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 축제의 현장(1)
* * *
“좀 더 자야 하잖아?”
“오빠 졸리면 들어가 주무세요.”
미준은 그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너 다리 이쪽으로 올려.”
미준은 은혜의 한쪽 종아리에 맛사지를 한 후 무릎에서 발목까지 문질러 주고 발가락도 하나하나 만져 주었다.
“저쪽 다리.”
역시 꼭 같은 방법으로 종아리를 만져주자 처음에는 좀 쑥스러워 하더니 나중에는 시원하다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 난 미준은 은근슬쩍 장난기가 발동하여 은혜의 허벅지로 손을 밀고 올라가자 은혜는 간지럽다며 후다닥 다리를 내리며 미준의 손을 잡았다.
“허벅지도 아플 텐데?”
“엉큼해.”
미준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은혜를 덥석 안아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방바닥에 눕혀준 뒤 이불을 덮어주고는 허리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흐흡.”
장난기가 발동한 미준은 한술 더 떠서 아예 체중을 은혜를 몸에 실어 그녀를 눌렀다.
“아야.”
그리고는 한 손으로 이불 위를 더듬어 그녀의 허벅지를 꾹 쥐었다.
“아야.”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다음 날 아침은 늦게 일어났다. 다행히 은혜는 몸살 기운은 많이 나아졌으나 근육통은 아직 남아 있었다.
우럭탕으로 아침을 먹은 다음 다시 약을 먹인 후 덕포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잠시 낚시를 했지만 소득은 없었고 결국 소문난 멍게 비빔밥을 먹고 귀가 길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한통의 전화가 왔다.
순천에서 만났던 조아라였다.
“아라씨, 무슨 일로?”
“내일 저녁 시간 있어요?”
“중산에 온 거야?”
“내일 내러 가려구요. 볼 일도 있고 친구도 만나고.”
“응.”
“가는 김에 아저씨도 좀 만나보고 오려구요.”
듣고 있던 은혜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라가 누구예요?”
“응, 진주 아가씨. 내일 오후에 중산으로 온데. 저녁엔 친구도 만나고.”
“중산에 친구가 있어요?”
은혜는 좀 마음이 쓰이는지 꼬치꼬치 물었다.
“친구가 뉴 해양 보석백화점에 근무 하나봐. 겸사겸사 해서 좀 만나자네.”
“네.”
중산에 도착 했을 땐 저녁 무렵이었다.
미준은 저녁을 먹고 헤어지자며 은혜를 데리고 대방어 전문 횟집으로 들어갔다.
“너 방어회 처음 먹지?”
“네.”
“오늘 한번 먹어봐.”
미준은 은혜가 방으로 들어가자 화장실에 간다며 밖으로 나와 어머니께 전화를 하였다.
“어머니. 여기 중산 대방어 전문 횟집”
“그래?”
“빨리 오세요. 저녁 같이 먹어요.”
미준은 은혜와 저녁을 먹으며 어머니를 불러내었다.
은혜는 처음 어머니가 소개팅을 주선해서 만나게 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만나고 보니 초등 후배였지만.
얼마 후 어머니는 횟집에 도착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은혜는 갑자기 미준의 어머니가 방에 들어서니 깜짝 놀랐다.
“정은혜입니다.”
“아가씨가 정은혜?”
“어머니도 은혜 모르세요?”
“나도 처음 만났지. 그렇지 않아도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너희들 복장 보니 어디 다녀오는 길인가 봐.”
“네, 은혜랑 거제 낚시 다녀왔어요.”
“낚시?”
낚시 이야기가 나오자 어머니는 눈을 크게 뜨고 급 호기심을 가지셨다.
“낚시 좋지. 나도 한때 낚시 좀 했거든.”
“어머니가 낚시를 하셨다고요?”
“그럼, 물론 처녀 때긴 하지만.”
“어머니, 저도 낚시 잘해요.”
“그래?”
미준의 어머니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은혜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자식이 너무 외로워 보여 친구의 말만 듣고 미준에게 소개시켰지만 정말 자신도 은혜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음, 인물은 나무랄 데가 없구나.’
“부모님은 뭘 하신다고 했지?”
“아버지는 회사에 다니시고 어머니는 주부에요.”
“형제자매는?”
