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2화 (12/206)

제12화

“그럼…. 천존이란, 혹시 원시천존을….”

“네. 그것도 맞아요.”

김도은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원시천존이니, 강자아니 하는 인물들은 중국의 도교 신화 속에 나오는 신선이자, 최고위급 신인 걸 김도은이 모를 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으허허허허. 제법 아는 것이 많은 처자구나.”

강자아는 인상이 좋아 보이는 걸 떠나서 꽤 호쾌한 신선이었다.

“앞으로 놀랄 일은 더욱 많을 거예요. 이 정도에 놀라면 안 됩니다.”

“그래야죠. 하하….”

해탈한 듯한 표정의 김도은을 보니, 새삼 스킬 냉정이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깨달았다.

“자, 다들 이리로 오게. 각자 한 마리씩 타면 될 걸세. 으허허허.”

강자아가 부른 영수는 이곳에서만 먹고 자란다는 해태였다.

그 모습은 무척이나 영험해 보였다.

사자의 외형을 지닌 해태의 머리 한가운데에는 뿔이 자라 있었고, 목덜미엔 푸른색 갈기를 휘날렸다.

“이거 설마 해태는 아니죠?”

“허허허허, 맞네. 자네는 많은 걸 알고 있군.”

“그럴 수밖에요 …. 서울의 마스코트가 해태인 걸요…….”

한국의 수도 서울의 마스코트는 해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알든 모르든 눈앞에 해태가 있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환상 속의 동물인 해태가 바로 앞에 있으니.

“그럼. 아이는 내가 데리고 갈 테니, 해태에 탑승해 안전띠를 매고 꼭 손잡이를 강하게 쥐도록 하게나.”

강자아의 말에 무언가 장난기가 묻어 있었다.

아이는 왜…?

의문도 잠시. 해태에 올라타자, 허름하기 그지없었던 안전띠가 강하게 우리들의 몸통을 조여 왔다.

“오, 놀이기구 타는 기분인데요?”

근육과 함께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김영광이었지만, 해태에 올라타자 무언가 신나 보이는 게 느껴졌다.

이땐 몰랐다.

어린아이를 제외했을 때 알았어야 했다.

곧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을.

그리고.

나는 보았다.

해태에 올라타 안전띠가 매여질 때 강자아가 미세하게 웃는 모습을.

“그럼 출발하겠네. 도착해서 보도록 하게나.”

강자아의 말에 해태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슈우우욱-

“오, 바람도 선선하고 제법 승차감이 좋은데요?”

“그러게……. 요오……?”

슈와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악!!!”

나를 포함해 김영광과 김도은을 태운 해태들이 일제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인간인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속도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 * *

꽤 먼 거리였음에도 30초도 안 되어 도착한 것을 보니, 해태의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를 대충 알 수 있었다.

의식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혼미한 정신을 부여잡고 해태에서 하차한 우리는 구석으로 이동해 속에 있는 걸 시원하게 비워 냈다.

“우웨에엑-”

“으허허허허허. 어떤가? 마음에 들었는가?”

“이……. 망할 영감탱이…!!!”

“도은 씨. 참아요오웨에엑….”

아무래도 이곳의 코스 같은 것이었을까?

강자아는 탈진해 쓰러진 우리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으허허허. 미안하네. 아주 가끔 오는 인간들에게 해태를 태워 주면 반응이 아주 재밌어서 말이지.”

“……젠장….”

도착한 지 10여 분이 지났음에도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그러고 보니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의 ‘명’에서는 해태를 타지 않았다.

왜 갑자기 해태를 타게 된 거지…?

“없던 공포증도 생길 것 같습니다….”

“같은 생각이에요.”

“가기 전에 저 영감탱이 꼭 한 대 치고 싶네요.”

“으허허허. 날 재미있게 해 둔 보답은 꼭 하도록 할 테니, 너무 그러지들 말게나.”

솔직히 우리 셋 정도의 강함이라면, 만 명이 덤벼도 저자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그걸 알고 있었음에도 한 방 먹이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 인제 그만 이리 오게나. 쉴 만큼 쉬었을 테니.”

강자아를 따라 이동한 곳에는 엄청난 크기의 문이 있었다.

그 크기가 얼마나 거대한지, 문 앞에 서자 김영광이 작아 보일 정도였다.

탕. 탕. 탕.

