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에 미친 총각-164화 (164/225)

〈 164화 〉 괴물 헌터(1)

* * *

‘내게 이런 능력이.’

‘혹시 꿈에 나타난 세이렌의 도움일까?’

“네 집안에서 입은 은혜을 네게 갚아 주는 거야.”

분명히 세이렌은 그렇게 말했었다.

꿈인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 생생하다.

‘분명 내가 무엇인가를 받은 것 같은데?’

그리고 미준은 잠이 들었다.

꿈일까?

발가락에 피를 흘리며 절뚝거리며 불암산 계곡을 따라 올라가고 있는 동자승을 봤다.

“야. 이 밤중에 어딜 가?”

동자승은 그를 돌아보며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동자승이라면 머리를 깍은 어린 스님을 뜻한다.

파르스름한 머리가 예쁘기만 하다.

“엄마 찾으러.”

“네 엄마가 어디 있는데?”

아이는 산을 가리키면서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간다.

“야. 꼬마야.”

차마 어린 스님을 그냥 둘 수 없었다.

재빨리 따라 올라갔으나 어느 순간 그만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는 잠에서 깼다.

‘이상한 꿈이네.’

다시 잠을 자려다 저녁에 캔 동삼을 꺼내보았다.

아이처럼 생긴 동삼의 한쪽 다리에 실낱 같은 뿌리가 절단되어 있었다.

삼을 캐다가 잔뿌리 하나를 다친 거 같다.

자리에 누었으나 어디선 본 전설 같은 이야기가 머리에 떠올랐다.

미준은 일찍 일어나 채비를 하였다.

아무리 꿈이지만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어제 밤에 산삼을 캔 곳으로 되돌아갔다.

아무래도 예사 꿈은 아닌 것 같았다.

도로가에 차를 세운 뒤 등산화로 바꿔 신고 카메라를 챙겨 목에 걸었다.

배낭을 멘 뒤 불암산 계곡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꿈에서 본 지형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여기쯤에서 동자승을 놓쳤는데?’

미준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뒤지다가 탄성을 질렀다.

‘아니, 이럴 수가?’

그의 눈에 50 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산삼대 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5지 5엽 산삼이었다.

가지 중앙에는 녹색과 빨간색이 절묘하게 썩인 설익은 산삼 열매가 옹기종기 달려있다.

딸기 모양으로 탐스럽게 맺혀 있었다.

손으로 가만히 열매를 만져 보았다.

‘아!’

하나하나의 열매가 모두 보석이었다.

녹색의 열매와 빨강색 열매가 영롱한 빛을 내는 천연 보석이었다.

즉시 카메라로 인증샷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땅을 팠다.

줄기와 뿌리가 떨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깊이 파고 들어갔다.

‘우와. 크다.’

엄청 대물이었다.

갈증이 난다.

물을 마신 후 다시 작업을 계속하였다.

‘음.’

‘이건 도대체 몇 년이나 됐을까?’

자신이 봐도 몇 백 년은 더 되어 보인다.

어제 캔 산삼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분명 모삼이 틀림없었다.

다시 주변을 살펴 보았다.

어제 밤에 캔 것과 비슷한 것들을 일곱 뿌리나 더 캐게 되었다.

‘이건 분명 하늘이 준 선물이다.’

미준은 불암산 정상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한 후 산에서 내러오고 있었다.

계곡 비탈에 이끼를 걷어 배낭에 넣고 계곡 물에 손도 씻고 세수도 하였다.

윗쪽 지방은 단풍이 빨갛게 물이 들어 절정을 이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불암산 계곡은 아직 멀었다.

기슭으로 내러오자 계곡 옆에 수영버들 나무가 비스듬히 누워있었고 수양버들 뿌리 부분에 느타리버섯이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그것 조차 놓칠 수는 없다.

버섯을 따서 배낭에 넣은 뒤 차에 올라 산삼 하나하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의 가슴은 머무나 벅차다.

자연산 이끼를 첩첩히 깔아주고 타월을 이용하여 정성스럽게 감싸주었다.

캐는 것도 좋지만 보관 또한 중요할 것이다.

