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요!!”
“가 보면 압니다.”
“아오!!”
궁금증만 증폭시켜 놓고 대답을 해 주지 않자, 김도은이 소리를 바락 질러 댔다.
“후회 안 할 거예요. 아니, 오히려 재미있을 겁니다.”
나를 포함한 동료들은 지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임아린을 제외한 일행들의 입에서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어아….”
“가는 데 오래 걸리나요…?”
“금방 갑니다.”
나는 시드 스토어를 열어 ‘전이의 깃털’이라는 아이템을 인원수에 맞게 구매했다.
“이걸 사용해야 합니다. 방법은 간단해요. 가야 할 장소를 생각하면서 아이템을 사용하면 됩니다.”
“아린이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네. 아마도…. 어렵지는 않아요.”
나는 곧 일행들에게 ‘전이의 깃털’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임아린을 불러 세웠다.
아이템 명 : 전이의 깃털
아이템 설명 : 아주 먼 거리라 할지라도 사용자가 원하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 사용 쿨타임과 거리의 제한은 없으나, 잘 못 사용하면 엉뚱한 곳으로 이동될 수 있다.
“아린아. 다른 곳은 생각하지 말고, <곤륜산맥의 중심지>라고만 생각하면 돼. 알겠지?”
“으응…. 어려운데에….”
임아린 혼자 다른 곳에 전이된다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일 게 분명했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일행들에게 말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겠네요. 아린이 혼자 다른 곳에 떨어지면 안 되니까.”
“혹시 몸이 맞닿아 있다면 같이 이동되지 않을까요?”
“거기까진 저도 잘….”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괜찮을 거라 말합니다.]
성좌의 메시지를 본 나는 김영광에게 말했다.
“한번 해 보시겠어요? 아까 말한 장소로 이동하면 됩니다. <곤륜산맥의 중심지>.”
“좋습니다. 그럼….”
김영광이 임아린을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조금 긴장되네요. 하하….”
“괜찮을 겁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고자, 여분의 ‘전이의 깃털’을 김영광과 임아린에게 건넸다.
“비싸지 않으니 시험해 볼 가치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임아린이 돌아오기 쉬운 장소로 이동했다.
김영광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다녀오세요. 1분 안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성공한 걸로 알게요.”
“네…!!”
“조심하세요!!”
“아저씨, 이따 봐요!
긴장한 김영광과는 다르게 임아린의 표정은 놀러 가는 듯 마냥 해맑았다.
파앗!!
두 사람이 ‘전이의 깃털’을 사용하자, 순식간에 빛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곤, 김도은에게 말을 걸었다.
“도은 씨. 당분간 그 ‘성흔’ 사용하지 마세요.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게 좋겠죠…?”
김도은이 쓰러지지 않으려 억지로 참아 내는 것이 눈에 보였다.
툭. 치기라도 하면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네. ‘성흔’은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인지는 도은 씨가 더 잘 아실 거예요.”
“성좌의 힘이기 때문이죠?”
“맞아요. 현재의 저희는 성좌들의 머리카락 한 올도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예요. 그런 힘을 남발하면 최후는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겠죠.”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빨리 죽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김도은과 이야기를 하는 사이 1분이 지났고, 김영광과 임아린은 돌아오지 않았다.
두 사람이 성공했다는 것은 나와 김도은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럼 사용합니다.”
김도은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곧바로 ‘전이의 깃털’을 사용했다.
파앗!!
이곳의 이름은 중국 티베트 고원의 북쪽 연변을 이루는 산맥인 쿤룬산맥.
“아저씨!!!”
무사히 도착한 걸 깨달은 후 주위를 둘러보자, 임아린이 나를 반기며 뛰어왔다.
“잘 도착했네요.”
“하하…. 조금 쫄았습니다.”
김영광의 쫄았다는 말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멸망이 시작된 지 한 달 아니, 일주일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무리 적응이 빠르다고 한들 현재 상황은 누구나 무서운 게 당연했다.
거기에, ‘전이의 깃털’이라는 순간이동 같은 아이템을 사용하라니, 김영광과 같은 근육질에 남성미가 철철 넘치는 사람도 겁을 먹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다들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도은 씨. 일어날 수 있겠어요?”
