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괜히 말한 것 같았다. 말을 한 건 나인데, 부끄러운 것도 나였다.
쪽팔리네…?
뒤를 돌아보니, 김도은의 표정이 썩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임아린은 영문도 모른 채 나를 응원해 주고 있었다.
“아저씨 힘내요오!!!”
이 아이를 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린이밖에 없다….”
“형님. 이놈 이거 뭐라는 겁니까?”
“……시끄럽다. 알아들은 나도 창피하니까.”
“아… 예….”
그래도 한 명이라도 알아들었다니, 다행이었다.
생긴 건 맨들맨들 빡빡이에 곰 같은 덩치를 가지고 있어서 모를 줄 알았다.
“아저씨, 취향이 그쪽인가 봐…?”
나름대로 상남자 포스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일까?
대장으로 보이는 남성의 귀가 조금 빨개졌다.
“나, 스무 살이야!!!”
……내가 생각 없이 던진 말보다 당황스러웠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너무 놀라 마시던 물을 도로 뱉어냅니다.]
“……진짜요…?”
요즘 애들은 발육이 좋다더니, 성장기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는 건…….
형님이라고 부르는 저들의 정체는 아직 성인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저기, 혹시 뒤에 분들은 고딩…?”
“음! 당연하지!! 우린 열아홉 살이다.”
“아…….”
황당함이 하늘을 찔렀다.
나는 이들을 보자마자, 어디서 생활하는 조폭님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뭘 먹고 컸는지, 발육이 과하게 좋으시네요….”
“형님!! 저 새끼가 형님 놀리는데요!?”
“맞습니다. 형님!! 대머리라고 놀린 것 같습니다!!”
“내가 언제…?”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낄낄거립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관심을 가집니다.]
아니, 당신은 또 뭔데요…?
정신이 없었다.
“조져!!!”
대장이라는 자가 큰 소리로 외치자, 곧 다섯 명의 남성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긴장되는 상황이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스킬을 가지고 있고, 역사 게이트를 클리어한 나는 저들보다 강할 것이 분명했다.
[태극검 LV.1]을 사용했다.
태극검은 본래 장삼봉이 태극권과 함께 창안한 검법.
미완성의 기술이었지만, 공격보다 방어에 더 특화되어 있는 게 특징이었다.
공수 일체의 태극. 이것이 태극권과 태극검이었다.
내가 사용하는 건 태극검이었지만, 다대일의 전투에서 공격을 흘리고 방어하기에 이보다 좋은 스킬은 나에겐 없었다. 무엇보다 태극검을 사용하면, 공격을 흘리며 동시에 카운터 공격을 할 수 있었기에 꽤 좋은 스킬이라 생각했다.
후웅!! 스륵-
각자의 병장기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무리의 공격을 하나하나 피해냈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그리고 강과 약을 조절해 카운터를 먹였다.
“뭐야, 이 새끼!!! 무림 고수야?”
이들의 눈에는 당연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무림의 고수와 맞닥뜨린다면 나는 그들에게 상처하나 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아직은…. 이지만.
“아저씨 멋쪄요!!!”
임아린을 잠시 돌아본 나는 뿌듯함에 씨익. 웃어 줬다.
[스킬 [매력 발산 LV.1]을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명 : 매력 발산 LV.1
스킬 설명 : 특정 행동을 취함으로써 매력을 발산합니다.
# 해당 스킬은 무작위로 발동됩니다.
# LV이 상승하면, 모든 생명체에 매력을 뽐낼 수 있다.
# 매력 발산이 통한 상대는 당신에게 호감을 보입니다.
# (주의) 성별을 가리지 않습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박장대소합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자신의 첫 제자도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저 스킬은 또 뭔데…? 저 고승은 뭔데 자꾸….
어이없는 상황에서 해맑게 웃으며 나를 응원하는 임아린과는 다르게 김도은이 질색을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상처를 받을 것 같았다.
저런 표정을 지을 정도라고…?
태극검을 사용해 다섯의 남성을 때려눕히자, 그제야 대장이라 불리는 남성이 화가 난 표정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제법인데?”
자신의 도끼를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남성을 보자니 산적 같았다.
“뭐래. 산적처럼 생겨선.”
“죽어도 후회하지 마라.”
생긴 것답게 거대한 도끼였다.
무섭지는 않았지만, 순간 죽여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스킬 냉정의 효과로 사람을 죽이는 것에 거리낌은 없었다.
