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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미친 총각-208화 (208/225)

〈 208화 〉 공주의 숲(2)

* * *

자연인이 어디 따로 있을까?

“물에 좀 들어와 보세요.”

그제 서야 미준은 다리를 걷어 올리고 공주의 옆에 서서 양동이를 잡아 주었다.

“혼자 잡을 때 보다 아저씨가 보고 있으니 더 신이나요.”

“여긴 고기가 늘 많이 있나보네요.”

“제 혼자니까요.”

그 말도 사실일 것 같다.

아무리 고기가 많아도 사람들이 많아 무분별하게 잡아 올리면 모두 소진되거나 멸종 위험이 따를 것이다.

잡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이 얼마나 좋은 곳인가?

“오늘은 그만 잡을래요.”

공주는 미준을 돌아보며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수줍은 듯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미준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하였다.

“공주.”

미준은 공주를 덥석 안아 물웅덩이에 던져 넣었다.

“풍덩.”

공주는 웅덩이에 빠져 온통 젖은 상태로 미준을 향해 물을 퍼부었다. 그들은 잠시 모든 것을 잊고 물장난을 치며 정신없이 소란을 떨었다.

“아이 추워.”

미준의 옷도 함북 젖었다. 이제는 아예 대 놓고 물에 들어가 상대를 향해 물을 퍼부었다. 도망을 쳐도 별반 소용없었다.

장난을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몸이 오슬오슬하였다. 더 이상 이러고 있다간 어디에 탈이 나도 날 것 같았다.

미준은 양동이를 메고 그녀를 안고 집으로 뛰었다. 미준에게 안긴 공주는 아직도 장난을 치며 머리카락에서 떨어지고 있는 물방울을 손에 묻혀 미준의 얼굴에 튕기고 있었다.

“안 추워요?”

“난 괜찮은데.”

“잘못하면 감기 들어요.”

미준은 공주를 방에 넣어주고 옷을 갈아입을 동안 부엌으로 들어가 불을 지폈다. 장작이 그리 많지를 않았다.

‘장작을 좀 더 해 둬야 겠네.’

미준은 당장 장작 준비부터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자신의 옷을 벗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부엌 아궁이에서 옷을 말렸다.

어느 정도 옷이 마를 무렵 미준은 방으로 들어갔다.

가져온 캐리어를 마저 열어 그녀 앞에 내어놓았다. 평소 그녀가 입어보지 못한 예쁜 옷들을 그녀 앞에 모두 꺼내 놓았다.

드레스. 잠옷. 양말과 장갑까지. 그리고 이번에도 브래지어와 셔츠, 팬티까지 꺼내 놓았다. 그녀는 미준이 꺼내 놓은 옷을 보고 지난번처럼 얼굴을 붉히면서도 무척 좋아했다.

“꼭 맞아요.”

몇 가지 옷을 입어보고는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제 옷의 크기를 맞혔네.”

“그야 내가 공주를 안아 봤으니.”

그녀는 다시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이번엔 화장품 들을 꺼내 놓았다.

“아저씨.”

화장품을 받은 공주는 감격하는 것 같았다.

공주는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어리는 눈물을 미준에게 보이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것 같았다.

“고마워요. 아저씨.”

공주는 미준의 목에 매달렸다. 미준도 가볍게 그녀를 안아준 뒤 밖으로 나와 필요한 공구를 정리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양궁과 엽총이었다.

이 숲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손도끼와 톱이고 호미와 괭이였다. 그 다음은 낚시, 그리고 양궁과 엽총 같았다.

미준은 재빨리 지게를 지고 엽총을 지게 가지에 걸었다. 비탈길을 올라 숲속으로 들어갔다. 되도록 빨리 시간을 절약하여 그녀에게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다.

수명이 다해 넘어져 있는 마른 장작을 적당한 크기로 토막을 내어 하나, 둘 지게에 올려놓았다. 자신의 힘을 발산시키며 나무를 하면서도 급히 서둘렀다.

날이 더 어둡기 전에 지게 가득하게 장작을 하기 위해 숲속 이리저리 돌아 다녔다.

가끔 미준은 숲속의 정령이 눈에 보였고 그 때마다 가볍게 처리하였다.

‘정령 사냥은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없는 것 같아.’

사실 이곳은 미준을 위한 사냥터였다.

여름을 맞이하는 숲의 풍경이 온통 연두색으로 덮여 있었다. 언제나 계절은 다시 찾아오고 새로운 생명들이 다시 돋아난다. 늘 푸른 나무 중에는 미준이 보지 못한 새로운 나무들도 많이 보였다. 가지도 싱싱하고 색깔도 좀 특이한 나무들이었다.

