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거성의 출현(3)
* * *
‘ 내게 이런 능력이 생겨나다니?’
미준은 몹시 흥분하였다.
자신의 능력에 요정을 없앨 수 있는 힘도 생겨났고, 한 걸은 더 나가 보석까지 얻을 수 있다니.
도무지 지금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진정 펙트였다.
‘세이렌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꿈에 나타난 세이렌의 힘이 전도된 것 같았다.
“조금 전에 나보고 아직도 요정이 보이냐고 물었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보여. 그것도 또렷하게.”
“정말?”
“응.”
“그럼 어떡해. 오빠?”
“이제 걱정 하지마.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애."
미준은 확신했다.
결코 이건 정신이 미친 현상도 아니고 불행한 일도 아닌 것 같았다.
은혜의 눈과 다시 마주쳤다.
자신의 눈을 피하는 것 같다.
잠시 후 그들은 호수를 바라보며 벤치에 앉았다.
“그날 정말 고마웠어.”
“뭘 말이에요?”
“초등학교 때 말이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편을 들어준 건 너 하나밖에 없었어.”
“사실 저도 오빠가 고마웠어요.”
“내가 뭐?”
“그 날 다리에 가시가 찔렸을 때 하나하나 다 뽑아주고 피가 나고 있는 제 다리를 싸매어 주었잖아요. 그리고 나서 우리 반 까지 데려다 주고.”
“내가?”
“입으로 호호 불어도 줬는데?”
미준은 그 일 까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은혜는 핸드백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내 주었다.
“이게 그 손수건이에요.”
“이건 네가 가지고 있어.”
미준은 어렴풋이 떠오르는 옛 추억을 더듬어 보고 있었다.
손수건을 받으면 다시는 그녀를 못 볼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온 미준은 자신의 고민을 다시 생각하며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오늘 호숫가에서 본 왕눈이가 남긴 무지개 색 콩알 보석. 그것은 결코 환상의 아니 엄연한 현실이었다.
‘지금까지 본 모든 것들이 환각이 아닌 사실이라면?’
‘그럼 난?’
어쩌면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고 능력자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 보게 되었다.
‘그래, 그럴지도 몰라. 환각이 아닐 수도 있어.’
‘잘하면 난 새로운 인생을 살 수도 있어.’
‘세상에는 벌써 많은 초능력자가 존재하고 있잖아?’
‘잘하면 나도 헌터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개척할 수 있을 거야.’
다음날 미준은 스스로 괴물을 찾는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정신병자라는 자의식에서 탈피하여 직접 찾아 나서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었다.
이런 결심을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때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 때 일이었다.
세상엔 이미 괴물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남해안에 유성우가 내린 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 영향으로 세계는 이미 5차 산업이 발달되어 있었고 5차 산업의 중심에 괴물이 있다.
괴물을 이용한 신종 산업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괴물 낚시, 우주보석, 낚시 제품 제조업. 우주보석 가공업. 괴물 식품 가공업 등 관련 산업은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생활에 뿌리 깊이 박혀있다.
괴물을 잡는 프로 사냥꾼도 존재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도 괴물고기를 잡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곳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바다 괴물이었다.
육지에서도 간혹 괴물이 잡히는 경우가 있다고는 한다.
하지만 주로 능력을 가진 프로들에게 잡힐 뿐이다.
그러나 미준처럼 혼자만 볼 수 있는 유령과 같은 영적 괴물은 듣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다.
‘만약 내게 이런 능력만 있다면?’
세이렌의 힘이라면 가능 할지 모른다.
사실 육지에서도 유성우를 삼키고 죽은 생물체가 많이 있었다.
어떤 생물은 요정으로 변했고 어떤 생물은 영령으로 남았다.
괴물로 변한 육지 동물도 있고 돌연변이가 되어 희귀 생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지 생물의 변화를 모르고 있다.
바다 고기들은 이미 밝혀졌다.
육지라고 다르겠는가?
그는 남아있는 통장 잔금을 모두 털어 중고 캠핑카 한대를 구입하였다.
