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episode(3) 두 번째 미션 : 첫 번째 선택
게이트에 들어서자 알 수 없는 악취가 내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크흡…. 이게 뭔 냄새야…?”
“아저씨…. 냄새 으….”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답답하게 가만히 있지 말고 스토어를 이용하라고 말합니다.]
임아린과 내가 지독한 악취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움직이질 않자, 답답했는지 스토어를 이용해 보라는 아주 좋은 제안을 해 주었다.
“오, 천재?”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벗어납니다.]
……
나는 곧 시드 스토어를 열어 아이템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따로 검색 기능이 있었기에 찾는 것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아이템 명 : 냄새 먹는 콧구멍
아이템 설명 : 후각에 민감한 분들을 위한 잇템!!! 아무리 좋지 않은 냄새라도 아이템을 사용하여 원하는 냄새를 생각하면 효과가 다 할 때까지 그 냄새만 납니다.
# 효력이 유지되는 시간은 3시간입니다.
아이템을 두 개 구매한 나는 임아린에게 사용 방법과 함께 아이템을 건넸다.
“그래서, 이런 아이템을 왜 파는 건데……?”
“우와아아아!!!!! 아저씨!! 이거 쓰니까 초코 향기가 나요!!”
임아린이 어떤 생각을 하며 아이템을 사용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거겠지.
임아린의 뒤를 이어 아이템을 사용했다.
향은…. 흔들리는 벚꽃 속 네 샴푸 향…….
[‘냄새 먹는 콧구멍’의 아이템 효과가 발동됩니다.]
[지속 시간은 3시간입니다.]
“오…!?”
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악취는 아이템을 사용하자, 내가 상상한 향으로 바뀌었다.
향이 아주 좋았다.
계속 맡고 싶다는 기분마저 들 정도로.
“아린아, 가 볼까?”
“응, 가요 아저씨!”
앞으로 백 미터 정도를 이동하자, 곧 이상한 소리를 내는 오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수는 일곱.
문제 될 건 없었다.
‘A’급 역사 게이트를 통해 폭업을 한 나였기에.
전설적인 무장들을 보다가 오크들을 보니, 엄청난 근육의 프로 레슬링 선수와 초등학생 씨름부가 생각났다.
물론, 오크들이 씨름부였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어서 재미난 짓을 해 보라며 재촉합니다.]
“……왜 이제 환생 안 하시는 건데요?”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다른 재미를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애써…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는 오크들을 향해 용광검을 꺼내 들었다.
오크들은 고블린과는 달랐다.
체형이 큰 것은 당연했고, 거대한 어금니에 험악하게 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췩!! 췍췍!!!”
“……래퍼야…?”
“취에에엑!!!”
후웅-!!
달려드는 오크의 몽둥이를 회피했다.
강한 휘두름에 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아이템 ‘냄새 먹는 콧구멍’의 효과로 바람에서 풍기는 냄새조차 향긋했다.
나는 대부분의 능력치가 100을 넘어섰기에, 그대로 검을 내리그었다.
서걱-
한 방이었다.
그것도 두부 잘리듯 간단하게 죽은 오크를 바라보며, 당황한 것은 오크가 아니었다.
나…… 생각보다 센데…?
“와…. 아린아 봤어?”
“아저씨 짱 세여!!”
“그치?”
나의 자신감이 천장을 뚫고 끝없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할 수 있다.
쿵. 쿵. 쿵.
오크들이 달려들었다.
만약 내게 스킬 [냉정 LV.1]이 없었더라면 거대한 몸을 이끌고 뛰어오는 모습에 나는 이미 무서워서 도망가고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 ‘시드 스토어’에서 구매한 무림계의 [태극검(太極劍) LV.1]을 사용했다.
스킬 명 : 태극검(太極劍) LV.1
스킬 설명 : 이 검법은 무림 이야기를 하면 떠오르는 구파일방(九派一幇)중 한 곳인 무당파(武當派)의 수장 ‘장삼풍’이 창안한 무당파 최고의 절기.
# 모든 공격은 방어에서 시작된다.
# 깨달음을 얻을 시 스킬의 LV이 상승한다.
시스템 덕에 사용이 가능한 것이지, 시스템이 없었다면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검법이었다.
검법을 사용한 나는 오크들을 하나하나 처리하기 시작했다.
스악-!!
촤악!
쉬웠다.
이렇게까지 쉽다는 게 말이 안 될 정도로 쉬웠다.
하지만 나 혼자 성장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임아린의 레벨 성장이 더딜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임아린에게 마지막 타격을 양보하며 오크들을 처리했다.
어린아이였기에 본인의 손을 더럽히지 않게끔 ‘시드 스토어’에서 [초급 마법서]를 구매해 주었다. 재능이 있던 것인지 임아린이 사용하는 마법은 초급임에도 꽤 강력해 보였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7살보다 못한 재능이라며 혀를 찹니다.]
