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 축제의 현장(4)
* * *
미준은 낚시 가방을 챙기려다 조금 전에 악령이 던진 돌을 발견하고 살펴보았다.
그 돌은 분명 보통 돌은 아닌 것 같았다.
우주에서 온 운석이 틀림없어 보였다.
기분이 다소 풀린 미준은 영미를 만날 기분에 마음이 들떠 콧노래를 부르며 경주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녀도 전에 아라와 함께 순천에서 만난 진주 처녀다.
아라는 성격이 밝고 명랑하면서 약간은 팔푼이 기질이 있는 반면, 영미는 그에 비해서 말이 적고 지적이며 침착한 성격이라 판단되었다.
미준은 그때 보았던 영미의 모습을 머리에 떠올리며 가슴이 설레었다.
‘이 아가씨가 경주까지 온다면?’
미준은 혼자 온갖 상상을 다해가며 설레는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흥얼거리며 다리는 가운데 모처럼 자신의 앞에 홀로그램 게시판이 떠오르고 있었다.
[귀하의 스펙 5급. 순발력 15. 감별력 15. 투시력 14. 전투력 16. 조정력 3.]
한참동안 머물다 사라졌다.
분명 이것은 자신의 능력치는 보여주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조정력이란?
‘이건 처음 보는 능력치가 아닌가?’
‘사냥을 할수록 나의 스펙이 상승하는 것.’
‘이건 게임이다.’
미준은 휴대폰을 꺼내 조정력이란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사전에 나오는 뜻은 ‘자기 몸과 타인의 몸을 제 마음대로 가눌 수 있는 능력’
‘그럼 마인드 컨트롤인가?’
어디에선가가 소셜 컨트롤이란 말은 정신 의학에서 읽은 적이 있다.
미준은 묘한 호기심이 발동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터미널에 도착 했을 땐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었다. 영미를 만나면 식사부터 해야겠다.
형산강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터미널에 올라가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산에서 오는 버스마다 지켜보고 있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기다리다 못해 휴대폰을 꺼내 영미에게 전화를 하려 찾고 있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다.
“아저씨.”
어떤 아가씨가 자신이 앉아있는 몇 미터에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누구?”
다른 사람을 부르는가 하였으나 분명 그 아가씨는 자신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저예요. 영미.”
“네가 영미?”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어딘가 영미가 맞는 것도 같았다.
“제가 변했어요?”
“맞네. 맞긴 맞는데.”
그때 본 영미와는 너무나 달라 보였다.
167이나 되는 날씬한 몸매에 코트를 입은 후리후리한 키.
하얀 피부에 긴 머리카락.
그기에다 기 높이 하이힐.
처음 볼 때 와는 너무나 달라 보였다.
“제가 많이 예뻐졌죠?”
“설마 성형 수술한 건 아니지?”
“아저씨도 참. 오늘 면접 보고 왔어요. 용모에 신경 좀 썼어요.”
“그렇구나. 처음 볼 때도 미인이었지만 다시 보니 더 예쁘네.”
“그럼 모처럼 만났는데 포옹이라도 해야하는 거 아니에요?”
“야.”
미준은 영미의 캐리어를 받아 터미널에서 나와 강변 주차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바람을 받아 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묘하게도 잘 어울렸다.
한 번씩 힐끔 힐끔 영미를 처다 보면서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좀처럼 느끼지 못한 야릇한 감정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우리 저녁부터 먹고 가자.”
미준의 차에 오른 영미는 킁킁 냄새를 맡아보더니
“여기 다른 아가씨가 탔어요?”
“아가씨야 여럿 탔지.”
미준은 여성들의 예민함에 속으론 좀 놀랐었다.
“여기서 잠도 잤어요?”
이정도 되면 정면 돌파가 좋을 것 같았다.
“야?”
“아니, 여자요.”
“그럼 캠핑카 안인데 여기서 자지 어디서 자?”
“음.”
영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묘한 신음소리만 내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잠시 후 차는 인근 정횟집 주차장에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 뭐 먹을까?”
자리에 앉으면서 미준은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있는 영미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저씨가 알아서 주문하세요.”
코트를 벗은 영미는 상의는 얇은 힌색 티를 입고 있었고 하의는 짧은 미니스커트에 살색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날씬한 그녀의 다리 곡선과 볼록한 가슴 라인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처다 보자 영미는 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수건을 펴 자신의 허벅지를 가리고 자리에 앉았다.
