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총각 딱지(3)
* * *
“왜?”
“아빠. 시장에 좀 나가보세요. 제 손님 만나 그냥 왔어요.”
“손님?”
얼른 봐도 이 아가씨는 횟집 사장 딸이 분명했다. 그리고 딸이 수산물시장에 고기를 사러 나갔다가 미준을 끌고 돌아온 것 같았다.
“아줌마. 여기 대구 알탕 두 그릇 맛있게 해주세요.”
“응. 손님인가 보네.”
“근데 아가씨. 제게 왜?”
“선생님, 절 모르시겠어요?”
“....?”
“선생님이 저를 살려주셨잖아요.”
그리고 아가씨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엄마. 그 선생님. 우리 식당에 와 계셔요.”
조금 후에 한 아주머니가 식당에 뛰어 들어왔다.
“아이고, 의사 선생님.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바로 그 아줌마였다. 언젠가 가오의 영령에게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어떤 아가씨의 모친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이제 선생님을 뵙게 됐네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땐 정신이 없어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우리 아이가 새벽마다 센터로 나가보곤 했는데.”
“여기 뭐 시켰어?”
“대구 알탕.”
“응, 아줌마. 돌돔회도 좀 썰어주세요.”
“네.”
아주머니는 미준을 보면서 반가워하는 모습이 진심인 것 같았다.
“그때 그 아가씨가 이분이세요?”
“예. 접니다. 선생님 꼭 만나 뵙고 싶었어요.”
“네. 그 뒤에 제가 이사를 하는 통에 모처럼 여기 들렀어요.”
“아. 그래서 제가 아침마다 수산물센터에 나가 봤지만 뵐 수가 없었네요. 보통 오는 사람들이 주로 오거든요.”
“네.”
잠시 후 대구 알탕과 밥이 나온 후 돌돔회가 올라오자 미준을 향해 식사를 하라면서 자신의 딸에게도 식사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는 아주머니는 새벽이란 걸 잊었는지 백세주 한병도 시키고 음료수도 내어오며 법석을 떨었다.
“자, 반주도 한잔하시고요.”
아주머니가 술을 부어주려 하자 얼른 아가씨가 자신이 붓겠다며 술병을 받아 미준에게 부어 주었다.
“아주머니도 한잔 받으세요.
미준은 아주머니께 술잔을 채워드렸다.
“아주머니도 식사 같이 하시지요. 난 나중에 먹으면 되요. 우리 딸내미는 학교 가야하니깐 먼저 먹어야 하고.”
“학생이세요?”
“예, 중산 국립대학교 4학년이에요.”
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사고 난 그날도 오지 말라고 말렸는데 엄마 고생한다고 센터에 나왔다가 그런 일을 당했지요. 선생님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어요. 난 그날 만 생각하면 정말 앗질 해요.”
“많이 놀랐겠어요.”
“말도 마세요. 하늘이 노랗더라구요. 고마워요. 선생님.”
“가만있자. 그때 남희라 했나?”
“예, 제 이름이 정남희.”
“우리 딸 이름을 알아요?”
“아주머니가 딸 이름을 막 부르며 흔들고, 울고 그랬어요.”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말도마라 얘야. 난 그날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때 남희의 아버지가 고기 상자를 들고 가게로 들어오셨다. 다시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여기에서 횟집을 한다고 하였다.
새벽인데도 어부들을 포함해서 주변 상인들이 탕 종류나 찌개 등을 시켜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새벽 일찍 수산물센터에서 하루에 팔 만큼 고기를 사다 종일 장사를 한다고 하였다.
장사는 제법 잘된다고 하였다.
더구나 딸이 효녀라서 종종 식당에 들어 부모님 일을 도와준다고 하였다.
“선생님은 어느 병원에 계세요?”
남희가 물었다.
“중산종합병원.”
“아. 그래서 요즘 중산 병원이 인기가 좋구나. 선생님 같은 분이 계시니.”
“요즘 우리 병원 소문이 괜찮습니까?”
“요즘 최강이죠. 환자가 많이 몰려든다고 하던데.”
“네. 좋은 소문 좀 많이 내 주세요. 하하하.”
미준은 병원 소문에 좋다고 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럼요. 그래야지요. 이미 시장 통에는 다 알고 있어요.”
