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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 미친 총각-170화 (170/225)

〈 170화 〉 내기의 조건(2)

* * *

그리고 1 : 1.

제법 건달 같이 노는 것 같았다.

결국 그들은 진호동 백사장에서 아무도 없는 야밤에 싸움이 붙었다.

그러나 그들은 미준의 힘을 너무 얕보았다.

“그러지 말고 다 붙어.”

“웃기는 소리.”

“어차피 지면 다 붙을 거잖아.”

미준의 동작은 과거의 미준이 아니었다.

물론 과거에도 싸움 하나는 져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과는 너무나 달랐다.

침착하고 예의바르고 신중한 것이 미준이 풍기는 평소 이미지라면 싸움이 붙을 때는 물불을 안 가린다.

다섯이나 되는 영석의 패거리를 순식간에 제압하고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게 했다.

“제가 졌습니다. 형님.”

“누가 너의 형이래.”

그리고 미준은 그들을 두고 백사장을 떠나왔다.

그런 일이 있은지 불과 며칠 되지 않았다.

도시 가운데 위치하는 공원이라 그들의 활동무대인 것 같다.

“여기서 안보면 안 되겠나? 그만 가봐.”

“네, 형님.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그들이 따나자 은혜는 미준을 빤히 처다 보며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오빠, 약속한 거 맞지요?”

“여행?”

“네.”

“나, 한번가면 1박 2일은 필요할 텐데.”

“알아요.”

그들은 다음 날 오전 아홉시에 만나기로 하고 일찍 헤어졌다.

같이 여행하면 혼자 갈 때 보다 신경을 좀 더 써야할 것 같다.

식사 문제, 잠자리 문제, 간단하게 먹을 때도 반찬은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챙겨 넣었다.

공원 주차장에서 만난 은혜는 무엇을 가지고 왔는지 여행용 캐리어에 짐을 가득 챙겨 나왔다.

검정색 바지에 노란 티셔츠를 입고 하얀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었다. 요즘 아가씨들의 유행과도 같은 야외 복장이었다. 그리고 까만 선그라스를 끼고 나타났다.

“우와.”

미준은 은혜를 보자 감탄하는 포스를 취했다.

“촌스러워요?”

미준은 엄지를 추켜세우고 산행 복장을 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은혜에 비해 자신의 복장이 좀 촌스러워 보인다.

“어디로 가실 거예요.”

“국도를 따라 거제로 갈까해.”

“좋아요.”

미준은 신이 났다. 일단 차를 몰아 중산으로 빠져나와 남해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은혜 역시 기분이 좋은지 흥얼거리며 표정이 밝았다.

“어제 전화할 때 많이 망설였어요.”

“왜?”

“오빠가 거절할까 염려돼서.”

“이유 없이 거절 하겠어? 바쁠 땐 할 수 없지만.”

“......”

“그런 염려 하지 마. 나도 같이 오니 좋은데 뭐.”

노량대교를 건너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이락사 주차장에 차를 대어두고 첨망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락사로 진입로는 길 양쪽 옆에는 소나무 가로수로 장군의 절개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아프다.

[이락사]. 돌아가신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라 한다.

돌아 나오는데 이락사 문밖에 기괴한 괴물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장군께 죽은 왜놈의 망령이 참회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컥하는 마음에 스틱을 휘둘렀다.

[대성운해]

큰 별이 바다로 떨어지다. 비각 안에는 유허비가 외롭게 서 있었다.

이어서 곧 첨망대에 올랐다.

첨망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탁 트인 그곳이 노량 앞바다라 한다.

바로 장군이 순국하신 그 바다이다.

미준과 은혜는 장군을 기리며 엄숙하게 묵념을 하고 돌아서 나왔다.

그리고 그 옆 순국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직도 왜놈들은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천벌을 받아도 시원찮은 놈들’

이 날 미준은 절대 일본엔 가지 않으리라 결심을 하였고, 일본 제품도 쓰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미준의 표정이 굳어져 있자 은혜도 덩달아 얼굴 표정이 심각해 보인다.

이곳을 둘러보며 그녀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빠.”

“응.”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며 살아온 것 아니에요?”

“그렇지?”

“절대 일본 놈들은 변할 것 같지 않아요.”

