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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미친 총각-171화 (171/225)

〈 171화 〉 거제의 명물(1)

* * *

쌍홍문에서 약 15분 쯤 더 걸어가니 보리암이 나타났다.

가는 길이 너무나 아름다워 은혜는 연이어 탄성을 질렀고 보리암에 들렀을 땐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은모래 빛 상주 해수욕장이 저 멀리 내려다보이며 너무나 아름다웠다.

차를 이용하면 금방 올라 왔을 텐데 그만큼 성취감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미준은 은혜와 함께하는 산행이라 더욱 등산로를 택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한 수확도 얻지 않았던가.

역시 힘들이지 않고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은혜는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하며 이마에 흐른 땀을 식히고 있었다.

“어때?”

“너무 좋아요.”

그리고 미진은 입석 해수관음상 앞에 서서 미준을 팔을 당겼다.

“기도해요.”

미준은 카메라를 들고 은혜의 기도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은 후 자신도 옆에 서서 기도를 하였다.

그녀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 보는 사람이 없으면 덥석 안고 뽀뽀라도 하고 싶었다.

망두까지 갔다 내려올 때는 시간이 불과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내가 계산을 잘못하였나?”

주차장에 도착 했을 땐 은혜는 거의 지쳐 있었다.

오늘은 더는 행군을 못할 것 같았다.

창선교를 지나 구도가 보이는 창선 부윤리 선착장에 차를 세웠다. 벌써 해가지고 어슴푸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미준은 얼른 차를 세워두고 낚싯대를 펼쳐 고기를 잡을 생각을 하였다.

내일 먹을 반찬거리라도 좀 건져볼 생각이었다. 선창에 선채 채비를 하여 낚싯대를 막 던져 넣으려 할 쯤 차 안에서 은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식사하세요.”

캠핑카 선반을 눕혀 대체한 식탁 위에 은혜가 준비해온 찬합 도시락이 푸짐하게 놓여있었다. 밥은 밥대로 별도 담아 왔었고 국은 국대로 반찬은 반찬대로 준비를 해 왔다.

“뭘 이렇게 많이.”

“먹어 보세요.”

찬합 뚜껑을 열 때마다 다양한 반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음, 맛있어.”

미준의 표정을 보자 그제야 은혜도 마음이 놓이는지 미소를 지었다.

“이것도 좀 먹어보세요.”

“이건 더덕 짱아치.”

미준은 식사를 하면서 진심으로 은혜에게 고마워하였다. 이렇게 준비를 하려면 무척 많은 신경을 쓴 것이 틀림없었다.

맛도 맛이지만 이렇게 많이 준비를 하려면 얼마나 고심을 많이 했겠는가?

정성 하나만으로도 감격할 것 같았다. 그기다 맛까지 좋다.

“밥은 뭐래도 집 밥이 최고지.”

사실 미준은 이런 식사를 해본 것이 오래된 것 같다. 간혹 은혜는 미준의 숟가락에 반찬들을 골라 얹어주기도 하였다.

“아, 행복해.”

이것은 미준의 진심이었다.

국은 잠깐 렌지로 데워 올린 재첩국이었다. 단백하면서도 시원한 것이 마른 반찬이 주가 된 도시락 밥맛을 묘하게도 높여 주었다.

“반찬은 남겨 내일 아침에 먹자.”

“네.”

은혜는 꼭 신혼 주부처럼 하나하나 챙겨주며 미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식사를 한 후 다시 미준은 낚시를 하였다. 야광찌로 교체하여 지렁이를 달아 던져두었다. 의자를 내려 바다를 향해 나란히 앉았다.

“너도 낚시 해 볼래?”

은혜는 고개를 저었다.

낚시가 그리 잘 되지는 않았다.

노래미를 비롯하여 보리멸 몇 마리를 낚아 올렸고 손바닥 크기의 광어 새끼도 잡아 올렸다.

시간이 점점 흘러 밤은 이슥해져 갔다.

“오빠, 소주 하실래요?”

“너도 할래?”

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차에 들어가 싱크대 문 열어봐. 초장과 쌈장 있을 거야.”

미준은 비상 나이프로 잡은 고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접이식 탁자를 들고 나와 낚시를 하는 바로 옆에 놓고 두 사람의 의자를 마주보게 하였다.

은혜는 종이컵과 젓가락, 저녁에 먹다 남은 반찬까지 챙겨 나왔다.

“오밤행.”