“네? 네…. 뭐 일어나는 것 정도야.”
“전투는요?”
“설마….”
티베트 고원은 광활하기 그지없는 평야였다.
그런 곳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우리가 도착한 장소는 사람이 없는 만큼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마물들의 수가 상당했다.
“……제가 좀 멍청했네요.”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돌대가리냐 물어봅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아미타불이라 말합니다.]
[성좌, <사계절을 사랑하는 선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성좌, <달과 순결의 상징>이 자신의 후원자를 위기에 빠트리지 말라고 화를 냅니다.]
……난들 알았나? 미리 알려 주시든지.
빨리 이동해서 쉬려고 했던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흔히 게임에서나 말하는 트롤 짓을 한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 김도은과 김영광을 전투에 참여시켜야 했다.
젠장….
나는 곧바로 용광검을 꺼내 들어 동료들에게 말했다.
“나중에 맛있는 거 사 드릴게요….”
“하하하. 너무 주눅 들지 마세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아저씨 괜찮아요. 아린이도 싸울 수 있어요!”
“다음에 더 맛있는 거 사 줘요!!”
김영광과 임아린의 위로에도 김도은이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왜 항상 2%가 부족하냐 물어봅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하는 짓이 바보 같은 게 자신의 셋째 제자가 떠오른다고 합니다.]
[성좌, <사계절을 사랑하는 선녀>가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고 알려 줍니다.]
[성좌, <달과 순결의 상징>이 이번만 봐주겠다 말합니다.]
“…….”
갈구는 성좌가 어느새 넷으로 늘어나 있었다.
문득, 스킬 [매력 발산 LV.1]이 성좌들에게 먹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일단 몬스터부터 처리하죠. 레벨도 올리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요? 저희는 약하니까요!!”
“입을….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네.”
아직도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으로 보아, 김도은의 상태가 꽤 힘들어 보였다.
여기서 더 말한다면 김도은의 화살이 내 머리통을 겨냥할 것 같았다.
* * *
2시간 정도를 전투에 집중했다.
크게 다치거나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았지만, 김도은만큼은 정말 죽어 가는 중이었다.
“헉…. 허억……. 진짜…. 죽여 버릴 거야….”
“도은 씨.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 알고 계십니까?”
“닥쳐요!!”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숨겨진 세계로 당장 들어가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김도은의 상태를 보아 잠시간 휴식을 취하게 해 주고 싶었다.
내 기억 속에서 이곳의 주민들은 인간에게 호의적인 쪽과 아닌 쪽이 나누어져 있었다.
호의적인 곳에 전이되면 더 강해지는 기연을 얻는 것은 물론, 무기나 각종 스킬을 얻어 나올 가능성이 있었지만 반대의 경우 상당히 고된 여정을 해야만 했다.
김도은의 상태도 안 좋은데, 이렇게 고된 여정을 시킬 수는 없었다.
일행들이 쉬는 동안 ‘시드 스토어’를 열어 무료로 판매 중인 아이템을 한 가지 구매했다.
아이템 명 : 만년 묵은 소나무의 씨앗(히든)
아이템 설명 : ? ? ?
# ? ? ?
사용 용도는 나조차도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을 선물해 주면 호감도를 꽤 상승시킬 수 있다는 걸 ‘명’에서 보았다. 거기다, 무료로 판매 중이었기에 구매하는 데 부담은 없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해 임아린을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들어가시죠.”
고개를 끄덕인 일행들이 하나둘씩 쿤룬산맥 중심지에 있는 포탈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마지막으로 나와 임아린이 포탈 속으로 들어갔다.
파앗!!
[숨겨진 세계를 찾아냈습니다.]
[서브 미션의 클리어 횟수는 현재 ‘2회’입니다.]
[현계와의 시간 괴리가 다르게 작용합니다.]
[현계에서의 하루는 이곳에서 10일입니다.]
이곳의 이름은 신선들의 주거지 <곤륜산>.
신선들은 대개 인간들에게 호의적이었기에 선택한 장소였다.
다행히 내가 걱정한 부분이었던, 반대편으로 떨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다들 무시하시죠?”
“여기는….”
“우와…. 아저씨 여기 되게 이뻐요!!”
