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거성의 출현(1)
* * *
몇 년 만에 닥친 긴 추위도 더는 계절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었는지 따뜻한 봄기운이 온 산야를 찾아오고 있을 무렵이었다.
미준의 어머니는 이제 갓 여섯 살이 된 아들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왔다.
“미준아, 우리 공원 산책이나 갈까?”
“산책?”
“응.”
“그러면 난 씽씽카 탈거야.”
종일 집에 있으니 아이가 좀이 쑤시는지 갑갑해 하고 자신도 모처럼 바람을 쐴까하고 아들을 데리고 인근 공원으로 나왔다.
날씨가 유별나게 포근한 탓인지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공원에 모여 앉아 담소를 하거나 산책을 하며 즐기고 있었다.
특히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새댁도 보이고 일요일인 탓인지 새내기 신혼부부와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미준아, 저기 봐. 벌써 새싹이 돋아나고 있지?”
“응, 엄마.”
미준은 제법 씽씽카 속도를 높이고 있다.
“빨리 가면 안 돼. 위험해.”
“알았어.”
어린 미준은 씽씽카를 타고 달리다가 한번씩 뒤를 돌아보며 어머니를 향해 빨리 오라는 손짓을 한다.
“아아!”
그 순간이었다.
미준은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아기를 피하려고 급히 씽씽카를 멈추려고 몸을 비틀다 그만 공원 정자 아래 내기 바둑을 두는 노인들의 바둑판을 그대로 덮쳐 버렸다.
“아이코.”
“뭐야?”
바둑을 두던 노인들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른다.
상황을 살펴보니 어린 꼬마 꼬마 하나가 씽씽카를 타고 자신들이 바둑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었다.
“야, 이놈아.”
상대가 어린 아이라 더 이상 화는 못 내고 꾸중을 할 수도 없자 결국 자기들끼리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번 판은 내가 다 이긴 거야.”
“끝까지 해 봐야 알지. 이기긴 뭘 이겨?”
결국 노인들은 내가 이겼니, 네가 이겼니 하면서 말다툼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그때 미준의 어머니가 노인들에게 급히 다가와 사과를 하자 아이에게 할 화풀이를 미준의 어머니를 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이를 보려면 제대로 봐야지. 이게 뭐냐고?”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냐고?”
그러자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미준의 어머니를 처다 보며 딱하다는 듯이 말을 거들었다.
“아줌마, 이 어른들, 지금 내기 바둑을 두고 있었거든요. 그러지 말고 아줌마가 이 노인들께 만원씩만 드리세요. 그럼 간단하게 해결 될 것 같은데?”
“예, 알겠습니다.”
미준의 어머니는 얼른 백을 열어 지갑을 꺼내려 하였다.
“엄마, 잠깐만.”
“....?”
“할아버지, 이거 원래대로 놓아주면 되죠?”
“....?”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이 둘러서 있었다.
미준은 흐트러진 바둑 돌들을 모두 쓸어내리고는 바둑판을 반듯하게 놓고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는 백색, 흑색 알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씩 바둑판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둘러선 모든 사람들의 눈은 고사리 같은 미준의 손끝에 집중되었다.
간혹 미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얼마가지 않아 삼분의 이 정도 찬 바둑알을 다 정리하였다.
옆에 계신 할아버지를 보며 앳된 얼굴로 물었다.
“이제 됐죠?”
“글쎄. 이거 맞아?”
“아마 맞을 거예요. 어른들이 싸우면 쓰니요? 싸우는 건 나쁜 거 잖아요.”
“.....?”
“제대로 놓은 것 같은데?”
옆에서 구경하던 할아버지가 미준을 보며 말했다.
“너 어떻게 알았어?”
“넘어질 때 잠깐 봤어요.”
“햐!”
“이놈 천재네.”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아연 실색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준은 넘어지면서 잠깐 본 바둑판을 모두 원상 복귀시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엄마, 돈 드릴 필요 없어. 이제 가요.”
“그래. 그래도 죄송한 일이지. 죄송하다고 말씀 드려."
"죄송합니다."
“이것으로 술이나 한잔 드세요.”
미준의 어머니는 미준을 데리고 총총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가슴이 뛰고 벅차 주체할 수가 없었다.
‘우리 미준이가?’
그날 밤 어머니는 공원에서 벌어졌던 일을 되세겨 보며 어린 아들을 끌어안고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 우리 미준이 잘 키워야지.”
원래 미준은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점이 있었다.