강자아가 문을 두드리자, 곧 거대한 문의 안쪽에서 영험해 보이는 목소리가 나의 귀에 직접적으로 말하듯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들어오거라.”

영험해 보이는 목소리에 강자아가 손을 휙휙 휘저으니, 거대한 문이 자동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끼이익.

“그럼, 나를 따라오게나. 현계의 인간들이여.”

강자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중앙에 한 사람이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현계인들은 오랜만에 보는구나.”

“천존을 뵙습니다.”

“그래. 일어나거라 자아야.”

중앙에 선 신선이 강자아의 인사를 인자하게 받아 준 뒤,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신선들을 통괄하는 원시천존이라 하네. ”

“처음 뵙습니다. 원시천존 님.”

나의 인사에 김도은과 김영광도 같이 고개를 숙여 천존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이곳의 우두머리인 만큼 천존의 영향력은 엄청날 것이었다.

잘 보여서 나쁠 건 없었기에 최대한 예의를 갖춘 나였다.

“허허, 예의가 바른 자들이로구나.”

“천존께 선물을 한 가지 들고 왔습니다.”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천존이 약간은 당황한 듯 물었다.

“허허…. 선물이라니 무슨?”

“이겁니다.”

나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 구매한 <만년 묵은 소나무의 씨앗>을 원시천존에게 건넸다.

이미 ‘명’에서의 기억이 해태를 타고 안타고로 나누어져 상황이 변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변하든 안 변하든 이것을 선물했을 때 신선들의 호감을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만약 호감을 사게 된다면 선법을 수련하거나 선기를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오호…. 이것은!? 자아야.”

“네. 스승님.”

“이것을 맡기도록 하마.”

내가 건넨 <만년 묵은 소나무의 씨앗>을 받아 든 강자아가 어디론가 향했다.

사용 용도만은 몰랐던 나는 성좌를 핑계 삼아서 천존에게 물었다.

“한 성좌가 이것을 선물하면 마음에 들어 하실 거라 했기에 준비해 봤습니다.”

“허허허, 맞네. 우리가 꼭 필요로 하던 것이지.”

“용도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천존은 잠시간 고민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그것은 아직은 말해 줄 수 없네. 하지만 이것을 준 보답으로 그대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도록 하지, 어떤가?”

오히려 내가 바란 것은 이쪽이었다.

내가 지금 당장 씨앗의 사용 용도는 알아도 소용없겠지만, 이곳에서 얻어 가는 선법이나 선기는 중반까지도 엄청난 효율을 자랑했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그래. 그대들이 원하는 건 선법과 선기 두 가지 중 하나인가?”

“……역시 천존이십니다. 맞습니다.”

“흐음….”

천존의 표정에 많은 것들이 서려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읽지는 못했다.

어떤 생각인지조차 알 수 없었기에 조용히 천존의 대답을 기다렸다.

“좋네. 자네들이 아니었으면 얻지 못할 것이었으니 보답은 당연한 것. 자아에게 말해 두겠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음?”

문뜩 ‘명’과는 다르게 생각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실제 신화에서 원시천존은 도교의 우두머리 격이었다.

즉, 나를 따라다니는 성좌 당나라의 고승은 이 장소나 혹은 어떠한 인물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도박이었지만,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무엇보다 성좌의 시선이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라는 자가 안부를 전해 달라 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적이 있다는 기록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 말을 한 것은 얻어걸리면 좋고, 아니면 말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호오…. 그자는 금선자의 환생이 아닌가? 성좌의 위치까지 오른, 말썽만 부리던 원숭이의 스승인….”

“자세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저는 말만 전했을 뿐.”

“허허허. 좋다. 이만 물러가 보게나. 내 자네들을 특별히 대우해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어떤 대우를 해 줄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적어도 신선들의 대우가 나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천존을 모시던 시녀의 안내를 받아 이동했다.

“안이 씨. 사실인가요…?”

“당연히 아니죠. 그냥 던져 본 말입니다.”

“걸리면 어쩌려고….”

“걱정하지 마세요. 적어도 지금은 안 걸릴 겁니다. 이곳은 성좌의 시선이 단절된 곳. 그렇다는 건 천존 또한 성좌들의 소식을 알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걱정은 되네요…. 신선분들 강해 보이던데….”

김도은과 김영광의 걱정은 당연하였다.