“……”
오크들을 쉽게 잡은 것은 편법을 사용해 레벨업을 한 것과 용광검이 있어서 가능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시스템의 덕으로 ‘장삼풍’ 최고의 절기를 익혔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알고는 있었다.
나에게 전투적인 재능이 없다는 것은.
[스킬 [냉정 LV.1]이 강하게 발동합니다.]
…… 아니, 시스템이랑 성좌 님 같은 편이세요?
아무래도 나를 갈구는 것은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뿐만 아니라, 시스템도 한통속인 것 같았다.
짜증을 뒤로한 채 임아린과 앞으로 나섰다.
고블린의 게이트에서 ‘히든 피스’를 얻을 때를 생각해 보면 갑작스레 몬스터의 수가 늘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했다.
오크의 게이트는 등급이 낮아 레벨업의 속도가 더뎠기 때문에 사냥을 굳이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지만, 1레벨이라도 오른 것에 감사했다.
무엇보다 임아린의 레벨이 어느새 10을 돌파해 꽤 강한 화력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되겠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두세 바퀴는 더 돌기를 바랍니다.]
이미 고블린의 몬스터 게이트에서 쓸데없이 말을 잘 들어 고생했던 기억이 있던 나는 성좌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임아린과 ‘히든 피스‘가 있는 방에 도달하였다.
역시나 ‘히든 피스’가 있는 방에는 몬스터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오크의 수는 대략 스무 마리 정도였다.
하지만 무섭지 않았다.
임아린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지,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마법을 쓰는 게 재미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린이 안 무서워?”
“재밌어여. 아저씨!!”
요즘 어린이들은 무섭다더니, 이렇게 빨리 적응할 줄이야…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달려드는 오크들을 향해 여포를 잡고 얻은 [무쌍 난무 LV.1]을 사용해 보았다.
스킬 명 : 무쌍 난무 LV.1
스킬 설명 : ‘후한 말기의 비장’이 살아생전 즐겨 사용하던 스킬이자, 공격법이다.
전투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위력은 배가 된다.
# LV이 상승할수록 집중력이 상승한다.
# 집중력이 상승할수록 데미지가 상승한다.
촤악!!
스르릉- 스악-
스킬을 사용하자, 정말이지 전투에 미친 인간처럼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촥!!! 스걱-
계속된 공격에 오크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장난 아닌데…?
어째서 여포를 잡고 이 스킬을 얻은지 알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일기당천(一騎當千)이었다.
순식간에 오크들을 몰살시킨 나는 곧바로 상자를 열었다.
파앗!!!
상자를 열자, ‘히든 피스‘가 있던 룸의 모든 것이 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빛이 나에게 빨려 들어오더니 곧 시야가 회복되었다.
[히든 피스를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스탯 흡수 LV.1]을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명 : 스탯 흡수 LV.1
스킬 설명 : 죽은 생명체의 스탯을 랜덤한 확률로 흡수합니다.
# LV이 상승할수록 흡수 할 수 있는 비율이 높아집니다.
아직 레벨이 1밖에 안 되어 효율은 높지 않았다.
하지만 효율이 낮은 상태에서 1씩만 오른다고 해도 백 마리면 100이나 오르는 것이었다.
초반 구간에서 이보다 능력치의 성장을 빠르게 높일 수 있는 스킬은 존재치 않았다.
더군다나, 스킬이 성장한다면, 한 마리에 1이 아니라 10이나 100씩 오를 가능성도 다분했다.
그야말로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시작 구간에서 내가 얻을 것은 없었다.
남은 건… 성장과 ‘명’을 바꾸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 * *
임아린과 함께 룸을 나서 지도자 격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길에 오크들의 수가 꽤 많았지만, 잡는 것에 더 이상 어려움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지도자 격 룸의 앞에서 다시 한번 성좌가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다시 한번 생각하길 권유합니다.]
“이번에는 안 속습니다.”
또 개고생시킬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지도자 격 몬스터가 잠들어 있는 룸의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지도자 격 몬스터 ‘오크 로드’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인간…!!! 췩!!!감히 내 잠을 깨우는가!? 췩췍!!”
“말투 되게 웃기다. 낄낄.”
나도 모르게 오크 로드를 보며 비웃었다.
그러자, 비웃는 나의 모습에 오크 로드가 분노하기 시작했다.
오크 로드는 자신의 화를 식히지 못하겠는지, 거대한 도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다 바닥을 강하게 쳐 내렸다.
쿠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바닥이 움푹 패였다.
한 방에 골로 가겠는데…?
느껴지는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기존 오크의 두 세배는 될 법한 거대한 몸집에 몽둥이가 아닌 성인 남성보다 더 크기가 큰 도검.