그때 종업원이 물병을 들고 와서 식탁위에 비닐 보자기를 깔아주며 메뉴판을 내어 주었다.
“우럭, 가자미회 중자 하나. 나중에 밥을 먹을 테니 매운탕도 하나.”
종업원은 주문 카드에 메모한 뒤 종종 걸음으로 자리를 떴고 잠시 후에 기본 반찬과 메추리알, 골뱅이, 멍게, 부추전 등을 가지고 나와 올려 주었다.
“아저씨, 엉큼해.”
미준은 자신도 모르게 자꾸 영미의 가슴과 허벅지 쪽에 눈이 가자 시선을 둘 곳이 없어 천장을 처다 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를 보고 영미가 무안하게 엉뚱한 말을 하였다.
“내가?”
“아저씨 눈실이 엉큼하잖아요?”
“야 씨.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볼 곳이 없잖아?”
“제가 볼게 없다고요?”
“아니. 볼 곳이 없다고.”
영미는 키득키득 웃었다.
“면접하면 꼭 옷을 그렇게 입어야 해?”
“제 옷이 어때서요.”
생각해 보니 전혀 옷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네.”
미준은 자신의 옷을 보니 캠핑을 다니는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 없고 영미의 복장은 몇일 전 만났던 백화점에 근무하는 진주의 옷과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유별나게 섹시해 보이고 가슴이 뛰는 것도 이상하였다.
식사를 한 후 그들은 보문단지로 출발하였다.
보문 단지 일원에서 하는 불빛 축제를 둘러 볼 생각이었다.
일찍 출발했으나 차는 이미 막혀 꼼짝을 하지 않았고 기다리다 못한 미준은 알천을 건너 북쪽 강변로를 따라 올라갔다.
그쪽은 그래도 남쪽 강변로 보다는 한결 차가 잘 빠지고 있었다.
문제는 주차였다.
보문단지 전체가 주차장화 되어 있어 도저히 이대로는 주차할 곳을 찾지 못했다.
‘모르겠다.’
호텔이 보이기에 일단 호텔안으로 차를 몰았다.
미준의 생각은 적중했다.
얼른 호텔방을 예약해 두고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후 영미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저씨 우리 오늘 두 번째 만나는 것 알아요?”
“그걸 왜 몰라.”
“그런데 왜 두 번째 같지 않아요?”
자신도 그 점이 이상했다.
자신은 본래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못하고 사교성도 없어 사람을 사귀기가 무척 어려운데 최근에 와서부터 자신감이 생기고 활기를 찾으면서 이런 것들이 저절로 모두 해결된 것 같았다.
“몰라, 널 보니 오래전부터 아는 사람 같아.”
“아저씨, 우리 사귈래요?”
“응?”
미준은 잠깐 망설였다.
“약속한 사람 있어요?”
미준의 머릿속엔 은혜의 얼굴이 잠깐 떠올랐다.
“사귀는 사람 있나보죠?”
‘가스나. 꼭 이 시점에서 그런 걸 왜 물어.’
“응.”
“....?”
영미를 데리고 물레방아가 설치된 공원길을 돌아 불빛 축제의 장 밀레니엄 파크로 천천히 걸었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부딪힐 정도로 인파가 뒤끓자 영미는 결국 미준의 팔을 잡았다.
“불편해서 팔을 좀 잡아야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마주 오는 사람들이 두 사람 사이로 자꾸 지나가 붙었다 떨어졌다 걸음을 걷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불빛이 들어오면서 보문단지 전체가 불꽃 단지로 변했다.
곳곳의 나무에도 작은 불빛으로 수를 놓았고 건물이며 가게며 크리스마스트리를 비롯하여 간판한 하나에도 전등이 설치되어 반짝이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다.
대형 불탑에도.
신라 구층탑 목조 조형물에도.
하늘은 온통 별빛처럼 빛이 났고 빛의 터널에도 사람들이 들끓었다.
영미는 점점 미준에게 밀착하더니 더디어 미중의 팔에 팔짱을 꼈다.
그녀의 가슴이 팔꿈치에 부딪히며 그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그 순간 하늘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축제를 알리는 본격적인 불꽃 놀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영미를 미준의 팔을 당기며 자리에 멈춰 섰다.
“야!”
