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 도깨비 감투(2)
* * *
“아주머니 짐 챙기세요. 아이는 내가 안을 테니.”
미준은 아이를 안고 자신의 차로 돌아왔다. 즉시 아이를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 눕혀주고 따뜻한 물을 끓여 한 숟갈씩 먹여주었다.
그리고는 커피를 타서 아주머니께 건네 주었다.
“고맙습니다. 차에 기름이 떨어져.”
“오늘 같은 겨울날 재난이 당하면 특히 연료를 절약해야 해요. 당장 춥다고 계속 엔진을 켜두면 진짜 추울 땐 방법이 없거든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커피를 마시며 아이를 들여다보며 한 숨을 돌리고 있었다.
“영재야. 괜찮아?”
바닥에 누운 아기는 어머니를 처다 보며 볼멘소리로 물었다.
“엄마, 우리 언제 가는 거야?”
“눈이 그치면 곧 갈 수 있어.”
미준은 창밖을 내다보며 눈빛에 반사되어 희미하게 비치는 산야를 내다보고 있었다.
“엄마. 배고파.”
“참 식사는 어떻게 했어요?”
아주머니는 아침을 먹은 후 미준이 준 과자 몇 조각이 전부였다고 하였다.
미준은 얼른 쌀을 씻어 가스버너에 올려두었다.
어린 아이가 지금 이러는 것도 어쩌면 밥을 먹지 못해 온 탈진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누룽지를 녹여 물을 끓이고 마른 명태로 북어국을 끓였다.
“자, 이름이 뭐라고. 영재라 했나. 일어나 밥 먹자.”
미준은 캠핑카 바닥에 식탁을 펼쳐 밥과 북어국. 누룽지 물을 올려주고 고추장과 마른 멸치를 꺼내 주었다.
“고맙습니다.”
배가 고파 정신없이 먹고 있는 아이를 보며 아주머니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어디 가시는 길이죠?”
아이 할머니가 내일 아침 생일이라 모처럼 외할머니 댁으로 가는 길이라 하였다.
“아기 아빠하고 같이 가시지 않고.”
아주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는 드렸어요? 몹시 걱정하실 텐데.”
어머니가 혼자 살고 있어 전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긴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에게는 남모를 애환이 다 있는가 보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 그런 모자이지만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또다른 아픈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미준은 더는 묻지 않았다.
“보험회사에 연락해 두세요. 눈길이 미끄러워 차가 꼼짝을 못하다는 이야기와 연료가 떨어졌다고 말해 두세요. 그러면 길이 뚫리면 렉카차가 오던지 할 거예요.”
미준의 이야기를 듣고 아주머니는 전화를 하였다. 전국적인 폭설이라 곳곳에 사고로 인해 지체되긴 했으나 결국 보험사에 연락 할 수 있었다.
“이제 아기 옆에 누워 좀 자도록 하세요. 많이 지친 것 같아요.”
미준은 두 사람에게 방을 내어주고 자신은 운전석에 앉아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땐 하늘은 파랗기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영재도 따뜻하게 잘 잤는지 건강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고 영재 어머니도 다소 회복된 것 같았다.
오후가 되자 제설차가 지나갔고 영재의 어머니가 가입해둔 보험사에서 렉카를 보내주어 그들은 떠났다.
아주머니는 기어이 미준에게 명함을 받아서는 영재의 외가가 있는 함양으로 간다고 하였다.
영재의 어머니는 안영희라 했다. 현재는 대전에 살고 있다고 하였다.
그들이 떠나자 미준은 즉시 차를 출발하여 함양를 거쳐 중산으로 돌아왔다. 지루하면서도 혹독한 긴 겨울이 지나가고 새봄이 올 때쯤 중산종합병원이 준공을 하게 되었다.
대대적인 인력 채용과 의사들이 초빙되고 많은 간호사들을 뽑게 되었다.
중산종합병원은 정신신경과, 정신건강 의학과를 중심으로 하여 내과, 임상병리학과, 신경외과. 정형외과로 나누어 졌다.
