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싹트는 사랑(2)
* * *
“알고 있어.”
“자기 혼자 그러는 거야.”
“알아.”
그녀는 억울해 하며 울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은혜야. 변명하지 않아도 돼.”
“오빠, 나 정말 너무 억울해. 오빠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걱정 마. 난 오해 같은 건 안 해.”
“정말이지?”
“그래, 걱정 말고 있어. 나 며칠 있다 갈게. 만약 또 치근덕거리면 꼭 내게 말해. 알았지?”
전화를 끊은 뒤 얼마 있지 않아 다시 은혜가 문자를 보냈다.
“고마워 오빠. 믿어줘서.”
“잘 지내. 도착하면 연락할게.”
이런 것이 여자인가 보다.
미준도 역시 은혜가 먼저 전화해줘서 고맙기 그지없었다.
‘행운의 섬이 맞네.’
미준은 반대편 목조 교량으로 섬을 벗어나서 천천히 걸어 주차장으로 내러 왔다.
다시 차를 몰아 광양시를 가로질러 남해고속도로를 타다가 순천에서 내려 순천만 습지를 찾아 나섰다.
순천만 습지는 자연 풍경이 이색적이다.
연안 습지는 만조 때와 간조 때 바닷물이 드나드는 경계지역을 말한다. 강에서 실려 온 흙이 강 하류 지역에 넓게 쌓이면서 만들어진다. 다양한 생태계의 변화가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에 자연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곳이다.
순천만에는 매해 겨울이면 흑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검은머리물떼새 등 철새가 찾아온다. 조류가 살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갖췄다는 증거다. 철새 외에도 각종 게류, 조개류, 갯지렁이류 등이 갯벌을 터전 삼아 생명을 이어간다.
갈대 또한 순천만의 상징이다.
우리나라의 갈대 중 순천만의 갈대가 가장 큰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다. 넓게 펼쳐진 갈대가 가을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무성한 갈대밭 사이에 물억새와 쑥부쟁이가 무리 지어 있다. 갈대밭의 붉은 칠면초 군락지도 훌륭한 구경거리다.
미준은 천천히 갈대밭을 구경하며 혹시라도 있을지도 모르는 영적 괴물을 찾고 있었다.
그때였다.
갈대 밭 사이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고양이였다.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무엇인가를 노리는 것 같다.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고양이가 집중하고 있는 곳엔 두꺼비 괴물이 웅크리고 있었다.
“너 두꺼비 괴물 보여?”
고양이는 미준을 힐끗 처다 보더니 귀잖다는 듯이 자리를 떴다.
‘뭐야 저거.’
미준은 두꺼비 괴물을 지켜보다 혹시라도 얻을 것이 있나하여 손을 가리키며 주문을 외웠다.
‘너도 좀 사라져 줄래?’
주먹 만한 왕두꺼비 괴물은 꼼작도 하지 않았다.
‘넌 뭐야?’
그제야 왕두꺼비는 한 발자국 풀쩍 뛰면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시발, 저건 괴물이 아니잖아.’
‘저건 실체네. 진짜와 가짜가 구별이 안 되네.’
미준은 그 차이점이 뭘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일단 하나는 찾았다. 진짜 실체는 그림자가 있지만 요정과 영적 괴물은 그림자가 없다. 그 것
만으로는 구별하기 힘들다.
다음부터는 영적 괴물과 실체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실제와 가짜가 구별이 안 되니.’
그리고 다시 주변을 탐색하며 갈대밭 곳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미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수탉이었다.
나무로 만든 숲길 옆에 쭈구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그림자가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수달은 수달인데 진짜의 모습을 잘 모른다. 실제 것들을 본적이 있었지만 순식간에 지나는 걸 본 것 뿐이다.
TV에서 봐도 알 수가 없다.
일단 주문을 외워 보았다.
‘사라져라.’
그때 순간 갑자기 옆 수로로 뛰어들며 물고기를 잡아채 사라져 버렸다.
‘시발.’
꼭 무엇에 홀린 기분이다.
‘조것들이 나를 놀려.’