비록 중고차긴 했으나 정비를 하여 손질을 하고 나니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캠핑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모두 갖추고 요리를 할 정도의 준비도 갖추었다.
음식은 직접 만들 셈이었다.
‘그럼 나도 집시맨?’
‘괴물 잡는 집시맨?’
자연에서 직접 먹을 것들을 구하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얻어 쓰기로 했다.
낚시도 하고, 약초도 캐고, 버섯도 따서 해결할 작정이었다.
쌀과 된장, 고추장도 준비하고 차에 설치할 주방기구도 마련하였다.
왕눈이에게 얻은 콩알 보석은 이런 것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여행 준비가 마무리 되자 잠시도 집에 있기가 싫었다.
‘당장 떠나자.’
‘어디로 갈까?’
무작정 차를 몰아 진월을 거쳐 하동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밖으로 나오니 세상이 모두 자신 것만 같다.
서두를 것도 없고, 힘들 것도 없다.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만 같다.
원동 마을이 가까워지자 날은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낮이 많이 짧아진 것 같다.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밤길에 주변은 온통 산으로 이어졌다.
그때 그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목격되었다.
인적이 없는 으쓱한 산기슭에 동자승 하나가 작은 바위 아래 서 있었다.
나이는 불과 여섯 살 정도 돼 보일까?
‘지금 이 시간에 웬 동자승이?’
미준은 즉시 차를 세웠다.
“꼬마야. 너 어두운데 혼자서 뭐해?”
“아저씨, 제가 보이세요?”
미준은 순간 머리끝이 쭈빗하고 소름이 끼쳤다.
‘세이렌, 도와줘.’
미준이 간절하게 세이렌을 부르자 동자승은 그만 희미하게 변하더니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 역시.’
미준은 즉시 손전등을 들고 차에서 내려 아이가 서 있던 곳을 확인해 보았다.
보석을 남긴 개구리 왕눈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동자승이 있던 그 자리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보석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건 뭐지?'
바로 그 자리엔 오지 오엽의 희귀한 풀이 꼿꼿하게 버티고 있었고 빨갛게 익은 씨알이 딸기모양으로 뭉쳐 5지 가운데에 달려 있었다.
‘이럴 수가.’
'이건 분명 산삼인데?"
얼른 씨를 받아 손바닥을 올려놓고 살펴보았다.
‘뭐야, 이건 산삼 씨앗이 아니잖아?’
이것은 분명 그냥 씨가 아니었다.
반짝이는 작은 씨들이 홍옥 보석 같았다.
미준은 즉시 캠핑카로 돌아가 괭이와 호미를 들고 희귀한 풀을 캐기 시작했다.
보석이 달리는 산삼?
뭣이 이런게?
갑자기 삼 냄새가 엄청나게 올라온다.
산삼이 있는 주변 흙은 부슬부슬한 마사토로 되어 있었다.
이런 흙이니 섞지 않고 버터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와. 이거 진짜 산삼.”
진한 산삼 냄새가 진동을 하는 당근만한 산삼을 채취하였다.
산삼의 모양은 사람의 모양과 흡사하였다.
뇌두를 중심으로 두 팔을 벌리고 두 다리가 쭉 뻗은 아기 같았다.
뇌두의 길이와 크기로 봐서 꾀 오래된 삼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이런 행운이?’
그의 감격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세상이 다 자기편 같았고 벅차오르는 희열은 감당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이젠 확실해 졌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영적 존재의 괴물을 잡는 헌터.
“난 프로 사냥꾼이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영적 괴물을 난 잡을 수 있다.”
캄캄한 산기슭에서 소리높이 외쳤다. 눈물이 갑자기 솟아지기 시작하고 새로운 기운이 치솟는 것 같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알 수 없는 기운이 미준을 몸을 감싸는 것 같다. 그리고 한참동안 정신을 잃고 누워있었다.
‘내가 너무 감격해서 실신을 했나?’
자리에서 일어나니 몸이 가볍고 날아갈 듯 힘이 생겨났다.
‘아. 이것이 바로 동자삼이란 것이구나. 전설에 나오는 바로 그 동삼.’
