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다짜고짜 수십 마리의 고블린이 아닌 것에 감사했다.
고블린의 수는 고작 셋.
스킬 냉정의 효과가 아니었다면, 나는 식칼 두 자루를 들고 고블린들과 맞서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본 ‘명’에서는 말이다.
고블린이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내게 빈틈만 보인다면 저 작은 몽둥이로 나를 치겠다는 듯, 침을 흘리며 나를 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틈이 보였다고 생각한 고블린들이 제자리에 서기 시작했다.
휙!!!
“이크!!”
촤악-!!
“키에엑!!!”
덤벼든 것은 다행히도 한 마리였다.
공격을 회피하며 마구잡이로 식칼을 휘둘러 가장 먼저 덤벼든 고블린의 허벅다리를 그어냈다.
그리 강한 공격이 아니었음에도 허벅다리를 식칼에 긁히자, 고블린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나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뒤져!!! 시금치 같은 새끼들아!!!”
나름의 기합과 동시에 나는 식칼을 휘두르며 다친 고블린을 향해 덤벼들었다.
휙-휙-!!!
‘G’급 게이트답게 그리 강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나는 곧 식칼을 강하게 투척했다.
후웅!!! 푹!!
다친 고블린의 가슴팍에 식칼이 박혀 들어갔다.
한 마리의 고블린이 죽은 것을 기회 삼아 멀찍이 서 있는 두 마리의 고블린에게 달려들었다. 한 마리는 죽빵을 갈겼고, 남은 한 마리의 고블린은 발차기를 사용해 밀어 버렸다.
퍽!!!
“헉…. 허억….”
그리 오래 이어진 전투가 아니었음에도 숨이 차오르는 걸 보니 알콜로 다져진 내 체력이 구더기라는 것이 절실히 느껴졌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이라도 했지….
후회한들 이미 상황은 벌어졌기에 늦은 감이 컸다.
식칼을 투척하고 남은 손을 이용해 나 자신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짝!!
나름의 정신을 차리려는 조치였지만, 너무 강하게 쳤는지 한쪽 뺨이 얼얼했다.
곧 남은 두 마리의 고블린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고블린의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땅바닥을 굴렀다.
낙법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낙법이 아니고 그냥 흙먼지가 가득한 바닥을 떼구르르 구른 것이었다.
“케케케켁!!!”
내 모습에 고블린들이 자신감이 붙은 것 같았다.
“자존심 상하게….”
고작 이따위 고블린에 고전하는 내 모습에 환멸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운명을 바꾸는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냉정 LV.1]의 효과로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기 시작했다.
곧 이어지는 공격.
휘익!!
고블린의 몽둥이가 나의 복부를 향해 날아왔다.
크기에서 차이가 났기에 내 머리를 노릴 수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고블린의 공격을 백스텝으로 회피한 뒤 하나 남은 식칼을 고블린의 목을 향해 찔러 넣었다.
푸욱!!!!
촤학!
고블린의 목에서 검붉은 피가 아닌, 진한 초록색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일루와 이 새끼야.”
“케…. 케케…. 켁….”
남은 고블린은 한 마리.
두 마리도 죽였는데 한 마리라고 어려울까 싶었던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가 추진력을 이용해 몸통 박치기를 했다.
퍼억-!!
쿵!!!!
고블린이 저만치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동시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고블린이 들고 있던 몽둥이를 놓치고 말았다.
씨익.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내가 고블린을 쳐다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대로 달려 나가 고블린의 몽둥이를 뺏어 들었다.
그리고…….
퍽! 퍽!! 퍽퍽!!!
인정사정없이 고블린을 후려쳤다.
머리, 가슴팍, 복부 수차례를 때려 고블린을 죽였다.
곧 시스템의 알림이 뜨기 시작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이로써 나는 레벨이 2가 되었다.
“헉…. 허억….”
