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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미친 총각-197화 (197/225)

〈 197화 〉 형수, 훙분데요(1)

* * *

“오빠.”

차를 달리면서 예솔은 드디어 미준에게 오빠라 불렀다.

“오빠?”

“이제 오빠라 부를게요.”

“그럼 나도 말을 낮춘다.”

“네.”

미준은 미소를 띠며 옆에 앉은 예솔을 바라보았다.

“그 정도에서 멈춰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그런가?”

“난 너무 겁이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

미준은 차를 몰아 여수 시가지를 벗어나 돌산도로 들어갔다. 오늘의 목적지는 화태도를 지나 들어가는 것이었다.

월전항 주변 해안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가방을 매고 수심이 깊은 갯바위에 올라섰다.

무엇보다 물이 깨끗하고 날씨가 상쾌해서 좋은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온 이유는 몇 가지 있었지만 최근 프로들이 괴물고기를 잡는 다는 정보에 최근에는 감성돔까지 많이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낚시를 던져두고 캠핑카에 올라 포트에 물을 끓였다.

“자, 커피.”

커피를 타서 예솔에게 건네주고 갯바위에 앉았다. 고소한 커피향이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간다.

“음, 이 향기.”

예솔은 커피 향을 즐기며 냄새를 맡아가며 천천히 음미하고 있었다.

“오빠, 향이 너무 좋죠?”

“음, 마음이 편안하면 커피향도 더 좋게 느껴지나 봐.”

“그런가 봐요. 음 좋아.”

“너 옷이 그래서 어쩌지?”

“할 수 없죠 뭐.”

“잠깐만 기다려 봐.”

미준은 다시 차에 들어가서 추리닝 한벌과 슬리퍼를 가지고 다시 나왔다.

“이 옷으로 갈아입어. 신발은 이 것 신고.”

사실 예솔은 미니 원피스 차림이었고 신발은 하이힐이다.

어제 밤 저녁식사 약속을 한 것이 여기까지 올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래서 젊음이란 좋은가 보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다.

미준이 내준 옷은 은혜가 입던 추리닝이다. 신발도 마찬가지였다.

“오빠 이것 누구 옷?”

“있어.”

미준은 일부러 귀찮다는 듯이 예솔의 말을 잘라 버렸다.

그렇지 않으면 시시콜콜 이것저것 따지고 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여성들이란 좀 사소한 부분에서 예민한 것 같다. 이제 미준도 여성들의 특성을 조금씩이나마 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알고 보면 아무리 알아도 빙산의 일각 뿐이겠지만.

영원히 여자의 심리는 수수깨끼가 아닌가?

자신도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신발은 장화를 꺼내 신었다. 구두 보다는 장화가 훨 나을 것도 같다.

“너도 낚시 할 거야?”

“해야죠. 오빠.”

미준은 채비를 하여 낚싯대 하나에 미끼를 달아 건네주었다.

던지는 포스가 달라 보였다.

민물낚시 경험이 있다더니 기본자세는 나오는 것 같았다.

“민물낚시는 언제 했어?”

“어릴 때 아빠와 같이 했었어요.”

“음.”

“지금 생각해 보니 아빠가 낚시를 엄청 좋아 하셨나봐.”

“그래?”

“동생은 어릴 때였고 어떻게 하면 날 꼬셔 낚시에 데려갈까 갖은 궁리를 다하신 것 같아.”

“그거야. 낚시를 좋아서가 아니라 네가 좋아서 그랬을 거야.”

“맞아요. 요즘 한번 씩 그런 생각이 들곤 했어요.”

예솔은 가만히 옛 생각을 더듬는 것 같아 보였다.

우리 마을이 직지사천 바로 옆이었거든요.

예솔은 한참동안 고기를 잡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미준에게 이야기 계속하였다.

“아빠가 무척이나 낚시를 좋아하셨고, 저를 무척 사랑 하셨나 봐요.”

“오빠도 그런 경험 있어요?”

“난 아빠 생각이 전혀 안나.”

“그럼?”

“일찍 돌아 가셨다고 하는데 실은 그것도 몰라.”

그 말은 들은 예솔은 더 이상 아빠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대부분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낚시 경험을 하게 된다.

자신의 낚싯대에는 괴물루어를 달았다. 오늘의 대상어는 무조건 괴물이다. 그래야만 낚시 공장을 살릴 수 있다.

좀처럼 소식이 없더니 결국 용치노래미 한 마리를 먼저 건져 올렸다. 용치 노래미 중에서는 꽤 크기가 큰 것 같았다.

‘이것도 일단 넣어두자.’

