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 재벌가의 후예(2)
* * *
“나 정말 당신 많이도 보고 싶었어.”
“....”
“병원에서 잠깐 당신을 만났지만 당신과 닮은 사람이라 생각만 했지 당신이란 것은 알아보지 못했어.”
“죄송해요. 미리 연락드리지 못해서.”
“아니에요. 내가 왜 당신 마음 모르겠어요.”
“그리고 슬준아. 난 네게 제일 미안하다. 그렇지만 난 진심으로 널 사랑했어.”
“알아요. 어머니. 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제가 다 기억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떠나시기 전에 저를 안고 얼마나 우셨는지 모두 다 기억해요. 훌륭하게 자라라고 몇 번이나 당부 하셨고. 그런데 그런 걸 저도 뒤늦게 깨달았어요. 어릴 때 그냥 이유 없이 어머니가 저를 버린 줄만 알았어요.”
“미안하다. 준아.”
“여보 우리 재결합해요. 미준이도 우리 호적에 올리고.”
“그래, 애미야. 그렇게 해라. 우리 집안에 갑자기 회장이 두 사람이나 되었네.”
“그럼 제 부탁도 들어 주세요.”
어머니는 연회장을 보며 정색하며 말했다.
“부탁? 뭐든지 말해.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 할 테니.”
“우리 슬준이 뉴 해양 중역자리에 배치해 주세요. 다 제 때문에 잠시 어긋나서 회장님 눈 밖에 난 것 같은데 이제 슬준이도 예전 같진 안잖아요.”
“알았어요. 당신 뜻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슬준이도 나와 약속해 줘.”
“네, 어머니. 어머님 말씀이라면 모두 다 지킬게요.”
“정말이지?”
“네, 정말이고, 말고요.”
“네도 이제 이런저런 여자들 너무 만나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 재혼을 해.”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우리 집안이 모두 제자리로 오게 되는 것 같구나. 고맙다. 며늘아.”
그때 미준은 휴대폰을 꺼내 신고궁에서 찍었던 연기산 황제의 초상화를 꺼내 할머니께 휴대폰을 건네 드렸다.
“할머니. 이분 아시겠어요?”
“아니, 이게 누구야. 어떻게 이런 사진이?”
모두들 휴대폰을 든 할머니의 손이 가볍게 떨렸고 할머니 주변으로 모두 모여들었다.
“누구세요. 할머니?”
슬준이 궁금하여 할머니께 물었다.
“이분이 네 할아버지시다.”
“네?”
“아니 뭐 이런 일이.”
연상준 회장도 그만 입이 딱 벌어졌다.
“미준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혹시 제가 쓴 책 숲속나라 신고국이란 책을 보셨는지요?”
“봤지. 그걸 안본 사람이 몇이 있을까? 지금도 이슈가 되어 논란이 많은데.”
“제가 지금 계발하고 있는 소행성 신곡국 초대 황제가 바로 할아버지였습니다.”
“뭐라?”
“할아버지는 소행성을 통일하셨고 초대 황제를 지내시면서 할머니를 못 잊어 황제 자리를 양위하시고 이곳으로 와서 할머니를 찾아 결혼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내겐 왜 한마디 말씀도 없었을까?”
“아마 그럴 사정이 있었을 거예요.”
“아, 그랬구나. 그래서 간혹 이상한 꿈을 꾸고 그랬구나.”
“.....?”
“당신이 간혹 잠꼬대를 하시면서 ‘과인이 어쩌니’, ‘짐이 어쩌니’ 하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여봐라’, ‘장군.’ 등 당신이 곧 왕이 된 것 같은 잠꼬대를 하셨지.”
“....?”
“내가 잠꼬대에 대해 물을 때 마다 개꿈 이라며 웃어넘기곤 했지.”
“개꿈?”
“난 뭔가 있다는 걸 직감은 했으나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정말 몰랐네.”
이어서 미준은 신고국 도성 천개성 사진을 하나하나 가족들에게 보여드렸다.
“세상에. 이런 미끼지 않는 일이.”
“사실 난 자네가 신고국에 대한 책을 발표했을 때 반신반의 했지.”
“이해가 됩니다. 아버지. 사실 저도 못 믿을 이야기니까요.”
“그러니 지금도 언론에선 논란이 많지.”
“네. 아버지.”
“우리 집안이 이런 집안이었다. 항상 하는 일에 자중자애하고 겸손하게 살아라.”
“네, 할머니.”
“신기하기도 하다. 이게 다 운명인가?”