미준은 차로 돌아와서 오늘 밤은 여기서 묵기로 하였다. 간단하게 밥을 짓고 준비해온 고추와 마늘, 고추장을 내어 놓고 참치 캔 하나로 저녁을 때웠다.
그런데도 왠지 맛만 좋다.
밤이 되면 한 번 더 시도해 볼 생각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손전등을 들고 스틱을 준비해서 밖으로 나왔다.
밤에는 갈대숲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채 체험마당을 지나 동천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운동을 할 겸, 소화도 시킬 겸, 한참 걷다보니 좌로는 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오른 편은 바다로 흐르는 작은 하천이었다.
피부에 전해지는 묘한 기운에 손전등을 비춰보았다. 20m 앞쪽에 파란 불빛 두개가 유별나게 반짝거린다.
‘고양이인가?’
손전등을 비추는 미준을 보며 꼼짝하지 않고 주시하고 앉아있다. 갑자기 몸이 으스스 하였다.
미준이 누구인가?
그는 분명 사나이다.
오른 손엔 스틱을 잡고 조심조심 접근하였다.
‘잠깐만 기다려 줘요.’
연약하면서도 귀여운 목소리다.
‘누구?’
‘난 요정 티타니아에요.’
‘뭐, 티타니아.’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미준은 스틱을 잡고 손전등을 비춰 확인해 보았다.
금발 머리를 가진 예쁜 여자 아기인형 같은 영혼이었다.
‘아기 영령인가?’
미준은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에요.’
혼자 중얼거린 미준의 말을 알아듣고 적극 부인했다.
‘그럼?’
‘요정 여왕.’
‘그럼 다행이네. 난 요정이던 요물이던 다 잡는 헌터야.’
‘안돼요.’
그러나 미준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기의 영혼과 다름없어 보이는 티타니아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럼 빨라가. 내 마음 변하기 전에.’
미준은 손전등을 끄고 돌아서려는데.
‘고마워요.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이건 보답의 선물.’
다시 불을 비춰보니 사라지고 없었다. 티타니아가 사라진 곳에는 꽂고 있던 머리핀 하나가 놓여있었다.
어두운 곳에서 잠깐 살펴봤으나 예사 귀중품이 아니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더 이상 가지 않고 돌아섰다.
캠핑카에 올라 하루 밤을 보낸 뒤 이번엔 순천 국가 정원으로 이동하였다.
서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카메라는 목에, 손에는 스틱, 등산복 차림에 작은 등산 가방을 메고 정원 산책길에 오르게 되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래전부터 오고 싶었던 곳이었으나 너무나 폐쇄적인 자신의 삶에서 미처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인공 조성한 습지 호수를 돌아 본 뒤에 정자가 있는 서쪽 정원을 살펴보고, 가을 숲길을 따라 산행을 하였다. 소나무 숲 산책길로 오를 땐 정원 전체가 시야로 들어온다. 조금 더 올라가니 민가도 보이도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도 보였다.
혼자 온 것이 너무나 아까웠다.
‘누군가와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친구하나 없는 자신이 너무나 안타깝다.
어머니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어떻게 아버지를 만나게 됐을까? 언제든 기회가 오면 물어보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왜 헤어졌을까?’
50중반이 다된 어머니 모습은 아직 40대 초반으로 보인다. 자신이 생각해도 참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셨다. 자신이 그동안 너무 많이 속을 상하게 한 것 같다.
혼자 걷는 산책길에 온갖 생각이 미준의 머리를 스쳐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소나무 줄기를 타고 다람쥐 두 마리가 경주라도 하듯이 땅으로 내려온다.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재롱을 부리더니 참나무 낙엽을 살살 파헤치더니 돋아나는 버섯을 주워 먹는다.
‘저건 무슨 버섯이기에.’
다람쥐가 먹는 버섯이라면 분명 식용이 틀림없을 것이다.
또 다른 한 놈도 가까이 가서 역시 버섯을 따서 먹는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의 일이다. 갑자기 한 놈이 장난기가 발동하여 친구의 머리 위로 뛰어 넘더니 도망을 치듯 사라져 버린다. 나머지 한 놈도 친구를 따라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멈췄던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데 소나무 뿌리 녘에 다람쥐 조각상이 머리를 처 들고 앉아 있었다.
