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 뉴 중산 리조트(4)
* * *
미준은 잠시 말이 없다가 예솔을 타일렀다.
“그래도 그런 건 아니야.”
“난 몰라. 오빠가 미워요.”
결국 예솔은 울음을 터뜨렸다.
미준은 그러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여자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진 것일까?
“오빠 좋아 한다는데 내게 왜 그래요?”
미준은 자신이 뭘 잘못을 했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오빠는 바보야. 내 맘을 그렇게도 몰라요?”
“예솔아.”
“난 여기 올 때 모든 걸 각오하고 왔단 말이에요.”
“예솔아.”
“오빠 자꾸 그러면 바다로 뛰어들어 죽어 버릴 거야.”
갑자기 예솔이 자리에서 일어나 요트 난간으로 닥아 섰다.
“예솔아!”
미준은 술이 번쩍 깨면서 얼른 예솔의 팔을 잡았다.
“그럼 오빠. 우리 사랑만 하면 안 될까?”
미준은 예솔을 억지로 당겨 자리에 앉혔다.
예솔은 탁자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미준은 예솔에게 사랑의 약속을 해 주지 못하고 있었다.
“난, 몰라.”
“그래 알았다. 예솔아. 나도 예솔이를 사랑하는 건 알지?”
“몰라.”
“우리 둘 다 술을 많이 마신 것 같다. 이제 자자.”
“나 술 취해서 이러는 거 같아요?”
미준은 또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 같았다.
“아냐. 그런 뜻은 아니야.”
한참 후 예솔은 진정이 되는지 고개를 들고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처다 보고는 선실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가 버렸다.
‘아휴. 술 좀 깨면 나아지겠지.’
그때였다.
“오빠!”
갑자기 예솔이 선실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또 무슨 일이지?’
“왜?”
“빨리요.”
선실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침대에 올라가 엉거주춤 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킥킥. 가스나. 벌레인가 보네.’
“뭐가 있어?”
“여기요, 여기.”
‘가스나 언제는 죽는다고 하더니 죽기는 싫은가 보네.’
미준은 선실로 들어가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지네는 아닌데 지네처럼 생긴 많은 발과 다리를 가진 길쭉한 벌레가 징그럽게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이것 좀 잡아줘요.”
그 새 잠옷으로 갈아입고 이불을 움켜쥔 채 자신의 몸을 가린 그녀의 모양새를 본 미준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큭, 큭.’
미준은 손바닥을 펴 무조건 바닥을 내리쳤다.
“엄마야.”
‘아니 벌레를 보고 엄마라니?’
미준은 손바닥에서 다리가 떨어지고 몸이 파열된 놈의 시신을 수습한 후 손을 씻었다.
‘가스나, 꼴 보니 오늘 잠은 다 잤다.’
미준은 손을 딱은 뒤 침대에 누워있는 예솔의 다리를 당겨 끌어내린 후 그녀를 안아 요트 바닥에 내려놓았다.
언제가 누구가와 지금 같은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
갑자기 그 때 기억이 머리에 떠올랐다.
“아래에서 자.”
사실 캠핑카 침대는 천정이 낮고 구석지게 설계되어 있어 불편한 점이 많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바닥에 자면 훨씬 편하고 활동하기가 편리하다.
바닥에 내려놓자 예솔은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다시 밖으로 나와 의자에 앉아 야광찌 불빛을 보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간혹 야광찌가 조금씩 일렁이다 잠잠해지기를 반복하는 걸 봐서 물고기들이 루어를 건드리기만 할 뿐 덥석 물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물이 너무 잔잔하여 루어의 흔들림이 부족한 것 같다.
이때는 낚싯대를 잡고 줄을 감아주거나 루어가 요동치게 흔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행위 자체가 거북스럽다.
미준은 다시 선실로 들어가 시동을 켜서는 갯바위 부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산호도 해안 중 가장 해안 절벽이 발달해 있는 남쪽 절벽 아래쪽이다.
비록 파도가 잔잔하긴 하지만 조금씩 밀려오는 작은 물결이 갯바위에 부딪치며 물의 흐름이 살아있는 곳이다.
‘여기가 좀 좋을 것 같다.’
다시 채비를 하여 낚싯대를 던져 요트 뱃전 거치대에 낚싯대를 꽂았다.
아니다 다를 까.
얼마가지 않아 갑자기 찌가 쭈욱 끌려 물속으로 들어간다.
‘왔어.’