미준의 어머니는 남편과 결혼 한 후 3년 만에 어렵게 임신을 했으나 조기 출산의 기미가 있어 6개월 만에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산모의 자궁에서 수박 크기만한 은색 알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 일로 아버지 물론 할머니까지 엄청난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일이 절대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입단속 좀 해 주세요.”
미준의 아버지는 집안 망신이라 생각하고 산부인과 원장을 만나 함구를 부탁했다.
자칫 잘못하면 언론에 노출되어 엄청난 파문과 충격을 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꼭 부탁드립니다. 원장님.”
“잘 알겠습니다.”
“오빠, 나 창피해서 못살아.”
미준의 어머니는 목숨을 끊겠다고 소동을 벌였다.
더구나 다시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통고도 받았다.
어느 날 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알을 안고 자취를 감췄다.
시어머니와 남편의 이야기를 우연히 엿듣게 되어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이 사람아. 저걸 어떡해. 저걸 그냥 두고 볼 거야?”
“어머니, 제게도 생각이 있으니 좀 그냥 기다려 봐요.”
“네가 못하면 내가 할게. 남 보기 창피스럽게 이게 말이 돼?”
“그렇다고 그냥 버릴 수 없잖아요.”
“왜 못 버려. 타조도 아니고 제비도 아니고.”
이 말은 들은 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알을 가지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던 시어머니였다.
그냥 있으면 언제 그 알을 버릴지도 모르고 중간에 깨트려 버릴지도 모른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것은 자기가 낳은 알을 가지고 도망을 치는 수 밖에 없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였다.
바로 난태성 해인이란 뜻이었다.
완전하게 사람으로 변신한 줄 알았는데 이것 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남편은 아내를 찾기 위해 전국을 뒤졌으나 아내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아내는 결국 [천인아] 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여 종적을 감추었다.
미준의 어머니는 한 병원을 찾아가 쉬쉬하는 가운데 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알 속에는 예쁜 옥동자가 들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미준의 어머니는 인터넷을 찾아 자신과 같은 일이 있나 뒤져본 결과 비록 전설이긴 했으나 신라 김알지 왕의 이야기를 보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우렸다.
미준의 어머니는 결혼하기 전 직장 생활에서 모은 조금의 재산으로 시골 한 구석에서 빈 집을 얻었고 남의 일을 도와주며 틈틈이 받은 돈으로 자신이 낳은 알을 인큐베이터에 넣어 키우게 되었고 결국 다시 4개월을 기다리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거짓말 같이 알이 깨어나면서 귀엽기 그지없는 옥동자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
이것이 바로 미준이었다.
“이름을 뭐라 하지?”
망설이던 인아는 자신의 아들을 [미준]으로 지어 자신의 밑에 신고를 하였다.
미준은 결국 어머니가 지은 이름이었다.
인아의 걱정과는 아랑곳없이 미준은 건강하게 잘 자라 모든 것들이 점차 잊어져 갔고 미준은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귀염둥이로 잘 자라났다.
“아이구, 우리 아들. 어떻게 요렇게도 잘 생겼을까?”
어머니는 미준을 볼 때마다 사랑스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미준이가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소풍날 현장학습 때 부터였다.
그 날 친구들과 대판 싸움이 붙었고 이때부터 학교에서 문제아라는 낙인이 찍히기 시작했다.
싸움의 계기는 지극히 간단했다.
현장 관찰을 하고 있는 미준에게 예쁘게 핀 장미에 앉아있던 나비 한 마리가 말을 걸었다.
“넌 누구야?”
미준은 놀라 주변을 돌아보았다. 보이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네 말이야.”
자세히 보니 사람의 머리를 가진 조그마한 나비요정 같았다.
TV에도 나오고 동화책에서도 본 나비 요정과 많이 닮아 있었다.
“난 미준이. 넌?”
“난 나비 요정이야.”
그때 친구들이 미준의 곁으로 달려왔다.
“미준아.”
“응.”
“너 뭐하고 있어?”
“나비 요정하고 말하고 있었어.”
“뭐?”
친구들이 갑자기 까르르 웃으며 놀리기 시작했다.
“정말이야.”
“나비 요정이 어디 있어?”
“여기.”
다시 보니 장미꽃 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너 미쳤어?”
“정신병자 아니야?”
“정말 있었다니까.”
“이 자슥, 정말 미쳤네. 어디 있어. 어디?”
미준은 할 말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는데 친구들은 미쳤다며 놀리기 시작했다.
“너희들 오빠한테 왜 그래?”
이제 2학년인 은혜였다.
은혜는 미준이 보다 3년 아래 이웃집 동생이다.
“가시네, 넌 뭐야?”