‘....?’
자세히 살펴보니 동그란 두 눈이 깜박거린다.
‘다람쥐 정령?’
분명 그렇다.
정령과 실체의 다른 점을 알아보려 유심히 살폈다.
보통 사람은 혼령이나 정영, 요정 같은 것은 보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것들을 다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다.
구별하기는 역시 힘이 든다.
‘아하.’
이제야 찾았다.
정령의 머리 뒤에는 보랏빛 원영상이 희미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너 이리와.’
미준은 다람쥐 정령을 향해 손을 펴자 다람쥐 정령은 사르르 분해되어 사라지면서 도토리 모양의 작은 원석을 남겨 두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편백 숲으로 이어졌다. 판자로 만들어진 산책길을 걷고 있으려니 맞은편에서 올라오고 있는 일가족 팀이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올라오고 있었다.
미준은 한쪽 옆에 서서 그들의 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그들은 미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예, 안녕하세요.”
지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돌아보며 한참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참 행복해 보이는 일가족이다.’
미준은 심호흡을 하며 편백 숲에서 나온다는 피톤치드를 의도적으로 흡입해 보려는 듯 숨을 크게 빨아들이며 심호흡을 하였다.
그 뒤 철쭉 정원과 초지원을 지나 동천을 건너지 않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너무나 아까워 나머지 국가 정원은 누군가와 함께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남겨두기로 하였다.
그날 저녁 일찍 저녁을 먹고 한 교회 주차장에 차를 대어두고 죽도봉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운동도 하고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숲길을 따라 오르고 있었다.
“아저씨, 함께 가요.”
누군가 뒤에서 소리를 질러 뒤를 돌아보았다. 추리닝을 입은 두 아가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헐떡거린다.
“저요?”
미준은 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올라오길 기다려 주었다.
“그럼, 아저씨 말고 누가 또 있어요?”
“.....?‘
당돌한 아가씨 들이다.
“좀 쉬어가요.”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오던 아가씨들이 다리가 풀리는지 포장도로 옆 빈 공간에 털썩 주저 않는다.
미준은 엉거주춤 그들 옆에 섰다.
“이곳에 사세요?”
등산복 차림의 미준의 복장과는 달리 추리닝을 입은 그들을 보며 미준이 물었다.
“아뇨, 여행 왔어요.”
“네.”
“우린 진주에서 왔는데 아저씨는 어디서 왔어요?”
“난, 중산.”
“그럼 진주와 가깝네요.”
“우리 친구도 중산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있는데.”
아가씨들은 중산에 산다는 미준의 이야기를 듣고 매우 흥분하는 것 같았다.
“예.”
“중산 뉴 해양 보석백화점 알죠?”
“네.”
“우리 친구가 그기서 근무하는데 뉴 해양이 꿈의 직장이라면서요?”
“대기업이니 그렇겠죠.”
“아저씨는 어디 근무하세요?”
“난 백수.”
“호호, 그럼 우리는 백조. 방은 어디에 얻었어요?
참 꼬치꼬치도 묻는다.
“캠핑카.”
“와, 좋겠다. 우리 내일 돌아가는데 같이 가요. 캠핑카 한번 타보고 싶어요.” 결국 진주 아가씨들의 적극적인 공세에 미준은 그들과 동행하기로 하였다.
사실 미준도 은근 반가웠다. 혼자 다녀보니 재미도 없고 심심하기도 하였다.
죽도봉 공원길은 참으로 울창 했다 단풍이 다 익으면 너무나 좋을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의 연속이었다.
공원에서 내러올 때 기어이 그들은 펜션에 들러 놀다가라 하였다. 그들은 둘이서 일주일 동안 지역을 돌아보고 이제 집으로 갈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펜션에 들렀더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과일이랑 맥주를 내어주고 친구를 하자며 떠들고 있었다.
금년 봄에 졸업을 한 후 몇몇 곳에 원서를 내었으나 연락도 없고 부모님 보기에 말이 아니라고 넋두리를 했다.
중산에 근무하는 친구는 공부도 잘 했지만 운이 좋아 금방 취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아저씨는 몇번 떨어졌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