정리를 끝낸 미준은 주변을 잘 살펴보며 섬진강을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 환각으로 생각했던 각종 괴물들이 이제는 아주 친근감이 든다.

괴물이 보일 때마다 치료가 안 된 자신의 병에 공포감을 가졌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괴물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꼴이 되었다.

‘그동안 미안하다. 사랑스런 괴물들아.’

남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환각을 보는 것보다 괴물인지 귀신인지 무언가를 보는 게 더 끔찍한 일이 아니냐고.

그러나 아니다.

자신이 증세가 정신병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보석 까지 얻게 되었으니

이제 이 녀석들이 사랑스럽게 보일 정도였다.

섬진강을 따라 차를 달리면서 흥룡리 고분군 안내판이 나오자 도로 옆 빈 공간에 차를 세웠다.

휴대폰을 꺼내 흥룡리 고분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하동군 하동읍 흥룡리는 흥룡마을, 호암마을, 먹점마을 등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모두 섬진강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흥룡리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섬진강을 도강하는 용의 모습과 같다고 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흥룡리에 있던 용소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는 전설도 있었다.

‘이런 곳이라면 뭔가 있지 않을까?’

미준은 차에서 내려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특별히 보이는 건 없는 것 같았다.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다.

옛 부터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개똥도 약에 쓰려면 보이지 않는다고.

막상 찾아보려니 흔하지 않다.

도로를 건너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심호흡을 하였다.

기분이 상쾌하고 가슴이 후련하다.

흥룡리 일대는 섬진강 보존이 매우 잘 되 있었다.

강의 모래밭이 잘 보존되어 있고 주변 풀숲도 자연 그대로다.

물의 주된 흐름은 전라도 쪽에 가깝고 곡선을 이루는 강의 모양이 물길의 방향을 조종하나보다.

그때 강바닥 백사장에서 새로운 괴물을 목격하게 되었다.

큰 황구릉이 한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 머리를 쳐들고 바라보고 있었다.

얼른 카메라를 찾아 클로즈업 하여 촬영을 하였다.

그리고 조용하게 그들에게 속삭였다.

‘실물이면 남아있고 괴물이면 사라져.’

‘뭐야 이건?’

‘실물?’

그대로 남아 있다.

가까이 접근하자 똬리를 풀고 풀숲으로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다.

그때 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담비 한 마리가 지나가는 구릉이와 싸움을 벌인다.

역시 이곳엔 자연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카메라를 켜 동영상을 찍으면서 구릉이와 담비의 싸우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담비의 동작은 참으로 민첩하였다.

머리를 치켜들고 공격하는 구릉이를 껑충껑충 뛰어오르며 잘도 피한다.

끈질기게 구릉이를 괴롭히는가 하더니 결국 놈의 머리를 잽싸게 물었다.

머리를 물린 구릉이가 몸을 뒤틀며 담비의 몸을 휘감으려 하자 담비는 같이 땅바닥에 구르면서 신기하게도 요리조리 피해가며 제압에 성공하였다.

미준은 꼭 정신이 홀린 사람처럼 그 광경에 몰입되어 있었다.

그때 모래밭 작은 바위 위에서 또 다른 무엇인가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건 해태상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해태상이 아니었다.

긴 혀를 입 밖으로 뽑아내며 하품을 하는 모양새가 분명 살아있는 요정이거나 괴물이었다.

‘너는 또 뭐야?’

속삭이듯 한 마디 하자 그 자리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다.

미준은 얼른 해태가 사라진 곳을 확인해 보았다.

그 곳에는 해태가 끼고 있던 은색 목걸이와 발목에 차고 있는 금색 발찌가 놓여 있었다.

목걸이와 발찌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수없는 희귀 보석이 빽빽하도록 박혀 있었다.

‘우와. 이런 것까지 얻을 수 있다니.’

미준은 가슴은 벅차올랐다.

‘다음에 한번 다시 와야겠다.’

다음 기회에 흥룡리 고분군을 다시 찾아올 것을 다짐하면서 차를 몰아 북쪽으로 달렸다.

미준의 판단은 정확했다.

같은 지역이라도 밤과 낮에 나타나는 괴물이 다를 수가 있고, 날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계절에 따른 괴물의 출현이 다를 것이다.