낚시여행의 묘미 중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반찬으로 사용한다는 게 은근 재미가 솔솔한 일이다.

자급자족의 매력이랄까?

“오빠, 잡았어요.”

결국 예솔은 망상어 한 마리를 잡아 올렸다.

“커요. 이게 무슨 고기죠?”

“망상어 같아.”

“요거 귀엽네.”

“어떻게 할까요?”

“그것도 통에 넣어둬. 나중에 매운탕 끓여 먹자.”

그리고 또 노래미와 게르치를 잡아 올리더니 큼직한 우럭을 건져 올렸다.

그때부터 예솔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미준은 오래된 개그가 머리에 떠올랐다.

“예솔아.”

“네.”

“흥부가 왜 형수에게 밥주걱으로 뺨을 맞았는지 알아?”

“밥 달라고 해서?”

“그게 아니야. 형수가 밥을 퍼고 있는데 흥부가 조용히 가까이 왔어. 인기척을 느낀 형수가 뭐라 했겠어?”

“누구세요?

하고 물었겠죠?”

“그러면 흥부가 뭐라고 대답했겠어?”

“흥분니다. 라고 했겠죠.”

“그랬으면 맞지는 않았겠지.”

“요즘 학생들처럼 ‘형수! 흥분데요.’ 이렇게 대답했어.”

“그러자 형수가 주걱으로 흥부의 뺨을 때린 거야.”

“아니 왜?”

“몰라? 형수보고 흥분된다고 하는데 뺨을 안 맞겠어?”

그제야 예솔이 깔깔 웃었다.

“오빠. 이번 건 더 큰 놈 같애.”

미준이 돌아보니 예솔의 낚싯대가 포물선을 그렸고 초릿대 떠는 모습이 장난이 아니다. 예솔은 팔에 힘을 주며 미준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대신 좀 올려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눈초리다.

“직접 잡아봐. 넌 할 수 있어.”

“흐응.”

“낚싯대를 배에 붙이고 낚싯대 끝을 하늘로 치켜 올려. 그리고 낚싯대를 낮추면서 감고, 늦추면서 감고.”

미준은 옆에서 빈손으로 자세를 보여 주었다. 파르르 팔을 떨고만 섰던 예솔이 조금씩 흉내를 내며 릴을 감는다.

고기와 한판 승부가 벌어졌다.

“잘하고 있어.”

이제 예솔은 자신감이 좀 붙은 것 같다.

“이야.”

미준은 일부러 더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떠오른 고기는 40cm급 참돔이었다.

미준은 마지막으로 뜰채를 사용하여 건져 주었다.

“후.”

예솔은 얼굴에 함박 웃음을 머금고 정말 흥분되는 표정을 지었다.

“너 완전히 흥분되지.”

“흥분?”

“어, 흥분돼.”

미준은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말을 하고 보니 좀 이상하게 돌아간 것 같다.

그때 이번에는 미준의 초릿대가 심하게 떤다.

“나도 온 것 같다.”

미준은 이제 제법 포음을 잡으며 낚싯대를 끌어 올린다.

“오빤 정말 프로 인가봐.”

미준의 포스를 보고 예솔은 칭찬이라고 하는 것 같다. 미준의 왼팔은 전해지는 손맛을 통째로 느끼며 부르르 떤다.

“응. 나도 흥분되네.”

“오빠도 흥분되죠?”

“어, 흥분 돼.”

미준은 일부로 ‘흥분’이란 단어를 자주 썼다.

“뜰채로 좀 건져줘 봐.”

예솔은 뜰채를 들고 미준이 올린 고기를 잡으려고 애를 쓰다 겨우 성공 시켰다. 미준은 뜰채를 받아 갯바위로 올려놓았다. 역시 참돔이었다.

“참돔 때가 들어왔나 봐요.”

이제 예솔은 점점 낚시에 몰입되어 가면서 빠져드는 것 같았다.

누구나 첫 낚시가 중요하다.

첫 낚시에 성공을 하고 나면 점차 낚시에 빠지기가 일수다. 미준도 이제 바다낚시에 빠져들곤 한다.

취미하고는 낚시보다 좋은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성령을 잡는 것도 재미가 있지만 그보다 낚시가 더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얼마 후 드디어 괴물 고기가 걸려들었다.

느낌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온 몸에 기를 모아 조금씩, 조금씩 감아 올렸다.

“오빠, 대물인가 보다.”

예솔은 낚싯대를 걸쳐두고 뜰채를 들고 미준의 옆에 붙어 섰다.

“응. 대물 같다.”

20여분 만에 드디어 놈의 정체가 물 밖으로 나왔다.