“남동생 하나 있어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님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내 얘기?”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응. 내가 일하면서 만난 친구지.”
잠시 후 엄청 큰 쟁반에 도톰하게 썰은 대방어 회가 판위에 올려 졌고 횟집 사장은 쟁반에 담긴 대방어 회를 부위별로 설명해 주었다.
대방어는 지금이 제철이라 했다.
고기에 적당하게 기름기가 차서 요즘 먹는 대방어가 가장 맛이 좋다고도 하였다. 소금을 친 참기름 소스와 초장, 와사비 간장 등이 함께 나왔다.
식감도 좋고 고소하여 제철 방어 맛은 일품이었다.
“어머니 많이 드세요.”
어머니도 곧잘 회를 드시고 은혜도 매우 잘 먹었다.
은혜 못지않게 어머니도 방어회를 좋아하셨고, 회를 드시면서 맛있는 듯 이상한 찹찹 소리를 내며 드시는 것이 미세하게 다른 사람에게도 들려 남의 입맛도 돋우는 것 같았다.
“어머니, 참 맛있게 드시네요.”
“응, 너도 많이 먹어. 나도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
미준이 생각에도 어머니가 방어회를 매우 좋아하신다는 걸 알 것 같았다.
“어머니 한잔 하실래요?”
“좋지. 원래 회를 먹을 땐 소주가 제격이지.”
“우와! 우리 엄마 술맛 아시네.”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시는데 양 볼에 보조개가 생기는 것 같다. 이런 모습은 아직 한번도 보지 못했다.
식사를 한 후 은혜를 내려주고 어머니의 요청으로 어머니 댁에 잠시 들렀다.
“은혜, 마음에 들어?”
“네, 알고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아이였어요.”
“그래?”
미준은 어머니께 은혜와 있었던 지난 일들을 간단하게 설명해 드렸다. 주로 초등 시절 있었던 이야기 들이었다.
“고마운 아이구나.”
“네.”
“넌 아가씨들 조심해야 한다.”
“무슨 말씀을?”
“넌 너 아버지를 너무 많이 닮았어. 인물이 남달라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지. 많은 여자들이 네 주변을 맴돌 거야.”
“에이, 어머니. 안 그래요. 누가 나를.”
“그렇지 않아. 항상 조심하라고.”
“아버진 어땠어요.”
“특히 여자들에게 확실하게 선을 그었지. 친절하면서도 자기 절제가 엄했어. 그래서 나도 네 아버지를 좋아했었고.”
“정말 아버진 돌아가신 거 맞아요?”
미준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확실한 대답이 아니란 걸 미준은 이미 알고 있었다. 더 물으면 어머니 상처가 커질까봐 더는 묻지 않았다.
‘언젠가는 말씀해 주시겠지.’
‘미안하다. 미준아. 언젠가는 네게 이야기를 할 날이 분명 오겠지.’
“이사한 집은 좀 지내기가 좋아?”
“네, 아무래도 방이 세 개나 되니.”
“다행이다. 항상 조심, 조심하는 걸 잊지 마라.”
“네. 걱정 마세요.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그땐 제가 어머니 모실게요.”
“말이라도 고맙구나. 내 걱정은 하지 마라.”
미준은 진심으로 어머니께 자식의 도리를 다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자식 하나 만 믿고 쓰러져 가는 농가에서 남의 일을 해줘가며 자식을 위해 헌신해 오신 어머니의 희생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자신은 문제아로 낙인 찍혀 제 몸 하나 간수도 못하고 속을 썩인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후 어머니는 공사장 인부로, 조선소 페인트 공으로, 철판 녹 제거 공으로 안하신 것이 없고 식당 도우미, 목욕탕 때밀이, 선창가 물고기 장만하기, 요즘은 마트에서 일하고 계신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미준에게 신세타령을 한 적이 없으셨다.
“미준의 어머니는 학력이 없다. 어떻게 된 건지 초등학교도 안 나오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마땅한 곳에 취업도 못하고 노동일만 매달려 오셨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머리 회전이 빠르시고 모르는 것도 별로 없다.
그래서 모두 좋은 학교로 보내려고 한다. 학력이 실력을 앞서다 보니 어머니 같은 세대가 생겨난 것 같다.
