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싹트는 사랑(3)
* * *
사실 미준도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에 취업하려 몇 번을 시도 했었다.
“여러 번.”
“앞으로는 요.”
“개인 사업을 할 생각입니다.”
결국 그들은 민증을 까고 그들에게 말을 놓기로 하였다.
“전 이영미.”
“전. 조아라.”
“난 천미준.”
“전번은 안주세요?
그들은 서로의 전화 번호를 교환하였다.
미준의 휴대폰에 모처럼 새로운 이름이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만남을 축복하는 건배를 하였다.
“자! 오만위.”
“오늘밤 만남을 위하여.”
미준은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얼마나 이런 것들을 해보고 싶었던가?
그들 역시 마지막 여행이란 생각을 하니 무척이나 아쉬웠고좀 더 일찍 만났으면 더 재미있는 여행이 되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다.
“아저씨, 썸녀 있으시죠?”
“....?”
“아저씨, 정말 멋지세요. 없다면 오히려 더 이상하지.”
몇 잔의 술 탓인지는 모르지만 조아라는 미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얼마 후 그가 자리를 뜨려하자 아라는 여기서 함께 있다가 내일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하였다.
아라가 그러자 영미도 덩달아 방이 두 개나 된다면서 거실도 있고 방이 두개라 불편이 없을 거라 그러자고 졸랐다.
‘이렇게 알게되고 친구도 생기는구나.’
미준 역시 흐뭇하였였다.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가볍게 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10경에 차를 가지고 주차장으로 올게요.”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미준은 혼자 자기 차로 돌아왔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번 여행의 또 다른 수확을 얻은 것 같았다.
꿀잠을 자고 일어나 약속 시간에 맞춰 펜션에 도착해 보니 그들은 벌써 짐을 챙겨 주차장에 나와 있었다.
무릎 떨어진 빈티 청바지를 나란히 입고 힌색 티셔츠를 입은 두 아가씨의 모습은 어제 밤 추리닝을 입은 모습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영미야, 내가 가운데 앉을게.”
적극적인 성격의 아라에 비해 영미의 성격은 소극적인 것 같았다.
그리고 말이 적었다.
“좋을 대로.”
결국 그들은 나란히 앉아 춘천을 출발하게 되었다.
“아저씨, 조금만 있으면 단풍철이 되네요.”
“그렇겠지.”
“중산에서는 어떻게 할 거야?”
“태워주시면 좋겠지만 중산에서 진주까진 너무 멀어서.”
“그렇죠? 이왕 내차를 탔으니 진주까지 갔다오지.”
“정말요? 그럼 우리가 점심 쏠게요.”
“좋아.”
미준은 성격이 밝은 그녀들이 좋아 기꺼이 진주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약속하였다.
“아저씨. 참 좋은 분 같다. 화통하고.”
사실 미준은 지금까지 화통하게 살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그렇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잃어버린 세월을 모두 찾겠다는 욕심도 생겨났고 못해본 것들, 안 해 본 것들은 다 해 보겠다는 야망도 있었다.
차는 남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서진주 IC에서 내려 인근 식당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진주 맛 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통해 있는 것 같았다.
“진주에 유명한 것은 몇 가지 있어요.”
아라의 설명이다.
“진주는 비빔밥과 냉면이 유명하구요, 교방 한정식과 장어구이 등이 있어요.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장어구이가 유명하죠.”
“응.”
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주 장어라면 진주성 주변 남강 유역이 유명한데 오늘 제가 소개한 곳도 맛있어요.”
결국 그들은 아라를 따라 장어구이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점심시간이 좀 지난 탓인지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들어서기가 무섭게 고소한 장어구이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원래 진주는 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지리산과 덕유산에서 발원된 물이 진주 남강에서 만난다.
물이 맑고 좋아서 비단 염색의 최적지이고 그래서인지 전국 실크의 80%를 진주에서 생산하기도 한다.
주인은 장어의 느끼함을 제거한다면서 자기 집 소스의 장점을 설명해 주었다.