미준은 아무 생각 없이 얼마 전에 진주 아가씨들에게 들었던 말을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하였다.

“오밤행?”

“오늘 밤 행복을 위하여.”

“은혜는 미준의 말을 듣자 입에 손을 가리고 킥킥 웃었다.

미준은 순간 ‘앗차’ 하였으나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지 않는가?

“누가 그러더라고, 웃기려고.”

미준은 대충 얼버무렸다.

파도는 잔잔하게 선창에 부딪쳤다 다시 밀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몇잔 술을 마시고 난 은혜는 하늘을 처다 보며 넋두리를 하였다.

“오늘 밤 참 별이 많아요.”

미준은 덩달아 하늘을 처다 보았으나 뜨문뜨문 흘러가는 구름 사이에서 별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네 마음에 별인가 보다.”

“.....?”

은혜는 좀 무안하지 자리에서 일어나 선창가에 서서 던져둔 찌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준은 은혜를 보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은혜야?”

“네?”

“지금 이곳이 우리의 낙원이고 이 순간이 행복인 것 같다.”

은혜는 미준의 말을 이해하는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미준은 최근에 와서 행복이란 생각이 순간순간 느껴졌다.

늘 자신에게 꼬리처럼 따라 붙어 다니던 불행이란 단어가 순간순간 행복으로 바뀌자 불안한 생각도 가끔 들었다.

‘이 것이 진짜 자신이 누려도 되는 것인가?’

잠시 후 미준에게 묘한 잔영이 눈에 띄었다.

토끼 요정 하나가 작은 바구니를 들고는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며 가로등 불빛을 따라 선창가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 뒤에 도둑고양이 정령이 풀숲 뒤에서 토끼를 노려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살쾡이의 두 눈이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토끼를 향해 덤벼들 기세였다.

순간 미준은 살쾡이를 향해 주문을 외웠다.

‘사라져.’

미준의 능력을 모르던 살쾡이는 종적을 감추었고 도둑고양이는 녹아져 내렸다.

‘뭐야. 우리가 보이는 거야?’

죽어가는 도둑고양이는 녹아내리면서 몸부림을 쳤다.

‘난 다 보여.’

미준은 손전등을 찾아들고 도둑고양이가 사라졌던 곳에서 고양이 방울 하나를 주워들었다.

홍옥으로 만들어진 방울이었다.

미준은 말없이 방울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미준의 행동을 지켜보던 은혜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있다.

풀숲을 뒤지는 미준을 보고 은혜가 궁금한지 물어 보았다.

“풀숲에서 뭘 찾았어요?”

“응, 물고기 미끼 잡으려고.”

“지렁이도 있고 새우도 있는데?”

“혹시 귀뚜라미가 있나 해서. 귀뚜라미를 물고기가 잘 물거든.”

은혜는 그러려니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아저씨.’

뒤늦게 상황을 알았는지 토끼 요정은 바구니를 건네주고 다시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꽃바구니 속에는 보랏빛 구슬이 담겨있었다.

남아 있던 술잔을 마저 비우고 다시 낚시에 빠져들었다.

옆에 있던 은혜는 얼마가지 않아 졸기 시작했다. 미준의 옆에 앉아 고개를 꾸벅이다 깜짝 놀라 깨어나곤 한다.

미준은 은혜에게 캠핑카 안으로 들어가라 하였다.

“오늘 산행해서 피곤할 거야. 들어가서 먼저 자.”

“오빠는 요?”

“난 좀 더 있다 들어갈게.”

그리고 은혜는 차안으로 들어가자 미준은 따라 들어가 잠자리를 깔아 준 뒤 다시 나왔다.

밤낚시라 그런지 미준의 낚시에 연거푸 붕장어가 잡혀 올라왔다. 역시 밤낚시는 장어가 잘 문다. 그러나 언제까지 낚시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내일은 가야겠지?’

일요일 저녁에는 올라가야 한다. 월요일이 되면 은혜가 출근을 해야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일찍 자고 내일은 거제에 잠깐 들렀다 돌아가는 거야.’

미준은 낚시를 챙겨 차에 실어두고 자신도 차에 올라왔다.

은혜는 언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자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자기 충분한 공간이었으나 차마 은혜 옆에 누울 수가 없어 운전석에 앉아 의자를 눕혀 잠을 청했다.

가로등 불빛으로 차 안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얼마 후 미준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한기를 느끼고 잠에 깨어났을 땐 거의 동녘이 밝아올 무렵이었다.