마침 그때 사슴 한 마리가 미준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저놈을 잡아 불고기 파티나 해야겠다.’

미준은 조심스럽게 사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땅.”

미준이 가진 엽총에서 총소리가 나며 숲속을 흔들었다.

‘그렇지. 그놈 참 튼실하기도 하다.’

총 소리는 공주도 들었을 것이다. 미준은 장작을 가득 지게에 담고 잡은 사슴을 그 위에 걸쳐 올려놓았다.

사슴의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며 땅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저게 바로 그 유명한 사슴의 피.’

흔히 사슴 목장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사슴의 피를 받아 몸보신용으로 마시기도 하고 뿔을 잘라 그곳에서 나는 피를 먹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사료를 먹고 자란 사슴피였다.

그러나 이곳은 그게 아니다. 공해하나 없는 숲속에서 자란 자연산 사슴.

사슴의 피를 보자 미준은 그 피를 받아먹고 싶었다.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한번 받아 먹어볼까?’

그러나 어디까지나 마음뿐이었지 사슴의 피를 먹을 순 없었다. 그것도 먹어본 사람만이 먹을 수 있다.

마음이 있다고 모든 사람들이 사슴의 생피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준은 서둘러 공주가 있는 절벽 중턱에 위치한 공주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미준이 지나오는 길옆에 간혹 꿩들과 산비둘기 들이 퍼드덕 날개 짓을 하며 하늘로 솟아오른다.

‘저건 무슨 동물이지?’

꼬리를 깔고 천천히 걷는 모습이 개의 모양에 호랑이 가죽을 가진 낯선 동물이 지나가고 있다.

‘저건 처음 보는 건데.’

걷는 모양이 초식은 아니고 분명 육식 동물이다. 초식 동물은 사람을 보면 도망가기 바쁘다. 그런데 이놈은 그렇지가 않다.

‘밤이 되면 좀 위험할 수도 있겠어.’

미준은 공주에게 이 이야기를 꼭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일은 한 번 꿩 사냥을 해 볼까?’

참 좋은 곳이라 순간순간 미준의 마음은 이곳에 대한 정감이 자라나고 있었다.

“공주.”

미준이 부르는 소리를 들은 공주가 얼른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두 사람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그리고 둘 다 눈을 크게 떴다.

“아!”

장작을 가득 지고 사슴을 잡아온 미준을 본 공주는 탄성을 질렀다.

“아저씨. 사슴까지 잡으셨네요.”

미준이 놀란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날씬한 몸매에 놀랐다.

자신이 사다준 비취빛 드레스를 입은 공주를 보고 미준 또한 탄성을 질렀다.

“아.”

둘의 탄성은 거의 동시 다발이었다.

“정말 예뻐요. 선녀 같아요.”

“원래 제가 선녀인 걸요.”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미준은 다시 그녀의 몸매를 보며 넋을 잃었다.

“.....?”

“아저씨, 그만 봐요.”

“오늘 저녁은 사슴 구워 먹을 거예요.”

미준은 공주를 보며 흥분한 목소리로 크게 떠들었다.

“조금 전 그 총소리가?”

“이번에 올 때 엽총을 가져 왔어요.”

얼마 후 절벽 낭떠러지에 위치한 공주의 집 마당에 장작불이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폭포 아래서 사슴을 장만하여 몇 토막으로 나누었고 그 중에 뒷다리 하나를 막대기에 뀌어 장작 불 위에서 걸쳐 돌려가며 굽고 있었다.

“지글지글.”

지글거리는 사슴고기를 본 공주는 부엌으로 들어가 손수 담근 천 오디주와 소금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그건 어디 쓰려고?”

“조금만 뿌리면 맛있어요. 냄새도 나지 않고.”

그리고는 소금과 오디주를 지글거리는 사슴고기에 뿌리고 있었다.

“이렇게 해야 다른 잡냄새가 나지 않아요.”

“참, 아는 것도 많네.”

“다 경험이에요. 제가 혼자 오래 살았잖아요.”

“아∼아.”

미준은 잘 익은 살점을 베어 공주의 입에 넣어주었다.

“음. 맛있어.”

그리곤 자신도 맛을 보았다.

“맛있어.”

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슴의 살을 토막 내어 꼬챙이에 끼워 공주에게 건네주었다.

“우와, 맛있겠다.”

공주는 꼬챙이에 끼운 사슴 고기를 한번 씩 장작불에 구워가며 잘도 먹는다.

“이것 약주에요.”

“무슨 술?”

“산삼에 오가피를 넣어 만든 천연 발효주에요.”