“너도 그런 생각이 드나보지.”

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절대 잊지 않아야 할 텐데.”

미준은 조용하게 은혜의 손을 잡았다.

은혜는 기다렸다는 듯이 미준의 팔에 팔짱을 꼈다.

잠시 후 미준의 눈에 영산홍 덤불 사이에서 두더지 요정을 발견하였다.

간단하게 스틱으로 요정을 가리키며 주문을 외웠다.

“미안해. 사라져.”

꽃밭을 뒤져 떨어져 있는 별 사탕처럼 생긴 우주 보석하나를 겨우 찾았다.

“오빠, 뭐 찾았어요?”

미준은 은혜에게 별 사탕 보물을 보여 주었다.

“예뻐요.”

“너 줄까?”

“나중에.”

공원을 둘러 본 후 군청 소재지를 지나 미조까지 왔다.

미조항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가을바람에 미조 앞바다는 약간의 파도가 일어나고 있었다.

“오빠. 제가 점심 준비 했는데.”

“그래?”

미준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오려 하자 은혜가 미준을 잡았다.

“저녁에 먹으면 되죠. 뭐.”

“요즘 날씨에 변하지는 않겠지?”

“아마도.”

은혜는 얼버무리며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어두고 식당홀로 올라섰다.

“넌 남해는 와 봤지?”

“예. 가족들과.”

방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서 미준이 묻자 은혜는 언젠가 가족들과 남해로 왔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은혜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고 하였다.

네 식구가 상주 해수욕장에 와서 놀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때 은혜는 고등학교 2학년 때라 했다. 지난 추억은 모두 즐거운가 보다.

그러나 미준에겐 그런 추억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자신을 집에 홀로 남겨두고 일을 하러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 친구들이 놀리던 기억도 아프도록 잊어지지 않는다.

“뭘 드시겠어요?”

“물회와 회 덮밥 중에 뭐 먹을래?”

“물회로 주세요.”

“그럼 물회 두개.”

간단하게 먹는 것은 물회가 좋다. 가을철에 먹는 물회는 더 맛이 있다. 오들오들한 광어와 우럭이 기름기가 꽉 차 과일 배와 함께 채를 썰어 넣으면 유별나게 잘 어울려 식감을 높여 준다.

“맛있지?”

“네.”

“단 것을 좋아하면 사이다를 썩어 먹으면 더 맛있어.”

“맞아요.”

은혜도 물회의 맛을 제대로 아는 것 같다.

“우리 식사 한 후 상주해수욕장에 한번 가보자.”

“정말요?”

“은혜의 추억도 있고, 나도 가고 싶고.”

식사를 한 후 다시 해안을 따라 상주 해수욕장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조금 더 걸었더니 조그만 카페가 눈에 띄었다.

“커피 생각나지?”

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커피 살게요.”

둘은 카페로 들어섰다. 몇몇 손님이 자리에 있다가 미준의 일행을 처다 보았다.

그때 젊은 남자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했다.

“연 프로님 맞으시죠?”

미준은 자신에게 프로라는 말을 해 주니 기분이 좋았다.

손을 내미는 청년을 보니 자신도 반가워 얼른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미준은 그들 옆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은혜와 미준이 자리를 잡자 그는 벌떡 일어나며 뭘 먹겠는지 얼른 묻는다.

자세로 봐서 자신이 살 그런 자세였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아, 아니에요. 사드리고 싶어요.”

“그럼?”

미준은 은혜를 바라보며 묻는 자세를 취하자.

“커피라떼.”

“난, 바닐라.”

그는 얼른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한 후 호출기를 받아 은혜 앞에 놓아 주었다.

그 청년의 옆에도 여친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둘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미준의 눈과 마주치자 고개를 까닥하였다.

그제야 청년은 자리에 앉으면서 말을 이었다.

“사냥 오셨어요?”

“네.”

“책 읽어 봤어요.”

“고맙습니다.”

“그럼 한 가지 더 물어 볼게요?”

“.....?”

“정말 부짓집 아들 맞으세요?”

“하하, 그런 소문도 있어요?”

“네. 유학도 가고.”

“그런가 보죠 뭐. 소문이 그렇다면.”