후웅!!!
촤악!!
나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도끼를 흘려내 남성을 목을 그어냈다.
쿵!!
“꺽….”
남성은 외마디의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남자의 생사를 확인하지 않은 채 몸을 휙 돌렸다.
그때였다.
“아저씨!!”
임아린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남성이 쓰러진 곳을 다시 돌아보았다.
그 순간.
후웅!! 푸욱!
“그러게, 왜 센 척을….”
김도은이었다.
자신의 무기인 활을 사용해 나를 공격해 오던 남성의 무리 중 한 명의 미간을 맞춰냈다.
명중률이 대단했다.
“오…. 덕분에 살았네요.”
“별말씀을.”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한심한 듯 바라봅니다.]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괜히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이며, 임아린과 김도은에게 다가갔다.
이로써 초반에 본 ‘명’에서 예정에도 없었던 두 명의 동료들이 생긴 것이다.
아주 조금이지만, 나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두 사람 괜찮죠?”
“아저씨. 엄청 멋졌어요!!”
“마지막에 멋진 척만 안 했어도….”
“그건 잊기로 합시다.”
민망했다.
그걸 콕 집어서 대놓고 말할 줄이야.
“크흠흠…. 그나저나 도은 씨? 돌아갈 가족이나 동료분들은…?”
“이미….”
“아….”
김도은이 화제를 돌리듯 임아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에게 물었다.
“이 아이는 동생인가요?”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났음에도 딸이냐고 물어보지 않아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곧 임아린과의 동행 과정을 알려 주며, 서로를 소개해 주었다.
안 그래도 내내 얼음장 같은 표정이던 김도은이 나의 이야기를 듣자, 더욱 애잔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 김도은을 바라본 나는 쓰게 웃었다.
“지금부터 미션 클리어를 위해서 움직일 건데, 정말 같이 가시게요?”
“네.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가시죠.”
어째서 처음 본 나를 믿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불의를 참지 못하고 도와준 것.
멸망이 시작되고 의지할 곳 없는 세상에서 그나마, 믿어 봐도 되겠다 싶은 사람이 나였을까?
나는 김도은에게 왜 나를 믿느냐 질문하지 않았다.
* * *
이세계 게이트의 근처에서 김도은을 구했기 때문에, 이동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짧은 시간 김도은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김도은은 얼음장같이 차갑고 도도해 보였던 처음과는 다르게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긴 그런 상황이었다면, 나 같아도 경계심이 넘쳐났을 것이다.
“여긴가요??”
“네. 도은 씨랑 아린이 둘 다 먹고 싶은 것 생각해 둬요.”
“아저씨! 저는요!! 킹크랩 먹고 싶어요!!”
“도은 씨는요?”
“전… 짜장면…에 탕수육….”
“조촐하시네요. 두 세끼는 먹을 수 있으니, 둘 다 먹도록 하죠.”
본래 포스트 아포칼립스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가장 단순하고 평범하게 먹고 싶은 게 생각나는 법이었다.
엄마가 차려 주신 집밥이라든가.
그렇다고 임아린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아이였고 무엇보다 킹크랩은 멸망 이전에 자주 먹는 음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특별한 날에 부모님과 함께 먹은 소중한 기억이 담긴 음식이었을 테지.
나와 동행한 이후로 엄마나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임아린을 보자, 마음이 조금 짠해졌다.
“그럼 들어가시죠.”
파앗!
[이세계 게이트에 진입하였습니다.]
[게이트의 등급은 ‘C’등급입니다.]
[이곳은 흑화한 ‘용사’의 게이트입니다.]
[클리어 조건 – 흑화한 용사를 처치하세요.]
[게이트에 진입한 인원은 총 63명입니다.]
“저기…. 오빠?”
김도은이 궁금한 것이라도 생겼는지, 어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오빠라니…. 굉장히 어색하네요. 보는 제 손발이 다 사라지겠습니다.”
“아, 몰라!! 아저씨라고 부를게요!!”
“6살 차이밖에 나질 않는데 아저씨는 반칙 아닌지….”
“몰라요. 오빠는 오글거려서 안 되겠어요.”
“편하실 대로 하세요. 아린이도 아저씨라고 하는데 뭐…….”
아저씨는 조금 그렇긴 했지만, 호칭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여긴 도대체 어디예요?? 이세계가 어쩌고…. 흑화에 용사는 또 뭐고??”
