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 이계에서 온 소녀(1)
* * *
은혜는 퇴근을 하여 중산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미준은 급히 차를 몰아 호텔 커피숍 입구에서 은혜를 만났다.
“우리 저녁부터 먹자.”
커피숍으로 들어가려는 은혜를 잡고 밥부터 먹자고 하였다. 미준은 은혜를 데리고 꿩고기 전문집으로 갔다.
꿩고기 불고기. 꿩고기 탕, 꿩고기 샤브샤브 중에서 은혜는 샤브샤브를 주문하였다.
“무슨 일로 갑자기?”
“오빠는 내가 전화 하지 않으면 안하는 거야?”
“왜 그걸 지금?”
“그렇잖아. 나 때문에 뭘 실패했느니. 너 아니라도 해결 할 수 있다느니.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잖아.”
“야, 시, 아니거든.”
“뭐가 아니야?”
은혜는 정말 화가 났는지 표정이 좀 아닌 것 같았다.
“너 정말 화났구나.”
“난 오늘 아침 출근해서 퇴근할 때 까지 종일 오빠 전화만 기다렸어,”
“너 이러다 나하고 막 먹겠다.”
“....?”
“근데 그건 그렇고 진짜 나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뭐야?”
“몰라서 물어?”
“아, 오늘 너 생일이구나.”
미준은 이제 맞췄다는 듯이 얼굴에 함박 미소를 띠었다.
“뭐?”
“아닌가?”
“내 생일도 모른단 말이지.”
“말을 해야 알지.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정말 몰라?”
“생일도 아니고, 결혼을 안했으니 결혼기념일도 아니고,”
“자존심 상해서 말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우리가 만나지 오늘이 300일 째야.”
“아, 300일. 근데 그게 뭐?”
“.....?”
그때 옆 자리에 앉아있던 아가씨들이 둘을 이야기를 들었는지 참견을 한다.
“아저씨. 둘이 썸타는 거 맞아요?”
미준이 고개를 돌려보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들이었다.
“.....?”
“그게 말이 돼냐구요?”
“어떻게 만난지 300 기념일을 몰라요?”
“개천절을 모르면 몰랐지 300일을 몰라요?”
“다 같이 300일데 아는 사람이 전화하면 되잖아요.”
“이 아저씨 큰일 날 분이네.”
“꼭 내가 먼저 전화해야 되는 거예요?”
“아저씨 연애 안해 봤죠? 처음하는 거죠?”
“네.”
갑자기 네 명의 학생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목소리를 갑자기 낮춰서 자기들 끼리 수근 거린다.
“처음이라 하잖아.”
“설마.”
“잘생겼다.”
“그래, 저 정도면 그거 잊어먹어도 용서되겠다.
“저 언닌 좋겠다.”
그러나 그들의 쑥덕거림은 다 들려온다.
그대 미준은 호주머니를 뒤져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이거 선물.”
다시 그녀들이 미준과 은혜 쪽을 쳐다봤다.
“무슨 선물.”
은혜는 미준이 내민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속에는 우주 별 사탕 목걸이가 예쁘게 걸려 있었다.
“와!”
“예쁘다.”
이런 환호는 은혜의 환호가 아니라 옆자리에 앉은 대학생들의 환호였다.
은혜는 커다란 눈만 껌벅이며 넋이 나간 사람처럼 미준만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좋겠어요.”
“아저씨, 멋있어요.”
그제야 은혜는 눈을 껌벅이며 그녀의 눈가에 물기가 촉촉하였다.
“오빠, 고마워요.”
“이거 거제에서 찾은 별 사탕 우주보석.”
“알아요.”
그들은 미준의 말을 듣고 다시 수군수군하였다.
“저거 엄청나게 비싸.
“꿈의 보석이야. 저 아저씨 갑부인가 봐.”
“좋겠다.”
“난 아무것도 없는데.”
“그럼 이제 너 다리 만져 봐도 돼?”
“오빠!”
대학생들은 하나같이 까르르 웃었다. 미준은 목걸이를 빼내 그녀에게 걸어 주었다. 식당 한쪽 구석에서 박수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다.
식사를 한 후 미준은 은혜를 데리고 진호천 강변을 걸으면서 데이트를 즐겼고 두 번이나 포옹하며 그녀의 미니스커트 속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다리 각선미를 만져 보았다.
오늘은 은혜도 미준의 이런 손버릇을 용인해 주며 별로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여자들은 보석을 좋아하나 보다.’
