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에 미친 총각-180화 (180/225)

〈 180화 〉 도깨비 감투(1)

* * *

가을이 가고 첫눈이 오던 날 미준은 그 날 대전에서 무주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눈발이 뿌리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바람이 불고 하늘이 잔뜩 찌푸리기는 했으나 갑자기 눈이 오리란 걸 예상하지 못한 상태였다. 덕유산을 지나고 있을 때는 더는 앞이 보이지를 않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바람에 섞여 떨어지는 눈발이 창을 때리면서 한치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곳곳에는 차가 미끄러져 방향을 잃고 도로 한쪽 옆에 멈춰서 있다.

갑자기 눈이 내려 대비가 제대로 안되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가보자.’

다행인 것은 교통량은 그리 많지 않았고 미끄러진 차들 외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인근 휴게소를 들어갔거나 미리 알고 빠져 나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천천히 몰아 계속 전진했으나 더는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졸음 쉼터 부근에서 하는 수 없이 정차를 한 후 체인을 꺼내 바퀴에 채웠다. 그러나 이것도 한계가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시야 확보가 되지를 않았다.

좌우를 살펴봐도 민가는 보이지 않았고 미준의 조금 앞에 미끄러진 차 한 대가 산기슭을 향해 멈춰있을 뿐이었다.

그 차는 계속 움직이려 하더니 결국 헛바퀴만 돌고 멈춰서고 말았다. 이제 포기를 한 것 같았다.

지금쯤 이 도로도 교통 통제에 들어갔을 것이다. 엔진을 꺼 연료를 아끼며 비상 배터리를 이용하여 난방을 한 후 잠을 자기로 작정하였다. 이럴 경우는 기다린다고 해서 무엇 하나 달라질 것은 없다. 조용하게 시간을 즐기거나 잠을 자는 것이 상책일 것 같았다.

어느새 해는 넘어가고 밤이 되었으나 내리는 눈발에 세상은 환하게 밝은 것 같다. 북유럽에서 본 백야 현상과 다름이 없었다. 그때 미준은 몰아치는 눈발 속에 소용돌이치며 엉켜 붙은 한 무리의 움직임을 목격하였다.

‘저게 뭐지?’

차창을 내다보며 눈발 속에서 움직이는 또 다른 잔영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백 수천 마리의 알 수 없는 영령이 전쟁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때 그중 하나가 미준이 타고 있는 캠핑카 앞창에 충격을 주며 부딪쳐 떨어졌다. 얼른 손을 내밀어 놈의 목을 왼손으로 잡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크기가 불과 볼링핀 만한 회색 아기 도깨비였다.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야?’

‘잠깐만요. 목 좀 놓아주세요.’

‘도망갈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

미준이 도깨비의 목을 놓아주자 순식간에 커지면서 어린아이 크기로 모습을 바꾸었다.

‘아저씨 이름이 미준이지요?’

‘나를 알아?’

‘우리 깨비 세계에선 모르는 깨비가 없어요.’

‘그건 그렇고 너희들 왜 그래?’

‘지금 깨비 세계에 전쟁이 터졌어요.’

‘전쟁?’

아기 깨비는 미준에게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

지금 도깨비 세계엔 두 개의 계파로 분열되어 치열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였다. 하나는 성정이 착하고 해학적이며 개구쟁이처럼 장난은 치지만 우주 자연의 룰에 따라 다른 세계를 침범하지 않고 평화를 추구하는 스릴러 계파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 자연계의 원리를 무시하고 다른 집단이나 인간 세상에 해를 끼치며 인간과 동물을 목숨을 뺏는 스킬러 계파가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까지 도깨비 세계는 바른 성정의 스릴러 출신 왕도깨비가 깨비 세계를 통제해 하면서 우주 자연계와 조화를 이루며 평화스럽게 통치해 왔지만, 늘어나고 있는 깨비의 수에 비해 도깨비감투가 점점 부족하여 이를 탈취하려는 나쁜 깨비의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결국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스릴러 계파 지도자가 그들에게 암살된 후 깨비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저씨. 우릴 좀 도와주세요.’

‘내가 어떻게?’

그냥 두면 인간들이나 동물들도 엄청난 피해를 볼 거예요.

‘그래도 인간이 깨비 세계의 일에 관여하면 안 되잖아.’

아기 깨비는 잠시 후 도깨비감투를 꺼내 주면서 스킬러 도깨비를 잡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게 도깨비 감투?’

