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 내기의 조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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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준은 마지막 집필을 하면서 정신병자로 낙인 찍혀 괴로웠던 자신의 심경과 정령 괴물 사냥꾼으로 거듭나게 된 과정을 빠짐없이 추가하고 기술하였다. 미준의 책은 5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자 그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
출판한 책명은 [난 결코 미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월드 베스트로 선정되어 전 세계로 팔려 나갔으며 초판은 물론 재판, 삼판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미준은 다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되었다.
“장래 목표는 무엇인지요?”
“세계적으로 뛰어난 종합병원을 열어 병으로 시달리는 많은 환자들을 구하고 싶습니다.”
“영령 괴물 사냥은 계속하실 건지요?”
“그것은 하늘이 제게 준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이로서 미준은 세상에 공개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말 한마디 못하고 정신병자로 취급받던 천미준. 구석지고 어두운 곳에만 박혀있던 한 청년이 이제야 어깨를 펴고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게 된 것이었다.
수많은 언론에서 출연요정이 쇄도 했고 인터뷰 요청을 해왔으나 더 이상 언론에 응하지 않았다.
미준은 일단 병원을 짓기 위한 부지를 확보하는데 심혈을 기우렸다.
부동산 전문가. 변호사 등과 상담하고 개별 계약을 체결하여 업무 전담팀을 구성하였다. 장차 경제력이 돌아가면 대형 종합병원을 지을 계획이었다. 토지의 용도를 변경하고 병원설립에 필요한 일들을 알아보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넌 모든 것이 아버지를 많이 닮았어.”
결국 미준의 어머니는 자식의 의지를 알고는 더 이상 무엇을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지켜만 보기로 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준의 경제력도 개선되어 가고 병원을 짓기 위한 부지도 정리되고 설계도 마쳤다.
최종 조감도가 만들어 지면서 관리팀을 구성하여 종합 병원 건립에 착수하였다.
많은 지지자들이 경제적 지원과 공동 투자를 원하고 있었으나 미준은 모두 거절하였다. 처음 시작하는 사업이라 모든 것을 자력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어느 날 미준은 공사 현장을 방문하고 있을 때 뜻하지 않은 사고 아닌 사고가 발생하였다.
자제를 옮기고 있던 인부의 등에 악령의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다. 검은 물체가 납작 달라붙어 인부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미준은 얼른 인부를 불러 세워 그의 등 뒤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왜 그러세요?”
일을 하고 있던 인부는 갑자기 젊은 사람이 자신을 불러 세우자 불쾌한 얼굴로 반문하였다. 관리 팀장은 미준을 소개하면서 건축주라 소개하였다.
“그런데 무슨 일로?”
“혹시 아픈 곳이 없어요?”
“아뇨, 없습니다. 건강해요.”
50초반으로 짐작되는 인부는 혹시 일을 그만두라는 말을 들을까봐 과장된 힘자랑을 하며 건재한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미준이 보기엔 결코 그가 건강한 얼굴이 아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호흡이 가쁘며 미준이 아닌 그 누가 봐도 그의 건강은 온전하지 않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이분은 의사 선생님입니다. 바른 말씀을 해야 합니다.”
관리 팀장 이재룡이 자신이 봐도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걸 짐작되어서 걱정스런 얼굴로 다시 물었다.
혹시라도 공사도중 사고가 발생한다면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괜찮다는데 왜 그래요.”
주변 사람들이 의식이 되는지 그는 그곳에서 벗어나려 다시 공사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불과 10여 미터를 걸어갔을까. 그는 갑자기 픽 스러졌다.
미준이 살펴보니 이제야 뚜렷하게 사자의 그림자가 그의 머리에 앉아 있었다. 미준은 즉시 그를 병원건립 막사로 데려오라 일렀다. 인부가 쓰러지자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를 신속하게 건축 막사로 그를 옮겨 놓았다.
미준은 그를 진단한 뒤에 스킬을 사용해 인부의 머리에 앉아 있는 검은 치키 악령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그의 목을 마사지를 하듯이 문질러 주었다.