겉으로만 봐도 신선들의 강함은 상당해 보였기 때문에 조용히 있다가 현계로 가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이곳에서 얻어 갈 수 있는 건 모조리 얻어 가야 앞으로의 여정이 조금 더 수월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일단, 쉬도록 하죠. 도은 씨도 영광 씨도 상당히 지쳤을 테니.”

임아린은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김영광의 품에 안겨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시녀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침상이 있는 방이었기에 곧바로 임아린을 눕혀 주었다.

“천존의 객으로 오셨으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식사는 곧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고개를 숙여 인사를 가볍게 한 시녀가 밖으로 나가자, 김도은과 김영광이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극진한 대접을 받으니 더 불안하네요. 하하….”

“저흰 이곳에서 15일은 지낼 거니 불안해하지 마세요.”

“그렇게나 오래요?”

“네. 현계에서의 하루가 이곳에서는 10일입니다. 수행하고 나간다고 생각하세요.”

“아하…!! 알겠어요!!”

수행이라는 말에 김도은의 표정이 환하게 빛났다.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의욕이 샘솟은 것 같았다.

나를 포함한 동료들은 조금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현재의 강함으로는 너무나도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우리끼리 대화하는 사이, 곧 천존의 시녀가 식사를 가져왔다.

“와…. 진짜 맛있어 보인다.”

“먹기만 해도 능력치가 상승할 정도로 평범한 사람은 못 먹어 볼 음식일 거예요. 많이들 드세요.”

“네!”

자고 있던 임아린을 깨워 식사한 뒤, 나는 천존의 부름을 받고 이동했다.

“절 부르셨다고….”

“음. 자네 일행들이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조금의 선법을 수행시킬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희가 거절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내가 바란 것은 이런 것이었다.

우연히 얻어걸리긴 했지만, 선법의 수행과 함께 선기까지 얻어 나갈 수 있다면 더 이상 이곳에서 얻을 것은 없었다.

“허허. 수행은 내일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자네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대략…. 현계인의 시간으로 말씀드리면 이곳에서 300시간은 머물 수 있습니다.”

“그런가? 알겠네. 참고하도록 하지.”

천존과의 대화가 끝난 뒤 동료들에게 이동해 상황을 설명했다.

이곳을 나갔을 때 우리는 현존하는 각성자 중 그 누구보다 강해질 것이 분명했다.

* * *

모처럼 신선놀음이라도 하듯 잘 먹고 푹 쉬게 되었다.

곤륜산의 날이 밝자, 기다렸다는 듯 천존의 시녀가 마중을 나왔다.

“모시겠습니다. 천존이 부르십니다.”

“가시죠.”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닌데 저마다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시녀를 따라 나가기 시작했다.

신선들의 수행은 고되고 힘들다.

‘명’에서도 봤지만, 수행의 강도는 몸소 체험한 것은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의 강도일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확실한 건, 나는 이곳에서의 수행이 쉽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왔는가? 이 수행은 신선이 되기 위한 가장 쉬운 단계일세. 통과한다면 각자에게 맞는 선기를 지급하도록 하지. 이곳 창고에는 생각보다 많은 선기들이 놀고 있으니 말일세.”

천존에게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우리에게 말하는 천존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이렇게까지 우리에게 호의를 베푸는 천존의 의도가.

“저희에게 이렇게까지 잘해 주시는 이유를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허허허, 별 뜻은 없다네. 내 마음에 들었을 뿐. 자네들이 현계에 가서도 오래도록 살아남길 바란다네.”

소탈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천존이었지만,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천존의 발톱만도 못한 존재.

지금 당장은 조건 없는 이 호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쪽으로 오게나.”

천존이 몸소 몸을 이끌어 우리를 안내한 곳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평야.

그곳에는 강자아 한 사람 말고는 풀도 나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자네들 왔는가?”

“자아야 이들을 잘 부탁하겠네.”

“천존 맡겨 두시지요.”

“음!”

우리를 강자아에게 직접 안내한 천존은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쁜지, 말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자, 어서 오게. 지옥은 처음이지?”

“지옥이라뇨…?”

“으허허허허허. 수행이라는 것이 쉽겠는가? 지금부터 200시간 자네들을 강하게 만들어 줌세. 기대하게나!!”

아주 오랜만에 방문한 인간들을 자신의 손으로 수행시킨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신나 보이는 강자아였다.

강자아의 눈빛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이 수행……. 죽을 수도…….

그리고….

우리들은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200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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