“선생님 부모님은 좋겠다. 이런 든든하고 잘생긴 의사 아들을 뒀으니.”
남희의 어머니는 연신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는지 미준의 손도 잡고 다리도 잡으면서 부러워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아낌없이 표출하였다.
“아직 총각 맞지요?”
남희가 웃으며 농담 삼아 물었다.
“그럼. 총각 선생님이지. 그러니까 이 시간에 수산물 센터로 나오시지.”
아주머니는 자신의 딸과 미준을 번갈아 보며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아직은.”
미준도 따라 웃었다.
“그런데 무슨과 담당하세요?”
“전 정신신경과지만.”
“과지만?”
“원장입니다.”
“원장님? 중산병원 원장님?”
미준은 쑥스러워 얼굴을 붉혔다.
그날 미준은 아침을 대접받고 물고기도 많이 얻어 남희 아버지가 태워주시는 승용차를 타고 집까지 돌아왔다.
“선생님 제가 다음에 전화 또 드릴게요.”
남희는 미준의 명함을 받아 쥐고 유쾌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도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게 된다.
‘결코 이 사람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절대 금물이다.
어떤 인연으로 어떻게 또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만큼 만남은 소중한 것이라 순간의 만남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전 중에 책을 보면서 여가를 즐기다가 점심을 먹고 나니 커피 생각이 간절하였다. 믹스 커피로 때울까 하다 공원 카페에 가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공원 카페는 미준이 자주 찾는 단골 커피집이다.
중산 대종 종각 옆으로 지나치려 하는데 어디서 아기 우는 소리가 미준의 귀를 때렸다.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보이지도 않았고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영재야! 영재야!”
그때 아기를 찾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귀를 때렸다.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이미 절망에 가까운 절규와 다름없었다.
순간 그때 미준의 머리를 강하게 강타하는 그 무엇이 느껴졌다.
여자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이런 방면에서는 뛰어난 머리를 가진 미준이었다.
‘사고다.’
미준은 즉시 주변을 살펴봤다. 위험한 곳이 어디일까?
“영재야! 아기 하나 못 봤어요? 영재야!”
미준의 눈에 공원 분수대가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분수대가 설치된 작은 연못으로 뛰어 갔다. 가운데는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지만 분수대 주변은 어른들 허리만큼 수심이 깊은 화강암으로 둥글게 만든 작은 얀못이 있다.
미준은 즉시 연못가를 둘러보았다.
아이의 옷이 보인다.
군간 미준은 연못으로 풍덩 뛰어 들었다.
어린 아이였다.
덥석 아이를 안고 신속하게 뛰어 나왔다.
“여기 있어요.”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아이를 눕혀두고 재빠르게 숨을 내 뱉고는 아이의 입에 대고 길게 빨아 당겼다.
이미 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영재야.”
그때 아이 어머니도 현장에 달려와 영재를 목격하였다.
“영재야!”
정신없이 아이를 찾아다니던 어머니는 휘청하며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미준은 침착하게 동작을 반복하자 미준의 호흡에 딸려 물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얼른 아이의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다시 구강호흡을 계속하다 흉부 압박 호흡으로 전환하였다.
“캑캑.”
그제야 아이가 물을 토해냈고 잠시 후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영재야. 엄마다.”
아주머니는 허우적거리며 영재를 부둥켜안았다.
“미안하다. 영재야.”
미준도 아이가 깨어나자 다리가 풀려 털썩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미준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입고 있던 바람막이 옷을 벗어 아이에게 걸쳐주고 자리를 뜨려하였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아이를 안고 있던 아주머니가 미준을 불렀다.
“아저씨?”
미준이 돌아보니 아주머니가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미준은 같이 손을 흔들어 주고 카페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 사람 좀 붙잡아 주세요.”
아주머니는 주변에 있는 청년에게 미준을 가리키며 부탁을 하였다.
“형씨. 형씨.”
미준이 다시 돌아보자 아주머니가 아이를 안고 미준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저씨. 저 모르겠어요?”
“.....?”
미준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겨울 폭설이 내리던 날.”
“.....?”
“덕유산 IC부근에서 우리 모자를 살려 주셨잖아요.”