‘저야 볼 수 있지만 같은 인간 들은 보지 못할 거예요.’

‘보세요. 저기.’

‘이마 가운데 검은 반점을 가진 깨비들은 모두 스킬러 들이에요.

‘인간이 너희들 세계에 관여하면 되겠어?’

‘아무리 착한 스릴러가 다스린다 해도 그 중에는 가끔 일탈을 저지르는 깨비가 있어요.’

‘하물며 만약 스킬러가 장악을 하면 인간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요. 사기와 약탈이 난무하고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며 악의 세력과 손을 잡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에요.’

‘알았다. 이마에 검은 점이 있는 도깨비들을 모두 잡아 달란 말이지.’

‘네. 그러면 점차 그들의 세력이 약화될 거예요.’

‘이 감투는 내가 가져도 되겠어?’

‘그렇게 하세요. 다시 구할 수 있을 거예요.’

‘고맙다. 깨비야.’

‘아저씨, 이 감투는 좋은 곳에만 사용해야 해요.’

그리고 미준은 아기 도깨비를 풀어주고 차 밖으로 나와 눈발이 몰아치는 도로 위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직도 눈발 속에서는 두 편으로 갈라진 도깨비 영령들이 뒤엉겨 있었다. 어떤 도깨비는 구름처럼 하얀 자루 모양이었고, 어떤 도깨비는 만화에서 본 것 첨 이마에 뿔이 돋아나 있었다. 호박 모양의 도깨비도 있고, 오이 모양의 도깨비가 있는가 하면 사대천왕처럼 험상궂게 생긴 놈도 많이 보였다.

미준은 손을 뻗어 검은 반점이 있는 도깨비를 잡기 시작했다.

“아저씨. 추운데 그기서 뭐해요?”

꼼짝을 못하고 있던 차에서 문이 열리며 아이 소리가 들려왔다.

“추워서 운동하고 있어.”

“차 기름 떨어졌어요?”

미준이 돌아보니 아직 그 차엔 엔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소리를 지르는 건 아직 유치원 아니면 초등 1학년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였다.

차 운전석에는 젊은 아줌마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미준은 다시 손을 허공으로 뻗으며 의도적으로 운동하는 자세로 바꾸어 가며 깨비를 잡기 시작했다. 그때 마다 미준의 손엔 다양한 보물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손안에 가득차면 호주머니에 넣어두고 다시 도깨비를 잡곤 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사대천왕 중에서 두 번째 천왕과 비슷하게 생긴 초대형 도깨비 한 마리가 미준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몰아치는 눈보라도 그놈의 앞길을 막지 못했다.

마치 성난 호랑이처럼 눈을 부릅뜨고 돌진해 온다.

순간 미준은 손을 뻗었다.

“죽어.”

그런데도 놈은 꼼짝도 하지 않고 점점 다가 왔다.

‘앗차!’

등산 스틱이라도 가졌어야 했는데 차에서 내리면서 미처 그것을 챙기지를 못했다. 놈이 갑자기 미준을 덮치면서 눈보라가 치는 도로 아래로 집어 던졌다.

‘으앗.’

정신을 차려보니 눈구덩이 속이었다.

‘큰일 날 뻔 했다.’

미준은 겨우 정신을 차려 엉금엉금 기어 도로 위로 기어올랐다.

그때였다.

스릴러 세력의 도깨비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대형 스킬러와 싸움이 붙었다.

이때 차 안에서 미준의 운동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 엄마가 갑자기 미준이 폭풍에 휘말려 길바닥 아래로 떨어지는 걸 보고 얼른 차에서 내렸다. 바람에 몸이 날아 갈 것 같았지만 사람이 날아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때 엉금엄금 기어오르는 미준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제 손 잡으세요.”

미준은 아주머니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자, 빨리 차로.”

미준은 바람을 등지며 날아가려는 아주머니를 안 듯이 하여 아이가 탄 차에 얼른 올라탔다.

“휴우,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혹시 등산 스틱이나 막대기 같은 것 없으세요?”

“트렁크에 우산이 있어요.”

미준은 얼른 차에서 내려 아주머니 차 트렁크를 열려다 자신의 차로 달려갔다. 스틱을 꺼내고 등산 가방을 단단하게 졸라매고 다시 뛰어 나왔다.

“죽어. 죽어.”