당연하다 싶은 질문이었다.
나는 그런 김도은과 임아린을 앞에 두고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도은 씨 외계인의 존재를 믿습니까?”
“네. 뭐, 우주가 이렇게 넓은데 외계인 하나 없을까요?”
“그겁니다. 이렇게 넓은 우주에서 엄청난 문명의 발달을 이룩한 곳도 있을 테고, 이런 식으로 용사가 존재하는 세계도 있는 겁니다.”
“아…. 그렇게 쉬운 거였어요?”
“더 말씀드리자면, 벌레들이 가득하거나 생명체가 하나도 없는 곳도 존재합니다. 영화나 미스터리 프로그램에 나오는 초록 외계인도 있을 거고요.”
“아…. 근데 보기는 싫네요. 으악….”
“아린이도 벌레 싫어요!!”
“저도 싫습니다. 특히 바퀴벌레.”
의견이 일치하자, 서로를 쳐다보며 피식 웃는 세 사람이었다.
“일단 밥부터 먹죠. 이곳의 계산은 시드를 이용하면 됩니다.”
남은 시드는 얼마 없었다.
그런데도 여유가 있었던 것은 물가가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인지 이곳에서는 1만 시드만 있어도 호화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명’에서 본 사람 중에는 미션을 클리어하지 않은 채 이런 이세계 게이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이곳 생활이 일정 시간 흐른 뒤에 누군가 게이트를 클리어하게 되면 본인들이 소멸한다는 것도 모른 채로….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중세풍의 의상을 입고 있는 이세계의 주민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중무장을 한 모험가도 존재했고, 현계에서 넘어온 우리와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구분하기는 쉬웠다. 복장 자체가 달랐으니.
“그나저나, 되게 신기하네요. 여기.”
나 또한 기억에서만 봤기 때문에,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신기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우와. 아저씨 아린이 저거 사 주면 안 돼요?”
길을 걷던 중 임아린이 옷 가게에 걸려있는 연한 핑크색의 마법사 로브를 가리켰다.
그렇지 않아도 식사를 한 후에 옷을 구매하고 몸도 씻어낼 예정이었기에 흔쾌히 대답했다.
“당연하지. 일단 밥 먹고 사러 가자 알겠지?”
“좋아요!”
“저는 저거…….”
자신이 입을 옷을 수줍게 고르는 김도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하하. 좋습니다.”
어느 정도 걷자, 나타난 것은 <맛있어요. 킹크랩!!>이라는 킹크랩 전문 음식점이었다.
어째서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는 음식점이 있는지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세계 게이트는 대개 시스템 ‘관리자’들이 분담해서 담당하게 된다.
그렇다는 건…. ‘관리자’들은 이곳을 시드 벌이로써 활용하는 것뿐이었다.
입구를 들어서자, 고급스러운 느낌의 음식점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룸으로 부탁드려요. 이건 팁입니다.”
“아이고!!!! 호…. 아니, 고객님!!! 이쪽으로 오시죠!!”
나는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팁을 주며 말했다.
저놈 저거, 바로 앞에 분명히 호갱이라고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팁은 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런데도 팁을 준 이유는 룸으로 들어가 조용하게 식사를 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10 시드만 줘도 저들은 지폐 오만원권을 받은 것처럼 기뻐했으니 말이다.
안내를 받아 룸으로 들어서자, 세 명이 먹기에는 조금 큰 느낌이 있었다.
“너무 큰 거 아니에요…? 이 정도면 대형 룸인데.”
“10 시드의 위력입니다. 있는 자의 여유…?”
“하…. 하하…. 그래요.”
33390시드밖에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있는 자였다.
자리에 착석한 뒤 메인 요리인 킹크랩을 주문했고, 임아린과 김도은이 사이드 메뉴로 튀김과 초밥을 추가로 주문했다.
“다 못 먹을 텐데….”
“에이, 세 명인데요?”
“기다려 보세요. 보시면 깜짝 놀랄 겁니다.”
아무래도 김도은과 임아린은 이곳이 처음이었기에, 사이드 메뉴까지 시킨 것일 테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메인 메뉴 한 가지면 배가 찢어지게 먹을 것이라는 걸.
주문하고 15분 정도가 지나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킹크랩이었다.
“세상에……. 저희가 주문한 거 맞아요? 시드 다 쓴 거 아니에요…?”
“우와…. 아린이보다 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