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 젊음의 로망(1)
* * *
“오늘 불빛 축제 어땠어?”
“정말 멋졌어요. 오늘 밤은 아마 잊지 못할 거예요?”
“요정은 언제부터 보이기 시작했어?”
“대학 2학년 때 MT가서 처음 봤어요?”
“다른 사람이 뭐라고 안 해?”
“꿈 깨라고 했어요. 어떤 친구는 동심이 살아있다고 하고.”
미준은 영미의 말을 이해했다.
“그 후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사실 미준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아예 미친놈으로 오해를 받았다.
그기에 비해 영미는 슬기롭게 잘 넘긴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요정들의 행동이 좀 이상해요.”
“어떤 의미로?”
“뭔가 불안해 보이고 자기들끼리도 충돌이 잦고.”
미준 역시 어렴풋이 뭔가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너 피곤 할테니 일찍 쉬어.”
“내일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넌?”
“전 아저씨 하는 대로 할 거예요.”
“돌아가지 않고?”
“제가 직장이 있어요.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아저씨와 함께 여행이나 다니다 내러 갈게요.”
“난 내일 포항으로 갈 건데?”
“그럼 같이 가요.”
미준은 소맥 한잔을 더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게요?”
“차 안에서 자지 뭐.”
“여기서 자요. 침대가 둘인데.”
“그래도.”
미준은 그녀를 남겨두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같이 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자신도 장담을 못할 것 같았다.
추리닝으로 옷을 갈아입고 호텔 밖으로 나와 호수 옆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거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겨우 한쪽 구석 빈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뭘 드릴까요?”
“소주 한 병. 그리고 안주는 뭐 있어요?”
종업원 아가씨가 메뉴판을 가리킨다.
“낚지복음 하나.”
미준은 자작으로 술잔을 채워 천천히 잔을 비웠다.
소주 두 잔을 마시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영미였다.
“아저씨.”
“왜 안자고?”
“아저씨. 어딨어요?”
“어디는? 차안이지. 잘 자고 내일 봐.”
“아저씨, 지금 지하 주차장이에요. 아저씨 차에 왔단 말이에요. 지금 어디 있어요?”
“응. 가게에 뭘 좀 사려고 금방 나왔어.”
미준은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 마세요. 차 앞에서 30분은 더 기다렸어요? 무서워 죽겠어요.”
“올라 가서 자.”
“으으응.”
“....?”
“저도 지금 갈게요. 어디에요?”
하는 수 없이 미준은 영미에게 자기가 있는 곳을 가리켜 주고 가게 앞에서 기다렸다.
5분이 채 안됐는데 영미가 나타나 미준의 등을 막 때렸다.
“아저씨. 너무해요.”
“왜, 잠이 안와?”
“아저씨 혼자 차에서 잔다는데 내가 어떻게 호텔에서 자요.”
“.....?”
“아저씨 나빠요.”
“왜?”
“제가 얼마나 아저씨 생각했는지 알아요?”
“우리 그때 처음 만났잖아?”
“그게 뭐 중요해요. 한번 밖에 못 봐도 좋으면 좋은 거지.”
영미는 소주 한잔을 한꺼번에 다 마셔버렸다.
어느 듯 영미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미안해. 내 생각만 해서.”
“제가 혼자 여기까지 왔을 때는 그냥 왔겠어요? 제 맘을 그렇게도 모르겠어요?”
“미안.”
미준도 잔을 채워 한잔을 마시고 영미의 잔을 채워 주었다.
영미는 연거푸 술을 마셨다.
몇 병을 비우고서야 미준은 영미를 부축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아저씨. 사랑해요.”
‘시발 사랑하면 뭐해.’
숙소로 돌아오면서 술에 취한 영미는 몇 번이고 사랑을 되뇌이고 있었다.
침대에 눕혀주자 실신을 한 것처럼 눈을 감고 누워있다.
"우욱."
갑자기 구토가 나오는지 황급하게 욕실로 들어간다.
미준이 얼른 따라가 부축하려 하자 끝내 문을 잠그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잠시 후에 양치를 하는 소리도 들리고 샤워를 하는 듯 물소리가 들리더니 한참 후에야 문을 열고 나왔다.
얼굴이 창백하고 입술엔 핏기가 전혀 없었다.
미준은 다시 자리에 눕혀 상의를 벗겨주고 베개를 찾아 베어준 뒤 이불을 다독여 덮어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샤워를 한 후 추리닝을 챙겨 입고 침대에 올랐다.
건너편에 누워있는 영미의 얼굴은 무척 힘이 들어 보였다.
면접을 보러 왔다는 영미에게 입사 시험에 대해서 한 마디도 묻지 않고 엉뚱한 말만 늘어놓았던 자신이 참 한심스러웠다.
‘미안해 영미야.’
미준은 오랫동안 영미의 얼굴을 지켜보다 수면등만 남겨둔 채 방에 불을 껐다.
그리고는자리에 누웠더니 방안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
이제야 자신도 주량 못지않게 술을 마셨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누워있는 침대가 물 위에 뜬 배처럼 일렁일렁 거리는 것 같았다.
영미가 많이 취해 자신이 취한 걸 느끼지 못했는지 자리에 누워서야 실감이 난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아저씨.”
자세히 보니 영미였다.
언제 일어났는지 자신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왜 더 자지않고?"
영미는 고개를 숙여 미준의 입에 입맞춤을 한다.
미준은 눈을 감고 그녀의 입술을 촉감으로 느끼며 그녀의 머리를 지긋이 당겼다.
온몸이 짜릿하고 말초 신경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영미야.”
미준은 팔을 뻗어 자신의 가슴으로 그녀를 끌어 당겼다.
그녀의 몸이 가볍게 끌려오며 자신의 가슴에 안기듯이 따라온다.
