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 밝혀지는 두 집안(1)
* * *
‘앞으로 난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뚜렷한 답이 나오질 않았다.
‘연상준 회장. 그분이 내 아버지라니.’
‘어머니에 비해서는 많이 늙으셨던데. 아니 어머님의 얼굴이 고우신거겠지. 두 분의 나이 차는 얼마 되지 않는데 말이야.’
다음 날 미준은 시간을 맞춰 중산 호텔 커피숍으로 그를 만나러 나갔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나와 주셔서.”
미준은 그와 자리를 마주하여 찬찬히 그를 살펴보았다. 키는 181은 될 것 같아 보여 자신의 키와 거의 비슷했다.
“혹시 저에 대해서 들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지점장님 말씀이야 우리 재계에서 모르는 분이 별로 없죠.”
“신문 기사 말씀이세요?”
“그건 그렇고 제게 하실 말씀은요. 만나자고 하신 용건 말입니다.”
연슬준은 계면쩍어 하며 미준을 바라보더니 한참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집안과 천 대표 집안의 관계는 알고 계신지요?”
“네, 어제 밤에 처음 들었습니다.”
“.....?”
“저의 아버님과 대표님 어머님 관계도 알고 계십니까?”
“그것도 어제 밤 처음 들었습니다.”
슬준은 많이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그는 아직 상세한 내용은 모르고 있는 것이 확실하였다.
단지 연상준 회장과 어머니와의 관계만 알고 있는 눈치였다.
“대표님 아버님은 어떤 분이신지요?”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요.”
“전 저의 어머니가 낳은 사생아로 아버지 없이 자랐습니다. 그래서 제 성이 어머님과 같은 천씨 성을 가졌구요.”
“죄송합니다. 그런 것 까진 몰랐습니다.”
“....?”
그는 미준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이번엔 미준이 좀 망설였다.
미준은 연슬준 지점장을 보니 그의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짐작 되었다.
“그럼, 제가 천 대표님을 만나자고 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십시오.”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의 아버님은 아직 어머님을 사랑하고 계시거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쭉 보고 자라났어요. 무슨 일로 어머님이 집을 나가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아버님은 평생을 어머니를 찾고 계셨어요. 그 분은 제 어머니기도 하구요. 비록 계모님이시지만 한 때는 제게 무척 잘 해 주셨어요.”
“그럼 원망을 많이 하셨겠네요.”
“어릴 땐 그랬어요.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무척 원망했어요. 전 일찍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정을 붙일 곳이 없어 새 어머니를 무척 좋아했고 많이 따랐어요.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저를 버리신 것 같아 많이 섭섭해 했고 많이 방황했어요. 그때부터 여자를 믿지 않았죠.”
“그 말씀은 저도 어머니께 들었습니다. 지점장님을 많이 사랑했다고요.”
“사랑했다고요?”
“집을 나올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사정?”
그는 약간 흥분된 어조로 원망하는 기색이 있어 보였다. 바로 어머니가 말씀하신 바로 그대로 였다.
“그러나 나이가 점점 들어 돌이켜 보니 제가 누굴 원망할 그런 처지는 아니더라구요.”
“그래도 지점장님은 할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을 게 아니에요?”
미준도 갑자기 화가 치밀어 목소리를 높였다.
“그건 그렇고 제가 말씀드린 두 분을 다시 만나게 하자는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두 분의 의견이지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항은 아닌 것 같은데요.”
“제 아버지가 너무 어머니를 사랑하고 계시기에. 이제 우리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고 두 분의 앞날을 위해 만나게 해 드리는 게.”
“저의 어머님도 그 집을 나올 때 분명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게 해소되지 않았는데 만나려 하겠어요?”
“혹시 그 이유를 아시는지요. 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두 분 사이가 왜 갑자기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사실 어머니도 우리 아버질 많이 좋아 하셨던 건 사실이거든요. 전 비록 어렸지만 그렇다고 느꼈다고요.”
“....?”
“집을 나가신 뒤엔 다른 사람을 만나신 것 같은데.”
“....?”
“....?”
“그럼 대표님. 왜 그리 됐는지 할머니와 아버님께 먼저 물어보셔야지요. 우리 어머님만 원망하실 게 아니라.”
“혹시 대표님은 어머님께 들은 것은 없어요?”