미준은 그녀가 부어주는 약주를 거리낌 없이 한잔 마셨다.

“맛이 어때요?”

미준은 엄지를 꺼내 위로 추켜세웠다.

바로 ‘엄지 척’을 해준 것이었다.

고기의 향이 계곡을 따라 숲속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어느 듯 날은 어두워져 갔지만 장작불 주변의 남녀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오가피 산삼주에 사슴고기를 안주 삼아 즐거운 고기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그동안 나 보고 싶었죠?”

“아뇨.”

“에이, 거짓말.”

미준은 그녀가 사랑스러워 죽을 것 같았다.

“밖에서 바람 많이 피웠죠?”

“아니.”

“거짓말.”

가끔 그들은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하였다.

마당에 피운 장작불이 서서히 지면서 모닥불로 바뀔 때 즘 그들은 나무 벤치에 앉아 서로에게 기대어 어둠이 내린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행복해야죠. 그동안 많이 외로웠을 텐데.”

“사실, 아저씨. 전 나이가 얼만지도 몰라요.”

“나이? 그거 중요하지 않아요. 아직도 내가 보기엔 열여덟 소녀로 밖에 보이지 않아요.”

“지난번에 나이를 물어 볼 때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거짓말은 아니죠. 모르는 걸 어떻게요. 신경 쓰지 말아요.”

공주는 미준에게 더 기대어 자신의 머리를 미준의 가슴에 기대었다. 미준은 팔을 둘러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숲속 향기가 풍겨 나오는 것 같았다.

미준은 갑자기 또 장난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아휴, 냄새.”

미준의 말을 들은 공주는 후다닥 고개를 들고 자세를 바로 하여 미준을 쳐다봤다.

“제 머리에 냄새가 나요?”

“응.”

“어쩌나... 난 매일 감는데. 냄새가 고약해요?”

“숲속 향기가 나.”

“엥?”

공주는 갑자기 주먹을 쥐고 미준의 등을 때렸다.

“놀랬잖아요?”

“숲속 향기는 냄새가 아닌가?”

“호호호.”

그녀는 예상 외로 깔깔거리며 간드러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그렇게 웃는 소리는 처음 인 것 같았다.

그 것을 보고 있는 미준도 큰 소리로 따라 웃었다.

“이제 우리 들어갈까?”

“잠깐만요.”

그녀는 먼저 방에 들어가 황초 불을 켜 두고는 큰 수건으로 자신의 몸을 휘감고 집 옆에서 떨어지고 있는 폭포 물을 받아 몸을 씻었다.

미준이 보기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목욕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물이 좀 차갑긴 해도 상쾌해서 좋아요.”

목욕을 마친 공주는 수건을 몸에 감고 미준에게 다가와 수건 하나를 던져 주었다.

“나보고 저기서 씻으라고?”

“얼마나 상쾌하다고?”

하는 수 없이 미준도 절벽의 물을 받아 목욕을 한 후 방문을 열었다.

따뜻한 방에는 단정하게 깔아놓은 요와 이불이 깔려 있었고 베게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잠옷을 갈아입은 그녀가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방문 앞에는 미준의 잠옷이 놓여 있었다.

“이 잠옷으로 갈아입으세요.”

옷을 갈아입는 동안 공주는 부엌으로 들어가 작은 소반을 들고 다시 들어왔다.

소반 위에는 조그만 주전자와 작은 술잔 둘, 버섯 짱아지로 보이는 안주 한 접시가 나란히 얹혀 있었다.

미준은 들고 온 소반을 받아 가운데에 내려두고 그녀와 마주 앉았다.

“고마워요. 아저씨.”

“아니. 내가 고맙죠.”

그녀가 부어준 술을 받고 난 뒤 그녀의 잔에도 조심스럽게 술어 부어주었다.

그들은 말없이 서로 잔을 부딪친 후 단숨에 술잔을 비워 버렸다.

“햐 아∼”

혀끝에 감도는 감미로운 향이 전신을 타고 내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미준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고는 자신은 더는 마시지 않았다.

“한잔만 더.”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에 대고는 사양하였다.

미준은 일어나 캐리어에서 마지막 남은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바로 아스라이트가 박힌 목걸이였다.

미준은 그녀가 앉은 뒤로 돌아가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옆으로 빼낸 뒤 그녀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그녀는 아스라이트 메달이 달린 목걸이를 손으로 쥐고 눈물을 글썽이고 메달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행복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나도 그래요.”

“혹시 제 행복을 누가 시샘하지 않을까 겁이나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미준은 다시 술을 채워 한 입에 모두 마신 후 상을 옆으로 물려놓고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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