구워서 양념을 잘해 먹으면 느끼한 맛을 줄여주어 많이 먹을 수 있다고 은근슬쩍 자기 식당의 자랑을 늘어 놓았다.
“남자는 역시 장어가 최고죠.”
주인 남자는 엄지를 추켜세우며 아직 총각 딱지도 못 땐 미준에게 정력 자랑을 한다. 그러면서 마주 않은 두 아가씨들을 번갈아 처다 본다.
“정력에 좋으면 뭐해요. 사용할 때도 없는데.”
장어를 구워주면서 계속적인 정력 이야기에 미준은 거북스러워 한마디 하였다.
“두 분 중에 애인 없어요?”
미준은 순간 당황이 되어 얼굴이 빨갛게 물이 들었다.
“아저씨, 얼굴 빨게 졌다.”
아라의 이야기에 하얀 피부를 가진 앳된 미준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왜 그래, 너.”
“그 들은 미준을 바라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우리 한잔 어때요?”
“운전 때문에.”
“그럼 순한 소주 한 병.”
결국 여성용 소주를 시켜 미준에게 한잔 부어주고는 그들은 나누어 마셨다.
“아저씨 술 깰 때까지 진양호공원 갔다와서 출발하세요. 진주 오는 분들이 많이 찾는 곳이거든요.”
식사를 한 후 그들은 집으로 연락하여 진주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고는 차를 세워둔 채 진양호 공원으로 올라갔다.
호수를 배경으로 하여 사진 몇 컷을 찍고 천천히 걸어 조정훈련장 주변까지 걷게 되었다.
여전히 아라는 미준의 옆에 서서 진양호와 진주에 대한 안내와 설명으로 말이 많았고, 영미는 한 번씩 미준과 친구 아라를 바라보며 웃음으로 대해 주고 있었다.
왠지 미준은 재잘대고 있는 아라 보다 말없이 따라오고 있는 영미에게 호감이 더 가는지 괜스레 영미에게 말을 걸곤 하였다.
그때였다. 맑고 파란 호수 위에 큰 물고기가 튀어 올랐다.
호수에 손을 씻다 이를 목격하고 뒤에선 그녀들도 그 장면을 봤는지 뒤돌아보았다. 순간 호숫가 바위 위에 자라의 영령이 올라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미준은 얼른 카메라를 들고 거북 영령을 카메라에 담았다.
따뜻한 가을 날씨에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는 듯 목을 쭉 빼면서 크게 벌렸다.
미준은 스틱을 들어 자라를 향해 구음으로 되뇌었다.
‘넌 뭐 없어?’
거북은 미준을 빤히 보더니 물속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세이렌.”
엉겁결에 세이렌을 찾았다.
“방금 뭐라 했어요?”
아라는 미준의 말을 들었는지 반문을 하였다,
“아니.”
미준은 거북이 있던 자리를 살펴보니 그린 색깔의 구슬 두개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을 주워 들고 보고 있는데 영미가 모처럼 입을 열었다.
“아저씨 세이렌이라 했어요?”
“응.”
“세이렌이라면 바다에 사는 인어 아니에요?”
미준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여기서 인어 보셨어요?”
“.....?”
“요즘 초능력자들 중에 그런 것을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저씨도?”
영미는 미준이 쥐고 있는 구슬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하였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라는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는지 훈련을 하고 있는 요트 선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혹시? 아저씨. 그냥 여행 다니시는 것 아니죠?”
영미는 어디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미준을 유심히 보며 재차 물었다.
“글쎄. 사실은 나도 몰라.”
“아저씨가 보통 분이 아닐 거란 짐작은 되었어요.”
“어제 밤에 인터넷 뒤져 봤거든요. 1,000년 묵은 산삼을 캔 그분과 매우 비슷했어요.”
“1000년이 아니고 100년.”
“반가워요. 아저씨.”
아라가 사진을 찍는다고 거리를 두자 영미는 이제 알겠다는 표정으로 한마디를 더 했다.