미준은 아예 목소리를 높여 스킬러 도깨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도 오른 손에는 스틱을 잡고 왼 손은 펴서 도깨비가 남긴 각종 물건들을 끌어 쥐었다. 그리곤 한번 씩 매고 있는 가방에 획득한 노획물을 집어넣었다.

‘저 아저씨가 왜 저러지?’

‘겨우 목숨을 살려 줬더니 또 나가서 지랄 발광을 하고 있어.’

아주머니는 미준을 보며 미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미준의 눈엔 조금 전에 싸웠던 대형 스킬러가 다시 돌진해 오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래 이 새끼. 이번엔 넌 죽었어.’

미준은 돌진하는 스킬러 도깨비를 향해 등산 스틱을 두 손으로 잡고 눈을 꽉 감고 자세를 낮추어 정면충돌하였다.

‘타탁 ­ 탁.’

미준의 몸이 조금 뒤로 밀리면서 등산 스틱이 놈의 배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두루루루­루.’

놈이 걸치고 있던 모든 장식들이 눈 위에 떨어지며 놈은 스르르 녹아 내렸다.

‘와.’

조금 전에 만난 아기 깨비와 그의 친구들이 박수를 치며 모여들었고 나머지 스킬러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 잡은 거야?’

‘이제 시작이에요. 오늘 싸움은 아저씨 덕분에 우리가 이겼어요.’

‘아저씨 고마워요. 그리고 또 봐요.’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미준은 눈 위에 떨어져 있는 도깨비 장식물을 배낭에 넣어 차로 돌아 왔다.

바람도 점점 자는 것 같다.

‘이것도 알고 보니 도깨비들의 장난이었구나.’

장난이라 하기보다는 그들의 싸움에서 빗어진 소용돌이 같았다.

눈발이 다시 함박눈으로 바뀌고 있었고 어느새 자동차 바퀴보다 더 쌓인 것 같다.

‘언제 이 길이 개통이 될까?’

주변의 차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조금 전 아이가 타고 있던 차 한대만 멀지 않게 산쪽으로 박힌 것처럼 서 있었다.

승용차 높이의 절반가량은 이미 눈에 묻혀 있었다.

미준은 간단하게 준비를 한 후 저녁밥을 먹었다.

이럴 땐 캠핑카가 최고인 것 같다. 항상 차 안에는 비상식량이 두둑하게 들어있고 난방에도 걱정이 없다.

‘그 아이는 뭘 좀 먹었을까?’

미준은 가방에 들어있던 과자와 물병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차를 두드렸다.

쌓인 눈 때문에 겨우 문을 열고 아주머니가 미준을 쳐다봤다. 얼굴을 보니 미친 사람이라 생각했는지 약간은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왜 그러세요?”

“바람은 좀 자는 것 같네요. 이따금씩 차문을 열어 눈을 밀어 주세요. 아니면 나중에 나오지를 못해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는 고마웠습니다. 간식거리라도 좀 있어요?”

역시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이것이라도 좀 드세요.”

미준은 가지고 온 과자와 물병을 넣어 주었다.

그제야 좀 안심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차에 돌아온 미준은 자신을 보고 겁을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잘생긴 것도 죈가?’

‘겁을 왜 내냐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이 한 짓이 겁을 내고도 남을 것 같았다.

이날 미준은 엄청난 양의 보물과 보석을 획득하였다.

무엇보다 기대가 되는 것은 도깨비 감투였다. 사람들의 눈에는 도깨비감투가 보일리도 없고 도깨비도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옛날부터 도깨비를 보았다는 구전이 있는 걸 보면 옛날에도 사람들 중에는 알게 모르게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이곳은 언제 쯤 제설차가 올까?’

눈이 계속 내리니 여기까지 오려면 아직은 좀 어려울 것이다.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때 미준의 눈앞에 다시 노란색 사각 안내판이 오르고 있었다.

[귀하의 스펙 7급. 순발력 21. 감별력 20. 투시력 18. 전투력 23. 조정력 7.]

‘음. 좀 올랐네.’

“탕탕탕.”

누군가 밖에서 미준이 찬 타를 두드리고 있었다.

“누구세요?”

“아저씨. 아저씨.”

문을 열고 내다보니 그 아이의 어머니였다.

“차에 기름이 떨어져 추워 죽을 지경이에요. 저희 좀 도와주세요.”

미준은 아주머니를 따라 그 차로 달려갔다. 아이는 이미 추위에 얼어 얼굴이 파랗고 기침을 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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