“아?”
“죄송해요. 제가 한번 만나 뵙고 인사라도 드린다는 것이 그동안 사정이 있어서. 그런데 또 저희를 구해 주셨네요.”
“정말 그때 그 아주머니 맞아요?”
“네. 이 애가 바로 그때 영재.”
“아, 그래요. 죄송합니다. 미처 알아보지 못해서.”
“세상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일단 영재가 추울 것 같으니 저기 좀 들어가요.”
그들은 영재를 데리고 카페로 들어갔다. 평소 자주 앉는 한쪽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미준은 사장을 불러 아이가 걸칠 수 있는 옷을 빌려 달라고 한 뒤 영재 옷을 벗겨 말려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평소 미준이 자주 찾는 곳이라 미준의 부탁을 매우 친절하게 협조를 해 주었다.
“잘 아는 집인가 보죠?”
“그건 아니고 가끔 이집에 와요. 오늘도 차 생각이 나서 여기로 오는 길이었어요.”
“네. 그럼 댁이 이 부근에?”
“예 그렇습니다.”
그때 미준의 앞에 레벨을 알려주는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귀하의 스펙 9급. 순발력 27. 감별력 25. 투시력 20. 전투력 27. 조정력 15.]
‘음, 나의 스펙이 9급이라.’
‘오늘 같은 일도 스펙에 반영되나?’
“그런데 중산까진 어떻게 오셨습니까?”
“말씀을 드리자면 좀 길어요.”
결국 차를 마시면서 영재 어머니는 자신의 신세타령을 하고 있었다. 원래 살던 곳이 대전이었는데 지난해 봄 교통사고로 남편과 사별하고 함양에 있는 친정집에 영재를 맡기기로 하고 친정집에 가는 중 폭설을 만났다고 했다.
영재를 데리고는 도저히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어 부득이 친정어머니께 부탁하여 영재를 돌 봐주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 씩 영재를 만나러 함양까지 왔었는데 친정어머니 건강이 좋지 않아 다른 방도를 찾고 있다고 하였다.
마침 중산에는 여동생이 있고 여동생이 주부라서 영재를 부탁하러 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동생은 만났어요?”
“아뇨.”
“왜죠?”
미준은 매우 궁금하였다.
“요즘 제가 뭘 하면 자꾸 꼬여요. 무슨 도깨비 장난도 아니고.”
“....?”
“오늘 영재 일만해도 그렇잖아요.”
“.....?”
며칠 전까지 동생과 약속을 했는데 아침부터 전화도 안 받고. 통화가 안돼서 몇 번을 통하 시도하느라 잠깐 눈을 돌렸는데 영재가 안보이드라고 하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동생에게 무슨 사고라도 나지 않았는지 걱정이 돼서 죽겠어요.”
아주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많이 지쳐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어쩌죠. 혹시 동생 집은 몰라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문자도 넣어 뒀으니 곧 연락이야 오겠죠. 별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그래야겠지요. 별 일이야 있겠어요. 곧 연락 오겠죠.”
미준은 갑자기 영재가 가엾어 보였다.
“넌 뭐 먹을래?”
미준은 아이스크림을 시켜 영재에게 주었다. 영재는 이제 일곱 살로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고 하였다.
그때 만났을 때도 유치원에 다닌다고 하더니 아직 유치원생인가 보다.
“이렇게 번번이 신세만 지고 어떡해요?”
“별 말씀을요.”
“언젠가 제가 모든 것이 안정되면 반드시 은혜를 갚을게요. 지금은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건 걱정 마세요. 은혜는 무슨.”
동생 집에 영재만 맡길 수 있으면 영재 가까이 직장을 옮겨 영재도 돌보고 직장에도 다니고 할 계획이라 이야기를 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에요?”
경제적으로는 최악은 아니라고 했다. 남편이 남긴 유산도 좀 있고 사고 보상비도 받고 보험금도 받아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영재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겠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매우 건전하고 건강한 생각을 가지신 분이 틀림없는 데 뭔가 일이 꼬이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어느 듯 퇴근 시간이 다됐는지 은혜의 전화가 왔다.
미준은 아주머니께 명함을 내어주고 만약 어려움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당부를 한 뒤 은혜를 만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