숨이 차오르는 것을 무시한 채 정보창을 열어 어느 정도의 상승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LV2 – 이안 / 26살
힘 - 8 / 99999
민첩 – 10 / 99999
마력 – 3 / 99999
체력 - 13 / 99999
LV 포인트 - 5
각성 등급 - 미확정
전용 특성 – 없음
배후성 – 없음
성흔 - 없음
시드 - 0 seed
처음에도 벌레 수준의 능력치였지만, 레벨 업을 한 뒤 다시 보아도 똑같이 벌레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레벨 업을 하며 오르는 능력치와는 별개로 5라는 포인트가 지급되었다.
[스킬 [냉정 LV.1]의 효과가 강하게 발동합니다.]
……누구 놀리냐…?
상황에 맞게 시스템은 자동으로 [냉정 LV.1]을 사용해 주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마치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말합니다. 븅….]
성좌의 메시지가 들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이놈의 성좌는 벌써 시스템을 파악한 것 같았다. 그 결과로 시스템을 이용해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 듯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저건 욕이었다.
“후…….”
나는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곤,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그쪽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
저 성좌는 내가 죽기 전에 분명히 시스템의 목소리로 들었던 성좌였다.
그래서인지 나를 위기에 몰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길 안내를 해 주는 성좌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블린들이 다시 나타났다.
“키케케케켁!!!”
“어서 와. 경험치들.”
벌레 같은 능력치를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고블린을 보다 많이 잡아야 했기에, 이 순간만큼은 고블린들이 반가웠다.
고블린의 수는 처음보다 늘어 총 여섯 마리였다.
레벨이 1 올랐다고 고블린의 수도 두 배로 증가한 것이었다.
“……많지 않나…?”
조금 당황했지만, 나는 겁먹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공격을 했다.
나름대로 ‘선빵 필승’의 전략이었다.
LV 포인트를 아껴 두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수가 많아 민첩에 남은 포인트를 모조리 투자했다.
휘릭- 푹!!!
“케에엑…….”
“키케케케!!!”
빠르게 한 마리의 고블린을 죽이자, 겁이라도 먹은 건지 다섯 마리의 고블린이 움칫거리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촤악!!!
푹!!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가장 가까운 고블린의 목을 그어 버렸고, 곧바로 뛰어 다른 한 마리의 고블린의 심장 쪽을 향해 찔러 넣었다.
“스읍…. 후….”
길게 심호흡을 한 나는 남은 세 마리의 고블린을 노려보았다.
“케……. 케엑….”
처음과는 다르게 겁을 잔뜩 먹은 듯, 공격해 오지 못하는 고블린들이었다.
[스킬 [강렬한 눈빛 LV.1]을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명 : 강렬한 눈빛 LV.1
스킬 설명 : 매우 강렬한 눈빛을 날려 상대방에게 위협을 줍니다.
# LV과 마력이 상승할수록 상대에게 주는 위협이 커집니다.
“내가 방금 노려봤다고…? 그래서 이 스킬이 위협이 된다고…?”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환생보다 더 재미난 놈이라고 말합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말합니다. 낄.낄.낄.]
“아니, 그런 식으로 시스템 이용하지 말라고….”
여섯 마리의 고블린을 압도하며 이기고 있는데도 짜증이 몰려왔다.
곧 화를 가라앉힌 나는 남은 고블린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패댔다.
푸욱!!! 푹푹!!!
마무리는 식칼이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솔직히 이 식칼이 이렇게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식칼은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었다.
벌레 같은 내 능력치보다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이로써 레벨은 어느덧 3이 되었다.
능력치가 오르자, 제법 강해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기분은 단순히 고블린 앞에서만 허용되는 것뿐이었다.
현재의 나는 조금 강한 벌레였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자신이 개미였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깁니다.]
“왜 추억에 잠기는데요…?”
나를 보며 추억에 잠기는 성좌를 보니 기분이 나빠졌다.
망할 성좌놈. 아무리 그래도 개미랑 비교를 해…?
기분이 나쁘다는 것과는 별개로 길을 제시해 주는 저 성좌의 말이 고맙기도 했다.