그녀의 허리를 두 팔로 껴안고 지긋이 당겼다.
“우리 그거 해요.”
눈을 번쩍 떳다.
'시발.'
꿈이었다.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안고 있었다.
무척 아쉬웠다.
이불을 펴서 다시 덮은 뒤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니.’
언제 일어났는지 영미는 자신의 침대에서 등을 기대고 미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홍빛 수면등이 켜진 호텔방에서 눈이 마주친 영미는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제 일어났어?”
“조금 전.”
“좀 잤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술 너무 많이 먹었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
“더 잘 거야?”
미준은 갈증을 느끼고 침대에서 내러와 냉장고에 들어있는 컨디션 한병을 꺼내 주고 자신도 마신 후 다시 침대로 올라갔다.
“조금 더 자. 날이 새려면 아직 멀었어.”
영미는 아무 말도 않고 그대로 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왜?”
"아뇨."
그제야 영미는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또 한참의 시간이 흘러간 것 같다.
“아저씨, 자?”
“아니.”
부스럭 소리가 들리더니 미준의 침대로 건너와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그의 팔을 당겨 베개로 삼고 미준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아저씨. 제가 이상하게 보이죠?”
“무슨 뜻이야?”
“제 몸 간수도 못하고 함부로 굴리는 아이로 보이죠?”
“.....?”
“알아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 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요.”
“무슨?”
“이제 두 번째로 아저씨 만나면서 한 방에서 잠을 자질 않나? 술을 먹고 주정을 하지 않나? 그런 생각 하시는 거 너무나 당연해요.”
천정만 보고 누워있던 미준은 그녀가 지금 울고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
“변명 같지만 그런 아이는 아니에요. 제가 아저씨를 너무 너무 좋아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알아.”
미준은 팔을 뻗어 영미의 허리를 당겨 꼭 붙이고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하였다.
“아닌 것 알아. 나 그렇게 생각 안해.”
미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꼭 안아준 뒤에 그녀의 침대에 눕혀 주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커튼을 열고 보문호를 바라보니 새벽 안개가 호수 가득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으면서 그녀의 얼굴이 많이 밝아보였다.
“아저씨. 제 꿈 꿨죠?”
머쓱해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이름을 두 번이나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깼어요.”
“응.”
“무슨 꿈을 꿨기에 저를 찾았어요?”
“그 얘긴 할 수 없어.”
미준은 웃음으로 넘겨 버렸다.
“우리 식사하고 첨성대 들렀다 포항으로 가자.”
“네.”
미준이 첨성대를 찍은 이유는 첨성대 주변엔 고분군이 많다.
혹시라도 건질 것이 있나 해서 가볼 생각이었다.
‘아침 이른 시간이니 사람들이 많이 없겠지?’
그러나 그 것은 착각이었다.
전국에서 몰린 사진작가들 뿐만 아니라 모든 관람객이 다 작가 같았다.
첨성대 주변에는 아름다운 핑크뮬리가 멋지게 피어 있었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인파가 몰려 발 디딜 틈도 없었고 주차할 곳이 마땅히 없었다.
분홍빛 솜사탕처럼 폭신한 느낌을 주는 환상적인 풍경.
핑크뮬리의 매력인 것 같다.
“아저씨, 너무 예뻐요.”
영미도 감탄이 절도 나오는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수시로 셀카를 찍고 미준의 옆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촬영을 부탁하곤 한다.
첨성대를 지나 서편으로 가자 몇 개의 고분이 나타났다.
미준이 찾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에도 없나?’
고분 일대를 둘러보며 자신이 찾는 대상물이 있을까 살펴보고 있었다.
결국 찾은 것이 까치다.
한 마리의 까치가 깍깍 울며 고분 위를 폴딱폴딱 뛰어다니고 있다.
인근 미류 나무에서도 또 다른 까치가 까키, 까키 하면서 이 가지, 저 가지를 날아다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뭔가 있을 것 같긴하네.’
남들의 눈에는 지극히도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모두가 무관심 했고 간혹 어떤 사람은 까치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미준의 눈에는 예사롭지 않았다.
버드나무 아래쪽에 고양이 영령이 이들을 지켜보며 웅크리고 앉아있다.
언제, 어느 때 까치를 덮칠지 예상이 안 되는 광경이었다.
미준은 다시 가볍게 손을 펴 고양이 영령을 빨듯이 잡아 당겼다.
그것으로 일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미준의 손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이상하네.’
미류 나무 아래로 성큼성큼 다가가서 고양이 영령이 있던 곳을 살펴 보았다.
‘아무 것도 없네.’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돌아서려는데 중년의 신사 한사람이 미준에게 다가왔다.
“이걸 찾으십니까?”
그의 손에는 두개의 금강석이 들려 있었다.
“아니?”
“프로군요?”
“....?”
“내가 조금 빨랐나 봅니다.”
그는 자신의 명함을 미준에게 주며 금강석 한 개를 같이 주었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의 명함에는 뉴 해양 우주보석 서영돈 부장이라 적혀있었다.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보석과 원석도 구입하고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리를 떠났다.
누가 봐도 멋진 중년 신사였다.
뉴 해양 우주 보석이 유명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때 미준의 앞에 다시 능력치를 알려주는 홀로그램이 떴다.
[귀하의 스펙 5급. 순발력 17. 감별력 17. 투시력 15. 전투력 18. 조정력 4]
수치는 약간 오른 것 같았으나 스펙은 5급 그대로였다.
“저 사람 누구세요?”
“프로 헌터인가 봐. 뉴 해양 우주보석 공장에 근무하고 있데.”
영미는 미준의 팔에 팔짱을 끼고 미준의 발걸음에 발을 맞춰가며 걷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한 쌍의 연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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