친구 하나가 은혜를 와락 밀쳐 버리자 그만 장미꽃 가지에 넘어져 울음을 터뜨렸다.
“야?”
“뭐?”
결국 그날 미준은 셋이나 되는 친구들을 엄청나게 두들겨 패 버렸다.
물론 그들도 합세하여 미준에게 덤벼들었으나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한 뼘이나 큰 미준을 당해내지 못하고 죽도록 얻어 터졌다.
친구들의 조롱도 조롱이었지만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이 어린 은혜를 넘어트려 다치게 한 것에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하게 된 것이다.
“괜찮아?”
은혜의 가느다란 다리는 장미꽃 가시에 찔려 몇 군데나 피가 흘러 내렸다.
그날 이후로 미준은 친구들과 담을 쌓았고 친구들도 미준을 처다 보지도 않았다.
그뿐만 아니었다.
이때부터 미준은 아버지가 없는 사생아라는 소문이 번져갔고 요정을 보았다는 거짓말을 까지 하는 문제아로 낙인이 찍혔다.
결국 선생님은 어머니까지 학교로 호출하셨다.
“미준아. 그런 거짓말은 하면 안 되는 거야.”
“선생님, 전 정말로 봤어요.”
끝까지 고집하자 선생님까지 화를 내며 미준을 벌세우며 혼을 내셨다.
이날 이후 미준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고 어머니와 선생님 앞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 어머니의 입장도 난감하였다.
“저 세끼 완전 미쳤어.”
“선생님께도 거짓말을 하고.”
미준의 급우들은 고집을 부리며 수긍하지 않는 미준을 보고 모두 미쳤다고 수근 거렸다.
어머니도 미준을 달래려 하자 끝내 나비 요정을 보았다며 떼를 써서 어머니 마음까지 상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하던 날이었다.
그날 미준은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졸업 인사를 하였다.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선생님은 미준을 보며 달갑게 생각지도 않았다.
그래도 졸업한다고 인사를 온 것이 한편은 대경스러웠다.
"그래. 너도 잘 가."
“그런데 선생님, 그때 전 분명 나비 요정을 보았어요.”
“......”
“안녕히 계세요.”
“자식, 그것 참. 못 말릴 놈이네.”
선생님과 작별하고 현관문을 막 나오는데 3학년인 은혜가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서 있었다.
“오빠.”
“은혜야.”
“오빠, 이제 못 보는 거야?”
“너 이사 갔다며?”
“응.”
“그럼. 잘 있어. 오빠 간다.”
그리고 은혜는 더는 보지 못했다.
중학교로 진학한 후에도 미준은 머리가 좋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다 보니 다소 어이없는 주장과 고집이 있어도 그냥, 그냥 묻혀가고 있었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잘못이 용서가 되는 것처럼 미준도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친구들의 따돌림은 계속되었다.
정신병자라고 누구 하나 미준과 어울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미쳤다고 했다.
가끔 내뱉는 미준의 말을 누구 하나 믿어주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미준은 오늘도 혼자 학교 뒤뜰 농구 코트에서 농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혼자 드리볼을 하며 혼자 슛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때 닫혀져 있는 학교 후문을 두 발로 잡고 안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캥거루 형상의 괴물을 보고 흠칫 놀라 동작을 멈추었다.
다시 보았으나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또 정신병이 도졌나?’
‘저런 것들을 안보이게 할 수는 없을까?’
이제 미준도 자신에게 오는 환각현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오는 이상 현상을 고민하다 신경정신과를 방문해 봤지만, 정신 안정제 처방만 할 뿐 약효 같은 건 느끼지를 못했고 의사마저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아니, 자신 스스로도 정신병이 아닐까 하는 염려가 한시라도 머리를 떠난 적이 없었다.
사실 문제가 더 커지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체육시간에 줄을 맞춰 운동장을 돌고 있는데 갑자기 공룡 한 마리가 아이들을 향해 뛰어오는 것이었다.
“흑, 공룡.”
미준은 뛰어가던 발걸음을 갑자기 멈추며 주변 아이들을 옆으로 밀쳤다.
무의식에서 비롯된 순식간에 벌어진 행동이었고 혹시 아이들이 다치지 않을까 순식간에 취한 돌발 행동이었다.
“너 미쳤어?”
“이 새끼 완전 미친 새끼네.”
“너 그걸 말이라고 해?”
“저 새끼 병, 또 도진 거 아니야?”
“저 자슥 애비도 없는 사생아라 그러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뚜껑이 열린 미준은 아이들 넷을 초죽음이 되도록 죽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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