“대박…. 이런 곳이 실제로 있다니….”
일행들이 저마다 탄성을 자아냈다.
탄성을 자아낸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의 풍경.
눈에 보이는 풍경 자체가 우리가 지내는 현계와는 달랐다.
신선들의 주거지답게 신비로운 분위기였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곳.
아름다움은 물론, 지상 낙원이나 유토피아 같은 단어를 가져다 붙여도 손색이 없는 장소였다.
“어? 저 이제 괜찮은가 본데요?”
신선들의 주거지답게 이곳의 기운은 인간들을 이롭게 하였다.
김도은이 갑작스레 좋아진 것도 일시적인 것뿐이지만, 이곳의 기운 덕분이었다.
시간을 들여 회복한다면, 이곳의 기운이 아니더라도 괜찮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곳의 기운이 인간들에게 이롭게 작용하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마세요.”
“알겠어요. 덕분에 죽을 뻔했지만….”
“…하·하·하.”
김도은의 가시가 돋친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누가 봐도 맞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안이 씨.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다리면 됩니다. 알아서 마중 나올 거예요.”
“……?”
이곳의 주민인 신선들은 현계에서 인간들이 들어오게 되면, 길을 잃고 다른 구역으로 넘어갈 수 있기에 한 명의 신선이 마중을 나왔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우리를 적대할 신선들이 아니란 것은 확실했다.
“그나저나, 성좌들의 메시지가 조용해진 것 같지 않아요?”
“네. 저도 그러네요?”
“이곳은 성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입니다.”
말 그대로였다.
나의 ‘명’에서도 이유까지는 상세하게 몰랐지만, 이곳은 관리자와 성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장소. 그런데도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여 편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가령, 신선들에게 선법을 배운다든가 현재의 레벨로는 얻을 수 없는 선기를 얻는다든가 하는 그런 방법.
애초에 내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도 선법과 선기가 목적이었다.
확실하게 얻어 간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얻기만 한다면 동 레벨에 우리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봐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만년 묵은 소나무의 씨앗>이었다.
신선들의 호감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
“어? 아저씨 저기, 누가 구름을 타고 오는데요!”
“왔네요. 예의는 적당히 갖추는 게 좋을 겁니다.”
슈아아악-
“……복장이…. 이게 맞는 거예요…?”
구름을 타고 온 신선의 복장은 우리와 비슷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현계인과 똑같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헤어스타일이었다.
하얗고 긴 머리에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인자한 얼굴상을 지닌 신선이었다.
“하하……. 제가 봐도 적응 안 되네요.”
구름에서 내려온 신선이 우리를 향해 말했다.
“아주 오랜만에 인간들이 방문했구나. 내 나름대로 꾸며 보았는데, 어떤가? 마음에 드는가?”
“네. 아주 마음에 듭니다.”
“으허허허허. 우리 신선들은 이곳에서 마땅한 낙이 없어 각자의 취미가 있다네. 보다시피 나는 현계인들의 패션을 아주 좋아하지.”
“하하…. 잘 어울립니다.”
취미가 현계의 패션이라니, 알다가도 모를 취미였다.
“내가 이렇게 친히 온 이유는 자네들을 마중하기 위함이야. 저기 가장 높은 곳으로 이동할 걸세. 궁금한 것이 있는가?”
신선의 말에 김도은이 앞으로 나섰다.
“당신은 누구죠…? 가장 높은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허허, 당돌한 처자일세. 그래, 내 소개를 먼저 하도록 하지. 나는 이곳 곤륜산에 기거 중인 신선 중 한 사람인 ‘강자아’라고 하네.”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자네들을 저곳으로 데리고 가는 이유는 이곳의 가장 높은 존재인 ‘천존’이 저곳에 계시기 때문이지.”
“아…….”
“인간들이 방문하면 천존과는 꼭 한번 봐야 하니까 말일세.”
이야기를 들어도 김도은의 얼굴에는 의문만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천존’이니, ‘강자아’니 하는 인물들을.
“그럼, 자네들을 데리고 갈 영물을 불렀으니, 잠시 기다리게. 으허허허허.”
강자아의 말에 김도은이 벙찐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안이 씨. 혹시… 저분… 태공망…….”
“네. 맞아요. 그 태공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