“원래 운명이라 있다고 하지 않아요.”
“어찌 또 네가 할아버지가 이룩한 신곡국을 손자인 네가 찾게 됐단 말인가?”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60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 부부가 들어왔다.
“언니?”
“언니.”
그는 바로 연상준 회장의 동생 연 상미였다.
둘은 서로를 언니라고 부른다.
한참 동안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고모님. 그리고 고모부님.”
미준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고 고모의 남편이자 연회장의 친구 김민수의 머리에도 희끗희끗 한 머리칼이 뜨문뜨문 나 있었다.
“생질. 정말 반가워요.”
“자네는 어떻게 알고 왔나?”
“슬준이가 연락해 줬어요.”
“음.”
상미와 어머니는 나이로 보면 상미가 언니지만 집안으로 보면 오빠의 부인이니 어머니가 언니다.
처녀 시절에는 부르던 언니 관계가 결혼을 하고나니 바뀐 것이었다.
그래서 서로 언니라고 한 모양이었다.
결혼 전에는 어머니가 고모에게 언니라 불렀고 결혼 후에는 고모가 어머니께 언니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잘 지내고?”
“몇일 후에 귀국할 겁니다. 제가 연락을 했어요.”
“손주들도 잘 자라고?”
“네. 형님.”
친구 사이던 민수도 친구 상준을 보고 형님으로 부른다. 아내가 친구 동생이다 보니 족보가 이렇게 정리되는가 보다.
“이 사람 족하. 자네도 대단하이.”
“우리 미준이 이야기 들었어?”
할머니는 신이 나서 사위 민수에게 물었다.
“아이고 장모님. 천 회장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천회장이 아닐 세. 이 사람도 연회장이네.”
“하하하, 그러네요.”
“언니. 미준의 이름도 슬준이 처럼 지었네?”
상미의 말이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야?”
“큰 조카 슬준은 다슬의 슬자와 오빠 이름 상준의 준자를 따서 슬준이라 지었는데, 미준은 언니 이름을 따서 뷰미의 미자와 오빠 이름 준자를 넣어 미준이라 했겠지?”
“정말이오. 여보?”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역시 당신도 나를 생각하고 있었구려.”
“제가 어떻게 회장님을 잊겠어요.”
모두들 박수갈채를 보냈다.
“잘됐어. 형제간에 형은 슬준이 동생은 미준이. 준자가 돌림자가 되었네.”
“형제만 그래? 상준, 슬준, 미준. 대를 이어 준자네.”
“하하하.”
모두들 유쾌하게 웃었다.
그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도 많은지 몇 달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얼마 후 연상준 회장은 천미준을 친자확인 소송을 거쳐 연미준으로 입적하였고 아내 도 본명을 되찾아 천뷰미로 하여 혼인신고 하였다.
세상의 이목이 다시 연씨 가문에 집중되었고 모두 놀란 것은 뉴 중산 회장이 뉴 해양 회장의 친자였다는 것에 다시 놀랐다.
그 뿐 아니었다.
장남 연슬준을 서울로 불러 올려 뉴 해양 본부장으로 승진시켰고 중산에 위치한 뉴 해양의 모든 기업을 연미준 회장에게 모두 넘겼다.
뉴 해양 괴물 아쿠아리움을 뉴 중산 괴물 아쿠아리움으로, 뉴 해양 박물관을 뉴 중산 해양 박물관으로, 뉴 해양 중산 백화점도 뉴 중산 백화점으로 개칭되어 미준의 기업으로 전환되었다.
중산의 모든 것은 미준에게 양도한 연상준 회장의 결단이었다.
중산에 있는 단하나 인어도 별장은 슬준에게 증여했다.
인어도에는 슬준의 생모 다슬의 무덤이 있기 때문이었다.
슬준은 모처럼 생모의 무덤을 찾아 나썼다.
“어머니, 슬준이 왔어요. 그동안 제 걱정 많이 하셨죠?”
슬준은 억새밭에 있는 어머니 무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제 전 어머니를 사랑하듯이 새어머니도 사랑할 거예요.”
어머니의 무덤 위에 어디서 날아봤는지 빨간 단풍잎 하나가 바람에 날아와 앉았다.
그 뿐만 아니라 미준의 어머니 천 뷰미는 미준의 집에서 진호동 연상준 회장의 자택으로 들어가 할머님을 모시고 남편과 함께 세 식구가 같이 살게 되었다.
“여보 그런데 당신은 왜 늙지 않았어.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 거요?”
상준은 뷰미를 보며 물었다.