갯바위 부근에서 파도가 부서지며 물결이 일어나는 바로 그곳에서 어신의 신호를 받게 된 것이다.
“푸드득.”
끌려가는 모양이 장어 아니면 농어 일 것 같았다.
원래 농어는 파도가 있고 흐름이 빠른 여 부근이나 절벽 부근에 파도가 부서지며 거품이 일어나는 곳이 농어의 포인트다.
미준은 제법 손맛을 즐기며 릴을 감았다.
예성했던 대로 40대 농어였다. 눈짐작으로 봐도 45cm는 능히 될 것 같다.
수족관에 넣어두고 다시 던져 넣었다.
역시 포인트가 중요한 것 같다.
잠시 후 또 농어가 걸렸다.
이정도면 지루하지 않고 밤낚시에 몰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조금 전부터 미준의 몸에 열이 오르면서 점점 욕망의 기가 상승하고 있었다.
‘이건 뭐지?’
꼭 흥분제를 먹은 돼지 새끼 모양으로 몸이 점점 달아오른다.
최근에는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현상이었다.
‘내가 뭘 잘못 먹었나?’
미준은 자신의 몸을 진정시키려고 낚싯대를 손에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낚시에 몰입했다.
그때 갯바위 위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꽂혔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두 개의 불빛을 목격한 것이었다. 얼굴에 느껴지는 섬뜩한 기운과 동시에 자신의 팔에 소름이 끼쳤다.
‘뭐지. 저건?’
기를 모아 자세히 살펴보니 용대가리 같이 생긴 놈이 아귀같은 이빨을 드러내고 물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차하면 바로로 뛰어들 자세로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
‘음.’
분명 심해 어종으로 짐작은 갔지만 놈은 분명 정령이었다. 우주 원석을 삼킨 바다 괴물의 정령임이 분명하였다.
‘아니. 이것은 바다 괴물’
미준은 기를 모아 한손을 뻗어 움켜쥐었다.
이정도의 악령은 이젠 일도 아니다. 그의 손에는 미세한 물기만 남아 있을 뿐 골프공 크기의 운석이 들려 있었다.
그때였다.
이번엔 갯바위 아래서 작은 멸치 떼가 튀어 오르고 있었다. 튀어 오르는 멸치 떼는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엄청나게 큰 삼치가 물 위로 솟구쳐 오른다.
한 두 마이가 아니었다.
‘삼치가 들어왔나 보다.’
미준은 재빨리 멸치 땍 움직이는 해역 부근으로 낚싯대를 던져 넣은 후 초 고속으로 릴을 감았다.
‘트덕.’
‘왔어.’
루어를 문 삼치는 대물이었다.
삼치까지 잡아 두고 다시 의자에 앉아 있는데도 다시 몸속에서 흥분의 기가 피어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리본어의 장난이 분명한 것 같다.
미준은 잠깐 선실에 들어갈까 망설이다 낚싯대를 그냥 둔 채 선체 앞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솟아오르는 성욕을 자진 해소시켜 볼 작정이었다.
사방을 둘러 봐도 캄캄하기만 하고 보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불과 12분이 채 안된 시간에 미준의 욕망은 바다를 향해 폭발 해 간다.
젊음의 욕망.
바다를 향해 마음 끗 분출시켰다. 그러고 나니 다소 기가 진정되는 것 같다.
의자에 돌아와 다시 낚싯대를 조절하고 있는데 선실 안에서 또 예솔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빠!”
‘가스나. 왜 또 저러지?’
문을 열고 선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왜?”
“불 좀 꺼줘요.”
미준은 하는 수 없이 선실 내 등을 모두 꺼버렸다.
그래도 밖에 켜 둔 등불이 창문을 통해 밝혀 주고 있었다.
선실 양편 창문 커튼을 모두 내려주고 나오려는데 에솔은 다시 미준은 불렀다.
“오빠. 아파요.”
“엉? 아파?”
“몸에 열이나고 가슴이 답답해요.”
“술 탓 아니야?”
미준은 예솔의 옆에 앉아 그녀의 머리를 만져 보았다.
“열이 좀 있네.”
미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생수병을 열어 시원한 물 한 컵을 예솔에게 주었다.
“일어나서 앉아 봐. 간식을 먹은 것이 체했을 지도 몰라.”
예솔이 자리에 앉자 미준은 그녀의 등을 당겨서 백 허그 자세를 취한 뒤 두 손으로 그녀의 위장 부위를 살살 만져보았다.