미준은 그냥 농담 삼아 대답했다.

지금 인터넷에 자신에 대한 각종 루머들이 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잣집 아들이라며 쇼를 하다니.’

‘금수저 중에서도 금수저래.’

‘그건 루머야.’

‘초등 때부터 같은 반이었는데 절대 아니야.’

온갖 댓글이 올라왔고 가끔 어떤 댓글은 긍정적인 글도 있었다.

“그럼 인정하시는 거예요?”

미준의 대답을 듣고 은혜는 갑자기 미준을 빤히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내가 괜한 걸 물었나요?”

미준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은혜의 뒤를 따라 나갔다.

은혜는 캠핑장 부근 소나무 숲 벤치에 앉아 시무룩하게 앉아있었다.

“왜?”

“....?”

“내가 농담한 거야 하도 루머가 떠돌아서.”

“몰라.”

“내가 부잣집 아들이면 더 좋잖아.”

“그래도 전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전 그럼 어떡해요?”

“뭘 어떡해.”

은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나 혼자 힘으로 나의 세계를 열어 갈 거야. 두고 봐. 난 분명히 그렇게 할 거며 그렇게 살 거야.”

“....?”

“들어가.”

미준은 은혜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우자 미준의 품에 안기듯이 기댔다. 미준은 은혜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커피숍에 돌아오니 그들은 이미 자리를 떠났고 식은 커피만 미준과 은혜의 자리에 놓여 있었다.

“이것 좀 데워 주세요.”

마주 앉은 은혜는 말없이 미준을 처다 보고 있었다.

“오빠, 생각해 보니 오빠는 보통 사람은 아니었어.”

“아냐. 그렇지 않아.”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이렇게 꿋꿋하게 살아온 걸 보면.”

“오빠가 정말 부잣집 아들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글쎄, 말이야.”

“만약 그랬으면 아이들에게 그렇게 까지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텐데.”

“과연 그랬을까?”

“그럼. 얼마나 아이들이 영악한데.”

“그래도 넌 믿어 줬잖아.”

커피숍에서 나와 금산으로 올랐다. 금산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쌍홍문에 다다랐을 때였다.

오른편 갈참나무 아래 청설모 두 마리가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옆 소나무 덩굴 아래 독사 악령이 도사리고 있었다. 기회만 되면 청설모를 덮치려고 머리를 쳐들고 엿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미준은 가슴이 섬뜩하였다.

얼른 지팡이를 쳐들고 소리를 질렀다.

“사라져.”

독사 악령은 얼음처럼 녹아 내렸다.

“휴.”

놈의 모양이 너무나 섬뜩하여 가슴이 뛰었다.

“오빠 뭘 봤어?”

“응. 독사가 있었어.”

“큰일 날 뻔 했네.”

“산에 다닐 땐 항상 조심해야 해.”

미준은 자신이 대답하면서 악령과 실체가 구별이 안 되는 이상한 대답을 한 것 같아 좀 미안하였다. 그리고 독사가 사라졌던 그 자리에서 파란 구슬 하나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다.

옛날부터 전해오기를 천년 묵은 독사는 파란 구슬을 가지고 있으면서 여자로 변하여 사람의 혼을 빼앗는다고 한다.

“너 힘들면 좀 쉬었다 가.”

그들은 돌계단 옆에 앉아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미준의 체력에 비해 은혜는 너무 여린 아가씨였다. 키만 훌쭉하게 클 따름이지 체력은 아니었다.

그때 미준의 눈에 엷고 청아한 갑사 옷을 입은 처녀 하나가 미준을 바라보며 작은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그녀의 눈길이 너무나 매혹적이라 자신을 따라 오라는 손짓 같았다.

무척 아름답고 섹시하게 생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본 미준은 그녀를 따라 가고픈 충동이 자신도 모르게 일어난 것 같았다.

‘저게 사람인가?’

‘사람이면 저럴 수가 없는데?’

정신없이 그녀가 간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은혜가 독촉하였다.

“이제 가요.”

“엉? 응.”

“방금 그 아가씨 봤어?”

“누구?”

“저쪽으로 올라간 아가씨?”

은혜는 고개를 갸우뚱 하였다.

‘내가 헛것을 보았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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