“네. 없습니다. 단지 우리 어머님은 피해자란 것만 알고 있습니다.”
“.....?”
“오늘은 여기서 이만 헤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각자 더 알아보고 다시 만나죠.”
“네.”
“사랑하는 사람이 명문 재벌가를 뛰쳐나올 때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미준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에서 나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는 바로 자신의 형이다.
비록 어머니는 다르지만 아버지가 같은 이복형이다.
그런데도 모든 원인을 자신의 어머니께 돌리려고 하는 기본 심리에 분노하였다.
그러나 꾹 참고 대공원 카페로 되돌아 왔다.
“커피 한잔 부탁합니다.”
미준이 카페로 들어오자 주인아주머니와 알바생들이 모두 쪼르르 미준의 앞에 서서 인사를 하였다.
이제 이들도 미준의 신분을 알고 있는 듯 하였다.
커피를 받아놓고 오늘 저녁 그와 만나서 주고받았던 이야기를 되돌려 보았다.
“어머니께 뭐라고 하지. 분명 그가 만나자고 한 이유를 물으실 텐데.”
미준은 속이 갑갑하였다.
*
뉴 해양 백화점 중산 지점장 연슬준 대표도 아직 커피숍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이유를 어머니께만 초점을 맞춘 자신의 경솔함을 뒤 늦게 깨달았다.
그제야 할머니께 전화를 했다.
“할머니. 갑작스런 이야기지만 있는 대로 대답해 주세요.”
할머니도 지금 끗 손자가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이야기를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내가 잘못했지. 잘못했어. 네 아버지도 무척 사랑하고 널 무척 사랑했는데 내가 네 새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리곤 말을 흐렸다.
‘역시 그랬구나. 내가 너무 경솔했어.’
“집으로 들어 올 거야?”
“네 내일 쯤 집으로 들어갈게요.”
“그럼 집에서 만나 이야기 하자.”
그리고 다시 아버지께도 전화를 했다.
“너 모처럼 전화 했구나. 무슨 일이냐?”
슬준은 연회장에게도 물었다.
“아버지 새 어머니 만나고 싶죠?”
“그걸 말이라고 해? 그래도 네 엄마가 만나주지 않는구나.”
“그럼 사실대로 이야기 해 주세요.”
“무슨 말이야?”
“왜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는지?”
역시 아버지도 많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
“어머니가 저를 사랑했고 아버지도 사랑하셨던 것 같은데 왜 갑자기 나가셨는지. 아버진 알고 계실 것 아니에요?”
“넌 알 것 없다.”
“아버지.”
“우리가 너희 어머니를 믿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우리가 많이 잘 못했지.”
“그래서 어머니가 잠적을 했었구요. 그리고 다른 사람을 만나 재혼을 했구요.”
“그건 아닐 거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그 사람 있잖아. 천 대표. 나이로 봐서는 네 동생일지도 몰라.”
“네?”
“나도 잘 모른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지.”
슬준은 정신이 아득하였다.
‘이게 또 무슨 말씀이야. 동생일지 모른다고?’
“그럼 그걸 할머니와 아버지는 믿지 않으셨단 말씀이세요? 제 동생을 동생으로.”
“......?”
차마 연회장은 아내가 알을 낳아 이렇게 된 것이란 말은 차마 아들 슬준에게 하지 못했고 그 알을 할머니가 버리려고 했다고도 말하지 못했다. 그것이 또 아내에게 엄청난 충격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자신과 할머니만 아는 비밀의 것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슬준은 나름대로 자신의 결론을 내고 있었다. 새 어머니가 자식을 낳았는데 할머니와 아버지가 친 자식으로 믿어주지 않았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다고 생각하였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어머니만 원망한 제 잘못이 커요. 죄송해요. 어머니.’
날이 밝으면 다시 천대표를 만나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 있는 손수건을 꺼내 천대표가 마시고 간 커피 잔을 조심스럽게 싸서 가방에 집어 넣었다.
그 때의 의혹을 풀어 볼 생각이었다.
*
미준은 어머니께 집에 가지 못하고 몇 일간 여행을 가겠다면 문자를 띄어 놓고 캠핑카를 공주의 빌라 부근에 대어 놓고 순간이동으로 숲속나라 공주의 집으로 이동하였다.