운전석에서 뒤 칸으로 빠져나가 모포를 들고 돌아오려는데 은혜가 미준의 발목을 잡았다.

“오빠. 여기서 자. 의자에서 자면 힘들잖아.”

“괜찮아. 좀 더 자.”

“오빠.”

은혜는 미준의 발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뿌리칠 상황도 아니다.

하는 수 없이 옷을 입은 체 은혜의 옆에 자리를 잡으려 하자 은혜는 한쪽으로 누우며 공간을 넓혀 주었다.

미준이 자리에 눕자 은혜는 자기가 덮고 있던 모포를 미준에게 덮어준 뒤 자신도 이불을 당기며 다시 누웠다.

“오빠.”

“응?”

“오늘 집에 가는 거야?”

“너 내일 출근하잖아.”

“하루만 더 있다 가.”

“너는.”

“난 월차 내고 왔어.”

“.....?”

미준은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으나 좀처럼 잠은 오질 않았다. 은혜의 숨소리도 잠을 자는 것 같진 않았으나 아무 말이 없었다.

자리에 일어났을 때 해는 이미 많이 솟아올랐고 선창가에는 어민들이 나와 일손을 보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아침을 해 먹기는 어민들 보기에 미안할 것 같아 자리를 옮겨 장포항으로 자리를 옮겨 늦은 아침밥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차를 몰아 사천으로 들어갔다.

‘너 삼천포 해상 케이블카 타 봤어?’

“아뇨.”

은혜는 다리에 근육통이 생겼다며 절룩거렸다. 아마 어제 금산 등산이 근육통을 만들었나 보다.

“너 갈수 있겠어?”

“걷다 보니 아침에 일어날 때 보다는 많이 풀렸어요.”

“그럼 오늘은 쉬어야 할 텐데. 아님 내일은 더 못 걸어.”

“걱정 마세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결국 그들은 삼천포 해상케이블카 타고서 각산 전망대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다.

탁 트인 전망이 가슴을 뻥 뚫고 자나가는 것 같았다. 멀리 모개도를 중심으로 한 삼천포대교와 초양대교가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다.

그리곤 차를 몰아 통영을 거쳐 거제로 입성하였다.

거제 탐방은 대로를 따라가지 않고 아예 우측 해안도로로 진행하였다.

죽림 해수욕장 주변 갯바위에서 낚시를 할 예정이었다. 거제가 작다지만 차를 몰아보니 섬 같은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해주욕장 주변에 차를 세워둔 후 낚싯대를 꺼내 인근 갯바위로 찾아 나섰다.

은혜의 걸음이 말이 아니었다. 어제 보다 훨씬 통증이 심한 것 같다.

“걸음이 영 좋지 않네.”

“아마 좀 무리를 한 것 같애요.”

결국 그들은 멀리 가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낚시를 하기로 작정하였다. 은혜도 이제 고기를 잡겠다며 나서고 있었다.

“오빠, 나도 채비 좀 해줘.”

미준은 낚싯대를 던져두고 하나를 더 꺼내 낚시채비를 가르쳐 주었다.

릴을 끼우는 법.

릴에서 실을 뽑아 낚싯대 고리에 꿔는 방법.

마지막으로 찌를 달고 바늘을 매달아 던지는 방법까지 하나하나를 일러 주었다.

다리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진지하게 낚시를 배우는 것 같았다. 던지는 것도 몇 번을 실패 끝에 결국 제대로 던져 넣었다.

“오빠. 이제 됐지?”

“넌 구경만 해도 되는데.”

“오빠와 다니려면 어차피 낚시를 배워야 할 것 같애.”

그러나 지렁이는 못 꿴다고 하였다.

원래 갯지렁이는 미준이도 만지기가 거북스럽다. 미준이 역시 낚시에 대해서는 초보와 다름없다.

낚싯대를 구입할 때 판매하는 점원에게 조금 배운 것 외에 아는 것이라곤 거의 없다.

지금도 미준은 조금씩, 조금씩 실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미끼를 끼워 주자 은혜는 이제 낚싯대 던져 넣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미준이 노리는 건 따로 있었다.

괴물 낚시에 도전하고 싶어서 뉴 해양 루어를 몇 개 준비 했었다. 초능력자들만이 잡을 수 있다는 바다 괴물고기.

어쩌면 자신도 괴물 고기를 잡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각종 영령을 볼 수 있는 눈이라면 괴물고기를 잡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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