미준은 수건 하나를 물에 적셔 방금 캔 동자삼을 돌돌 말아 소중하게 보관하였다.
‘이제 확실하다. 결코 내가 본 것은 환각이 아니다.’
자신은 이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신기의 눈을 가진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아!.”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솟아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아!, 아!”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밤, 그것도 낯 설은 어느 산기슭.
미준은 방금 캔 산삼이 있던 바위에 앉아 오래도록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 고등학교 6년 세월. 미국 유학 2년, 의대 6년 동안. 오직 정신병 치료와 정신신경학에 몰두해 왔다.
그동안 받아 왔던 수많은 수모와 멸시가 마치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지난 세월이 너무나 아까웠다.
‘지금 부터다. 연미준.’
‘너 인생인 내가 책임진다.’
한참 후 마음이 진정되자 다시 차에 올랐다. 산삼을 캔 지역을 네비를 통해 위치를 스캔하였다. 전남 광양시 불암산 계곡으로 위치가 잡혔다. 차를 몰아 섬진교를 지나 하동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배가 무척 고팠다. 이제야 제 정신이 돌아오는가 보다. 로타리를 돌아 얼마가지 않아서 재첩국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섬진강 유역이라면 재첩국이 최고다.
시원한 재첩진국에 공기밥을 말아 배가 부르도록 먹고 나서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하동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였다. 오늘은 여기서 일박을 할 예정이다. 히터를 틀어두고 자리에 앉으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동안 자신 때문에 얼마나 마음 졸이고 가슴 아파 했는가?
자신이 먼저 전화한 건 고등학교 입학 후 이번이 처음이다.
“엄마.”
미준은 평소 어머니로 호칭한다. 모처럼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엄마.’란 말이 튀어나왔다.
“응, 미준아.”
“엄마.”
“응. 잘 지냈어? 어디야?”
“몰라, 나 여행 왔어.”
“그래, 별일 없지. 무슨 일인데?”
미준은 어머니는 불안하였다. 몇 년 만에 아들의 전화를 받고 보니 눈물부터 먼저 나왔다. 아들이 먼저 전화한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기 때문이었다.
“엄마, 그동안 미안해.”
“미준아. 너 갑자기 왜 그래?”
“걱정 마 엄마. 그냥 엄마 목소리 듣고 싶었어.”
“그래? 그게 정말이야?”
“응, 엄마 사랑해. 나중에 찾아뵐게.”
전화를 끊은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어머니는 혼자 밤이 새도록 울고 있었다. 아들의 전화를 받아본 것이 10년도 더 된 일인 것 같았다.
미준은 캠핑카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때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오빠, 저에요.” 은혜였다.
“응.”
“제가 정말 이 말은 안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하고는 잠을 못 자겠어요.”
“또 무슨 말?”
“난 그날 이후 한번도 오빠를 잊은 적이 없어요.”
“....?”
“오빠,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기억해?”
“처음?”
“기억 안나나 봐.”
“....?”
“내가 여섯 살 때 공원에서 씽씽카 타다가 호수에 빠졌을 때 오빠가 날 건져줬다고.”
“뭐. 그럼 그 때 그 꼬마가 너였어?”
“이제 생각 나나보네.”
“그랬구나.”
미준은 어렴풋이 옛 생각이 떠올랐다.
“그날 오빠가 우리 엄마보고 뭐랬는지 알아?”
“....?”
“엄마가 아이를 제대로 봐야죠. 이게 뭐예요.”
“내가 그랬어?”
미준은 좀 창피스런 생각이 들어 혼자 머리를 긁적거렸다.
“미안해. 내가 이런 꼴이 돼서.”
“아니에요. 오빠. 곧 나을 거예요. 제가 보기엔 지금도 정상이야.”
“어째든 고맙다. 그렇게 말해줘서.”
“나 오빠 좋아한다는 거 잊으면 안 돼.”
“.....?”
“아, 고백하고 나니 이제 시원하다.”
“응, 가을이잖아.”
“그게 아니고.”
“알아. 잘자.”
전화를 끊은 미준은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그래도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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