하나를 잃으면 둘을 얻는다.
미준은 은혜와 진호천 강변 산책로에서 생각지도 못한 암컷 왕잠자리를 보게 되었다. 암컷 왕잠자리 눈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왕잠자리 유충이 갈대의 줄기를 기어올라 막 우화하려는 순간에 물장군에게 걸려들어 죽음 직전에 미준에게 구출되었다.
왕잠자리는 유충 시절을 물속에서 지내며 물벼룩이나 올챙이 등을 잡아먹고 사는 육식성 수서곤충이다.
여름이 되면 물 밖으로 나와 풀줄기를 잡고 성충으로 우화하는데 우화를 앞두고 있어 기운이 없을 때라 잘못되면 개구리나 뚜꺼비, 또는 물고기의 밥이 되어 일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 놓고 하늘을 날아보지도 못한 채 한 많은 일생을 마친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때로는 물총새나 박쥐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구출된 왕잠자리는 아름다운 날갯짓을 하며 푸른 하늘을 날아오를 것이다.
‘고마워요. 아저씨.’
이날 미준은 물장군과 두꺼비 영령을 잡아 왕잠자리 눈과 같은 아름다운 천연 보석을 획득하였다.
은혜를 보내고 집으로 오다 미준은 갑자기 불어오는 엄청난 회오리에 날려 어딘지 모르는 낯선 곳에 떨어졌다.
사방을 둘러보니 캄캄한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이게 꿈인가?’
‘여기가 어디지?’
사방을 둘러 봐도 보이는 건 어둠 뿐. 높은 낭떠러지로 길마저 끊어져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칠흑 같이 어둡고 안개는 자욱하여 전설의 고향을 연상시켰다.
그때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번 쯤 본 듯한 갑사 옷을 입은 아름다운 선녀가 미준을 불렀다.
‘천년 묵은 여우인가?’
“아저씨, 저 좀 살려주세요.”
미준은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으면서 선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매일 밤 요괴가 나타나 저를 괴롭혀요. 제발 저를 좀 살려 주세요.”
“요즘 같은 세상에 요괴가 어디 있어요?”
미준은 선녀를 보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전 오래 전부터 아저씨를 기다렸어요.”
“나를 요?”
“아저씨만이 저를 구해줄 수 있을 거라 믿어 왔어요.”
“거 참, 내가 뭐라고.”
“조금만 있어 봐요. 저기 저 달이 계곡을 비출 때면 반드시 나타나요.”
“선녀는 집이 어디세요?”
“저기 저 절벽아래 제 집이 있어요.”
그럼 빨리 집으로 갑시다. 미준은 이 여자가 100년 묵은 여우거나 천년 묵은 뱀이라고 생각하였다.
분명 자기를 유혹하여 기회를 엿보고 헤치지 않을까 경계를 하면서 스틱을 단단히 쥐고 그 여자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갔다.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를 꼬불꼬불 돌아가며 겨우 여자의 집에 도착하였다.
“일단 방으로 들어가세요.”
선녀의 방안은 수수하면서도 그윽한 향기가 몸을 녹이듯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음, 냄새 좋다.’
‘조금 있으면 맛있는 밥상을 차려 들어오겠지.’
“먼저 식사라도 좀 하세요.”
‘역시나.’
미준은 일단 식사는 하기로 했다. 그래야 기본적인 본전은 할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미준은 그녀가 무엇인가로 변해 자기에게 덤벼드리란 걸 예상하고 왼편에 놓아둔 스틱을 다시 확인하였다.
“카르릉.”
‘이제야 올게 왔구나. 부엌에서 여자가 바로 괴물로 변해 나를 덮칠 것이다.’
스틱을 단단히 쥐고 부엌 문 쪽에 붙어 서서 들어오기만 기다렸다.
“살려주세요.”
‘아니 이건 각본이 아닌데.’
얼른 쪽문을 열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부엌 구석에 공포를 띤 여자가 바싹 붙어 있었고 마당으로 나가는 부엌문 밖에는 어마어마한 지네가 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발가락을 뻗어 선녀를 잡으려고 발광을 하고 있었다.
미준은 문을 밀고 들어오려는 지네의 앞 다리를 후려 갈겼다.
‘시발, 한 단계 위의 시나리오네.’