“사랑을 하면 늙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그럼 난 왜 이렇지?”
“당신도 많이 늙은 건 아니에요.”
“그런가?”
그들은 정원 벤치에 기대 않아 노년의 행복을 꿈꾸고 있었다.”
“우리 오늘 밤 막내하나 만들까?”
“네?”
“호호호.”
그들은 지난 세월이 많이 아쉬웠지만 지금이라도 만나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니 그나마 큰 행운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후 슬준은 어머니의 소개로 다시 재혼을 하게 되어 늦깎이 신혼 생활에 깨가 쏟아지는 줄을 몰랐다.
슬준은 광양에 자신의 집을 마련하여 신혼을 시작하였고 진정으로 서로를 위해주며 달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있다.’
본부장에 오른 슬준은 그동안 매사 건성건성 하던 회사 일을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며 전념을 다했고 그러다 보니 그의 숨어 있던 실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저 사람 정말 많이 바꿨어.’
그를 알던 주위 사람들은 슬준의 변화에 놀라워했다.
“재혼을 잘 했나?”
“아니 새 어머니를 찾고 사람이 바꿨다고 하던데?”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그는 새로운 사고와 자신의 노력으로 뉴 해양 그룹의 후계자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일에 전념하고 있다.
미준의 일가는 정기적으로 가족모임을 가졌다.
서울과 광양, 중산을 돌아가며 정기적으로 만나 정보도 교환하고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고 있다.
공주는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신고국 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녀의 전공은 고고학이었다.
“선생님. 전 숲속 나라로 돌아가서 선생님이 하시는 일 돕고 싶어요.”
“어떤 일?”
“리조트도 좋고 박물관도 좋아요.”
그후 그녀는 월궁에 거주하면서 직접 숲속나라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공주는 여기가 그렇게도 좋아?”
“네, 이곳은 제 고향이잖아요.”
“그럼 넌 이제 중산으로 안갈 거야?”
“전 여기가 좋아요. 선생님 오시면 여기서 뵙고. 그것만으로 행복해요.”
“그건 또 무슨 뜻이야?”
“전 알아요.”
“뭘 알아?”
“선생님이 왜 제게 결혼하자고 안하시는지.”
“....?”
“선생님 저와 만나기 전부터 사랑하는 사람 있었잖아요?”
그녀의 얼굴은 담담해 보였다.
“그 사람과 결혼 약속을 한 것도 알고 있어요.”
“누가 그래.”
“저도 알아볼 만큼 알아봤어요.”
“저 신경쓰지 마세요. 여기서 한번 씩 선생님 뵐 수 있는 것만 해도 전 행복해요. 더 이상 욕심내면 그건 과욕이란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공주는 어느 날 미준의 어머니께 여쭈어 봤다. 신고국 개발과 관련되다 보니 종종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고 어머니도 성실한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하셨다.
“선생님은 왜 결혼 안하세요. 이미 결혼하실 나이가 지났는데.”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몇 번이나 권해봤지만 대답이 없네.”
“사귀던 사람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사람이 있긴 한데.”
“그 분도 결혼 하지 않았어요?”
“응, 그러고 있어.”
“그 분이 누구세요?”
“너도 알거야. 최근에 뉴 중산박물관 관장을 맡게 된.”
공주의 예감은 맞는 것 같다.
어느 자리에서 그녀와 미준이 한 자리에서 만났을 때 그녀의 표정과 행동에서 어렴풋이 느꼈다.
여자들의 촉은 예리하다.
너무나 아름답고 교양이 있어 보였다. 자신보다는 몇 살 위였지만 아기 같은 피부와 하얗게 웃는 그녀의 치아가 정말 예뻐 보였다.
선생님이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것처럼 그녀의 웃는 모습도 백만불 짜리 같았다.
“어머님. 전 어떠세요?”
“아서라. 그러면 우리 미준이 평생 장가 못 간다.”
“왜요? 어머니.”
“연 회장을 몰라? 마음이 착해서 배신을 못한다고. 한번 약속 했으면 버리지를 못해. 사업을 하려면 마음이 좀 야무진 데가 있어야 하는데 저런 사람이 사업은 어떻게 하는지 몰라.”
공주는 그때부터 미준의 마음을 조금만 차지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준 사람.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사람이다.
만나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더 이상 욕심을 내면 난 사람도 아니야.’
그래도 그의 사랑을 조금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자신의 왕이고 황제였다. 모든 신고민이 다 그렇게 생각하듯 자신도 그를 그렇게 생각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