한참을 앞으로 나아가자 곧 빛이 가득한 방이 보였다.
빛이 가득 찬 방으로 들어가자, 드디어 ‘히든 피스’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감격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상황에 내 동공이 평소의 곱절로 커지며 절망감이 들기 시작했다.
고블린이 열 마리는 넘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X됐다.”
열 마리의 고블린은 몰려다니는 양아치들처럼 눈알을 부라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키케케케”
“케케케킥!!”
“나보다 강하면 형이라던데… 너네들은 형인가요…?”
솔직히 잠시 쫄았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 주기라도 한 것인지, 스킬 [냉정 LV.1]이 발동했다.
수시로 꺼지고 발동하는 제 마음대로 하는 스킬이었지만, 순간순간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나중에 상시 발동으로 전환이 되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나는 고블린들을 유인하기 시작했다.
열댓 마리의 고블린들 뒤에는 ‘히든 피스’를 담은 하나의 상자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도망치는 척을 하자, 자신감이 붙었는지 고블린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해 LV 포인트를 사용해 민첩을 찍곤 ‘히든 피스’가 담긴 상자를 향해 방향을 틀어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당황하는 고블린을 무시한 채 보물상자를 재빠르게 열었다.
번쩍!!
[‘히든 피스‘ 용광검을 획득하였습니다.]
아이템 명 : 용광검 - 1단계
아이템 설명 : ‘누군가’가 애용했던 ‘신기’이다. 하지만 이 신기는 봉인된 상태로, 본래의 힘을 되찾아야 신기로써 사용할 수 있다.
#사용자가 성장함에 따라 봉인이 해제됩니다.
#’능력치‘는 용광검의 성장에 영향을 끼칩니다.
#봉인상태.
아이템 속성
스킬 공격력 : 10%
방어 무시 : 10%
성장형이었기에 지금 당장은 엄청난 무기가 아니었지만, 방어 무시 10%, 스킬 공격력 10%의 옵션이 붙어 있었다.
문제는….
현재의 나에게는 공격용 스킬이 없다는 것.
그저 휘두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스르릉-
“네들 다 뒤졌어.”
용괌검을 든 나는 자신 있게 고블린들을 노려보았다.
[스킬 [강렬한 눈빛 LV.1]을 발동합니다.]
“케…. 케에엑?”
“켁켁…!!!”
이 스킬이 먹힌다는 것에 놀라웠지만, 이대로 놀라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민첩을 올린 후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고블린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촥!! 촤륵!!
푹!!
갑자기 덤벼드는 내 공격에 고블린들이 당황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민첩 능력이 올라간 덕분에 도망치는 고블린을 잡아 베어 버렸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무기 하나로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만족스러움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쉴 틈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곧바로 움직였다.
* * *
눈에 보이는 고블린들을 죄다 학살하며, 레벨은 어느덧 6이 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또 다른 룸이었다.
이 정도 레벨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지도자 격 ‘홉고블린’이 있는 룸에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한 바퀴 더 돌고 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 말합니다.]
잠시 고민했지만, 괜히 저러는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게이트를 이곳저곳 돌며 레벨을 9까지 올렸다.
“이제 됐죠?”
그리고 다시 도착한 ‘홉고블린’ 룸 앞에서 성좌를 향해 말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말 잘 듣는 강아지 같다고 합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처음에 들어갔어도 쉽게 잡았을 거라 말합니다.]
“저…. 망할…?”
농락당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말만 저렇게 할 뿐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보스 룸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지도자 격 몬스터 ‘홉 고블린’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끼에에에에!!!!!”
“아우, 시끄러워.”
일반 고블린보다는 컸지만, 아주 조금 클 뿐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외형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다른 것은 몸의 색뿐이었다.
초록색의 고블린과는 다르게 홉 고블린의 색은 선분홍빛이었다.
“핑크 핑크 한 게 귀엽… 진않네.”
“키켁?키케에에에엑!!!”
내 말에 반응하는 것을 보니,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일루와, 경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