미준은 있는 힘을 다해 지네의 발을 스틱으로 후려치며 끊어 놓았다. 푸른색 피를 흘리면서도 지네는 꼼짝도 계속고 덤벼들었다. 머리 쪽 다리를 거의 잃은 지네는 한 발짝 마당으로 물러서면서 안개와 같은 독을 뿜어 대었다.
촬영 만 할 수 있으며 전설의 고향보다 더 재밌을 것 같았다.
“시발, 죽어.”
미준이 소리치자 지네는 잠시 주춤하며 쳐들었던 머리를 마당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이때다.’
미준은 놈의 목 부분을 스틱으로 찔렀다.
“치지직.”
푸른 핏줄기가 미준의 얼굴과 몸에 품어져 나왔고 지네는 조금씩 물러서기 시작했다.
“도망은 어딜.”
“죽어라고.”
다시 미준은 지네의 머리를 찍어 눌렀다.
“쓰르륵. 쓰륵, 쓰륵.”
지네는 녹아내리듯 사라졌고 지네가 사라진 곳에는 야구공만한 연분홍빛 구슬이 놓여 있었다.
미준은 구슬을 쥐고 들여다 보다 자신에게 뭍은 지네의 피를 보며 투덜거렸다.
‘시발, 옷 다 버렸잖아.’
“아저씨 고마워요.”
‘아참, 아직 끝나지 않았지.’
공포에 질려있던 선녀는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와락 미준의 품에 안겨들었다.
‘역시 내 이럴 줄 알았다.’
‘이제 네가 나를 덮치겠지.’
‘일단 속아 주는 척 하자.’
“아저씨. 방에 들어가셔서 조금만 기다려요.”
미준은 시치미를 떼고 방에 들어와 자리에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을까?
“아저씨 목욕하세요.”
‘이건 아닌데. 보통 지가 목욕해야 하는데. 지가 목욕하고 나를 유혹하는게 순서인데.’
“괴물의 피로 얼굴과 몸이 함북 젖었어요.”
‘시발, 목욕까지 시켜 깨끗하게 만들어 먹으려고 저러나?’
‘요물 주제에 청결까지 챙기다니. 보통 요물이 아니네.’
미준은 이왕 씻어야 할 걸 뭐 미리 씻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부엌으로 나갔더니 나무로 만든 대형 함지박에서 따뜻하게 데운 목욕물에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래, 일단 좀 씻고나 보자.’
옷을 벗어 던지고 물속으로 들어가니 너무나 상쾌하였다. 스틱은 빠뜨리지 않고 함지박에 걸쳐두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를 하였다.
머리를 감고 몸을 씻고 있는데 방으로 통하는 쪽문이 열렸다.
‘이제 잡아먹으려나?’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는 얼굴을 붉히며 보자기를 안고 부엌으로 나왔다.
‘이제야 본 색을 들어내는구나.’
미준은 스틱을 가만히 쥐었다.
“목욕하신 후 이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이게 아닌데.’
“고맙습니다.”
‘이왕 먹으려면 옷을 벗은 상태가 더 좋을 텐데. 그래야 맛이 제대로 날 텐데.’
일단은 시간은 좀 더 번 것 같다.
하는 것으로 봐서는 당장 잡아먹진 않을 모양이었다.
목욕을 하고 나자 선녀는 큰 수건으로 미준의 등을 닥아 준 뒤 옷을 입으라고 돌아서 주었다.
‘요물 주제에 부끄럼까지 타고. 참, 고루고루도 한다.’
비단 옷인지 촉감이 부드럽고 가볍기가 한정 없었다.
‘아휴, 시원해.’
초여름 밤 정취가 온 몸에 느껴온다.
방으로 들어서자 선녀는 다소곳이 앉아 미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흐음.”
미준은 헛기침을 하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소녀를 구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네, 뭐.”
“믿지 않으시겠지만 전 오래전 케플러 행성의 작은 나라 언노은 소국의 공주로 태어났으나 행성이 폭발하면서 많은 외계 생물들과 함께 지구에 떨어진 가여운 여자입니다.”
여자는 곱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털어 놓고 있었다.
“제 이름은 정확하지 않지만 어릴 때부터 큐걸이라 불렸던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을 지금 제게 믿으라는 것입니까?”
“물론 믿기는 어렵겠지요.”
“그럼 그 말을 증명할 수는 있어요?”
“이게 중명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제가 지구에 떨어질 때 제 목과 손목에 걸고 있던 것들입니다.
여자는 돌아 앉아 나무 서랍을 열어 목걸이 한 개와 팔찌 두 개를 꺼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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