직접 차를 가져가면 남들의 이목이 신경 쓰였다.
이렇게 갑갑하고 울적 할 때엔 쉬고 십은 것이 본능일지 모른다.
불과 며칠 만에 갑자기 나타난 미준을 본 공주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미준에게 안겼다.
“우와. 선생님. 이번엔 금방 오셨네.”
“나, 좀 쉬고 싶으니 깨우지 말아요.”
미준은 공주의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휴대폰은 아예 꺼버리고 앞으로의 일들을 곰곰이 되씹어 보았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가장 현명한 일일까?’
미준의 머리에는 이런저런 안들만 떠오를 뿐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잠깐 잠이 들었을까?
간밤에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머리가 복잡하였는데 잠깐 자고나니 한결 머리가 개운해 졌다.
거실에 나오니 에어컨이 켜져 있었다.
“일어 나셨어요?”
공주는 방문을 열고 나오는 미준을 보며 해맑게 웃었다.
“점심 드세요. 선생님.”
“벌써 점심을 먹어요?”
“네, 요즘은 아침보다 아점을 먹어요.”
“아점이라면?”
“아침 겸 점심을 조금 일찍.”
“나도 그게 좋더라고. 점심을 조금 일찍 먹는 게 밥맛도 있고.”
“네.”
“요즘 주로 뭐하고 지냈어?”
“학원에 가서 공부하며 지냈어요.”
“어때. 공부해 보니?”
“힘은 들지만 재미있어요.”
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는 아침을 겸해 매생이 가자미국을 끓여주었다.
“이거 보기보다 뜨거우니 조심해서 드세요.”
“저녁에 바빠요?”
“아뇨. 오후에 학원 갔다 오면 특별한 건 없어요.”
“응.”
“선생님. 이곳에서 유명 인물이라 소문이 났던데?”
“누가 그래.”
“백화점에 가서 다른 사람들께 들었어요. 원장님이시고, 뉴 중산 대표님이라고.”
“그래서 싫어요?”
“아뇨. 전 조금은 짐작했어요.”
공주는 생글생글 거렸다.
“왜 웃어요?”
“제가 대학 나오면 취업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아서요.”
“허참.”
공주는 소파에 앉은 미준에게 다가와서 기대어 앉았다.
“공주 피부는 꼭 아기 피부 같아.”
“선생님도 피부가 좋아요. 부드럽고 섹시하고.”
“피부가 섹시하다고?”
“아뇨. 얼굴이.”
“공주는 더 섹시해. 환장하겠어.”
“호호호.”
미준은 공주를 당겨 무릎에 눕혀놓고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로 덮어 버렸다.
“읍. 흠. 숨. 숨이 막혀요.”
미준이 자신의 입으로 그녀의 고운 입술을 통째로 덮어 누르자 공주는 숨을 잘 못 쉬고 흑흑 거렸다.
“우리 밤낚시 갈까?”
“좋아요. 제가 낚시는 아직 못해 봤거든요.”
“그럼 오후에 학원 갔다 와서 저녁 먹고 밤낚시 가자.”
“좋아요.”
미준은 공주가 학원에 다녀 올 때까지 공주의 집에서 소일을 하며 보냈다. 그녀의 외출복이 너무 섹시한 것 같아 은근 걱정이 되었으나 그렇다고 뭐라고 이야기 할 사안은 아닌 것 같았다.
‘저러다 다른 놈들이 달라붙으면 어떻게 하지.’
미준은 신문도 보고 TV도 보면서 휴대폰 검색까지 다 하고 나니 공주가 귀가했다. 돌아오면서 공주는 전복을 사서 들고 들어왔다.
“이것 보세요. 전복.”
“싱싱해 보이네.”
“네, 전복회 해드리려고 사왔어요. 값이 좀 싸더라고요. 양식인가 봐요.”
“그렇겠지.”
결국 저녁엔 공주가 해준 전복회를 곁들여 간단하게 식사를 마쳤다.
“몇 시 경에 출발하실 거예요?”
“.....?”
“낚시 말이에요.”
“밖은 좀 덥지?”
“낮엔 그랬지만 아직 밤엔 덥지 않을 거예요.”
그제야 미준은 소행성 숲속나라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일이 떠올랐다. 이번 낚시를 다녀오면 소행성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