잠시 후 그는 의식이 돌아왔다.
“언제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까?”
그제야 그 인부는 술술 미준의 질문에 응답하였다. 약 1년 전부터 뒷머리가 아프고 다리가 당기면서 입맛도 없고 헛것이 보이는 증상이 계속되었다고 하였다. 여러 병원을 찾아가기도 하였으나 별 다른 효염도 없었고 가정 형편이 어렵고 자녀들의 공부가 끝나지 않아 아픈 몸을 무릅쓰고 일을 하고 있다고 실토하였다.
“그럼 왜 조금 전에 묻었을 땐 건강하다고 하셨죠?”
“일을 못하게 할까 봐서.”
미준은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관리팀장에게 지시하였다.
“이분은 며칠 지나면 다 나을 거예요. 그때까지 간단한 일만 배정해 주시고 일당에는 차별하지 않도록 부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갑자기 팀장이 선생님으로 호칭을 바꾸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인부도 고개를 숙이며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하였다.
미준은 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사람의 생명은 병도 있지만 지금 끗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요인이 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 수산물 시장에서 만났던 가요 영령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러한 일들은 빠른 시간에 소문으로 번져 갔다. 정말 그 인부는 며칠 만에 건강을 되찾았고 완전하게 회복되어 아무 일 없이 열심히 일을 했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벨 소리가 났다.
“딩동”
“누구세요?”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우편집배원이나 택배 배달원 아니면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은 거의 없었다.
‘누구지?’
“저 김수영입니다.”
“김수영?”
“예, 병원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김수영입니다.”
미준은 공사 현장에 일하는 사람이 왜 자기를 찾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어쨌든 문을 열었다.
“무슨 일로?”
“지난 번 일하다 쓰러진.”
“아, 예. 건강은 좀 어때요?”
“예,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 인부는 한 달 임금을 받았다면 갈비 한 짝을 들고 왔다.
“제가 드릴 것이 없어 고기를 좀.”
“이제 괜찮으세요?”
“전 정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그럼 잠깐 들어와서 차나 한잔 하시고 가세요.”
식사를 하는 미준을 보며 그는 깜짝 놀랐다.
미준의 식탁에는 반찬이라고는 거의 없이 참치 캔과 고들빼기 짱아치만 놓여 있었다.
“선생님.”
“아예, 제가 아직 미혼이라.”
미준은 공기밥 한 그릇을 퍼서 인부 아저씨 앞에 놓아주고 수저를 챙겨주면서 같이 먹자고 하였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제가 아이들을 잘못 키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에요?”
자신에게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아들이 있는데 아비가 막노동을 하며 아픈 몸으로 힘겹게 일하면서 공부를 시키고 있는데도 수시로 반찬투정을 하거나 음식 투정을 하여 항상 자식들에게 미안한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하였다.
“선생님을 보니 반성이 된다며 휴대폰을 꺼내 미준의 식탁을 찍고 있었다.
“아니에요. 아저씨. 저도 어머니 앞에서는 그렇게 했어요. 지금 혼자 살다보니 제 편하라고 이렇게 먹어요.”
대답은 그렇게 했으나 미준은 자신이 성장하면서 반찬 투정을 했는지 되돌아보았다.
“자신은 투정을 할 만큼 메뉴가 나쁘게 나온 경우가 없었고 언제나 어머니가 잘 챙겨 주셨던 것 같았다. 그런데 옛날에는 그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었다.
이제야 모든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저씨. 우리 병원 완성되면 병원에 입사하여 제 일을 좀 도와주세요.”
“그럼 나를 직원으로 뽑아주겠다는 겁니까?”
“아저씨 같은 분이 있으면 전 항상 든든하겠죠.”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제 몸 바쳐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렇게 미준은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이 없는 것을 의식하면서 한 사람씩 자신의 측근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비록 공사장 인부지만 진심으로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남부지방도 가을 단풍이 막바지에 달한 11월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던 금요일 밤에 은혜에게 전화가 왔다.