“오빠, 이게 뭐지?”

“대형 고등 쏨뱅이네.”

엄청 큰 고등 쏨뱅이가 꼬리를 퍼덕이며 끌려 올라왔다. 머리는 고등어 몸통은 솔뱅이.

“오빠 이런 고기도 있어?”

“응, 이게 바로 괴물고기란 거야. 모두들 잡고 싶어 혈안이 된 고기지.”

“우와. 이런 괴물도 있구나.”

이미 낚시 정보엔 괴물 고기 사진을 올린 책자와 앱이 무척 많다. 그러나 그 많은 사진 중 고등 쏨뱅이는 찾기 어렵다.

일단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미준은 쏨뱅이를 들고 예솔에게 부탁하여 촬영을 하였다.

“오빠, 나도 좀 전에 사진 찍을 걸.”

“또 올라오면 찍어 줄게.”

그리고 미준은 고등 쏨뱅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이 고등 쏨뱅이는 회가 맛있기로도 소문이 나 있다. 정력에도 좋고 미용에도 좋다고 하였다.

“우리 이거 회쳐먹자.”

예솔은 미준의 말이 우스운지 하얀 이를 드러내어 해맑게 웃었다.

“어, 쳐 먹어.”

미준도 웃음이 나왔다.

‘가스나. 웃을 땐 아주 미치게 만드네.’

“자. 이것 봐.”

“그게 뭐예요?”

“이게 바로 천상의 보석 아스라이트.”

그것을 본 예솔의 동공은 엄청 확대 되었다.

“세상에 이런 보석이.”

콩알 만큼이나 되는 아스라이트를 보며 예솔은 신기해서 오래도록 만지작거렸다.

“너, 이거 맘에 들어?”

“너무 너무 예뻐요.”

“그럼 하나 줄까?”

“정말?”

역시 처녀들은 아름다운 보석을 좋아하는 것 같다.

“세 개나 되는 데 이거 하나 못주겠어?”

“고마워요. 오빠.”

“고맙긴 넌 내 생명의 은인인데.”

예솔은 정말 기쁜가 보다.

“근대 이대로는 안 되고 다음에 내가 뭘 만들어서 줄게.”

“알았어요.”

예솔의 대답이 매우 맑고 경쾌했다.

잠시 후 그들은 매운탕과 회를 쳐 점심을 먹었다. 예상했던 대로 예솔은 회도 잘 먹었다. 그 날 미준은 고등 쏨뱅이 눈알과 뼈, 지느러미를 따로 분리하여 모두 말려 두었다. 가을바람에 물가가 증발하면서 잘 마르는 것 같았다.

오후 낚시에 에솔은 완전 빠져 버렸다.

“오빠. 언제든지 낚시 갈 땐 나 불러줘요.”

“신청자가 많다고.”

“그래도 나만 불러줘요.”

“네가 하는 것 봐서,”

“어떻게 하면 돼요?”

“몰라. 그건 나도 말 못하지.”

미준은 오후에도 역시 고들 쏨뱅이와 전장 60이나 되는 날개돔 감생이로 아스라이트 보석과 스피넬 원석, 사파이어 원석을 채취하였고 날개돔 감생이 눈과 뼈. 지느러미를 확보하였다.

밤낚시를 하자고 조르는 예솔을 달래어 이른 저녁을 먹고 화태도 해안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기로 하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갈매기 정령과 말미잘 요정을 잡고 달래어 작은 원석 몇 개를 추가하였다.

예솔은 미준과 팔장을 끼고 사뿐 사뿐 날아가는 것처럼 가벼운 발길로 따라 다녔다.

섬 주위를 돌면서 미준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랑이란 뭘까?’

‘욕망이란 뭘까?’

언젠가 어머니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그때가 아마 고등학교 3학년 쯤 되었을 것이다. 방황을 하는 자신을 붙들고 그날 어머니는 많은 눈물을 흘리신 것 같다.

“미준아.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모를 거야.”

“어머니.”

“사랑이란 말이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거야. 난 네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수도 있어. 이건 진심이야. 그러니 걱정 마. 항상 네 옆에 어미가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돼.”

오늘 밤 유난이도 그때 하신 어머니 말씀이 자꾸 떠올랐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 어머니는 진심이었던 것 같다.

부모의 자식 사랑.

목숨을 버릴 수도 있는 부모님의 사랑.

미준은 아직 부모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되려면 자식을 길러 봐야만 조금은 안다고들 한다.

‘목숨을 줄 수 있는 헌신적인 사랑.’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일 뿐, 결코 자식이 부모에 대한 사랑은 아닌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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