지방에 위치한 약점이 있어 의사들에게는 파격적인 우대를 하였고 자녀들의 학부와 주거 생활비를 제공하기로 하였지만 의료진의 확보가 여간 아니었다.
그러나 첫술에 배가 부르겠는가?
시설과 의료기기도 세계적인 수준을 확보하였고 전반적인 운영과 관리를 위해 병원 관리과와 병원 운영부를 별도로 설치하여 의료진의 활동을 원활하게 지원하도록 하였다.
특리 병원 관리과장에 건물공사 현장 감독 이재룡을 임명하고 공사장 인부로 성실하게 일하던 김수영과 한때 은혜의 뛰를 따라 다니며 양아치 활동을 하던 김영석을 특채하여 배치하였다.
이울러 병원 운영과장에는 병원의 인력 채용과 개업에 몸을 아끼지 않고 뛴 최해성을 임명하고 순천 출신 조아라양과 엄주환, 이병도. 양재희를 배치하였다.
결국 미준은 중산종합병원 원장의 직함을 가지게 되었다. 원장은 매주 화요일 모든 의료진과 함께 회진을 하여 환자의 상황을 판단하고 치료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즉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각 방송과 신문에 개원 소식을 전하고 대대적인 홍보에 돌입하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젊은 신규 의료진 중에는 미준과 함께 대학을 다닌 치구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과연 학창시절에 미준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고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미준 또한 그것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좀처럼 내원 환자들이 늘어나질 않았다.
일부에서는 환자는 적은데 지나친 투자로 부도 위기설까지 떠도는가 하면 경쟁 업체에서 루머를 퍼뜨리는지 해괴한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다.
“중산 종합병원은 시설만 좋지 실력이 없나봐.”
“그러니까 환자가 없지.”
“부도설도 나돌아.”
“원장 그 사람 헌터라며?”
“돈 벌어 뻘짓한 거지.”
수근 거리는 말들이 대체로 이렇다.
미준은 큰 걱정은 되지 않았으나 소속 의사들이 자꾸 다른 병원으로 가려하니 그것이 문제였다.
어느 날 미준은 퇴근 시간에 맞춰 과장 셋과 전문의 셋을 불러 함께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이들의 말을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원장님. 부도설이 돌던데 근거가 있는 거예요?”
임상병리과 전문의 한효설 선생이 먼저 말을 꺼냈다.
“글쎄요. 어디서 그런 말이 나오는지.”
“아무래도 우린 새 길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상태로 월급 받기도 힘들고.”
정형외과 김동수 과장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효설 선생이 정색을 하며 바른말을 하였다.
“우리병원이 개원한지 얼마 됐다고 그러세요. 부도설이 루머라면 어떤 세력이 가짜 소문을 퍼트리는 거잖아요. 모두 힘을 합해 노력은 해 봐야죠.”
“맞아요. 노력도 안해 보고 포기한다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한선생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건 정신건강 의학과 전문의 이현영이었다.
젊고 어린 여자 전문의 들이 바른 말을 하자 나이가 좀 든 과장들이 할 말이 없는지 약간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미준은 맥주잔에 소맥을 타서 들고 건배 제안을 하였다.
“우리가 남이가?‘
“우리가 남이가”
“해보자.”
“해보자.”
모두다 원샷을 한 후 미준은 입을 열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심경과 애로를 제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방금 두 분 여선생님들 말씀처럼 그만둘 때 그만 두더라도 한번 해보고 그만 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
“끝까지 한번 최선을 다해 봅시다.”
“알겠습니다.”
일단 의료진의 동요를 막은 셈이었다.
다음 날 모처럼 은혜가 찾아왔다.
“오빠, 병원 소문 들었어요?”
미준의 병원 개원에 무척도 좋아하던 어머니는 악성 루머가 번져 나가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몇 번이나 전화를 하여 걱정을 하셨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그래도 아들 미준이 꿋꿋한 모습을 보이자 한결 마음은 편했다.
그러나 은혜는 대놓고 차마 말도 못하다가 결국 미준의 빌라로 찾아온 것이었다.