한 방만 맞아도 머리통이 날아갈 게 분명했다.
“아린아, 절대로 아저씨 앞으로 나서면 안 돼.”
“네…. 네!!!”
임아린을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긴장되는 상황 속에 공기가 무거웠다.
스킬 [냉정 LV.1]의 효과가 발동했음에도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본래,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선빵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용광검을 뽑아 들어 스킬 [질주 LV.1]를 사용해 빠르게 치고 나갔다.
스악!!!
오크 로드의 팔뚝을 강하게 그어 냈다.
하지만.
데미지가 없었는지 오크 로드는 엄청난 소리로 울부짖으며 거대한 도검을 휘둘렀다.
쾅-!!!!
“크학…!!”
용광검을 들어 내리찍어 오는 도검을 막아냈다.
얼마나 강한 공격이었는지 내가 서 있던 자리가 움푹 패어 들어갔다.
검과 도가 닿았음에도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거대한 폭음만이 들려왔다.
단 한 방에 위기감을 느낀 나는 남은 55개의 LV 포인트를 힘에 투자했다.
엄청난 악력에 짓눌리자, 오크 로드가 도검을 마구잡이로 내려찍기 시작했다.
쾅!!!쾅-!!! 쿠콰쾅!!!!
바닥은 점점 깊게 파여 들어갔다.
LV 포인트를 힘에 투자했음에도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 한쪽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럼에도 오크 로드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자비란 없다는 듯.
나의 목숨을 끊기 위해 공격은 계속되었다.
쾅쾅!!!!! 쾅!!!!
“크하아아!!!!!”
한계였다.
고작 이 정도에 죽어 가는 내가 한심했다.
내가 죽으면 아린이가…!!
그 순간….
파직- 파지직-!!!
쿠릉!!!
쿠콰쾅!!!!
엄청난 위력의 번개가 오크 로드 머리 위로 떨어졌다.
“취… 익…?”
당황한 오크 로드를 보자, 공격이 먹혀 들어갔다는 안도감보다 임아린이 위험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내 생각이 현실로 이어지듯 오크 로드가 임아린을 향해 움직였다.
쿵.
쿵. 쿵.
나의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크 로드의 엄청난 연격을 받아 내서였는지 움직이려 하자, 두 다리가 강하게 저릿해져 왔다.
“큭…. 아린아, 위험해 도망가…!!”
지금 당장 달려갈 수 없다는 것에 화가 났다.
“멈추라고 뚱땡이 새끼야!!! 나부터 죽여…!!!!!”
나는 생각나는 대로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크 로드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멘탈이 갈려 나가기 시작했다.
[스킬 [냉정 LV.1]의 LV이 상승합니다.]
[스킬 [냉정 LV.2]이 강하게 발동합니다.]
현재 상황에선 조금 냉정해지든, 많이 냉정해지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린 다리를 주먹으로 강하게 쳐댔다.
퍽!!! 퍽!!
“움직여라…. 움직여…!!!”
퍽퍽!!!! 퍽!!!
충격을 너무 세게 받았는지, 다리는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왜 두세 바퀴를 돌지 않았느냐며 혀를 찹니다.]
“…….”
내가 정해진 ‘명’을 바꿔서 저 아이는 오크 로드에게 죽임을 당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단 한 번, 하루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솔깃했다.
다시 시작한다면….
레벨을 더욱 상승시켜, 오크 로드와 싸운다면 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 싫었다.
시간을 되돌리면 비록 임아린의 기억에는 없겠지만, 저 아이에게 다시 한번 부모가 죽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시 한번 저 아이의 입에서 ‘아저씨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시드 스토어.
전투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시드 스토어를 열었다.
[풀포션 – 100%의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 30만 시드]
[풀포션을 구매합니다.]
나에게 남은 38만 시드 중 절반 이상을 사용해 풀포션을 구매했다.
벌컥. 벌컥.
아깝지 않았다.
쿵.
쿵.
쿵.
오크 로드가 임아린에게 거의 도달했다.
쿠릉!!! 쾅!! 쾅!!! 쿠쾅!!!
임아린이 겁에 질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오…. 오지 마!!! 오지 마라구, 괴물아…!!!”
임아린의 마법을 한 방씩 맞을 때마다 오크 로드는 아주 조금 멈칫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오크 로드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쿵.
체력을 회복한 나는 [질주 LV.1]를 사용해 뛰어나갔다.
사정거리가 좁혀지자, 높이 점프해 검으로 오크 로드의 등짝을 강하게 베어 냈다.
촤악-!!!
푸화악-
오크 로드의 등에서 끈적거리는 녹색의 무언가가 뿜어져 나왔다.
“화가 난다!!! 췩!!! 죽여 주마!!! 췍!!”
“이리 와. 이 덩어리 새끼야.”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