“나중에 중산으로 한번 들릴게요. 그때 중산 안내 좀 부탁드려요.”
영미는 적극 미준에게 데이트 신청과도 다름없는 부탁을 한 후 아라와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캠핑카가 있는 식당 주차장에 도착한 후 헤어져 돌아왔다.
미준이 집에 도착 했을 땐 저녁 무렵이었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다시 자신의 앞에 홀로그램 문자판이 떠올랐다 곧 사라졌다.
[귀하의 스펙 3급. 순발력 9. 감별력 9. 투시력 9. 전투력 9]로 나타났다. 지난번 잠깐 본 것 보다는 수치의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았다.
‘그래, 이건 게임과 같은 거다. 괴물을 잡을수록 스펙이 늘어나고 능력치가 향상되는 거야.’
미준은 혼자 주먹을 쥐고 손을 흔들며 결의를 다졌다.
여행 중에 생각했던 대로 어머니를 한번 만나고 싶어 전화를 하였다.
“집에 오지 않을래?”
“아뇨, 중산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서 데이트해요.”
“데이트.”
사실 미준의 어머니는 혼자 살고 계신다. 한때는 미준과 함께 살았으나 걱정을 하는 어머니가 보기 싫어 독립을 하였다. 오늘 미준은 모처럼 어머니를 밖에서 만나고 싶었다.
아무리 어머니지만 밖에서 만나려니 약간은 긴장되고 보고 싶기도 했다.
약속 시간보다 30분가량 먼저 도착하여 어머니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역시 약속시간 보다 조금 빨리 커피숍에 들어섰다.
너무나 반가워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번쩍 들었다.
“어머니.”
미준은 자신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어머니를 부르고는 가까이 오시는 어머니를 덥석 끌어안았다.
미준의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본적 없는 어머니는 잠깐 당황하였으나 같이 미준을 안아주었다.
마주 않은 미준은 웃음을 머금고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어머니는 더 젊어지신 것 같네요.”
“얘는. 내 나이가 얼만데?”
“진짜에요.”
사실 미준의 어머니는 나이에 비해 엄청 젊어 보인다. 자신이 봐도 50초반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 서빙하는 아가씨가 그들이 앉은 탁자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가씨, 이 아주머니 나이가 얼마나 되어 보여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하던 아가씨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40 아니면 41.”
“그렇죠? 제 애인이에요. 하하하.”
“얘는?”
어머니도 그리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미준은 차를 시켜두고 마주 앉은 어머니의 손을 당겨 두손으로 꼭 쥐었다. 어머니의 눈가엔 약간의 이슬이 맺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죄송해요. 어머니.”
“무슨 그런 소릴.”
“제 땜에 맘고생 너무 많이 하셨어요.”
“아냐. 네가 잘되고 있으니 이제 너무 행복해.”
“죄송해요.”
그때 차가 나왔고 차를 마시면서 미준은 계획에 없던 제안을 하였다.
“어머니, 공원 데이트 하실래요?”
“좋지. 아들과 하는 첫 데이트.”
미준은 호텔에서 나와 어머니와 함께 차에 올랐다. 공원길을 걸으며 미준은 그동안 궁금했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어떻게 만났어요?”
“엄마가 아버지를 무척 사랑했지. 물론 아버지도 그랬지만.”
“그럼 아버지 돌아 가셨어요?”
어머니는 미준의 질문에 약간 당황하는 것 같더니 아버지를 만나게 된 과정과 이복형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사귀면서 혼전 아들이 하나 있었고 병으로 돌아가신 후 자신과 첫 결혼을 하였다고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그럼 재혼이 아니었네요.”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런 셈이지.”
“아무튼 고마워요. 그런데 왜 헤어졌어요?”
“그냥 내가 싫어졌어.”
“그래서 이혼 하신 거예요.”
“이혼이랄 것도 없어. 그때까지 혼인 신고를 안했으니.”
“고맙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셔서.”
미준은 이복형과 아버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으나 더는 묻지 않았다. 어머니에게도 프라이버시란 것이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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