양쪽 갈비뼈가 갈라지는 부위를 손가락을 모아 눌러 보았다.
“여기 어때?”
예솔은 고개를 흔들었다.
“여긴?”
“그긴 아무렇지 않아요.”
잠옷을 입었지만 그녀의 몸 전체가 열이 있어 보였다.
그녀는 미준에게 안기듯이 하여 고개를 뒤로 젖히고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 미준의 팔을 잡고 있었다.
미준은 그녀의 잠옷 위에 위장 부위와 대장 부위를 슬슬 문질러 주었다.
“괜찮지?”
그녀는 눈을 감고 아무 대꾸도 없었다.
“다시 누워봐.”
미준은 그녀를 눕혀두고 잠옷을 입고 있는 그녀의 팔과 배를 마사지 하듯 문질러 준 뒤 이불을 당겨 덮어 주었다.
“이제 괜찮을 거야.”
그리고 미준은 호주머니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내었다.
어둑한 선실에서 누워있는 예솔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이거 뭐예요?”
예솔은 누운 채로 손으로 더듬어 목걸이를 만져본 후 다시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지난 번 낚시 때 약속했던 거.”
“우주 보석 목걸이?”
“응.”
예솔은 옆에 앉은 미준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에 꾹 눌렀다.
“고마워요. 오빠.”
“너무 확대 해석은 하지 마. 보석이 예뻐서 만들어 준 거니까.”
“.....?”
“낚시 계속 하실 거예요?”
“조금만 더 하고 좀 자야지.”
“오빠는 괜찮아요?”
“뭐?”
“몸이 좀 이상한 거 같아요. 뭔지 모르게.”
미준은 차마 간식으로 먹은 물고기 탓이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자. 누워.”
미준은 다시 예솔을 자리에 눕혀 이불을 덮어 주었다.
“술 먹은 탓이겠지.”
“술은 다 깼는데?”
미준은 낚시를 더 할까 생각하다 그만 하기로 하였다.
“나도 그만 해야겠다. 낚싯대 정리하고 올게.”
미준은 얼른 낚싯대를 철수한 후 선실로 들어왔다. 커튼사이로 들어오는 불빛이 선실을 희미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난 저 위 침대에 가서 잘까?”
“그냥 여기서 자요.”
미준은 추리닝 차림으로 양치를 한 후 자리에 눕자 예솔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양치를 하였다.
“나도 양치하는 거 깜박 했네.”
미준이 자리에 누워 요트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솔은 미준의 옆에 누워 미준의 손을 찾았다.
미준은 눈을 감고 예솔의 손을 잡아 준 다음 돌아누웠다.
“오빠. 정말 이렇게 쭈욱 가야하는 거예요?”
“미안해. 우린 그냥 친구로 남아. 언제 까지나 늘 오래 오래.”
“오빠.”
예솔은 미준의 등에 얼굴을 묻어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미준은 잠이 들었다. 대호항 등대불만 홀로 깜박이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일찍 일어난 미준은 요트를 산호도 선착장에 대어두고 산호도 주변 해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산호도는 케이블카로 연결되면서 사람들의 출입이 늘어나면서 몸살을 앓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곳곳에 쓰레기가 산재해 있고 무인도 로 남아 있을 때와는 사람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미준은 즉시 뉴 중산 월드 본부장 탁정식에게 전화를 하였다.
“대표님, 이 새벽에 원일이십니까?”
탁 본부장을 이른 새벽에 미준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오늘 산호도를 한번 둘러보세요. 이대로 방치하면 결국 그 비난이 우리 회사가 모두 뒤집어 쓰게 될 겁니다.”
“죄송합니다. 한번 둘러보겠습니다.”
“고객들이 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관리는 회사에서 해야 할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표님께서 이 시각에 산호도엔 무슨 일로?”
“인근 해안에서 밤낚시하다 잠깐 섬으로 올라왔어요.”
“네. 알겠습니다. 일단 상황 파악하여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날 중산 뉴 월드와 산호도 일대에는 대대적인 청소와 새로운 식수가 이루어졌고 전 직원에게 비상이 떨어졌다.
미준은 예솔을 데리고 중산항으로 돌아 왔다.
잡은 고기는 예솔에게 보내주고 자신은 조금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낚시를 하고 돌아온 아들은 본 어머니는 미준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눈치를 보더니 그만 두는 것 같았다.
“어머니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아니다. 나중에 해야겠다.”
사실 미준의 어머니는 얼마 전에 뉴 해양 연상준 회장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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