미준은 집에 돌아와서 왜 어머니가 아버지 이야기를 끝까지 하지 않으시는지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을 낳은 뒤 헤어진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 자신의 성이 어머니와 같은 천씨가 아닌가?
‘무엇 때문에 아버지와 헤어진 것일까?’
‘아버진 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런 생각이 날 때면 괜히 잠을 설친다.
은혜와 지냈던 2박 3일을 되짚어 보았다.
그녀는 참 좋은 처녀 같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따랐고 자신의 편에서서 믿어준 사람.
그때 은혜에게 문자가 들어왔다.
“오빠. 여행 즐거웠어.”
“그래, 몸은 좀 어때?”
“자고 나면 괜찮겠지?”
“응. 잘자.”
미준은 배란다로 나가 공원 풍경을 살펴보았다.
불빛 축제를 한다더니 공원 산책길로 야간 조명이 엄청 들어와서 아름답게 꾸며 두었다. 거제에 가기 전만 해도 이런 조명은 볼 수가 없었었다.
그사이에 설치를 한 것은 아닐 테고 축제 기간에 맞춰서 불을 켠 것 같다.
미준은 다시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울타리를 넘어 공원에 들어서니 산책길 따라 조명 터널이 쭉 깔려 있었다. 종각 앞 조그만 분수대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조명을 받아 더 아름다운 것 같고, 모두 다 행복한 것 같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볼 예정이었다.
호수 주변으로 가면 더욱 예쁘게 장식되어 있겠지만 조금은 아껴두고 나중에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었다.
미준은 휴대폰을 꺼내 야간 조명이 들어온 분수대 주변을 셀카로 찍어 은혜에게 카톡으로 날려 주었다.
“예쁘네요. 공원?”
“우리집 앞쪽공원.”
“그럼 지금 공원?”
“응, 바람 쐬러 나왔지.”
“갈까?”
“건강 요 주의.”
“다음에 같이 가요.”
“응. 잘자.”
이제 미준은 이렇게 문자를 보낼 수 있는 곳이 있어 이것도 행복했다.
이슥하도록 공원에 앉아 있다. 집으로 돌아 왔다. 문을 막 열고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누가 불렀다.
“안녕하세요.”
“맞은 편 빌라에 살고 있는 그 아가씨였다.”
“어디 갔다 오세요?”
미준은 그 아가씨를 보니 자신과 비슷하게 추리닝에다 점퍼를 걸친 포음이 공원에 갔다 오는 모양이었다.
“불빛 축제라 구경 갔다 와요?”
“아저씨도 그래요?”
“네.”
“혼자요?”
“네.”
“그럼 같이 갈 걸.”
미준은 그녀의 말에 미소를 짓고 돌아 섰다.
“전 한소희예요.”
“예, 천미준입니다.”
갑자기 그 아가씨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우리 친구해요.”
미준은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손을 내 밀었다. 밖에서 들어 온 사람 같지 않게 손이 따뜻하였다.
“지금 한잔 하실래요?”
무척 당돌한 아가씨 같았다.
미준이 망설이자.
“지금 우리 집에 아무도 없거든요. 이런 날 혼자 보내려면 좀 그렇잖아요.”
미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혼자 살아요?”
“네.”
“그럼 아저씨 집 구경 좀 해봐요.”
미준이 엉거주춤 대답이 없자 초점을 바꾸어 집 구경을 하자며 넋두리를 하였다. 미준이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미준을 따라 들어왔다.
거실로 들어선 소희는 이곳저곳을 거리낌 없이 열어보면서 등산 장비와 낚시 장비들이 들어있는 방문을 열어 보았다.
“산에도 가시네요.”
“네, 가끔.”
“낚시도 하시고 좋은 취미 가지셨네요.”
“언제 한번 같이 가요. 산에 갈 때나 낚시를 갈 때.”
“.....?”
“이 방에는 뭐가 있어요?”
“그곳은 비밀 창고.”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 보더니 잠깐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에 신발을 끼워둔 채 자기집으로 가서 맥주 캔과 안주거리를 들고 돌아왔다.
결국 그녀는 한잔 하자고 하더니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미준의 반응이 별로라 여겼는지 미준의 휴대폰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입력하여 통화를 시도하여 번호를 알아두고는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돌아갔다.
자기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뉴 해양 아쿠아리움에 근무하고 있다고 하였다. 직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