곳곳에서 탄성이 폭발했고 영미의 눈에도 불꽃이 튀었다.
너무나 아름다워 모든 생각을 잠들게 했다.
꽃비가 내리면서 불꽃놀이가 막을 내릴 쯤 영미는 밀레니엄 파크 울타리에 설치된 석등을 가리키며 미준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저씨, 저것 보이세요?”
미준이 돌아보니 석등 위에 부엉이 요정이 앉아 있었다.
“너도 저것 보여?”
영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잡을 수도 있어?”
“아니에요. 전 잡을 수는 없어요.”
“주로 뭐가 보여?”
“가끔 요정들이 보여요.”
“음, 그래서 그때 내게 여러 가지를 물어 봤구나.”
영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준의 가슴에 머리를 기우려 볼을 비볐다.
“그런데 제 말을 누구하나 믿어주질 않았어요.”
“그랬겠지.”
“그래서 전 아저씨가 좋아요. 아저씨는 제 말을 믿어 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꼭 만나보고 싶었어요.”
미준은 영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며 공감을 나타내 주었다.
그때였다.
어디서 날아 왔는지 박쥐 악령 몇몇 마리가 부엉이 요정을 공격하고 있었다.
공격을 받은 부엉이 요정이 몸을 비틀거리며 날개를 퍼덕였다.
“저 것도 보여?”
“또 뭣이 있어요?
영미는 박쥐 악령들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미준은 손바닥을 펴 박쥐를 향해 팔을 쭉 뻗었다.
‘스르륵.’
박쥐 영령들은 물방울로 변해 이슬처럼 떨어져 내렸고 미준의 손엔 검은 흑진주 몇 개가 들려 있었다.
“이것 봐.”
미준의 손엔 영롱한 검은 진주알 네 개가 들어 있었다.
“예뻐요. 그리고 신기해요.”
영미는 진주알을 쥐고 살펴보고 있었다.
“마음에 들면 너 하나 가져.”
“제가요?”
“안되겠어. 나중에 가공해서 줄께.”
미준은 호주머니에 흑진주를 넣어두고 영미와 함께 불빛 터널과 기념탑 등을 돌아본 후 쌀쌀한 밤기운에 영미가 추울 것 같았다.
“춥지?”
“약간. 그래도 괜찮아요.”
“네 옷이 추울 것 같아.”
미준은 천천히 발을 옮겨 놓으며 보문 호숫가로 이동하였다.
호수 주변 산책로엔 사람의 인파가 끝없이 몰려 다녔다.
봄이면 벚꽃이 필 벚나무에도 빠짐없이 야간 조명이 켜져 있었고 시시각각 조명불빛이 색을 달리하며 관람객의 시선을 빼앗고 있었다.
미준은 상의 점프를 벗어 영미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영미는 이제 한 팔을 뻗어 미준의 허리 뒤로 팔을 돌려 미준의 등산복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미준도 좀 불편한 자세를 고치기 위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그리고는 당겨 안았다.
“따뜻해요. 아저씨.”
“발 아프지?”
하이힐을 신은 영미가 걸음을 걷다 발이 꼬여 약간 비틀거리자 미준은 영미에게 물었다.
“약간.”
“그럼 호텔로 가자.”
그들은 방향을 바꿔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올라가며 영미는 편의점에 가서 몇 가지 간식거리를 사고 있을 때 미준은 차에서 가방을 꺼내려다 다시 넣어두고 영미의 캐리어만 끌고 숙소로 올라왔다.
“똑똑.”
영미였다.
영미는 사들고 온 것을 탁자위에 올려두고 캐리어를 열어 옷을 꺼내 욕실로 들어가더니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다.
“우리 한잔해요.”
“그럴까?”
저녁을 먹을 때 한잔 생각이 있었으나 운전 때문에 하질 못하다가 이제 술 생각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술을 한잔 해야만 오늘 밤을 푹 잘 수 있을 것도 같다.
영미는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와 소주를 깨내 놓고 안주 거리도 같이 내어 놓았다.
“위하여.”
잔을 부딪치며 맥주 한 컵씩을 원샷 한 후 이번엔 소주를 채웠다.
“차라리 소맥으로 하자.”
미준의 말에 영미는 소주를 부은 잔에 맥주를 채웠다. 종이컵에 부은 소맥 잔은 금방 거품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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