섬진강 대로를 따라 천천히 달리면서 주변 풍경을 구경하였다.

악양을 거쳐 평사에 도착하자 섬진강의 작은 지류 봉대천이 나타났다.

이번엔 차를 우로 꺾어 지류를 따가 올라갔다.

조용한 동정호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동정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고목이 된 물 버들이 물속에 잠기듯 총총하게 서 있고 가을의 오는 듯이 노란 잎사귀가 조화롭게 달려있다.

호수 주변에는 길고 둥글게 둘레길이 이어져 있고 핑크뮬리가 연분홍을 이루어 길을 따라 피어있다.

그리고 이어져서 노란 들국화와 코스모스가 아름답게 피었는데 호수 가운데는 작은 섬 하나가 그림처럼 떠 있었다.

호수 맞은 편앤 호숫가에 앉아있는 악양루의 정경이 묘하게도 신비스럽고 어울림을 더해 준다.

사진을 찍어보니 한 폭의 동양화가 따로 없었다.

‘오늘 밤은 여기서 묵어야겠다.’

어느 새 미준도 예감이란게 생겨난다.

피부로 느껴지는 알지 못할 예감이었다.

낚싯대 두 대를 꺼내 동정호에 던져두고 악양루에 올라 가을의 동정호를 감상하고 있었다.

비록 작지만 느껴오는 정감은 예사롭지 않다.

만약 자신이 시인이라면 시 한 구절이 나올 만도 하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버드나무 가지가 물속에 비춰 아름답기 그지없다.

주왕산 주산지 못지않은 물속에 잠긴 수양버들의 풍치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 때 힌색 승용차 한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며 남녀 한 쌍이 차에서 내린다. 누가 봐도 사진작가 들이다. 프로들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사진에 미친 사람들이다.

삼각 받침대를 나란히 세우더니 큰 카메라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그들은 기다리는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상준의 낚싯대에서 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딸랑, 딸랑.”

누각에서 내려와 낚싯대를 당겼다. 민물 낚싯대가 포물선을 그리며 찰랑거린다. 그리고 천천히 릴을 감았다.

저 멀리 사진사들이 미준의 포스를 잡아당기며 악양루의 풍경을 잡아내는 것 같다. 걸린 고기는 30 cm급 토종 붕어였다.

본의 아니게 사진작가의 모델이 된 것 같다.

미준은 고기를 떼어낸 후 다시 지렁이를 꿰어 던져 넣었다. 그들은 다시 사진을 찍더니 카메라를 거두어 일언반구 말 한마디 없이 차에 올라 사라져 버렸다.

‘저건 초상권 침해가 아닌가?’

잠시 후에는 작은 붕어들이 연거푸 올라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낚싯대가 포물선을 그렸다.

묵직한 놈이다.

좌우로 왕복하며 발버둥치는 것이 보통 놈은 아닌 것 같다.

‘뭐든 넌 나의 저녁 반찬감이다.’

가물치였다.

‘이런 곳에도 가물치가 있나?’

미준은 낚싯대를 거두어 차를 대어 놓은 주차장으로 나왔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간단하게 민물 매운탕을 끓여 저녁을 먹고 난 후 이번엔 주차장 앞 호수에 낚싯대를 던져두고 야광 전자 찌를 꽂아두었다.

그러나 좀처럼 찌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지루한 감도 들고 바람도 일어나 그냥 버티기는 무리인 것 같았다.

‘낚시야 뭐. 될 대로 되라지.’

내일 먹을 반찬거리라도 얻어 볼까 했더니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씩 물 위로 뛰어 오르는 물고기가 있어 미준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다.

‘차 안에서 봐야겠다.’

바람이 불어오자 찬 기운을 느낀 미준은 캠핑카에 올라 운전대에 앉아서 호수에 뜬 찌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오늘 밤 목표는 물고기를 낚는 밤낚시가 아니다. 무엇인가가 나타나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

꿈의 날개는 끝도 없이 퍼덕인다. 미준의 마음에 야망이란 것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인생은 한번이다. 이베부터 나만의 세계를 열어갈 것이다.’

어느 듯 시간은 밤 아홉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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