이때 미준은 지금 오피스텔에서 공원 옆으로 이사를 하였다. 지금까지 작은 오피스텔에서 살다가 그리 크진 않아도 빌라로 이사를 하고나니 이제 좀 살맛이 나는 것 같았다. 평수도 넓고 방도 여러 개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어 작은 소원 하나가 해결된 것 같았다.
방 하나에는 낚시, 등산 등 여러 장비를 넣어둘 수 있어 매우 좋았고 다른 방 하나에는 보물 창고처럼 평소 애장품과 획득한 보석, 유물 등을 따로 보관 할 수 있어 좋았다.
마음에 드는 한 가지를 더 고른다면 엘리베이터로 출입이 가능하고 자신의 집과 맞은 편 집에 예쁜 아가씨가 살고 있다는 것이 뭔가 기대되고 마음이 설레었다.
그 또한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잘하면 제와 무슨 일이라도 생겨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빌라 가까이 헬스장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공원과 인접하여 운동하기가 매우 좋았다. 중산 공원을 내려다 볼 수 있어 그 또한 기분 전환에 큰 도움을 주었다.
“오빠.”
모처럼 은혜의 전화가 왔다.
“어, 은혜야.”
“바쁘죠?”
“아니 전혀.”
“내일은 뭐하세요?”
“헌터가 뭐하겠어. 일을 해야지.”
“같이 가면 안 되겠지요?”
순간 미준은 주말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고 은혜의 말투가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항상 미준의 의견을 먼저 물어보는 그녀의 말투가 어딘지 모르게 옛날 같지 않다.
“너 왜 그래?”
“.....?”
“말투가 왜 그러냐고?”
“제가 뭘.”
“지금 우리 만날래?”
“정말이에요?”
미준의 말에 은혜는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럼 20분 후 그곳에 와.”
공원 커피숍에서 도착한 은혜는 참으로 예쁘게 해서 나타났다. 옷이 날개라 했던가?
짧은 미니스커트에 무릎까지 와 닿는 바바리코트를 걸친 그녀의 몸매가 긴 머리카락에 어울려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찻잔을 두고 마주 앉은 미준의 가슴은 설레기까지 하였다.
“넌 요즘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지나치게 조심하는 것 같아.”
“제가 그랬어요?”
“응, 좀 그런 느낌이 들어.”
“사실 좀 어렵긴 해요.”
은혜는 정색을 하며 미준을 바라 봤다.
“왜?”
“모르겠어요. 오빠는 가끔 다른 세계 사람 같이 느껴지곤 해요.”
“그럼 내가 외계인이란 말이야?”
“그런 뜻 아니란 걸 알고 계시잖아요.”
“그러지마. 그럼 내가 불편하잖아.”
미준은 마주 앉은 은혜의 두 손을 꼭 쥐었다.
“형님. 여기서 또 뵙네요.”
미준이 고개를 돌려 처다 보니 김영석 이었다.
“형수님도 나와 계셨네요.”
형수님이란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은혜가 고개를 들고 그를 처다 보았다.
“....?”
“형수님.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제가 아무 것도 모르고. 이제 형수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은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준과 영석을 번갈아 보았다.
“형님. 저도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형님.”
미준은 그들을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영석은 공원 앞 건널목에서 미준에게 당한 후 같이 어울리는 패거리를 데리고 미준에게 다시 도전장을 내었다.
자신은 결코 건달일진 모르지만 양아치는 아니란 것이었다.
양아치란 말에 너무나 자존심이 상해 그걸 벗어나려고 도전장을 낸다는 것이었다.
‘웃기는 새끼네.’
미준이 보기엔 건달이나 양아치나 그게 그것 같건만 그들은 양아치란 말에 무척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았다.
명예를 걸고 다시 한판 붙자고 하였다.
“조건은?”
자신이 이기면 은혜를 넘겨주고 지면 은혜에게 깨끗하게 손을 떼고 형님으로 모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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