 먹어 본 과일 중에 가장 맛있네요.”
“화과산의 과일은 유명하지.”
손오공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으나, 꾹 참아 내듯 계속해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과일만 먹고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손오공에게 말을 걸었다.
되도록 이자에게 먹힐 만한 거짓말이기를 바라며….
“스승님을 그리워하시는 겁니까?”
“그 말 많은 스님을 뭐 하러.”
“전할 말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전해 드리겠습니다.”
“흠….”
손오공이 잠시 고민을 한 뒤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못난 제자 놈들이 지켜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곧 만나러 가겠다고 전해 주거라.”
“알겠습니다. 더 하실 말씀이 없으면….”
“스승님이 관심을 가진다면, 네놈도 다섯째 제자와 다름없으니, 선물을 주도록 하지.”
“……?”
다섯째 제자라는 뜻밖의 단어에 깜짝 놀라 손오공을 바라보았다.
저…. 제자 아닌데요…???
“이것이면, 스승님도 알아챌 것이다. 받거라. 사제야.”
“네?”
스아아악-
그 순간 눈이 뜨거워지더니, 엄청난 고통에 한쪽 눈을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조금만 버텨라.”
얼마만큼의 시간을 굴렀는지도 모를 정도의 고통이었다.
고통이 사라지기까지 한참을 바닥을 굴러다니다가 정신을 차렸다.
“헉…. 허억…. 이게 대체 무슨…!!”
“내 선물이다. 다섯째야.”
“전 그분의 제자가 아닙니다만….”
“내 마음이다. 닥치고 받거라.”
처음에도 그랬지만, 손오공은 안하무인이 맞았다.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그래서 무엇을 주신 겁니까…?”
“나의 화안금정 한쪽을 네놈에게 주었다.”
화안금정(火眼金睛)
스킬 명 : 화안금정(火眼金睛) LV.1
스킬 설명 : 삼장과 함께 경전을 구하러 가기 전, 손오공이 천상에서 소란을 부리다가 태상노군에게 잡혀 팔괘로 안에 들어가 화로의 연기를 참고 견디다가 얻게 된 능력이다. 화안금정은 진짜와 가짜를 식별할 수 있는 눈을 말하고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는 안목, 혜안을 뜻한다.
# 눈에 보이는 상대의 상태 창과 스킬 창을 볼 수 있다.
# 히든 피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 LV이 상승할수록 지속 시간과 성능이 좋아집니다.
“이 귀한 것을….”
“그래서 한쪽만 주지 않았느냐! 인제 그만 가 보거라.”
정말로 자신을 다섯째 사제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자신의 능력을 내게 전해 준 손오공이었다.
츤데레 같으니.
“현계에 가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비록 한쪽뿐이지만 말이다.”
“……감사합니다. 대사…. 형…?”
“크하하하하. 입에 붙지 않는다면, 애써 말할 필요는 없다. 내 근두운을 빌려 줄 테니, 가 보거라.”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훗날 나의 사기가 불러올 파장을 생각하지도 않은 채….
그저, 이 귀한 눈을 얻게 됐다는 것에 만족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우리였지만, 나를 자신의 사제라 칭하며 그 귀중한 화안금정의 한쪽을 내게 준 것이었다.
무언가…. 미안함과 기쁨이 동시에 몰려왔다.
“근데…. 가는 건 좋지만, 근두운 말고 다른 건 없습니까…?”
“없다!! 빨리 가라!!”
“다음에 꼭 다시 뵙겠습니다. 귀중한 눈 소중하게 사용하겠습니다.”
“오냐!”
나는 손오공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근두운에 올라탔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와 함께 일행들에게 도착하자, 곧바로 정신을 잃게 되었다.
* * *
“하……. 젠장…. 다시는 타기 싫다.”
“어머, 일어났네요. 사기꾼 님.”
“도은 씨. 그 말 되게 실례입니다. 사기꾼이라뇨. 상황을 잘 이용한다고 해 주세요.”
“하하하. 내 제자가 미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만, 잘 살아 돌아왔군.”
내가 자리를 비운 후 일행들도 별다른 일이 없었는지, 평온해 보였다.
나는 곧 강자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인제 그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음…. 그래. 헤어짐은 언제나 아쉬운 법이지만, 다시 만나는 날이 올 것이야.”
“짧은 시간 감사했습니다.”
“허허허. 그래그래. 선기는 지급했다네. 자네에겐 선기와 함께 ‘용천검’을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나는 강자아에게 선기를 받은 후 그간 마주친 신선들에게 인사를 했다.
“언젠간 다시 뵙겠습니다. 가르침에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음!! 꼭 살아남게나!!”
“그럼….”
일행들과 임아린을 데리고 포탈의 너머로 돌아갔다.
이번 여정으로 나를 포함한 동료들은 모두가 몇 배 이상은 강해졌다고 볼 수 있었다.
화안금정에 선법, 선기 등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을 가볍게 구한 우리는 그저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 * *
파앗!
“후, 드디어 나왔네요.”
“짧지만,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다음은 백두산으로 가야 합니다.”
“백두산…?”
“산군이 거기에 있거든요.”
“곤륜산에 이어서 이번엔 백두산의 산군입니까…. 하하하.”
김영광이 해탈한 듯 조용히 웃었다.
마지막 서브 미션은 다섯 산신을 처치하는 것.
우리들이 향할 곳은 백두산이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많은 것이 변했다며, 지긋이 바라봅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무언가 익숙한 기운을 알아챘습니다.]
[성좌, <사계절을 사랑하는 선녀>가 환하게 웃으며 반깁니다.]
“다들 저 없어서 심심했죠?”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안 본 사이에 정신이 나간 것인지 궁금해합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한 설명을 요구합니다.]
[성좌, <사계절을 사랑하는 선녀>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천천히 해 드릴게요. 곧 알게 될 겁니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당나라의 고승이었지만, 지금 당장은 미션이 중요했기에 동료들과 곧바로 ‘전이의 깃털’을 사용해 백두산으로 입장했다.
[산군(山君)의 영역 백두산(白頭山)에 입장하였습니다.]
[창귀(倀鬼)를 처치하십시오.]
두 번째 미션과 서브 미션 해결까지 남은 시간은 8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