“소문?”
미준은 은혜를 보자 대뜸 그녀를 번쩍 안고 들어 올려 그녀의 치마 속으로 손을 밀어 넣으며 그녀의 허벅지부터 만졌다.
“오빠.”
“잠깐만 이대로 있어.”
한참동안 그녀의 허벅지를 주무르고 난 다음에야 그녀를 소파에 앉혀 주었다.
“변태.”
“다리 만지는 변태도 있나?”
“왜 자꾸 남의 다리를 만지냐고?”
“그야 네 각선미가 너무 좋아 그렇지.”
“그보다 병원 말이에요.”
“병원이 왜?”
은혜는 막상 말은 꺼냈으나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막연하였다.
“병원 괜찮아?”
“괜찮지 그럼.”
“....?”
“걱정 마. 은혜야. 내가 누구야. 네 남친 이잖아.”
“....?”
“내가 남친 아니야?”
“남친은 남친이지.”
대답을 하는 은혜의 표정은 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물어봐도 되겠네.”
“뭘요?”
“정말 물어봐도 돼?”
“뭘 말이에요?”
“그럼 물어본다. 좀 창피스럽긴 하지만.”
“....?”
“넌 남자 경험 있어?” 은혜는 얼굴을 붉히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
“미안해. 말도 안 되는 거지. 요즘 그런 경험 없는 여자가 어디 있다고.”
“....?”
“사실 창피하지만 난 아직 총각.”
은혜는 어이없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웃지 마. 창피해.”
“그게 뭐 창피한 거야.”
“이 나이 될 때까지 딱지도 못 땠어.”
은혜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하얗게 웃었다.
“너 어디 가서 소문 내지마. 그럼 넌 죽어?”
“몰라.”
미준은 다음 여행에 은혜를 데리고 가서 총각 딱지를 떼야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생각만으로도 흥분되고 짜릿하였다.
다음 주 화요일에 각과 과장 및 전문의를 대동하여 입원실 회진에 들어갔다.
각과 과장들과 전문의들은 자기들의 돌보는 환자들의 상황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불편한 점과 애로 상황, 병의 상태를 점검하였다.
여기서 미준은 의료진의 회진을 멀지 감히 서서 지켜보았다. 그때 정신건강 의학과 병실을 회진하고 있는데 조현병 환자로 보이는 환자가 미준의 눈에 띄었다.
원래 조현병은 사고의 장애나 감정, 의지, 충동 따위의 이상으로 인한 인격 분열의 증상이 나타나고 현실과의 접촉을 상실하고 분열병성 황폐를 가져오는 병이다.
침대에 붙어있는 나이를 살펴보니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발작을 하였는지 팔다리를 모두 묶어 두었다. 평소에 약을 처벙하여 빠짐없이 약과 주사를 맞으면 진정 효과가 있어 별로 문제가 없는 것 같다가도 한번씩 발작을 일으키며 소리를 지르거나 행패를 부리기가 일 수였다.
전문의 이 선생은 침착하게 간호사에게 주사와 약 처방을 일러주고 있었다.
그러나 미준의 눈에는 또다른 무엇인가가 잡히고 있었다. 그의 머리 정수리에는 고양이 같은 악령의 검은 그림자가 머리를 할퀴고 있었다.
미준은 의료진을 비켜라고 하고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청년은 미준을 보며 욕설을 하고 몸부림을 쳤다. 사지가 묶여 있는 상황이라 발버둥을 쳐 봐도 소용이 없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공격을 할 것 같이 눈을 까뒤집고 앞니를 깨물고 이빨까지 들어내었다. 악령의 횡포 때문일 것이다.
미준은 간호사를 시켜 환자의 침대 윗부분을 세우게 하여 묶인 채로 환자를 앉히게 했다.
“원장님.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현령 선생이 미준을 보며 염려스럽게 물었다.
“지금까지 잘 치료해 오셨네요. 거의 다 나은 것 같습니다. 저것이 마지막 발작 같네요.”
모든 의료진이 미준을 바라보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 하는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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